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브랜드 가치 세계 44위에 오른 루이비통은 오늘날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파리 샹젤리제 대로에 있는 루이비통 매장에서는 일본과 한국 등 아시아계 관광객 쇼핑 인파가 항상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진풍경을 목격할 수 있다. 비단 이곳 매장만 그런 것이 아니다. 세계인의 패션 아이콘이라고 할 수 있는 뉴욕의 소호나 이탈리아 밀라노의 몬테 나폴레오네(monte napoleone)·홍콩·도쿄 등 어떤 곳이라도 루이비통 매장은 항상 고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다.
하지만 루이비통은 여행 트렁크 브랜드로 이미지가 고착되어 힘겨운 마케팅 전쟁을 치러야 하는 숙명을 안고 있었는데, 그 루이비통을 완벽하게 다시 부활시킨 사람으로 마크 제이콥스(Marc Jacobs)를 꼽는 데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150년 전통의 루이비통을 바꾸다
1997년 루이비통의 회장 아르노는 브랜드 리뉴얼을 위한 중대한 결심을 발표했다. 칼 라거펠트·존 갈리아노·톰 포드·마이클 코어스 등 쟁쟁한 디자이너들을 제치고 불과 34살의 마크 제이콥스에게 수석 디자이너 자리를 맡긴 것이다. 천재적인 가능성은 있었지만 이제 막 자기 이름의 브랜드를 런칭한 그에게 아르노 회장은 도박을 건 것이다. 아르노 회장은 루이비통의 고정된 이미지를 바꾸기 위한 혁명에 가까운 변화가 없이는 고객들로부터 영원히 멀어질지 모른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그의 승부수는 그대로 들어맞았다. 여행 트렁크라는 무거움을 훌훌 떨쳐버리고, 완전히 첨단 유행 브랜드로 탈바꿈하는 데 성공을 거둔 것이다.
마크 제이콥스는 그때 상황을 이렇게 말한다. “루이비통은 자극적인 변화가 필요했다. 기성복 컬렉션을 통해 고객층을 젊게 하고 브랜드에 활기를 불어넣어야 했다. 그전까지 여행 가방이라는 좁은 길을 걸어왔기에 길을 넓히기 위해서는 옷을 내세워야 했다.”
그의 이런 판단은 적중했으며, 1년 후에 선보인 첫 컬렉션에서 여실히 증명되었다. 지금까지의 루이비통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파격적인 디자인과 소재는 관객들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했다. 관객들은 환호성을 질렀고, 매장에서는 고객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다. 그는 교묘하게 예술성과 상업성의 경계를 넘나들며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성공을 거둔 것이다.
그는 경쟁 브랜드들이 로고를 최대한 숨기는 전략을 구사하는 데 반해, 역으로 의상과 구두·백·액세서리 등 모든 아이템에 로고를 과감하게 도입, 150년 전통의 문양을 재현시켜 차별화했다.
루이비통 아르노 회장의 도박은, 그렇게 세상의 우려를 통쾌하게 뒤집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 루이비통의 성공과 함께 런칭 10년도 안 된 브랜드인 Marc Jacobs도 순항을 계속하고 있다. 이를 사람들은 무심히 부러워할 뿐이지만, 그 성공의 치열함을 들여다보면 그의 천재성이 이제 제대로 빛을 발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마추어와 프로로서의 마크 제이콥스
마크 제이콥스의 이력을 보면 천재의 비범함을 엿볼 수 있다. 그는 1963년 뉴욕 출생으로, 어쩜 그의 출신 자체가 그의 감수성을 키우는 데 커다란 공헌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의 고등학교 선택은 지금의 길로 들어서게 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1981년 ‘High School of Art and Design’을 졸업하고, 디자이너의 꿈을 키우기 위해 대학을 ‘Parsons School of Design’으로 결정했다. 아마도 그의 인생에 있어서 이 두 가지의 선택이 오늘날의 마크 제이콥스를 존재케 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는 대학 재학 중 놀랍게도 페리엘리스 골드 팀블상과 체스터 와인버그 골드 팀블상을 연거푸 수상했고, 그 기세를 몰아 ‘올해의 디자인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1987년에는 그 해 패션 산업계에 가장 높은 공헌과 활동을 한 디자이너에게 수여하는 상인 CFDA(Council of Fashion Designers of America)상을 최연소 기록으로 거머쥐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디자이너로서 한번 받기도 힘든 이 상을 1992년에 다시 한번 수상해 그의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물론 이렇듯 화려한 수상 경력이 사업 성공의 결정적 요인은 아니지만, 그의 잠재력을 눈 여겨 본 페리엘리스는 그를 1989년 부회장으로 영입해 디자인에 관한 전권을 맡겼다.
