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드라인 한 줄만 쓰면 돼! - 1
예나 지금이나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가 “어떻게 하면 카피라이터가 돼요?”다. 카피는 실무를 하면서 카피로 크는 거란 말을 수도 없이 하지만, 그래도 뭔가 방법이 따로 있지 않을까 계속 묻는다. 어떻게 하든 들어만 간다면 카피로 크는 길에 들어선다. 어떻게 클까? 여기 어리버리한 여자 카피라이터가 광고회사에 신입으로 들어가, 지금은 남아있지 않은 전설의 카피라이터 신입교육을 받으며 커가는 과정을 소소하게 풀어본다.
옆에 와서 툭 치고 지나간다. 아니 말로 하라고 말로 해. 내가 멍멍이야 꼭 때려요. 집에서는 부인한테 꼼짝도 못하면서, 머리 속으로는 선배에게 별별 항의를 다하지만, 실상은 깨갱! 자리로 가서 묻는다. "왜 부르셨어요?" '어, 니가 언제 1년이냐?' 무슨 일년이요? 입사 1년? 선배한테 까인지 1년? 그런데, 얼마나 된 건가, 아..내일이면 딱 1년이네요. 어인 일로 그러십니까. 내 말이 떨어지자마자 선배 왈. 그래~ 그럼 내일부터는 혼자 해라. 아침에 비자카드 경쟁피티 회의 있거든 그거 들어가면 된다. 순간, 선배가 하는 말이 외계어로 들린다.
선배가 나를 미워하는구나. 드디어 나 짤리는 거야. 오만가지 생각끝에 아무 말 없이 자리로 돌아갔다. 섭섭아, 의섭아, 야 심의섭 마구마구 나를 부르는 선배의 목소리가 윙윙 들리지만, 이미 나의 영혼은 육체를 이탈했다. 가방을 싸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 중. 선배가 나를 질질 끌고 매점으로 갔다. 라면을 시키더니 친절하게 나무젓가락까지 잘라주는 게 아닌가. 진짜 짤리나 보다..어떡하지. 나의 상태는 전혀 고려치 않는 선배, 너 1년 됐으니까 이제 경쟁피티는 혼자 해야지. 이 선배도 사수가 만 1년 됐을 때 혼자 하라고 출가시켰다. 너도 이제 혼자 해. 나 좀 귀찮게 하지말고. 이게 마지막 라면이다. 내가 너 밥 먹이느라고 든 돈이 얼만지 아니. 제발 좀 독립해라. 그래그래 ‘심의섭, 하산을 명하노라!! 뭣이. 그럼 나 안 짤리는 거야? 으와아아 나 회사 계속 다닌다. 이러고 시작된 카피 생활. 나... 선배 밑에 있던 그 때로 돌아가고 싶어요!!! 사랑합니다.
<경쟁 피티 카피 입봉 - VISACARD 편>
인쇄광고 카피 10계명
1. 뚱딴지 같은 헤드라인으로 바디카피를 읽게 만들어라 (그러나, 바디 카피는 대충 쓰고 헤드라인 한 줄로 승부하려는 카피라이터는 요절감!)
2. '못살겠다, 갈아보자!' 만한 헤드라인이 있었던가? (기억하기 쉬운 대구, 표어식 헤드라인 광고. 그러나 운율이나 멋에 치우쳐 정작 제품 편익을 헤드라인에서 빠뜨리는 우를 범하면 곤란)
3. 경쟁사를 긁어서 내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하라 (신제품이나 2위, 3위 제품 캠페인에서 사용할만한 크리에이티브)
4. 로열티를 물지 않는 건 뭐든지 갖다 써라 (역사·문학·노래·연극·영화·전설·속담·논문·개그·TV프로 등)
5. 타깃과 메시지가 확실하면 탱크처럼 밀고 나가라 (말할 것을 말하고 그것으로 끝!)
6. 재미없는 카피는 쓴 사람도 다시 읽지 않는다 (세상에 즐거움을 줄 수 있다는 건 광고인이 놓칠 수 없는 보람이다)
7. 때로는 말장난 가지고 욕심껏 놀아 볼 필요도 있다 (제품 특징과 말장난을 절묘하게 연결, 그것도 탁월한 크리에이티브!)
