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3-04 : Special Edition - 문화충돌, 2030 vs. 4050 - 현상 분석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새로운 세대의 상상력과 한국 사회의 유동성
 
 
  문화충돌, 2030 vs. 4050 - 1. 현상 분석
 
김 창 남 |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cnkim@mail.skhu.ac.kr
 
‘대결’론과 ‘변화’론의 차이
 
지난 연말의 대통령 선거는 우리 사회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변화의 분기점을 지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2002년 봄, 이른바 ‘노풍(盧風)’으로 시작되어 월드컵과 붉은 악마, 그리고 촛불시위와 대통령 선거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은 그 자체로 극적인 긴장과 놀라운 감동으로 점철된 한편의 드라마였다. 그 드라마의 주인공은 물론 우리 사회의 진정한 변화와 진보를 갈망하는 대중이다. 그리고 변화와 진보를 갈망하는 대중의 핵심에 이른바 ‘2030세대’라고 하는 새로운 세력이 자리잡고 있음은 물론이다. 많은 사람들이 지난 선거를 두고 2030세대와 4050 및 5060세대의 대립, 보수 일간지와 인터넷의 대결이었다고 평가하는 것은 일견 매우 그럴듯해 보인다. 실제로 2030세대와 5060세대는 지지 성향이 분명하게 갈라졌고(40대의 경우는 정확히 반반 정도의 지지율을 보여 중간세대의 성격을 뚜렷이 드러냈다),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보수 일간지와 인터넷 미디어 사이에도 정치적 성향의 차이가 극명히 나타난 바 있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선거가 4050세대에 대한 2030세대의 승리이며, ‘조중동’에 대한 인터넷의 승리라는 분석은 일견 타당성이 있다.
그러나 세대 집단과 미디어 사이의 대립·대결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자칫 선거 결과가 함축하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려버릴 수 있다. 대립·대결이라는 개념은 서로 마주하고 있는 두 항목 사이가 불연속적이며 단절되어 있고 적대적이라는 가정이 깔려 있다. 거기에는 어느 한쪽에서 다른 한쪽으로의 연속적이고 자연스러운 이동, 즉 ‘변화’라는 관점이 빠져버리는 것이다. 사실 사회가 발전하고 진화하면서 그 사회의 중심 세력을 이루는 세대 집단이 달라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물론 기술 발전과 함께 한 사회의 주류적 미디어가 바뀌는 것도 역시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대립·대결의 구도를 내세우는 태도에는 내심 그런 자연스러운 변화를 인정하지 않고 기왕의 주류적 권력과 권위를 유지하고자 하는 방어적이고 보수적인 심리가 은연중 작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대통령 선거 이후 ‘조중동’ 등 보수 일간지들이 끊임없이 세대간의 대결과 기성 세대의 소외감을 강조하고 인터넷 매체의 부정적 측면을 질타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런 심리 표현의 하나라고 할 수도 있다. 대개의 경우 시대의 흐름 속에서 주류의 자리를 내놓아야 할 상황에 처한 집단은 결코 ‘자연스러운 변화’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단지 대립과 대결로 받아들이며 그 대결에서 이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뿐이다.
 