그러나 초반에 그는 너무 앞선 실험정신으로 실패의 고배를 마셔야 했다. 엄청난 대가를 치르면서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를 배운 셈이라고 할까.
하지만 활기 왕성한 그에게 한두 번의 실패가 결코 좌절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 쓰라린 경험은 또 다른 도전을 하게 만드는 기폭제가 되어 수많은 여성복을 실험적으로 시도하게 되었다. 이는 페리엘리스나 마크 제이콥스 자신에게 성공과 자신감을 동시에 안겨주는 계기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마크 제이콥스에게는 독립에 대한 꿈을 키우게 했다.
마침내 1993년, 그는 친구인 로버트 듀피와 함께 ‘마크 제이콥스 인터내셔널(Marc Jacobs International)’을 설립했다. 이어서 1995년에 ‘Marc Jacobs Look’을 선보였고, 다음 해엔 남성복 컬렉션을 선보였으며, 1997년에는 뤼이뷔통의 수석 디자이너로 영입되면서 그의 브랜드 가치가 전세계적으로 인정받게 되자 뉴욕 소호에 첫 여성복 매장을 열었다. 또한 2000년에는 남녀 핸드백과 구두 등의 가죽 아이템을 선보였고, 다음 해에는 입고 싶지만 가격 때문에 접근하지 못하는 매니아들을 위한 세컨드 라인으로 유니섹스 모드인 ‘Marc by Marc Jacobs’를 런칭해 갈채를 받았다. 계속되는 성공에 힘입어 같은 해 6월에는 여성용 향수가, 2002년 봄에는 남성용 향수가 런칭되어 호평을 받았다.
이런 그의 성공의 이면에 존재하는 브랜드 철학은 한마디로 ‘과감한 실험정신’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기존 브랜드에서는 볼 수 없었던 이색적인 소재와 컬러를 사용하고, 그런지 룩과 빈티지 룩을 고급스럽게 포장하는 신선함이 고객들로부터 끊임없는 관심과 찬사를 받고 있는 것이다.
특히 2003년 춘하 뉴욕 컬렉션에서는 50년대 미국을 연상시키는 페미닌 룩으로 9·11 테러의 후유증을 앓던 미국인들에게 자부심과 긍지, 그리고 그들만이 공감할 수 있는 향수를 불러 일으켜 박수갈채를 받기도 했다.
미국 패션의 자존심
“실용성과 단순미를 상징해 온 미국 컬렉션이 감성적으로 변하고 있다.”
최근 미국 패션계를 평가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다. 그런데 그 변화의 중심에 마크 제이콥스가 있음을 부인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는 뉴욕에서 전개하고 있는 자신의 브랜드와 명품 브랜드인 루이비통을 통해 자신만의 패션철학을 부각시키고 있는데, 특히 미국 패션계에서의 그의 위치는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미국의 이미지를 ‘디자이너의 변방에서 중심’으로 옮겨 놓았고, 발표하는 컬렉션마다 수많은 화제와 찬사를 몰고 다녔다.
