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총 2207 건의 콘텐츠
2020. 12. 1.
Wisebell을 마치며.
책상 위엔 몇 달을 방치한 책들이 두서없이 쌓여 있습니다. 우연인지 운명인지 그 중엔 페터 한트케의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도 보입니다. 가급적 짧은 편지를 쓰리라 마음먹습니다. 퇴사 초범도 아닌데 무슨 놈의 긴 이야기가 있겠습니까. 더구나 은퇴할 나이에 은퇴도 안 하고 또다시 씨를 뿌리러 가는 마당에 사무치는 정념을 토로하기도 머쓱합니다. 회사란 그냥 좋은 추억이 많이 있을 때까지 머무르는 것이 현명하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야 더 그리워질 테니까요. 너무 오래 정박해 있는 배는 항해하는 법을 잊게 될 것 같다는 생각도 저를 밀어냅니다. 갈매기들 놀이터가 되기 전에 말이지요... 그렇게 다시 떠날 채비를 합니다.삶은 하염없는 항해일 따름입니다. 욕망의 항해고 사유의 항해고 구도의 항해고 이상의 항해고..
2020. 10. 6.
나는 연필을 깎는다. 고로 존재한다.
연필을 깎는다. 총탄 구멍처럼 생긴 홀에 연필을 넣고 고정시킨 다음 작은 손잡이를 돌리면 일 분도 안돼 연필은 깔끔하게 면도를 마친 신사의 얼굴로 변신한다. 백미는 완벽한 원뿔 모양의 끝자락에 길지도 짧지도 않은 흑연 심이 예리하게 탄생할 때다. 새로이 태어난 흑단의 예각 위로 흐르는 빛은 자못 비장하다. 마침내 마지막 연필을 깎고 여느 날처럼 가지런히 놓으면 순례자의 시간이 시작된다. 다시 언어의 숲이다. 카피라이터로서 나의 아침은 연필을 깎는 일부터 시작된다. 처음 카피라이터에 입문했을 때는 주로 카피 용지에 볼펜이나 만년필로 써서 넘기거나 아니면 전동타자기를 사용하면 되었다(전동타자기는 광고국마다 한 대씩 배치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PC의 시대가 오면서 점점 필기도구와 멀어지게 되었는데, 나같이..
2020. 9. 3.
쓸데없는 생각_10
제일좋은TV는좋아하는사람과함께보는TV다. 임원되면좋은가봐차들도하하하허허허호호호 일을사랑하는게아니라사랑을사랑하는거다 덜노력하기위해더노력하자. 누군가의기분을상하지않게하고고쳐지는일은없다. 진실은인기가없다. 그는거장.너는노장.나는고장. 나이드니까2악장이좋아지네. 돈개념이없는게아니라숫자개념이없는거다. 2020.더하면 사死. 곱하면 0無. 모든기억은창작이다. 오랜만입니다.고등학교동창보다더오랜만에만난사람_나 세상에서제일가벼운가방은여행가방이다. 오른팔이하는일을왼팔이모르게하라.믿을인간없다. 수사관들의국제공영어_불어! 화분에물을주고나면왜내가싱싱해지지. 알고리즘
2020. 8. 4.
와인을 좋아한다는 것.
영화 대부를 보지 않은 사람은 드물다. 많은 이들이 인생 영화로 주저 없이 손꼽기도 한다. 나처럼 보지 않은 사람들도 대부가 얼마나 유명한 영화인지는 안다. 그래서 옛날에 한번은 모 은행 대출 광고 아이디어를 짜다 대부를 패러디하기도 했다. (얼마 전 아이디어 회의 때도 누군가 대부의 돈 꿀레오네를 아이디어로 가져오기도 했다) 아마 나의 경우 그 영화를 봤다면 그런 아이디어를 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가끔은 모르는 게 약일 때가 있다. 너무 깊은 앎은 감옥이 된다. 대부를 보진 못했지만 그래도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Francis Ford Coppola 감독은 가끔 만날 기회가 있다. 그가 만든 와인을 마실 때다. 코폴라 감독은 필름 메이커로 깐느 황금종려상도 받고 아카데미 평생공로상도 수상했지만 와인 ..
2020. 7. 2.
...농담이었습니다.
이태리 사람들은 말하기를 좋아한다. 북구 쪽 사람들과 비교하면 확실히 투머치 토커다. 격정이 넘칠 때는 입으로 말하는지 손으로 말하는지 모를 정도로 손을 위아래로 끊임없이 휘둘러 댄다. 대체로 손바닥을 하늘로 향하게 하여 상하 운동을 시키는데 구강 운동과 리드미컬하게 템포를 맞추는 모습은 마치 오페라 가수를 연상케 한다. 그래서 혹시라도 이태리 사람들을 조용하게 만들려면 손을 묶어 놓으면 된다고 한다. 영국 사람들과 아일랜드 사람들은 역사적으로 사이가 좋지 않다. 우리나라와 일본처럼 깊은 앙금이 쌓여있다. 그런데 아일랜드인들의 특징은 우리나라 사람들만큼이나 술을 잘 마시고 술이 세다. 그런 아일랜드 사람들에게 물어봤다. 아일랜드인은 술 먹고 절대 토하지 않나 봐요? 네~ 영국인들한테 인사할 때만 빼고요...