 
‘2030’은 돌출이 아닌 연속적 변화 과정의 산물
 
지난해에 우리가 경험한 한국 사회의 새로운 흐름을 ‘대결’이 아닌 ‘변화’의 개념으로 보아야 하는 것은, 그것이 일순간에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라 사실상 오래 전부터 꾸준히 진전되어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 변화의 가시적인 출발은 아마도 80년대 후반, 좀더 정확히 한다면 87년 이후로 잡는 것이 올바를 터이다. 87년 6월의 시민항쟁은 우리 사회가 권위주의적이고 병영사회적인 틀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한 매우 중요한 역사적 분기점이었기 때문이다. 시민항쟁의 주체 입장에서 볼 때 결코 만족할 만한 속도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이 시점을 계기로 한국 사회는 조금씩 민주화의 과정을 밟아왔다.
그리고 90년대에 들어서면서는 민주화와 함께 세계화가 중심 담론으로 부상했다. 세계화는 기본적으로 미국 중심의 세계시장 질서 속에 적극적으로 편입됨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내적으로 보면 한국 사회의 오랜 가부장적 권위주의 질서가 무너지면서 사회 전반에 개방적 사고와 자유주의적 분위기가 형성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세계사적인 탈냉전과 탈이념의 흐름 속에서 한국 사회가 좀더 자유롭고 다원적인 사회로 변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가 지금 2030세대라 부르는 새로운 사회집단은 바로 이러한 사회변화의 흐름 속에서 성장하며 정체성을 형성한 세대라 할 수 있다.
한국 사회가 민주화와 개방화의 길로 변화하는 시기에 청소년기를 겪으며 성장한 세대는 당연히 병영사회적 틀에서 성장한 세대와는 다른 정치 의식과 문화를 가지게 된다. 40대 후반 이상의 세대가 과거 반공규율 사회에서 교육받은 냉전적 사고와 권위주의,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반면 그 이하의 세대는 상대적으로 그런 구시대적 사고 방식으로부터 자유롭다. 그리고 이들이 성장하며 사회적 발언권(이를테면 선거권)을 얻게 되면서 한국 사회의 정치적 지형은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다. 전두환의 강성 군사정권에서 노태우의 연성 군사정권, 다시 김영삼의 보수적 민간정권과 김대중의 상대적으로 덜 보수적인 민간정권을 거쳐 노무현 정권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은 결국 이 새로운 세대의 발언권이 점차 강화되어가는 과정과 맞닿아 있다. 지난해의 선거를 이렇게 거시적인 역사의 흐름 속에서 보면 그것이 매우 연속적인 변화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배태된 결과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노무현 정권의 출현은 과거 민주화의 상징이었던 두 김씨의 시대와 비교해 볼 때 매우 중요한 차이를 지닌다. 그 핵심은 군사독재에 맞섰던 민주화 세력의 상징이었던 두 김씨가 여전히 권위주의적인 구시대 정치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반면 노무현 정권은 아래로부터 솟아오른 시민사회의 자발적이고 민주적인 참여에 의해 정치적 리더십을 얻었다는 점에서 권위주의적인 구시대 정치로부터 훨씬 자유롭다는 데 있다. 이는 노무현 정권을 이끌어낸 2030세대의 정치문화가 가지는 대단히 중요한 특성에서 비롯된다. 필자는 이를 ‘참여를 통한 정치의 일상화’라고 표현하고 싶은데, 그것은 기본적으로 한국 사회의 성격이 산업사회적인 틀로부터 정보사회적인 틀로 변화하는 과정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도 하다.


멀티미디어 향유에서 정치까지, ‘참여’를 통한 커뮤니케이션
 
 
   