8. 어깨에 힘을 빼야 스피드도 살고, 컨셉트도 산다 (슬며시 정곡을 찔러야 좋은 카피, 어쩌면 가장 찾기 어려운 카피)
9. 디자이너의 영역을 끊임없이 침범하라 (카피와 걸맞은 비주얼도 함께 찾을 수 있어야 카피에 힘이 더 실린다)
10. 시를 쓰되 결코 시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감성광고 카피는 치밀하게 계산된 감각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사원시절부터 지금까지 갖고 있는 인쇄 광고 카피 10계명. 연차가 낮을 때는 TVC보다 인쇄 일이 더 많았다. 광고회사가 크면 TVC가 많고, 작으면 역시 인쇄 일이 더 많다. 지금의 카피들은 TVC를 더
많이 할 것이다. 그래도 알아야 한다, 인쇄 광고 10계명! 여러 좋은 말들로 정리했지만, 가장 최고는 재미다!! 재미 없으면 누가 읽겠는가. 재미난 카피를 써라. 씁시다. 쓰자고. 쓰라니까!
<라끄베르 7S - SOLUTION 편>
새 날아가는 카피 말고 말이야
점심을 빵빵하게 먹은 후, 졸음과 카피 사이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 하게 된 라끄베르 잡지와 BTL 광고 카피.
이미지적인 화장품 카피가 아닌, 라이브하게 살아있는 카피로 가기로 결정한 프로젝트. 7가지 성분으로 피부의 7가지 문제를 해결해주는 제품이다. 써 갔던 카피 중에 팀장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던 헤드라인 '너, 누나 못 믿겠니?'
팀장님의 얼굴은 "그래, 우리 팀이 일이 많아. 카피가 맛이 간 거야. 당신 정상이지?” 이런 표정. 팀원들은 아니 왜 그런데요... 회사 옮길려고 하시나요. 경악스럽지만 다채로운 표정들이 오고 갔다. 긴 아이데이션 회의 끝에 최종으로 결정된 카피는 누나 못 믿어? 다 살아있는 말이지, 새 날라가는 말 아니지. 더 이상 좋은 카피가 없다. 화장품이 얼마나 좋으면 연하남을 꼬셔서 누나만 믿어봐 자신 있게 말하겠는가.
시안을 만들고, 카피를 정리하는 내내 모든 프로젝트 참여자들이 죽어나게 웃었던 카피. 좋지 않습니까? 이 카피 쓰고 한 동안 '저거 네가 하고 싶은 말이지’라는 태클을 수 없이 들었다.
카피를 쓸 때, 속으로 스스로를 가두지 마라. 정답은 누군가 쓴다. 하지만, 한 번이라도 보고 두고두고 말하는 카피를 쓰는 일은 쉽지 않다. <1번과 6번을 지킨 카피 >
[카피]
얼음처럼. 폭풍처럼.
Silver Bullet. SLK-Class
얼음처럼 냉정한 판단과 드라이빙 테크닉
그리고, 폭풍같은 스피드의 짜릿함.
Unlike any other.
이 차 속도처럼 심플하게!!
메르세데스-벤츠에 속도가 죽음인 차가 있다. SLK-Class! Silver Bullet, 은빛 탄환이란 별명을 갖고 있는 차. 전세계 F1 그랑프리 대회의 선도 카나 안전 카로 지정되어 대활약을 펼친다. 오랜시간 벤츠 담당카피로 카피를 썼지만, 카피로써 마음껏 확 나가는 카피를 써 본 것은 두세 번 정도다. 그 중의 한 품목이 바로 SLK-Class!
