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0분의 1초까지 측정할 수 있는 시계
시계산업은 흔히 자동차산업과 비교되곤 한다. 자동차 산업과 시계산업은 정밀한 기술력과 시대를 앞서가는 디자인, 그리고 아무도 따라 올 수 없는 시장에서의 독특한 카리스마 등 브랜드 성공에 있어서 닮은 점이 많기 때문이다. 두 산업 사이에는 전혀 연결성이 없는 듯하지만 성공사례나 실패사례를 현미경을 놓고 들여다보면 면면이 많이 닮아 있음을 알 수 있다. 브랜드마다 독특한 컨셉트를 유지, 발전시키고 있으며, 서로 다른 영역을 침범했다가 사세가 기우는 불운을 겪는 사례 등도 닮은꼴로 이야기되고 있다. 이렇듯 시계산업은 제품의 크기는 아주 작지만 브랜드를 움직이는 동력은 자동차만큼이나 크고 소리도 요란하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태그호이어(TAG Heuer)의 출발은 박수 받을 만하다. 1860년 스위스 상뜨미에르(St.Imier)에 설립된 ‘The Edouard Heuer Watch-making Co’에서 시작된 태그호이어의 역사는 ‘시간을 측정하는 최고의 제품을 만들겠다’는 설립자 Edourd Heuer의 야심에서 잉태되었다. 그의 꿈은 당시의 기술력으로는 불가능에 가까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불가능에 가까운 도전은 그의 제품들을 세계적인 명품 반열에 올려놓은 가장 강력한 동력이 되었다.
그는 무엇보다도 시간에 대한 한치의 오차 없는 측정, 누구도 따라 올 수 없는 독특한 디자인, 그리고 조립에 있어서의 기술적 완벽함을 추구했다. 그리고 시계에 대한 이런 생각은 자연스럽게 스포츠시계로 눈을 돌리게 했다. 시계에 대한 그의 최우선의 관심은 정교한 측정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처음 스포츠시계를 생산할 즈음에는 어느 누구도 관심이 없었고, 만들 기술력 또한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창업 2년 후인 1882년, 그는 크로노그래프(Chrono-graph)의 메커니즘을 일대 혁신하는 기술로 세계 최초의 특허를 획득하는 기염을 토했다. 또 1916년에는 1/100초까지 측정할 수 있는 세계 최초의 시계인 ‘마이크로그래프(Micrograph)’를 발명하고 특허를 얻어 업계의 찬사를 받았다. 그의 성과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1965년에는 역시 세계 최초로 1/1,000초까지 측정할 수 있는 초소형 전자 스포츠시계 ‘마이크로타이머(Microtimer)’를 특허 냈으며, 2003년에는 드디어 ‘꿈의 시계’라고 할 수 있는 1/10,000초까지 측정할 수 있는 시계를 출시해 또 한번 세계를 놀라게 했다.
스포츠 기록 경신과 함께 뛴 ‘기술 혁신’
태그호이어 사의 이런 노력은 창업자가 지향한 스포츠와의 연(緣)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기록 경신을 향한 스포츠 선수들의 도전정신과 일맥상통하는 정신을 가지고 있었다. 즉 스포츠 선수들이 기록 경신을 위해 끊임없이 도전하듯 스포츠시계를 만들고 있는 자기 회사도 그들과 같이 새로운 기술을 향한 중단 없는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고 믿었다. 1/100초, 1/1,000초에 만족하지 않고 1/10,000초까지 측정 가능한 시계를 만든 것도 그의 창업 정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런 스포츠와의 끈끈한 인연이 실제적 결실로 이어졌음은 물론이다. 1920년 앤트워프 올림픽, 1924년 파리 올림픽, 1928년 암스테르담 올림픽에서 Indy 500(Indy Racing League를 기념해 만든 한정판)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스포츠 이벤트의 공식 시계업체로 선정돼 명성을 쌓아가고 있는 것이다. 또 1971년부터 8년 간 F1 스쿠테리아 페라리팀 공식 시계로서 후원했고, 1989년에는 국제스키연맹 스키월드컵 공식시계로 지정되기도 했다. 또한 1992년에서 2001년까지 국제자동차연맹이 주최하는 F1 그랑프리 세계선수권대회에 공식시계로 선정되는 등 세계 스포츠팬들에게 ‘스포츠시계’하면 ‘태그호이어’라는 등식을 확고히 각인시켰다. 이런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던 회사는 1985년에 프랑스 최첨단 기술투자 그룹인 태그 그룹(TAG Group; Techni-ques d' Avant-Garde)과 합작, 태그호이어 사로 이름을 바꿔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렇듯 태그호이어는 1860년 창업 이래 스포츠 발전에 한 획을 그을 만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독보적인 브랜드 포지셔닝을 구축하고, 스타일리시한 사각형 디자인과 누구보다도 앞선 방수시계 등으로 불멸의 위치를 고수하고 있다.
