어느 연애질 이야기
‘한 여자가 있었다. 한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졌고, 그의 작전(?)과 강요에 의해 몸을 허락한다. 이후 남자는 여자로 하여금 집을 얻어 독립을 하게 했고, 그곳을 자신의 상설 무료 성욕해결소로 활용하게 된다. 그러다 여자가 임신하고, 남자는 ‘쾌락에 따르는 책임’이라는 현실을 비로소 목격한 후에 그 관계의 가치에 대해 저울질하기 시작한다. 아마도 이쯤에서 남자는 ‘갈아탈 차 올 때까지’라는 결론을 내렸음이 분명하다. 여자는 중절수술이라는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겪고 그 남자에 대한 의존이 높아지는 와중에 남자는 서서히 정리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성욕은 ‘정리’하고는 거리가 멀었나 보다. 여자는 다시 임신을 했고, 남자는 그때서야 공포에 쫓기는 동물처럼 ‘책임’이 따르는 쾌락을 적극적으로 거부하기 시작한다. 연인 사이에 벌어질 법한 가벼운 논쟁을 빌미 삼아 차 밖으로 그녀를 내팽개쳐버리고 “개 값 물기 싫어 안 때린다”는 식의 폭언으로 일방적인 관계해지 통고를 한다.
그 여자의 어머니가 그를 만나 도대체 상황이 뭐가 잘못되었는가를 따지려 하자, 그는 “남녀간의 있을 법한 문제”, “낙태된 건 그냥 정자덩어리” 등으로 자신의 입장을 변호하며 상대방의 성질을 긁어 놓는 화려한 언변을 구사했고, 이에 격분한 그녀의 어머니가 뺨을 두 번 때리자 그는 경찰을 불러 폭행현행범으로 입건을 요청한다. 경찰서로 달려간 그녀의 눈에 비친 것은 지병인 저혈압 때문에 혼절상태에 빠진 어머니의 모습과 그 앞에서 “쇼 하는 거 아니냐”라는 특유의 ‘지분거리기’를 하고 있는 예전 남자친구의 모습이었다. 분을 이기지 못한 그녀는 어머니가 친절한 경관에 의해 석방수속을 밟는 것을 본 후 혼자 사는 집으로 돌아와 수면제를 한 움큼 삼키고 쓰러져, 일주일 뒤 자신의 토사물과 출혈에 코를 박고 사망한 채로 발견된다.
어느 복수극 이야기
요즘에는 드라마 소재로도 쓰이지 않을 법한, 무지하게 유치한 이야기 들어주시느라 독자 여러분들 수고 많으셨다. 하지만 2005년 5월에 실제로 벌어진 이 흔해 보이는 사건은 ‘피임의 중요성’이나 ‘남자는 짐승’이라는 교훈을 전해주기 위한 ‘도덕극’의 역할 정도에 머무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인터넷의 발달과 블로그 문화는 이 사건을 완전히 예상치 못한 곳으로 발전시켜 버리고 만다.
발단은 고인의 동생이 고인의 미니홈피에 전모를 올리면서부터였다. 그 미니홈피를 채널 삼아 이야기는 급속히 확산되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저마다의 경험과 목적에 이끌려 이 사건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선악’보다는 ‘악당’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이야기였기 때문에, 그 남자에 대한 ‘증오’가 그녀에 대한 ‘동정’을 누르고 ‘응징을 향한 의지’로 팽창되어버리는 건 시간문제였다. 곧 그 남자의 얼굴과 실명, 다니는 학교·직장, 심지어는 그 남자의 사는 곳까지 완벽하게 공개되고, 마침내 남자는 직장과 학교를 그만둔 채 잠적해버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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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자연재해 이야기
그런데 신문사·방송국 등 주류 언론에서 바라보는 이 사건의 포커스는 천편일률적으로 ‘인터넷 사생활 침해 심각하다’였다. 남자가 무슨 짓을 저질렀건 간에 일단 한 개인이 집단적인 ‘마녀사냥’의 희생물이 되었고, 그것은 손쉬운 개인정보의 취득과 확산이라는 현대 정보통신 기술의 폐단에 의한 피해라는 이야기다. 이러한 반응은 당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언론의 가장 큰 역할이 ‘정보의 전달’이라는 원론은, 그야말로 ‘백설공주 독사과로 샐러드 해먹는 순진한 이야기’, ‘대학 가려고 암기하는 거짓말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은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라면 누구라도 아는 이야기다. 언론의 제일 목적은 ‘정보와 여론 조작’이며, 이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수세기에 걸친 세월 동안 조율되어왔고, 당연히 주류세력의 품안을 떠나본 적이 없다. 그러므로 주류 언론이 자신들이 만들어 내지 못한 여론에 대해서 지나치게 불안해하고 두려워하며 심지어는 증오하기까지도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을 ‘권력의 누수’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사실 어떤 의미에서는 그러한 보도방향이 참 안타깝고 처량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사뭇 태풍이나 해일 같은 자연재해를 살인죄나 기물파손죄로 기소하는 듯한 부질없음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권력이 이런 일들을 막으려고 아무리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고 해도 결코 막아질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보의 고속도로’는 이미 사통팔달로 깔려 있고, 누구의 이야기도 그 길을 따라 이동할 수 있다. 이런 식의 여론형성이나 ‘자경단’식 집단 린치는 통신망을 다 파내고 컴퓨터를 전부 수거하지 않는 이상 막을 방도가 없는, 그야말로 인간의 의지나 방식을 벗어난 자연현상에 가까운 것이기 때문이다.
반복되는 이야기
이른바 ‘개똥녀*’ 사건, 서울대 도서관 폭행사건, 육군훈련소 인분사건, 밀양 여중생 성폭행사건, 김상혁 음주 뺑소니 사건, 서귀포시 부실 도시락 사건, 간호조무사 아동학대 등 최근에 벌어진 인터넷 여론형성의 사례는 점점 늘어가고 있다. 이것이 바람직한지 아닌지에 관한 논쟁은, 호우나 폭설이 바람직한 것이냐고 묻는 것만큼이나 쓸데없는 일이다. 오히려 이러한 여론형성 과정을 자신의 권력 하에 넣으려는 기득권 세력의 움직임과 그것을 상품화 할 수 있는 방안을 구체화시키려는 마케팅 이론의 미래, 그리고 기술의 발전에 의한 사회 전반적인 권력의 이동(Shift) 추이를 주목하는 것이 더 현명한 일이 아닐까 싶다.
쓸데없는 이야기 하나
사실 테크놀로지에 의한 규모의 확장이 있었을 뿐이지 전술한 이야기는 ‘조리돌림’이라는 우리의 아름다운(?) 전통문화와 상당히 닮아있지 않은가?
비단 우리문화뿐 아니라 집단 린치의 문화는 성서만큼이나 오래된 것이기에 차라리 위선적인 ‘근대성’보다는 인류의 본성에 더욱 어울리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지하철 차량 내에서 자신의 애완견의 배설물을 치우지 않은 채 내려, 사진이 공개된 여성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