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9-10 : Creator's Eye - 앗, 조심해!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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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ator's Eye
  앗, 조심해!  
심의섭 | 장훈종 CD팀 부장
adel@lgad.co.kr
 

“크리에이터의 시각에서 자유롭게 풀어보세요. 광고관도 좋고, 좋아하는 광고에 대한 단상을 자유롭게 써 주세요.”
들을 때는 어찌나 쉬워 보이던지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후 나름대로 글을 쓰기 위해 고심하다보니 ‘난, 어떤 광고를 좋아할까’, ‘광고에 대한 생각은?’ 등등 상념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앗, 들을 때와 쓸 때가 다르네. 조심해야 했는데….’

‘벽 모서리’도…

 

나는 개인적으로 ‘생활 속에서 있음직한’ 광고를 좋아한다. 생활 속에 있음직한 광고를 좋아하다보니 기존의 ATL광고보다는 BTL광고를 더 좋아하게 되었다. 일부러 잡지를 사서 들춰보지 않아도 된다. 밀폐된 공간에서 나 홀로 외롭게 TV를 보지 않아도 된다. 출퇴근길이나 밥을 먹으러 가거나, 심지어 버스 의자에 피곤한 몸을 기대고 멍하니 창을 바라볼 때도 만날 수 있는 BTL 광고를 좋아한다.
생활 속에서 쉽게 만난다는 사실 이외에, ‘어찌 저런 생각을 다 했나’ 하며 혀를 내두르게 하는 기발함을 더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요즘에 나온 광고로는 ARIEL의 벽 모서리 이용 광고를 제일로 꼽고 싶다. 누구나 한번은 있음직한 경험이 아닐까. 학교 도서관 복도 모서리를 돌다 커피를 든 아리따운 아가씨나 혹은 건장한 체격의 남자와 부딪쳐 머리가 얼얼해진 경험 말이다. 물론, 길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생활에서 자신이 경험했거나 경험할 수 있는 일을 광고로 만들었다는 점이 맘에 아주 쏙 든다.
보는 순간, “아아~ 부딪치겠어, 조심해!”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상황도 역시 즐겁다. 휴대폰으로 문자를 날리는 것일까? 아니면 야한 동영상을 보는 것일까? 정신이 팔린 남자는 모서리 반대편의 페인트 통을 든 남자를 생각도 못하고 있다. ‘저런~저런~ 저 하얀 양복에 난리가 날 텐데. 어떻게 세탁하냐’ 걱정이 되기 시작할 때 보이는 마크, ‘ARIEL.’ 아하, ARIEL이 있으니 걱정 없겠구나. 그런데, 정말 그렇게 깨끗하게 빠지나. 약간의 물음표과 함께 ‘ARIEL’이라는 브랜드는 머리에 각인된다.
재미있지 않은가. “우리 제품은 특별한 성분으로 이러저러하게 깨끗하게 해줘요. 꼭 써보세요”하며 시끄럽게 외치는 것보다, 특별한 카피는 없어도, 더 강하게 들어온다. 지형지물을 100% 이용한 아이디어와 길을 지나는 사람들의 ‘어어~’하는 관심을 끄는 비주얼. BTL의 무기를 겁나게 잘 활용한 광고다.

‘벽’도…

ARIEL의 BTL 광고 중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것이 하나 더 있다. 아마, 한창 흰색 옷에 빠져 블라우스와 티셔츠·바지, 심지어 운동화까지도 흰색으로만 신던 때였으리라. 몇 번 입고 나면 흰색 본연의 컬러가 점점 사라져가면서 누렇게 변하는 모습이 내 가슴을 아프게 했다. 락스에 손빨래, 드라이클리닝 등등의 많은 시도도 별로 효과를 보지 못할 때였다. 지저분한 먼지가 앉은 벽에 붙은 포스터 한 장. 포스터는 온전히 붙어있지 못하여 반은 떨어져 있다. 어? 그런데 벽은 색이 하얗게 그대로다. 그래서 뭐냐고요? 다들 경험이 한 번은 있지 않을까요?
벽에 액자를 걸어 놓거나 좋아하는 스타의 포스터를 붙였다가 때면 그 벽은 하얗게 변해 있다. 먼지도 바람도 벽에 바로 부딪치지 않으니 처음 상태 그대로 아주 깨끗하게 유지된다. 액자나 포스터가 벽에 때가 타지 않게 막아주는 보호막 역할을 해준 것이었다. ARIEL 광고 포스터도 그런 역할을 해주었다고 할까. 절묘하다. ARIEL 담당 크리에이터는 생활 속에서 아이디어를 잡아내는 특별한 눈이 있는 듯하다. ‘ARIEL로 세탁하면 진짜 하얗게 되겠구나’하고 느껴지는 것과 함께 보송보송하게 말린 옷을 입고 거리를 활보해도 먼지가 묻지 않도록 해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쇼핑하러 가는 길의 벽에서 저 포스터를 보았다면 ARIEL을 한 아름 사들고 오게 되리라.



‘迷路’도…

약간의 장치가 필요한 광고도 참 좋아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도로교통법이나 심의 등의 복잡다단한 문제 때문에 할 수 없는 경우가 많지만, 외국에서는 공사장·건물·벽 등에서 설치물과 같은 광고를 자주 접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암스테르담 공항 중앙 출입구에는 아주 특별한 광고를 만날 수 있다. 2차원의 평면광고가 아닌, 3차원의 입체광고판이다. 컨셉트는 ‘아무리 복잡한 길도 가장 짧은 시간에 정확하게 찾아 간다’인 듯하다. 복잡한 미로 안에서 DHL을 상징하는 빨간색 볼이 돌아다닌다. 실제 볼이 돌아다닌 것만도 재미있는데, A지점에서 B지점까지 가장 빨리 가는 길을 따라 또르르 또르르 굴러가고, 다 굴러간 볼은 뒷 부분의 숨겨진 벨트를 통해 다시 A지점으로 순식간에 이동된다. 그리고 또 열심히 B지점을 향해 굴러간다.
여행을 떠나는 곳, ‘공항’이라는 특성에 맞춰 볼이 A지점에서 B지점까지 여행을 반복한다. 언제나 신속 정확한 DHL의 컨셉트를 따라 지름길로 가장 빨리 목표지점에 도달한다. 그리고 하나 더, 아무리 세상사에 관심 없는 사람이라도 입구에 실제 미로처럼 떡 하니 버티고 선 광고판에서 볼이 또르르 또르르 굴러 길을 찾아가는 모습을 계속해서 지켜보게 만든다. 부럽다. 이런 아이디어를 내는 크리에이터도, 아이디어를 사준 광고주도, 실제 설치를 가능하게 해주는 사회적인 성숙함도 정말 부럽다.



언젠가는 나도 저런 광고를 해보고 싶다. 억지로 메시지를 전달하고 교육하기보다 쉽게, 재미나게, 새롭게 보이는 광고를 만들고 싶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인식도 제약도 많지만 언젠가는 변하지 않을까?


Posted by HS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