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9-10 : Ad Scope - 광고인이 된 지인에게 드리는 편지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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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고인이 된 지인에게 드리는 편지
송 은 아 | 월간 광고정보기자
easong@kobaco.co.kr
 

K에게.
얼마 전 네게서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원하던 광고회사에 들어갔다고. 그 반가운 소식을 전하는 네 목소리는 의외로 담담하더라. 이 취업대란의 시대에, 왜일까?
네가 그 회사에 들어가기 위해 들였던 노력들 - 아는 사람이 있는지 수소문하고, 원하는 부서의 사람과 어렵게 약속을 하고, 약속 뒤 고맙다는 인사를 하기 위해 다시 그 사람의 전화번호를 별도로 꼼꼼히 챙기던 걸 알기에, 그 ‘성취’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아니면, 정말 원하던 일을 해낸 뒤 찾아오는 허탈감이었을 수도 있겠지. 다만 나는, 네가 우리나라의 광고산업에 대해 너무 큰 기대를 갖거나, 혹은 너무 작은 기대를 가질까 두렵다.

“기대해라, 너무 기대하지는 마라”

내가 의도와 다르게, 의도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광고계에 발을 들여놓았던 때는 1996년 6월, 한국 광고계 전체가 IAA대회로 술렁거리던 때였다. IAA대회 사상 최대 인원이 참석해 개가를 올렸고, 연사도 마틴 소렐 WPP 회장, 키스 라인하드 DDB 월드와이드 회장 등 정상급 인사로 구성되었다. IAA대회에서 그 연사들의 강연 사진을 찍는 게 내 첫 일이었다.
그리고 이제 10여 년이 흘러, 내년이면 아시아 광고대회가 제주에서 열린다. 1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한국 광고산업은 IAA의 영광과 기쁨을 IMF 한파, 감원의 피 바람과 맞바꿨고, 월드컵이 달성한 최고 광고비의 기록이 불황으로 주저앉는 모습을 목도해야 했다. 한때 광고학과는 우수한 학생들의 집합소였지만, 광고계로의 유인책 없는 광고업계와 학계에 실망한 학생들의 외면이 차갑다. 광고가 자본주의의 꽃으로, 광고인이 화려한 전문가로 각광받던 시절을 지나, 야근 많고 광고주에게 치이는 어렵고 힘든 직업이 되었다. 일부 마케터들은 이제 공공연하게 ‘광고는 죽었다’고 공언한다. 광고주와 소비자들은 광고의 주권이 자신들에게 있다고 주장하고, ‘광고’라는 이름은 이제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게 아닐까. 광고라는 업의 성격을 바꿔야하지 않을까 고민 중이다. 이것들이 네가 광고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으면 하는 이유들이다.
그런데, 참 우습지. 광고는 ‘예술 정신’의 곯은 배를 남의 돈으로 손쉽게 채우려는 편법도 아니고, 효율에 죽고 사는 주요한 경제활동이며 목표와 그 목표를 달성하려는 고도의 전략·전술의 싸움이다. 이렇게 알면서도 나는, 그래도 꿋꿋이 ‘광고는 예술이고 문화’라고 네게 다짐시키고 싶다. 나는 너의 광고가 예술가와 맞먹는 장인정신에서 출발하길 바란다.
얼마 전, 친분이 있는 광고회사의 중역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아는 사람이 최근 이름난 국제광고제의 기술 부문에 작품을 출품했다고 한다. 냉장고 광고로, 우유 짜는 농장 혹은 물고기 잡는 호수에 냉장고를 끌고 나온 비주얼의 인쇄광고였단다. 물론 나룻배와 수레에 얹혀 있는 냉장고는 합성된 것이었는데, 그 사람은 합성의 완성도에 큰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지. 그런데 결과는 낙선. 이에 수긍할 수 없었던 그 사람이 심사위원에게 낙선 이유를 물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지금 이 나룻배와 수레를 보면 굉장히 무거운 냉장고가 실려 있는데도 그 무게만큼 배가 물에 잠겨 있거나 수레가 내려앉아 있지 않다. 합성이라는 게 뻔히 보이는데 상을 줄 수는 없지 않느냐?”배가 냉장고의 무게만큼 물에 잠겼는지, 수레가 냉장고의 무게로 내려앉았는지는 광고 아이디어의 표현이라는 차원에서 보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어느 소비자도 그 문제로 광고인들에게 시비를 걸지는 않을 테니까. 그러나 깨진 유리창이 ‘범죄에의 무방비’를 대유하듯, 이 지나쳐 보이는 꼼꼼함은 광고에 대한 광고인의 헌신과 전문가 정신을 증언해주리라 믿는다.
레오버넷도 그랬다. 완벽함에 대한 열정, 즉 결코 일을 불완전하게 마무리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상실했을 때 회사 이름에서 자신의 이름 레오버넷을 지워달라고.



