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03-04 : 크리에이터@클리핑 - 영상의 언어를 듣는다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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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원 CD,           이현종 CD
hwjung@lgad.lg.co.kr   hjlee@lgad.co.kr


눈알이 팽글팽글 돈다. 잠시도 한눈 팔 새 없이 세상이 휙휙 변한다. 어지럽고 정신이 없다. 인터넷이다 멀티미디어다 난리법석을 피워대더니, 어느새 디지털도 네트워크도 진부한 화두가 되어버리는 이상한(?) 세상이다.
요즘의 1년은 과거의 10년쯤 되는 듯, 미처 적응할 틈도 없이 아둥바둥 뒤처지지 않으려는 몸부림 또한 더욱 거세지고, 세상의 거울이랄 수 있는 광고 역시 그 맨 앞에 서서 현란한 검무를 수놓는다.
18세기 프랑스의 한 농부가 평생동안 접했던 정보량보다 오늘의 <US Today >지 하루분 기사가 더 앞지른다는 정보 과잉시대를 살면서, 오늘도 수많은 광고들은 “저요! 저요!”아우성 쳐댄다. 눈 닿는 곳 어디에도 무수히 널려있는 광고더미 속에서 참으로 쓸만한 광고를 만난지 오래되었다는 느낌은 왜일까?
일회용 건전지처럼 반짝하고 스러지는 광고가 아닌, 세대를 초월해서 비수처럼 가슴에 다가와 꽂히는 광고가 그립다. 변함없이 진득한 사람이 신뢰를 얻듯이, 광고 또한 한결같음이 결국은 사람들의 가슴 한켠에 자리잡는 건 아닐런지?

장기 캠페인이 가뭄에 콩 나듯 귀하기만 한 요즘 오로지 하나의 브랜드를 20년 이상 일관되게 끌어가고 있는 아키야마 CD를 만나보자.

그는 1936년 생이다. 우리 나이로 66세이다. 그러나 여전히 그는 현장을 누비는 카피라이터이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다. 관리자만 되면 손 놓고 뒷짐지는 우리네 현실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는 실무를 고집한다. 흔들림 없이 꼿꼿하게 20년 이상 ‘ 큐피 마요네즈’ 캠페인을 리드하고 있는 그 뚝심의 원천은 무엇일까? 그의 광고철학을 엿보기로 하자.

"그림의 언어를 듣는다”

나는 카피라이터이지만, CM도 그래픽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는 토털 개념으로 디렉션하고 있기 때문에 그림과 언어의 관계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기본적으로 그림은 그 자신의 언어를 가지고 있습니다.
음성은 없지만, 일체의 대사도 한마디의 내레이션도 없지만 ‘카피’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느 사람이 하나의 그림을 보고 뭔가를 느꼈을때, 그 느낌은 곧 그 사람의 언어가 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모든 그림은 언어를 가지고 있고 그 언어는 보고 느끼는 사람 수 만큼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광고를 만드는 전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광고에 있어 ‘훌륭한 언어’라는 것은 ‘훌륭한 그림도 있다’는 뜻이 됩니다. 그것은 어떤 걸까? 그림을 본 사람 이 그림 자체에 머물지 않고 그 이전의 일까지 스스로 이미지를 떠올리는, 즉 보는 사람 입장에서 이미지네이션을 끄집어 내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대단히 훌륭한 그림은 마음속까지 닿아서 그 사람 스스로 작자가 미처 의도하지 않았던 이미지로까지 발전하는 일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것이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것입니다.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것은 설득하는 일이 아니고 상대에게 하나의 감정이 녹아들 때 성립하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합니다. 커뮤니케이션의 기본은 ‘좋아한다’와 ‘싫어한다’이지요.좋아하는 그림을 볼 때는 이미지가 번뜩 부풀어 오르고 좋았던 기억들이 방울방울 피어오릅니다. 소리도 귓전에 맴도는 듯합니다. 그런 이미지가 떠올랐을때 그 그림은 제 역할을 다 한 것이다라는 생각입니다.