2020. 6. 1.
끝
사람 좋아 보이는 얼굴의 그이는 시원스레 맥주 한 잔을 들이켜더니 고향이 땅끝마을이라고 대답했다.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가 초면인 데도 체면치레를 좀 무디게 만들었나 싶어 아차 했지만, 질문은 던져졌고 다행히 부처님 같은 그이의 표정이 나의 소심한 걱정을 엿가락 녹이듯 녹여버렸다. 아 송정린가 송호리인가 지명이 그랬었는데, 전에 저도 한번 가본 적 있습니다. 거기서 완도로 가는 배를 탔지요. 맥주를 내려놓으며 고향 친구라도 만난 것처럼 맞장구를 쳐댔다. 땅끝마을 사람을 만나다니 이건 마치 장벽 너머의 야인(요즘 뒤늦게 왕좌의 게임을 정주행하다 보니)을 만난 거나 다름없습니다. 나는 말도 안 되는 너스레를 떨어대며 들뜬 기분이 되어 연신 맥주를 시켜 댔다.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치는 분이라 주제는 자연스레 광..
2020. 4. 29.
블루를 좋아하세요?
회회청(回回靑)이라니? TV를 보다 이 뜬금없는 단어의 등장에 머리를 요리조리 굴린다. 아무래도 무슨 색깔 같은데… 뉴런의 추적이 회회국(回回國)에 가 닿는다. 회회국은 아라비아를 일컫는 한자식 표기라는 것이 어렴풋이 기억 속에 남아 있었던지라-이슬람교를 회교라고 하는 것도 이런 연유고- 회회청(回回靑)이라는 단어의 유래도 이쯤 어딘가에 답이 있을 듯하다. 아니나 다를까 회회청은 요새 개념으로 말하면 중동지역에서 건너온 푸른색 물감 정도로 풀이되고 있다. 더 알아보니, 회회청은 조선 세조 무렵부터 청화백자의 안료로 귀하게 쓰이다 말기로 가면서 수입이 많아지고 흔하게 볼 수 있는 색이 되었다고 한다. 동양에서 귀한 대접을 받던 이 회회청의 주성분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코발트블루의 그 코발트다. 그런데 코..
2020. 4. 2.
일상의 즐거움
비행기 타고 멀리 출장이나 촬영을 하러 갔다가, 돌아오는 비행기에 들어서며 부랴부랴 신문을 찾던 시절이 있었다. 국내 소식이 궁금해 신문을 샅샅이 읽다 보면 몸과 마음속으로 한국이 다시 슬금슬금 들어와 똬리를 틀었다. 잊혔던 혹은 잊고 싶었던 일상들이 온몸을 조여오는 잠수복처럼 물 샐 틈 없이 나를 감싸면, 어느새 나는 일상인으로 재부팅되었다. 하지만 요즘처럼 어딜 가도 세상 소식을 다 보고 다 들을 수 있는 무경계의 삶은 단절과 이별을 잘 못 느끼게 한다. 울란바토르를 가도 모로코 사막을 가도 예전과 같은 철저한 ‘일상의 부재’는 이제 경험하기 어렵다. 때문에 일상으로의 귀환도 그만큼 덜 쫄깃해진 것 같다. 면역학적 관점에서 타인은 지옥이다. 피사로-정복자 피사로가 아니라 침략자 피사로로 불리는 것이 ..
2020. 2. 28.
어느 광고인의 고백
침대 옆 사이드 테이블에는 미키마우스처럼 생긴 알람시계가 있었지만, 손이 먼저 가는 것은 늘 스마트폰이다. 매일 밤 그는 앱을 열고 알람 시간을 맞추고 영영 돌아오지 않을 날과 이별한다. 운이 좋으면 8시간 후 그는 재부팅될 것이다. 지금까지는 확실히 운이 좋았다. 살아 돌아온 자신과 다시 만날 때마다 느껴지는 약간의 멀미만 빼면 그는 지금까지 한 번도 빠짐없이 아침을 맞이했다. 리모콘을 누르자 라디오 FM채널에서는 다정한 목소리의 남자가 오늘 하루도 응원한다며 음악을 전송했다. 베에토벤의 마지막 협주곡 황제다. 아쉬케나지의 피아노 소리가 늠름하고 현란하다. 피아노의 격정으로 온몸의 에너지도 역동하는 듯하다. 모든 생체 기능이 정상이 됐다는 뜻이다. 가방을 챙기는데 멜로디가 입에서 맴돌았다. 이젠 지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