“철학을 꿈꿔라, 사실을 저버리지는 마라”

나는 네가 철학이 있는 예술가였으면 좋겠고, 전문가였으면 좋겠다. 네가 광고의 사실성에 강박관념을 보였으면 좋겠고, 그러면서도 광고를 사랑하면 좋겠다. 네가 광고를 기대했으면 한다. 어차피 나는 광고인이 아니고, 그렇기에 이런 생각이 오늘도 끝없는 야근으로 힘겨운 광고인들에게 상처가 될지도 모를까 걱정스럽다. 이제 광고계에 처음 입문하는 네가 내 말에 진절머리를 치게 될까봐 생기는 가슴 조임도 있다. 직장인들을 움직이는 동인(動因)이란 게 결국 돈과 명예임을 알진대, 내가 함부로 보상 없는 완벽과 헌신을 요구할 수 없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나는 이런 광고를 보면 아직도 광고인들에게 대가 없이 마음을 주고 싶거든. 2006년 클리오광고제에서 대상을, 칸광고제에서 금상을 수상한 혼다의 광고를 보았니? 광고 길이가 무려 2분 여에 달하는 그 광고에는 한 합창단이 등장한다. 자동차에 시동을 걸고 CD를 넣고 주행을 하고 비를 맞기도 하며 찬란한 햇살을 가르기도 하는 시빅(Civic)의 소리를 이 합창단은 모두 완벽하게 재현해낸다. 나는 이들이 재현해낸 완벽한 자동차 소리에 감탄하는 게 아니다. 이들이 그 소리를 만들어내기까지 들여야 했던 그 시간과 노력에, 거의 무의식적으로 찬사를 내뱉는다. 마케팅 에세이 <빅 무(The Big Moo)>의 저자들이 창의성을 ‘끈질긴 반복과 나열’로 정의했듯, 이들도 이 광고를 만들기 위해 끈질기게 소리를 만들어보고 늘어놓았을 터. 기발한 아이디어, 그 아이디어를 살리려는 끈질김과 장인정신, ‘불굴의 인간정신’이라는 철학을 더해 ‘광고는 살아있다’고 웅변하는 이 광고가 나는 사랑스럽다. 아니, 아무래도 좋다.
몇몇 사람들은 마치 광고가 제품에 대한 진실은 도외시하고 소비를 조장하는 물신주의의 망령인양 화를 내지만, 오직 광고만이 미래를 낙관하며 꿈을 꾼다. 광고만이 긍정한다. 판단은 광고가 하는 게 아니라 내 몫이기에 그 무책임한 긍정을 긍정하고 싶어진다.
10년 전 광고계에 들어오며 나는 광고를 기록함으로써 일상을 기록하고 역사를 기록할 수 있다고 믿었다. 지금의 나는, 그런 거창한 생각을 접었다. 그저, 광고가 좋다고 느낄 뿐. 그렇지만 네가 광고계에 들어오기 위해 쏟은 노력들을 보며 나는 마음을 다시 다잡는다. 네가, 사람들이 광고를 난자(亂刺)한 그 자리에서, 광고는 예술이고 철학이며 광고의 진정성이 사람을 움직인다고 외치면, 그것을 기록해 주고 싶다고. 찬바람 눈보라 정도는 꾹꾹 참으며 기다리마. 너도 힘든 가을 겨울, 그 담담함으로 무사히 넘기길. 못 견디게 추운 날, 몸을 녹일 술 한 잔 정도는 건네마.


Posted by HS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