다만 비주얼에 의한 커뮤니케이션은 뭐랄까... 감각적, 감정적이기 때문에 기분을 개입(involve)시키는 것이지만 의미로서는 희박한 것입니다. 거기에 비해 카피의 커뮤니케이션은 보다 직선적으로 전달하는 힘이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의미를 전달케 하는 기능입니다. 문자는 디자인되어버리면 그림의 요소이기도 하지만, 결국 카피는 의견과 주장이라는 기분보다는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 어울립니다. 결국, 영상이 감정을 전하고 문자는 의지를 전달한다라고 이해하면 좋다고 생각합니다.
카피를 쓰는 일은 기분이나 감정이라는 ‘추상’이 아닙니다. 구체적으로 쓰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언어를 쉽게 전달할까를 생각해서 구체적인 단어로 써갑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메시지이기 때문에 극단적으로 심플하게 해야 합니다. 긴 카피일지라도 심플! 긴 내용을 쓰면서 심플하다는 것이 어려울지도 모르지만, 생각하는 쪽이 정리되어 있으면 꽤긴 문장도 심플하게 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하나의 광고에 하나의 메시지만 담습니다. 상품을 눈에 띄게 하는 일은 참으로 중요한 일입니다. 그래서 생략해가는 일입니다. 카피를 쓰는 일은 자기 자신에게 치열함을 요구하는 작업입니다. 자신을 응시해서 자신이 가능한 범위에서 표현해가면 자신의 언어를 쓸 수 있습니다. ‘자신의 언어’라는 것은 스타일과는 별개로 자신의 이미지를 어떻게 활자와 내레이션으로 만들까? 하는 일입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관용구는 읽는 사람의 기분으로 증폭되어 확대되는 것입니다.

자기표현을 하십시오. 그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로 고독한 작업이지만 카피를 쓰는 직업을 선택한 이상 고독은 자신의 비즈니스 파트너입니다. 즐긴다고 생각하면 좋지 않을까요?
그리고 쓰는 과정이란, 머리에서 생각하고 있는 일을 먼저 노트든지 뭔가에 적어나가고, 그 중에서 이거 괜찮겠다 싶은 단어를 고른다든지 논리를 검증해 본다든지 말의 조리라든지 관점을 바꾼다든지 해서 다듬어가는 일입니다. 그렇게 해서 점점 카피의 형태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어떤 훌륭한 언어라도 원고지 위에서는 아직 카피가 아닙니다. 단순히 자신의 언어일 뿐입니다. 그것이 활자화되고 디자인되고 인쇄되었을때 드디어 카피가 되는 것입니다.
인쇄되어진 것을 보면 길이의 밸런스가 나쁘다든지 가독성이 나쁘다든지 합니다. 따라서 저는 아트디렉터나 프로듀서에겐 미안한 일인지 모르지만 교정쇄에서 한번 더 카피 체크를 꼭 합니다. 인쇄물에 게재되면 제 3자의 관점에선 최초의 인상이 되므로 거기까지 자신의 언어를 검토해야 합니다


"그림 속으로 들어간다”

처음에 말했듯이 그림(영상)메시지는 토털 인벌브(total involve)하는 것이지만, 문자 메시지는 직선적으로 전하는 것입니다. 그림과 언어사이에는 거리가 있는 게 당연합니다. 약간의 거리와 위화감은 불가사의하고 기분좋게 여운을 느끼게 합니다. 그 갭에, 보는 사람이 끼어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보는 사람의 동참이 없으면 광고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대단히 중요한 단서입니다.