짜릿함, 스피드, 남자의 꿈 등등등 많은 방향에서 주옥같은 카피가 들어갔지만 모두 퇴짜. SLK 답지 않다는 말과 함께. 군더더기 없이 심플하게 속도만 이야기해달란다. 아니 , 분명히 속도만 이야기한 카피라고요. 나보고 뭘 어쩌라구. 노트북을 붙들고 울부짖어도 무슨 소용인가. 밤 12시가 넘어가는 시간. 먼저 마음을 다스렸다. 다음엔 속도를 머리에서 싹 지웠다. 그리고 나서 아침에 나온 카피, “얼음처럼. 폭풍처럼.” 모든 사람들의 좋다는 칭찬에 밤을 샌 피로감은 바람결에 사라지고, 광고주의 일사천리 OK 사인까지.
원래는 바디카피 없이 헤드라인만 있었다. 그.러.나. 영업점 딜러들의 요구로 한 줄의 바디카피가 들어갔다. SLK 다운 건 구구절절 바디카피 들어가는 것 아니구만. 이 카피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뭘까나. 10번에 관한 이야기를 좀 하고 싶어서다. 시를 쓰되 결코 시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감성광고 카피를 쓰다 보면 어느새 제품은 ‘Out of 안중’이 돼버린다. 그런 순간 카피라이터는 시인으로 전업한다. 감성광고 카피를 어떻게 쓰라고 말하지는 못한다. 쓰다 보면 카피라이터 개개인이 나름대로의 노하우를 찾아내고, 잘 쓰게(?) 된다. 몇 년차가 되더라도 감성광고 카피를 쓸 때, 쉽게 잊게 되는 것 한 가지만 지키면 된다. 시를 쓰되 결코 시인이 되면 안 된다.
[카피]
나와 남편에게 비밀이 생겼다 M-Class
(바디카피 생략, 많은 스펙 중 하나를 예로 보여드리면 분위기 감지 가능)
·당신의 넓은 품처럼 편안한
Automatic DC
뜬금없는 헤드라인이 좋겠습니다
다음 이야기도 벤츠다. 벤츠의 또 다른 Class. 사륜구동 M-Class가 있다. 타깃은 사모님들이 타시는 차. 퍼스트 카가 아닌 세컨드 카 정도의 개념이다. 남편 분이 사모님에게 사드리는 차.
으으으흑흑..... 쓰고 나니 부러움의 쓰나미가 몰려온다. 사륜구동의 특성에 맞는 카피들이 들어갔었다. 좋다는 카피도 많았지만, 마지막 온 피드백은 뜬금없는 헤드라인이 좋겠습니다. 뜬금없는? 그게 말이 쉽지. 세상에 뜬금없는 헤드라인이 어디 있습니까. 제품의 특성, 카테고리 장점, 타깃 인사이트 등등 중 하나에서 나와야지 절대로 뜬금없이 튀어나는 카피는 없거든요. 또 다시 노트북을 부여잡고 울부짖었다. 새벽 3시가 넘어가면서 머리는 패닉상태 딱 도망가고 싶다. 그 때, 뜬금없이 걸려온 전화 한 통, 상무님이시다. "어! 심카피 회사야? 응 회살 줄 알았어. 미안한데 회사에 인트라넷에서 자료 하나만 찾아서 웹하드에 올려줘... 지금 편집실인데..” 새벽에 일하는 것도 힘든데, 야근할 줄 알고 있으시다니. 편집실에 계신 상무님이나 또이또이지만. 부인에게 사주는 세컨드 카를 컨셉트로 불륜을 만들어 버렸다. 헤드라인에서 '나와 남편에게 비밀이 생겼다’ 이런 카피로 냄새를 팍팍 풍긴후, 바디카피에서 부부의 진솔한 사랑을 확인하는 차라는 카피 플레이를 펼친 것이다. 이걸 쓴 시간이 아마 새벽 5시가 넘어서일 거다. 설마, 광고주가 이걸 사겠어? 하면서 다른 카피와 함께 얹혀서 보냈다. 그리고 나서 장렬하게 전사. 씻지도 못한 추한 몰골로 집에서 자고 있는 상황. 기획이 놀래서 전화했다. 심부장님 그 카피로 됐어요. 독일 컨펌까지 받았어요. 오잉? 내가 헛소리를 듣다니. 아니다 진짜 였다. 광고가 집행된 그 날 오후 BMW 카피라이터 , 이00카피가 전화를 했다. 심카피님이 이런 카피를 쓸 줄이야.. 어떻게 한 거야, 부러워, 멋져 짱이야. 이런 내용으로.