80년대 후반 이후 민주화와 세계화 담론으로 상징되는 정치·사회적 변화를 겪는 동안 한국사회는 매우 빠르게 산업사회로부터 정보사회로 나아갔다. 그런데 다소 오해의 여지가 있더라도 도식적으로 말해 본다면, 산업사회란 ‘눈에 보이는 자원을 토대로 눈에 보이는 상품을 만들어 파는 굴뚝산업이 사회의 물질적 토대를 생산하는 가장 중요한 산업이 되는 사회’이며, 정보사회란 ‘눈에 보이지 않는 인간의 지식·창의력·정보·서비스 등이 가장 중요한 산업적 토대가 되는 사회’라고 거칠게 정의할 수 있다.
산업사회가 강력한 노동통제와 규율을 통해 효율적 생산을 달성하고자 하는 반면 정보사회는 자유분방한 사고와 상상력, 자발성과 참여를 기본적인 요건으로 한다. 그리고 그런 상상력과 참여는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정보통신혁명에 의해 가능해진다. 특히 한국 사회는 가장 빨리 정보통신혁명을 받아들여 세계에서 가장 앞선 디지털 네트워크를 형성한 사회라 할 수 있는데, 그 새로운 디지털 네트워크에서 중심적인 세력을 형성한 것이 바로 2030세대라 할 수 있다.
고도 정보사회의 문화 환경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특성은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생산자로서의 수용자의 등장이다.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수용자들은 어쩔 수 없이 보다 의식적이고 적극적인 선택을 필요로 하게 된다. 더욱이 멀티미디어 환경의 등장은 이러한 선택의 범위를 엄청나게 확장하고 있다. 이제 수용자들은 특정한 내용은 물론 수용 공간 및 시간의 선택까지도 가능해진다. 자기가 보고 싶을 때 어디서나 멀티미디어를 이용해 보고 싶은 정보와 텍스트를 선택해 볼 수 있다. TV뉴스를 보기 위해 꼭 저녁 9시 뉴스를 기다릴 필요가 없이 아무 때나 접속하여 이미 데이터베이스로 저장된 뉴스를 시청하면 되는 것이다.
이러한 멀티미디어의 발전과 함께 수용자가 직접 소프트웨어의 구성에 참여하는 ‘참여적 문화활동’이 가능해진다는 점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전자게임은 이러한 변화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분야이며, 대화형 영화의 등장, 쌍방향 TV, 샘플링 기술을 이용한 음악적 조작 등도 모두 그런 것들이다. 지난날과 같이 문화 수용자가 완성된 문화산물을 일방적으로 구매하여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물의 생산 과정이라 할 수 있는 텍스트의 전개 과정이나 공연 과정에 부분적으로나마 생산자적 위치에서 참여하는 것이다. 이는 문화적 생산과 소비의 경계가 애매해지는 혁명적인 변화의 국면이 열리고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이처럼 디지털화한 문화환경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성 사회에서 정보와 지식의 가장 중요한 수단이자 통로였던 활자 미디어의 영향력이 현저히 줄어들면서 상호작용성에 기초한 영상 미디어, 특히 인터넷의 사회적 역할과 비중이 커진다는 점이다. 지금 젊은 세대에게 인터넷은 문화 생산과 소비의 장일 뿐 아니라 뉴스와 정보의 가장 중요한 창구이며, 그런 의미에서 가장 중요한 정치의 장이기도 하다. 인터넷 담론은 그 주 수용층인 젊은 세대의 의식과 감각에 걸맞게 진보적인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터넷이 젊은 대중의 자발적 참여와 연대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수동적인 정보 소비가 아니라 능동적인 정보 생산과 유통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유동적인 상상력의 에너지는 어디로
 
미디어의 역사는 기술이 발전하고 사회가 변화함에 따라 한 시대를 지배하는 미디어의 형태가 자연스럽게 변화하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하나의 미디어가 등장해 지배적인 미디어로 자리잡고 다시 새로운 미디어에 자리를 내어주는 과정은 역사 속에서 되풀이되어온 자연스러운 변화의 과정으로서, 그것은 결코 갑작스럽거나 불연속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시대의 변화와 발전에 따른 세대교체 역시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과정일 뿐이다. 새로운 세대가 과거의 세대와는 다른 세계관과 의식을 갖는 것 역시 자연스러운 일이며 거역할 수 없는 순리이다. 그것은 대결이나 대립이 아니라 너무나 당연한 변화일 뿐이다.
지배적 담론의 장으로서 신문의 위력이 약화하기 시작한 것은 오래 전부터의 일이며, 이는 지금도 진행중이다. 지난 선거의 결과는 보수 신문의 위력이 과거만큼 압도적이지 못함을 보여준 것일 뿐 그들의 역할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 분명하다. 또한 80년대 이래 지속된 민주화의 흐름 속에서 성장한 젊은 세대의 문화적 에너지가 이제 군사독재 시절에 형성된 기성세대의 정치관에 맞설 만큼 성장했음을 보여주긴 했지만, 사회적 주류를 차지하는 기성세대의 목소리는 결코 쉽게 위축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변화의 흐름 속에 있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지난 선거가 87년 이후 오랫동안 유예되어온 시민혁명의 시작일 뿐이라는 진단은 대단히 큰 설득력을 갖고 있다.
요컨대 아직 한국 사회에서 주류 세력의 교체를 이야기하는 것은 성급하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새로운 세대의 자유분방한 상상력이 노무현이라는 정치적 상징을 만나 결집된 힘을 발휘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그 에너지는 유동적이다. 앞으로 한국 사회가 얼마나 개혁적 변화를 일구어내면서 명실상부한 주류의 교체를 이룰 수 있는가 하는 것은 결국 그 유동적인 상상력의 에너지를 어떻게 갈무리하는가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2년의 드라마는 아직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지 못했으며, 지금 새로운 국면으로 전개되고 있을 뿐이다.
Posted by HS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