한편 최근에는 고급 예물시계 분야에도 진출해 젊은 층으로부터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 그 중 멋과 기능성을 선호하는 층들이 자주 찾는 스포츠 엘레강스(S/el) 시리즈와, 태그호이어의 오리지널 이미지가 스포츠맨의 강한 모습을 연상시키는 6000시리즈는 특히 소비자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다. 또한 최근 출시된 KIRIUM은 스포츠 엘레강스한 이미지와 6000시리즈의 강인한 면모를 결합시켰다는 평을 받으며 매니아들의 입맛을 당기고 있다.
결코 한마디로 평가할 수는 없지만, 태그호이어의 역사를 보면 기술적인 완벽함과 세련미, 그리고 고급스러움으로 스위스 시계산업의 전설적인 아이콘이 되었음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사실 태그호이어가 예물시계 시장에 진출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기대 반 우려 반의 시선으로 지켜봤다. 그 동안 태그호이어가 줄기차게 지향해온 브랜드 컨셉트와는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태그호이어’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브랜드 이미지가 ‘스포츠’이기 때문에 고급 성향의 예물시장에서는 고전하리라 예측한 것이다. 그러나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한 사람들은 100년이 넘는 태그호이어의 브랜드 역사는 늘 끊임없는 도전의 연속이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따라서 젊은 층의 트렌드를 잘 접목시킨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예상했다.
Relevance …… 광고와 브랜드의 찰떡 궁합
태그호이어만큼 광고 캠페인을 잘 하는 브랜드도 드물 것이다. 먼저 제품의 우수성으로 치열한 시계산업 세계에 명함을 내밀었다면, 광고는 태그호이어에게 날개를 달아주었다. 그 광고는 바로 ‘그들만이 할 수 있는’ USP 전략에 근거한 광고.
창업 정신이 스포츠와 연결되어 있고, 또 제품 자체도 스포츠의 기록 측정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와 도전의 산물이라는 점은 다른 브랜드들이 섣불리 흉내낼 수 있는 컨셉트는 아니다.
우선 최근 10여 편의 광고들을 보면 광고가 결코 브랜드를 억누르고 있거나, ‘차별화를 위한 차별화’ 광고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광고는 철저하게 브랜드를 위해 존재하고 있음을 짐작하게 하는 것이다. 광고가 제품이나 브랜드를 넘어 단지 광고만이 존재하는 사례를 간혹 볼 수 있다. ‘광고는 기억되는데 제품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는 광고가 우리 주변에 왕왕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들은 대부분의 경우 관련성(Relevance)의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광고와 브랜드나 제품간의 관련성이 있느냐 없느냐가 곧 ‘광고의 성공’이 ‘브랜드의 성공’으로 이어지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를 판가름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아마도 경쟁사와의 차별화 또는 단기간에 뭔가 광고에서 혁혁한 성공을 거둬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비롯되는 듯싶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태그호이어는 광고의 모범을 보여주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광고1~3>은 ‘BEYOND MEASURE’라는 슬로건이 광고 전체를 끌어가고 있다. 태그호이어의 탄생 역사를 그대로 재현하는 듯하다. 스포츠 선수들은 항상 자기 기록과의 전쟁, 경쟁자와의 싸움에 직면해 있다. 그들은 숙명적으로 경쟁자를 넘어서야 하고, 또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이에 태그호이어 또한 창업 당시의 정신을 본다면 스포츠 선수 못지않게 꾸준히 더 나은 시계를 선보이기 위해 도전해 왔다. 광고와 제품간의 관련성이 이 정도면 완벽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슬로건이자 헤드카피에 나오는 ‘MEASURE’라는 단어는 스포츠 선수들이 뛰어넘어야 할 목표이자 브랜드가 극복하려는 대상으로 보이기 때문에 광고가 결코 남의 옷처럼 보이지 않는다. 마치 맞춤복을 입은 듯한 인상을 주기 때문에 광고와 브랜드가 서로 겉돈다는 느낌을 받지 않는 것이다.
