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11-12 : Creator's Eye - 어디까지가 광고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일까?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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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ator's Eye
  어디까지가 광고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일까?
 
유수영 | 유수영 CD
syyou@lgad.co.kr
 

중국 고대 사상가 장자(莊子)의 ‘나비의 꿈(胡蝶之夢)’이야기에서 글의 제목을 따왔습니다. 뭔가 그럴듯한 헤드라인을 쓰고 싶을 때 왕년에 흔히 쓰던 방식이지요. 내친 김에 그 내용까지 빌어다 쓰려고 합니다. 장자님께 죄송하지만….

뉴욕에서 꾼 ‘나비의 꿈(?)’

2000년 가을, 뉴욕에 있는 ‘School of Visual Art’에서 미디어 커뮤니케이션(Media Communication)이라는 수업을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일종의 주제 혹은 메시지를 표현하는 Non-Verbal Communication을 다루는 내용이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니 최근 눈 여겨 본 광고와도 통하는 바가 있어 잠깐 그 때의 기억을 돌이켜 볼까 합니다.
바로 장자의 꿈을 주제로 한 과제였습니다. 교수님께서 ‘나비의 꿈’ 이야기를 인용하시더군요. ‘장자가 어느 날 꿈을 꾸었다, 나비가 되어 꽃들 사이를 즐겁게 날아다녔다. 그러다가 문득 깨어보니 자기는 분명 장주(장자의 본명)가 아닌가. 대체 장주인 자기가 꿈속에서 나비가 된 것인지 아니면 나비가 꿈에 장주가 된 것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이른바 ‘꿈이 곧 현실’이며 ‘내가 곧 너’이며 ‘끝이 곧 시작’인 상태, 구분할 수 없는 모호한 경계의 상태를 비주얼로 표현해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동양사상이라 나름대로 이해는 했지만 표현은 또 다른 문제였지요. 본디 그리거나 만드는 재주도 없을 뿐더러 잠깐 받고 돌아올 교육인지라 ‘애먼 돈’ 써가며 무슨 작품을 만들 마음도 없었으니까요. 돈을 안 들이려니 고민은 더 되더군요. 광고로 치자면 저예산 광고인데, 아이디어로 극복하는 수밖에…. 결국 찾은 해답이 2달러짜리 네모난 전기 스위치와 양면 테이프였습니다. 스위치 뒷면에 양면테이프를 붙여서 스위치가 있음직한 위치를 찾아 교실 벽면에 붙여 놓았습니다. 수업이 시작되기 전 아무도 없을 때 말이지요. 예상대로 아무도 제 과제와 현실공간을 구분하지도 못했고, 또 분리할 수도 없었습니다. 적절한 곳에 붙인 작은 스위치 덕분에 큰 교실 전체를 표현 미디어로 이용한 셈이 되었지요.

One Show에서 만난 ‘광고의 꿈’

<광고 1>은 단지 컵 하나 올려놓았을 뿐인데… 누군가 차 문을 여느라 들고 있던 커피 컵을 잠시 자동차 위에 올려놓았겠지요. 그리고는 갑자기 전화를 받느라 커피 컵은 잊고 무심결에 시동을 걸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어떻게 저걸 써먹을 생각을 했을까요? 누군가에겐 단지 실수로 그쳤을 허망한 경험이 크리에이터의 눈으로 다시 보니 거리의 모든 시선을 붙들고도 남을 강력한 아웃도어 광고가 돼버렸네요. 그것도 전 도시를 배경으로…. 스케일도 참 큽니다.

<광고 2>는 자동차 ‘미니’입니다. 차 문만 열어 놓고, 제품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으니까요. 지하철 입구로 들어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동작이 마치 미니를 타는 듯합니다. 지하철 입구에서 나오는 수많은 사람들 또한 미니에서 내리는 것처럼 보이지요. ‘작지만 실내공간이 넓은 차’라는 컨셉트를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을까요? 더욱이 그 많은 사람들조차 자발적으로 광고모델이 되어 준 셈이니 이는 그저 광고가 소비자의 눈길을 끄는 정도가 아니라 소비자들이 오히려 미니를 광고해 주고 있다고나 할까요.

<광고 3>은 인도에 있는 United Breweries 라는 회사의 맥주광고입니다. 미디어는 ‘손잡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살짝만 건드려도 거품이 흘러내릴 듯한 생맥주 한잔이 손잡이와 매치되어 유리 면에 프린트되어 있습니다. 보기만 해도 맥주가 간절해지는데 직접 잔을 드는 느낌이라…. ‘음, 갑자기 맥주가 당기는군…’ ‘들어가서 시원한 맥주 한잔 어때?’ ‘어이, 나가서 맥주 한잔 하지?’ 드나들 때마다 손끝으로 느끼는 맥주 한잔의 유혹, 피하려야 피할 수가 없겠군요.

<광고 4>. 이젠 횡단보도까지 미디어로 등장했군요. 수많은 발길에 짓밟히고, 비와 바람에 씻겨 하루하루 빛이 바래져 가는 횡단보도. 그 중 유난히 하얗고 깨끗하게 빛나는 하나에 세제 Mr. Clean의 유명한 캐릭터인 대머리 아저씨(Mr. Clean)가 웃고 있습니다. CF에서 온갖 세탁비법과 노하우를 전수하더니 아예 거리로 나오셨네요. 패키지도 제품명도 드러내지 않지만, 세탁력을 강조하는 그 흔한 한마디조차 없지만, 능력을 탁월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온 거리를 깨끗하게 세탁하고도 남을 만큼….

현실……

어디까지가 광고이고 어디서부터가 광고가 아닌 걸까요? 그 경계가 모호해질수록 크리에이티브는 또렷해지는 것 같습니다. 더 새롭게, 더 매력적으로, 더 효과적으로…. 역설적으로 광고 같지 않은 광고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결국 더 효과적인 광고를 만들 수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현실을 광고 속으로 끌어들인 크리에이티브, 광고가 현실 속으로 확장된 크리에이티브, 그래서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빅 아이디어로 거듭난 크리에이티브 말입니다.
단순히 4대 매체의 울타리를 벗어나 옥외로 눈을 돌려야 새롭다는 건 아닙니다. 단지 우리가 광고라 생각하는 고정관념, ‘크리에이티브는 이런 것’이라고 스스로 한계 지우는 습성… 뭐 그런 것들에 대한 경계를 허물고 싶다는 바람입니다. ‘나비의 꿈’, 이른바 호접지몽(胡蝶之夢)의 경지. 꿈이냐 생시냐, 광고냐 현실이냐, 애써 구분하는 것이 부질없는 그런 세계. 스스로 얽어매어 놓은 온갖 규칙, 그리고 늘 충분한 핑계가 되어 주는 광고주의 벽에 부딪쳐 클리셰이(Cliche)만을 만들어 내고 있는 스스로에게 이 기회에 자문해 봅니다.
어디까지가 광고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일까? 하고…


Posted by HS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