사실 페리엘리스에서 일할 때만 해도 그를 인정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당시 선보인 파격적인 그런지 룩은 비록 패션계에서는 역사적인 사건으로 기록하고 있지만, 소비자들의 이해 부족으로 실패로 돌아갔다. 뿐만 아니라 루이비통에서의 첫 컬렉션에서도 악의에 찬 언론의 혹평을 들어야만 했다. 그러나 그는 지금까지 자기가 배운 디자인 감각에 대한 유혹을 뿌리치고 언제나 새로운 트렌드를 선보였고, 그에 대한 질타의 소리가 커지면 커질수록 달궈진 쇠처럼 단단해져 갔다. 전통에 얽매이지 않고 늘 자유로운 감각과 실험적인 정신을 패션에 접목시켜 왔다. 그의 브랜드를 미국의 대표 브랜드이자 자존심으로 키운 것이나, 150년 전통의 루이비통을 혁신한 것들 모두 그의 이런 지칠 줄 모르는 실험정신과 배짱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최근 <FACE>지에서 발표한 ‘패션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디자이너 100명’의 명단에서 그는 쟁쟁한 멤버인 아르마니·베르사체·톰 포드 등을 제치고 당당히 1위에 올라섰다. 이제 명실공히 정상에 등극했고, 그의 이런 성공에 반기를 들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슈 메이킹 모델’들을 이용한 크리에이티브
Marc Jacobs의 광고는 유르겐 텔러(Juergen Teller)라는 포토그래퍼가 유명모델들을 촬영해 진행하고 있다. 사실 이 브랜드의 광고에 주목하게 된 것은 이 포토그래퍼가 그려내는 인물들의 표정과 동작 때문이었다. 즉, 모델들이 가지고 있는 장점과, 브랜드가 광고하고자 하는 품목과의 교묘한 결합의 묘미인 것이다.
<광고 1>의 모델은 스테파니 세이무어(Stephanie Seymour)인데, 그녀는 일찍이 14살부터 모델계에 투신한 인물이다. 그녀는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지의 수영복 모델로 인기를 얻기 시작했는데, 군살 하나 없는 몸매는 전세계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고, 이러한 그녀의 인기는 곧바로 Victoria’s Secret의 모델로 캐스팅 되는 영광으로 이어졌다. 우수 연속 페이지로 집행된 이 광고에서도 역시 그녀의 매력이 물씬 풍기고 있는데, 아무 것도 걸치지 않고 신발만 신고 있어, 보는 이들에게 모델의 섹시한 이미지를 신발로 전이시키고 있다.
<광고 2>에서는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애거시라는 예언자로 강한 인상을 남긴 사만다 모튼(Samantha Morton)이 모델로 나오고 있다. 영화에서 그녀는 단선적이고 강렬한 연기로 호평을 받았는데, 이 광고도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듯한 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여기서 특히 포토그래퍼가 인물에 포커싱하는 기존의 흔한 기법을 탈피해서 모델의 특징은 살리되, 제품과의 관련성을 철저하게 추구하고 있다는 데 점수를 주고 싶다.
<광고 3>도 같은 모델인데, 그녀의 표정 연기가 압권이다. 핸드백을 열고 소스라치게 놀라는 모습이나, 장난스러운 눈빛과 비틀어진 입술 모양이 패션광고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모습이다. 이렇게 살아 있는 모델의 모습을 잡아낼 때 광고도 살아나는 것이다.
<광고 4>에서는 서른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10대 소녀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위노나 라이더(Winona Ryder)가 모델로 나오고 있는데, 거식증으로 구설수에 오르고 도벽으로 망신을 당한 그녀를 옹호하는 듯한 광고로 보이기도 한다. 그녀는 어린 나이에 일찍 데뷔한 탓인지 정신적으로 다소 피폐해진 면이 최근에 나타나고 있다. 특히 조니 뎁(Johnny Depp)과의 이별 후 그 증세는 더 심해지고 있는 듯해 팬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그녀는 <아담스 패밀리>에서의 그로테스크한 딸 역할이나, 조니 뎁과 공연했던 <가위손>같은 영화에서 연기력과 청순하고 귀여운 이미지로 우리나라에도 팬이 많았는데, 얼마 전 옷을 훔치다 들킨 사건으로 스스로의 얼굴에 먹칠을 했다. 미국판 <연예가중계>라 할 만한 <인사이드 에디션>이라는 프로그램에서는 꼬박꼬박 위노나 라이더 재판과정을 보여주곤 하는데, 그녀는 처음에는 아예 훔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CCTV에 찍힌 자기 모습조차도 부인하다가 나중에는 새로 맡은 배역의 특성에 따라 옷을 훔치는 도둑질을 해보았다고도 주장해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 정도의 문제를 안고 있는 모델이라면 한국에서는 외면하게 마련이지만 Marc Jacobs는 오히려 그것을 즐기는 듯하다.