가능하면 카피라이터는 언제나 그림을 이기는 것(넘어서는 것)을 의식해야 합니다. 아트디렉터가 투수라면 카피라이터는 타자입니다. 커뮤니케이션의 강력함을 순서 매긴다고 할 때 저는 언어가 그림보다 상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카피는 그림의 설명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같은 시추에이션에서 다른 것을 말하는 방법입니다. 비주얼 또한 카피의 그림 설명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사람들의 구미를 당기는 이미지를 제시해야 합니다. 나는 일러스트레이션이나 특별한 사진보다는 대단히 평범한(스탠더드한) 비주얼을 사용합니다. 말하자면 카피로 팔로우(follow)해가는 방법입니다.
그림과 언어와의 관계가 클리어하게 되면 양자에 있어 제3의 스캔들이 있는 메시지가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카피라이터이지만 언어는 가장 마지막입니다. 먼저, 테마를 생각합니다. 소재는 뭐든 좋지만 우선 하나의 테마를 세팅합니다. 다음에, 그 테마를 상징하는 언어를 생각합니다.
그 언어는 세상의 사람과 나와의 커뮤니케이션 키(key)가 되는 동시에 아트디렉터, 필름디렉터, 혹은 클라이언트와의 커뮤니케이션 키도 됩니다. 그런 언어가 있으면 팀 내부에서 참으로 기분이 잘 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영상이 그려지면, 그래픽의 경우 그 사진을 관찰합니다. 그때 먼저 생각하는 것은 그 그림은 어떤 소리가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림을 보고 언어를 뽑아내기 전에, 먼저 소리가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따라서 한 장의 사진에 바로 캐치 프레이즈(헤드라인)를 붙이지 않고 그 안의 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예를 들면, 정원의 사진이 있고 창문이 열려져 있습니다. 그러면, 밤의 소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먼 곳의 고속도로 트럭소리일지도 모릅니다. 근처의 방에서 듣고 있는 라디오의 소음일지도 모릅니다. 이 영상에는 어떤 음악이 어울릴까 응시하고 있으면 자연스레 음악 같은 것이 흘러나옵니다. 이 영상은 나에게 뭔가 이야기를 걸고 있는 게 아닐까?




그 언어를 일단 그대로 적어둡니다. 그 다음에 영상속으로 들어갑니다. 영상에는 반드시 프레임(frame)이 있습니다. 그것은 카메라에 프레임이 있어서 그런게 아니고, 인간의 이미지가 프레임으로 트리밍하는 것에 의해 태어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실물의 풍경을 보는 것보다 영상속의 풍경을 보는 쪽이 뭔가 느끼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그것은 실제의 풍경이 별 볼 일 없어서가 아니라 프레임이 이미지를 만들어 내기 때문입니다. 그 프레임을 자신 속에서 하나의 소재로 합니다. 그렇게 하면 프레임 밖은 어떻게 되는 걸까? 그것을 보기 위해서 영상 속으로 들어갑니다. 영상 속의 인물이 되어 빛과 소리와 공기를 느껴봅니다. ‘뉴멕시코의 황야, 아무도 없다. 그러나 귀를 기울이면 소리가 난다. 주위를 둘러본다. 고압선의 전주가 서 있고, 그 케이블이 방전하고 있는 소리가 있다 . 반대쪽을 바라보면 셀프서비스의 주유소가 있다.’ 이런 식으로 프레임을 설정합니다.


커뮤니케이션의 우선 순위는 내레이션, 음악, 영상의 순서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의미의 전달력을 말함이고, 감정의 전달력은 음악쪽이 더 우수합니다.
음악은 영상과 내레이션보다 꿈(dream)적인 요소가 대단히 많기 때문에 사람의 감각에 가장 임팩트있게 전달할 수 있습니다. 복잡한 소리보다는 가급적 심플한 게 좋습니다.
음악도 뭔가 캐릭터가 없으면 안됩니다. 그리고 음악은 CM의 메시지이기 때문에 메시지와 다른 쪽으로 유도하는 음악이라는 생각이 들면 아무리 좋은 곡이라도 그것은 포기해야 합니다. 한 점으로 모아지지 않으면 광고 자체가 빗나가기 때문입니다. 광고의 음악은 즐겁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카피와 동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소리와 비주얼을 생각하기 위해서 뭔가 다른 표현을 볼 때마다 언젠가 광고로 써보고 싶다는 뜻으로 스크랩하는 일을, 저는 하지 않습니다. 스스로의 기억 깊숙이 남아있는 것을 사용한 일은 있지만 의도적으로 스크랩하는 일은 역시 부자연스럽 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기술보다는 정신적인 부분으로 어프로치하고 싶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의 기분이 움직이는 것을 표현하는게 좋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나는 출신이 그래픽 디렉터이기 때문에 CM을 만드는 것도 그래픽적(的)이 됩니다. 보통의 CM에 비해서 컷(cut)수를 줄이는 편이며, 카메라 테크닉을 염두에 두지 않습니다.
자신의 앵글을 십분 살리려 하고 줌(zoom)이나 오버랩(overlap)은 그다지 사용 하지 않고 픽스(fixed) 화면을 즐겨 사용하고 있습니다. 나는 자신이 할 수 없는 범위의 일은 사양합니다. 모든 일을 다 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쁘게 이야기하면 원 패턴(one pattern), 좋게 말하면 안심하고 일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이라 불립니다.