M-Class 카피는 지금도 놀라운 카피 중 하나다.
단순무식하게 쓰는 것도 능력이다
카피라이터라면 쓰게 되는 또 다른 카피. 절대적인 경지의 심심함에 오른 사람이 아니면 읽지 않을 카피다. 현대자동차 기업PR 담당 카피였을 때다. 중국에 자동차 공장을 건설했다는 고지 광고다.
일반인이 공장을 중국에 짓든, 파나마에 짓든 무슨 관심이 있으랴 하지만 써야 한다. 국력을 과시하듯 당당히 자신감 있게 말이다. 6번의 재미없는 카피는 쓴 사람도 읽지 않는다에 위배되는 카피다. 나도 읽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카피를 우습게 생각하지 마라.
카피라이터들에게 쓰라고 하면 다들 눈 감고 쓸 듯하지만, 막상 닥치면 쉽게 못 쓰는 카피다. 단순무식하게 지르는 카피도 능력이다. 또 하나, 의외로 이런 카피들이 많다. 광고주가 요구해서, 품목 따라 어쩔 수 없이. 흠흠… 한편으로 단순무식 카피를 쓰고 나면 반성도 많이 한다. 아..내 능력의 한계인가. 다른 카피를 쓸 수는 없었는가. 꼭 집행된 다음에 반성해서 문제지만. 한 번은 선배에게 어찌하면 좋겠냐고 물었더니 대답이 심플하다. 그냥 잊어버려라. 다음에 더 잘 쓰면 된다,. 이럴 줄 알았더니. 다 네 카피 실력이 문제지. 그걸 어쩌냐. 네 그릇이 그 만큼인걸. 한 동안 충격 먹고 선배와의 연을 끊었었다.
<현대자동차 기업PR 편>
좋은 사람들이 속옷 디자인 공모전을 처음으로 했다. 카피를 기발나게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심했던 광고주. 공모전이니 더 기발나야 한다는 생각에 탈모가 생길 지경이었다. 그래서 카피를 안 써갔다. 그림만 찾아갔다. 팀 아이데이션 회의 시간, 팀장님은 기가 막혀 했다. 어차피 네가 카피를 써야 해서 안 써왔다고? 그림만 찾아왔다? 잠시 코까지 막히시더니 찾아온 비주얼에 아주 만족하셨다. 여자 누드 엉덩이! 당근 그 비주얼에는 카피도 얹어갔지롱. 대한민국 사람들의 엉덩이가 당신 머리에 달렸습니다. 호호호 내가 팔고 싶은 카피였다. 카피는 좋지만 비주얼이 없어서 컴퓨터에 잠자고 있는 카피가 얼마나 많은가.
죽었다 깨나도 시안으로 만들고 싶은 카피가 있다면 그림을 찾아라. 9번 디자이너의 영역을 끊임없이 침범하라! 에 해당된다. 정말 끊임없이 침범하라. 그러면 1년에 한두 번쯤 카피가 찾은 비주얼이 시안이 된다. 카피도 재미있어 했다. 엉덩이가 머리에 달렸다고? 다들 웃고 난리였다. 중의적인 표현으로 더 좋았다. 내심 회심의 카피라이팅!! 앞의 카피가 했던 시리즈를 이어받아 했던 광고. 여자가 남자 팬티 카피를 쓰려니 죽을 맛이다. 느낌이 요상타. 당시에는 어린(?) 나이였으니 더 했다. 손발이 오그라들면서... 어쩔 줄 몰라했던 카피. 하지만, 쓸 수 밖에 없는 운명. 탱크처럼 밀고 나갔다. 5번이다. 때로는 성별과 나이, 철학과 관계없이 카피를 써야 한다. 그럼 탱크처럼 앞 뒤 재지 무작정 밀고 나아가라. 당신은 카피라이터다.
<좋은사람들, 속옷 디자인 공모전 편 >
심의섭
Chie Copy | adel@hsad.co.kr
나를 사랑하기가 제일 어렵다. 특히, 크리에이터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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