<광고 4~8>은 태그호이어 크리에이티브의 진수를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SUCCESS. IT’S A MIND GAME’이라는 슬로건으로 진행되었는데, 정말 ‘악!’ 소리나는 크리에이티브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일분 일초의 실수도 허락할 수 없는 극한상황이 보여지는 생생한 비주얼과 통일된 레이아웃으로 광고를 그냥 지나치게 하지 않고 있다. 뭔가 시선을 잡아끄는 매력이 있다. 절체절명의 순간을 포착한 아이디어는 시계와 완벽한 하모니를 이루고 있다. 크리에이티브 소재로 삼은 것들은 모두 시간의 흐름과 긴밀한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비주얼만 보더라도 바로 브랜드를 연상시킬 수 있는 관련성이 뛰어나다고 하겠다.
그러나 이 위기일발의 상황에서 던진 카피가 걸작이다. ‘SUCCESS. IT’S A MIND GAME.’ 인생의 큰 교훈이 느껴지기까지 하는 카피다. 인생사 모든 게 마음먹기 나름 아니겠는가! 절대 불가능처럼 보이지만 어떻게 생각하고 대처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수 있지 않겠는가!
스포츠 중심의 광고 캠페인을 전개하던 태그호이어는 고급 시장을 개척하기 위한 포석으로 전 세계 명사들을 통해서 소비자들과 만나고 있다. 이는 고급 예물시계 시장을 공략하고 명품으로서 확고한 포지셔닝을 하기 위한 포석으로 보인다. 이 캠페인은 일명 ‘what are you made of?’로 불리고 있는데, 인물과 제품이 가지고 있는 최고의 퀄리티를 암시하고 있어 관심을 끈다.
대칭구조로 인물과 제품을 표현하고, 그 연결라인 상에 프리스티지를 암시하는 카피가 자리잡고 있다. 아울러 시선의 흐름을 의식해 시계 줄의 밑 부분에 로고를 넣어 강조하고 있는데, 친절하게도 광고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한 캡션을 처리해서 이해도를 높이고 있다.
<광고 9>에는 전설적인 포뮬러 1 선수인 아일톤 세나(Ayrton Senna)가 등장하고 있다. 그는 무려 41번의 우승과 3번의 월드 챔피언을 차지해 이 분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인물. 막 완주하고 난 후의 모습처럼 보이는 모델 사진이 인상적이다. 그리고 제품의 특징이 슬로건 바로 위에 ‘100% SPORT 100% ELEGANCE’라는 형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광고 10>은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인 스페인 출신의 이네스 사스트르(Ines Sastre)가 모델로 등장하고 있다. 그녀는 12살 때 친구를 따라 갔다가 패스트푸드 모델로 데뷔했는데, 15살 때 세계적인 모델 에이전시인 엘리트에서 주최한 ‘Look of The Year’ 수퍼모델 콘테스트에서 그랑프리를 차지하며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후 한때 영화<엘도라도(El Dorado>에 출연하는 등 최고의 자리에 올랐으나 돌연 활동을 중단하고 소르본느대학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10여 년 간 최고의 스타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자유를 만끽하다가 95년 <비욘드 더 클라우즈(Beyond The Clouds)>라는 영화로 화려하게 컴백, 다시 정상의 위치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녀가 모델로 캐스팅된 것은 미모와 지성을 겸비한 흔치 않은 인물이기 때문인 듯한데, 제품도 그녀의 이미지와 맞게 ‘100% STRENGTH 100% BEAUTY’로 되어 있다. ‘강함’과 ‘아름다움’은 아마도 제품과 그녀가 공유하고 있는 특성일 것이다.