<광고 5>는 흡사 전성기의 비틀즈 모습을 연상시키는데, 가수들의 일상적인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다. ‘잘 나가는 가수들도 이렇게 일상으로 돌아오면 광고를 보고 있는 당신과 전혀 다를 게 없다’고 말하는 것 같다. 어쩌면 광고가 일종의 환상을 심어주는 이미지 작업일지 모르지만, 이런 경우처럼 소비자가 ‘나와 똑같다’는 생각을 하도록 친근하게 다가갈 수도 있다.
<광고6~10>은 <엔젤 하트> <위대한 유산> 등에 출연했던 관록의 여배우 샬롯 램플링(Charlotte Rampling)의 사생활을 그대로 광고로 옮겨 놓은 인상을 주는 시리즈 광고다. ‘샬롯 램플링의 자화상’이라는 타이틀로 전개되고 있는 이 시리즈는 특별한 장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40~50대 고급 매니아들에게 신선한 자극을 주고 있다. ‘나도 저렇게 아름답게 나이 먹을 수 있을까’ 하는 부러움과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는 사랑의 모습에 흠뻑 빠져들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가장 두려운 것이 상대에 대한 무관심이라고 한다. 이런 두려움을 안고 사는 세대들에게 이 광고는 얼마나 부럽고 닮고 싶은 자신의 자화상일까?
<광고 11>은 정치적인 이슈를 광고에 접목시키고 있다. 세계적인 기타리스트인 서스턴 무어(Thurston Moore)가 살인을 반대하고 전쟁을 혐오한다는 피켓을 든 채 강렬한 눈빛으로 세상을 주시하고 있다. 그의 노래가 담고 있는 메시지이기도 하고, 그의 철학이기도 하며, 때론 노래가사이기도 한, 살인과 전쟁을 거부한다는 것을 선언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광고 12~13>은 설치작가이자 조각가인 레이철 페인스타인(Rachel Feinstein)의 천진난만한 모습을 광고에 담고 있다. 나이에 관계없이 너무나 밝고 활발한 그녀의 모습을 통해 Marc Jacobs는 삶의 긍정적인 모습을 나타내고자 한 듯하다.
<광고 14~17>은 미국의 유명한 구성 사진작가인 신디 셔먼(Cindy Sherman)의 이야기로 만들어진 광고이다. 미국 뉴저지 출신인 그녀는 현대 사진에 있어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데, “나는 내 작품을 페미니즘 작품이나 정치적 선언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안의 모든 요소는 이 사회의 여성이라는 입장에서 관찰한 것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신디 셔먼의 작품에서 보이는 특징은 ‘여성’과 ‘몸’이다. 신체라는 외부 이미지를 넘어서 여성 신체를 구성하는 내부 이미지를 묘사한 오브제 아트에 이르기까지 여성의 신체는 셔먼이 추구하는 작품 세계의 근원이다. 그녀는 남자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여성의 ‘몸’에 대한 규정을, 단순히 아름다움이 아닌 있는 그대로 또는 변장 뒤에 감춰진 진실을 보여줌으로써 여성의 진정한 자아확립과 주체회복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인물. 그런 그녀이기에 광고에 나오는 모습 또한 여타 모델들이 연출하는 모습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자기의 작품세계와 궤를 같이 하듯 패션광고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불쾌감을 줄 수 있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지금까지 본 바와 같이 마크 제이콥스는 그의 패션철학만큼이나 광고에 있어서도 경쟁사들이 도저히 할 수 없는 방법으로 어프로치하고 있다. 모델들도 유명, 연예인이나 섹스 심벌들을 캐스팅하지 않고,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거나 당시에 이슈 메이커 역할을 하고 있는 인물을 섭외해 집행하고 있다.
따라서 광고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보고 동일시 현상을 일으켜 구매로 가는 일반적인 과정 보다는 뭔가 Marc Jacobs의 옷을 입는 사람들의 의식과 식견, 그리고 사회에 대한 책임의식까지도 염두에 둔 듯한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실제 Marc Jacobs의 유저들이 그런가 그렇지 않은가는 별개의 문제이고, 이미지를 만들어 가는 데 있어서 경쟁 브랜드들과는 뭔가 다른 포지셔닝을 시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