“개인적 감정이 언어를 창출한다”

광고 표현에 있어 가장 필요한 것은 ‘이 상품이 어떤 물건이냐’하는 설명이 아닙니다. 이것이 당신을 얼마만큼 행복하게 해주느냐 라는 ‘행복의 볼티지(voltage)’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상품을 말하는 것이고,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일이 곧 상품을 파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사람의 운명을 점칠 수 있는 수정구슬이 있습니다. 점을 보는 것은 인간을 불안하게 하기도 하고 기대를 품게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보는 사람의 기분을 플러스 쪽으로 요동치게 하는 것이 상품을 파는 기본 조건인 것입니다. 아무리 목소리 높여 소리질러도, 우격다짐으로 팔고 싶어도, 나중에 “이딴 걸 내가 왜 샀지?” 라는 기분이 들게 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 다. 나중에도 좋은 기분이 들게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나는 유행이라는 의미의 시대는 잘 모르겠습니다. 요즘 사람들이 무얼 생각하고 있는 지도 잘 알지 못합니다. 관심이 없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인간의 속이란 좀처럼 알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영화를 봐도 인간이 나오지 않는 경치가 더 아름 답게 느껴지는 편입니다. 사람이 싫어서 그런게 아닙니다. 사람보다 ‘사람의 기분’이 좋기 때문입니다. 사람과 사람의 커뮤니케이션은 이해로 알게 되는게 아니라 느낌으로 알게 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카피를 쓸 때도 그것이 이해를 구하는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느낌을 줄 수 있다면 좋다’는 감정으로 쓰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역시 카피는 개인적인 작업인 동시에 그때 그 시대의 이슈가 만들어내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따라서 카피라이터의 카피라는 것은 그의 1985년, 1990년, 2001년의 카피가 되는 것입니다.

나는 자신이 할 수 없는 범위의 일은 도전하지 않는다고 말했는데, 그것을 역으로 말하면 제가 할 수 있는 범위의 일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수 있다는 자부심입니다. 결국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 좋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카피 에너지원이 되는 것은 역시 ‘좋아하는 마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는 대단한 것들이 많습니다. 그런 것들을 접하면 놀라게 됩니다. 그런 놀라움이 없어지면 안됩니다.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쿨(cool)해지고 쿨해지면 놀래지않고 시니컬해집니다. 비평하는 입장에 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가장 좋지 않은 일입니 다. 이러 저런 일들을 접하고 거기에 대한 반응이 팍팍 올 때 바로 빨아들여야 합니다.

세상이 천만 번 바뀌어도 광고의 본질은 흔들림이 없나보다. 그것은 사람의 마음을 사는 일, 하나의 브랜드가 친구처럼 가슴에 와 박히는 일... 밤하늘의 네온처럼 수없이 명멸하는 광고들 중에서 소비자 마음에 간택되는 브랜드는 과연 몇이나 될런지 ... 잊혀져 사라지는 수많은 광고의 혼백들은 어느 구천에서 헤매고 있는지...



소비자의 머리와 가슴은 용량이 정해진 ‘노아의 방주(Noah’s ark)’임을 기억하자. 친구의 전화번호 하나 기억하려고 해도 수십 번 전화전호를 눌러봐야 하는데, 기껏 소비자에게 광고 몇 번 노출시키고 “나를 잊지마세요” 하는 어리석음을 더 이상 되풀이하지 말자. 우리 모두들 가슴속에 캠페인의 씨앗을 심자! 그 씨앗을 소중히 싹 틔워 광고주에게 옮겨 심는 일­ 그것이 바로 우리들의 몫이 아닐까?

아키야마(秋山) CD가 큐피 마요네즈 캠페인을 맡게된 지도 20년이 넘었다. 강산이 여러번 변하고도 남을 길고 긴 세월이다. 변함없는 건 카피라이터 아키야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아키야마, 그리고 트레이드 마크처럼 선명한 큐피 마요네즈만의 스타 일이다. 광고만 봐서는 도저히 연도구분이 되지 않는다.

메시지는 보이지 않고 감각과 트렌드와 기법만이 활개를 치는 요즘 광고를 점잖게 타이르듯, 광고의 본질은 세대차를 극복해 내는 것임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큐피 마요네즈는 말없이 브랜드 파워를 축적해 가고 있다.


























Posted by HS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