<광고 11>은 영국 출신 포뮬러 1 선수인 데이비드 쿨타드(David Coulthard)가 경기를 펼치고 있는 듯한 모습으로 나오고 있다. 그는 McLaren Mercedes 팀 소속으로 총 13회의 우승을 차지했으나 챔피언십의 영광은 얻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주행 실력의 완벽함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할 정도다. 그의 포뮬러 1 기술과 걸맞게 카피도 ‘100% PERFORMANCE 100% AVANT-GARDE’이다.
<광고 12>는 Daytona 500 Race 사상 다섯 번째의 3회 우승자인 제프 고든(Jeff Gordon)이 주인공인데, 그의 2005년도 우승은 마지막 순간의 역전극이어서 더욱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마지막 아홉 바퀴를 남겨두고 선두가 네 차례나 엎치락뒤치락하면서 각본 없는 드라마가 연출되었던 것. 이는 Daytona 47년 역사상 가장 멋진 끝내기로 기억될 정도로 박진감이 넘쳤다. 이 경주에서 고든은 경고 사인이 난 마지막 세 바퀴를 남겨둔 순간 경쟁자의 추격을 뿌리치고 마침내 선두로 골인했다. 이로써 그는 미국개조자동차경주대회(NASCAR) 통산 70번째 우승을 거머쥐며 현역 최고의 레이서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그의 이런 화려한 이력은 당연히 태그호이어의 모델 자격으로서 손색이 없었는데, 브랜드의 탄생 배경인 스포츠와의 연계성도 강하게 갖게 하는 광고로 보인다.
<광고 13~16>은 시계 브랜드들이 일반적으로 유명인사(Celebrity)들을 이용해 광고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장기간 거액의 스폰서 계약을 맺고 광고뿐만 아니라 다양한 활동을 지원하는 윈윈 전략의 하나로 보인다.
태그호이어는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영화배우 브래드 피트(Bradley Pitt)와 우마 서먼(Uma Thurman), 그리고 테니스계의 요정 마리아 샤라포바(Maria Sharapova)와 브랜드 홍보대사 계약을 맺고 마케팅에 활용하고 있다. 또한 골프 황제인 타이거 우즈(Tiger Woods)와는 옥외광고 건까지 계약하여 물량공세를 펼치고 있다. 즉 어느 분야든 최고의 자리에서 세계적인 유명세를 타고 있는 유명인사들을 이용해 브랜드 이미지 강화에 주력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태그호이어는 PPL에서도 신경을 많이 쓰고 있는데, 최근에는 영화 <콜래트럴(Collateral)>과 <클로저(Closer)> 등에서 좋은 성과를 거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광고의 ‘법칙’은 없지만 ‘원칙’은 있다!
광고를 어떻게 만들어야 성공한다는 법전은 없다. 제품마다 서로 경쟁관계가 다르고 소비자가 다르고 시장이 다르기 때문이다. 제품마다 브랜드마다 처해 있는 위치가 다르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자로 잰 듯 ‘이렇게 하면 성공한다’식의 법칙은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몇 가지 원칙은 내세울 수 있겠다. 그 중에서 태그호이어에서 배울 수 있는 원칙 하나는 바로 ‘제품과의 연관성’이다. 제품과 멀어진 광고는 존재할 수가 없다. 아무리 광고적으로 성공했다고 해도 브랜드를 기억시키지 못하고 판매에 기여하지 못하는 광고는 죽은 광고다. 분명한 사실 하나는 그런 광고들은 광고주의 막대한 광고비를 쓰레기통에 쑤셔 넣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는 브랜드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다는 점이다.
광고인들이 차별화를 부르짖고 임팩트를 외치고 있지만, 그것은 모두 광고하려는 제품과의 연관성이 있어야 한다. 태그호이어의 성공을 제품의 우수성에서 있다고 믿고 있지만, 또 한 축에서는 성공적인 광고 캠페인을 말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만큼 태그호이어의 광고는 브랜드와의 연관성을 통해 오늘도 많은 고객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고 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