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있었던 것은 ‘말씀’이 아니라 ‘생각’이었다. 사물은 생각의 그림자다. 사물을 보면 그 사물을 있게 한 사람의 생각이 거기 있다. 답사여행이란 선인들의 생각을 훔쳐보는 여정이다. 그들은 가고 없지만 그들의 생각의 흔적은 사물로 그 자리에 그렇게 남아있는 것이다. 사물이란 선인들의 생각의 증거물인 것이다. 물건을 보지 않고 그 물건이 그 자리에 있게 한 마음을 읽어내는 예지, 답사여행은 보이는 것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을 읽어내는 수행길이다. 그렇듯이 크리에이티브의 전략적 차원이 ‘생각’이라면 전술적 차원은 ‘사물’이다. 사물이 생각의 그림자이듯 전술은 전략의 그림자라 할 수 있다.
‘전술’의 이해
광고 크리에이티브 전술은 소비자를 설득하는 구체적인 방법으로, 언어적 기호에 의해 광고의 내용을 결정하는 ‘광고소구 방법’과, 비언어적 기호에 의한 광고 형태를 나타내는 ‘광고제작 기법’으로 구분할 수 있다.
광고의 소구력은 ‘광고주가 실제 고객이나 예상고객에게 상품을 구입하거나 애고(愛顧)심을 형성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힘’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고객이나 예상고객의 구매 동기, 애고 동기를 자극하는 유인을 능률적으로 구성하는 힘’이라고도 할 수 있다. 광고물 혹은 광고활동의 성공 여부는 정확한 소구를 하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달려 있다. 그리고 소구점은 당연히 예상고객의 구매동기를 고려하여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전술적 측면에서의 광고소구란 광고 크리에이티브를 구체화하는 작업으로서, 소구방법에 따라 표현전술이 달라진다. 일반적인 광고소구 방법은 이성적 소구와 감성적 소구로 구분할 수 있으며, 또 호소하는 대상을 기준으로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제품이나 서비스 중심의 소구로서, 제품이나 서비스의 특징, 경쟁적 우위성, 가격, 뉴스, 유행 등으로 세분된다. 둘째는 소비자 중심의 소구 방법으로, 소비자 서비스, 이익, 소비자의 자아향상, 공포, 제품 시험구매가 있다. 셋째는 비소비자/비제품의 소구방법으로, 기업 및 투자가 등으로 세분된다. 이 외에도 안전소구, 편리소구, 호기심 소구, 가족/가정의 소구, 삶의 가치에 대한 소구, 공포 소구, 건강 소구, 영웅 소구, 친절/봉사 소구, 성적 소구, 즐거움 소구, 욕심 소구, 감각 소구, 욕심 소구 등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한편 광고제작기법은 크리에이티브 컨셉트를 구체화하는 작업으로, 인쇄매체의 경우에는 크리에이티브 컨셉트의 시각화를 뜻하며 전파광고의 경우는 영상화를 의미한다. 또한 카피라이팅과 아트디렉팅 차원도 전술적 차원이다.
광고 크리에이티브 전략과 전술의 함수
광고제작 과정에서 전략의 수립 작업은 누구에게 무엇을 전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다. 즉 ‘크리에이티브 전략(Creative Strategy)’이란 광고 메시지를 통해 무엇을 말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며, ‘크리에이티브 전술(Creative Tactics)’은 메시지 전략을 어떻게 실행할 것인지를 다루는 것을 말한다.
전략이 일관된 마케팅이나 광고의 방향이라면, 전술은 아이디어나 계획이다. 전략은 목표가 아니며 마치 우리 인생처럼 ‘과정’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잭 트라우트(Jack Traut)는 전략을 ‘하나의 일관된 마케팅 방향’으로 본다. 이에 비해 전술은 아이디어나 계획이다. 따라서 전술은 독특하거나 색다르지만, 전략은 일반적이다. 또한 전술은 시간과 무관하며 한결같은 개념이지만, 전략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전개된다. 일례로 반짝세일이 유통업자가 한 번 또는 몇 번 사용하는 전술이라면, 연중세일을 하는 상설 할인매장은 전략이다. 즉 반짝세일은 시간에 구애되지 않지만, 상설할인 매장은 일정 시간이 지나야 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전략과 전술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일관성이다. 전술은 전략의 범위 안에서 놀아야 한다. 전쟁 예술가라 할 장군의 전략은 실행 장교들이라 할 일선 중대장, 소대장들도 명확하게 공유하고 있어야 한다. 전략과 전술은 톱니바퀴처럼 치밀하게 맞물려서 돌아가야 한다. 전략과 전술이 따로 국밥처럼 따로 놀아서는 안 된다. 그러나 종종 전술은 마치 전략의 하부 내지는 세부사항 정도로 치부된다. 따라서 흔히 전략적 차원의 중요성만 강조되고 전술적 차원은 간과된다. 그러나 전술적 차원 또한 전략적 차원만큼이나 중요하다. 아무리 놀라운 작전계획이 수립되었다 해도 실제 전투상황에서 실행되지 못하면 헛수고에 불과하다. 장군의 의사결정과 탁월한 전략도 중요하지만, 최전선에서의 소대장의 역할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이렇듯 소비자들이 만나는 것은 잘 짜여진 광고기획서가 아니라 잘 만들어진 광고제작물이다. 아무리 탁월한 전략이라도 실제 제작물로 구체화되고 실행되지 않는다면 헛수고에 불과하다.
광고전략은 표적 수용자(Target Audience), 상품 컨셉트(Products Concept), 커뮤니케이션 매체(Communication Media), 광고 메시지(Advertising Message) 등 4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이를 기초로 해서 어카운트 매니저가 크리에이티브 브리프를 작성해 크리에이티브팀에 브리핑해준다. 크리에이티브팀은 광고 캠페인을 위한 크리에이티브 아이디어 개발과 제작의 책임을 지고 있으며, 크리에이티브 브리프에 제시된 정보와 그들이 시행한 추가적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메시지 전략을 개발한다. 여기서 메시지 전략은 광고 캠페인의 전반적인 크리에이티브 접근법, 다시 말해 광고가 말하고자 하는 무엇과 그것을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에 대한 이유 같은 것들을 간단히 기술하고 설명한 것이다. 이는 보통 언어적 메시지, 비언어적 메시지, 테크니컬 차원의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다음, 광고 크리에이티브 전략은 크게 4개 항목으로 구분할 수 있다. 크리에이티브 목표, 크리에이티브 컨셉트, 크리에이티브 전략, 넷째는 크리에이티브 전술 등이 그것이다. 여기서 전술적 차원은 크리에이티브 전략의 연장선상에 있는, 전략적 차원에서의 전술과 구체적인 실행 차원에서의 전술로 나눠진다. 전자가 모델이나 음악·촬영·배경·세트 등과 같은 크리에이티브의 세부적 차원에서 의사결정 문제를 말하는 것이라면, 후자는 전략과 실행을 연결시키는 구체화 과정의 의사결정 문제를 말한다. 그리고 크리에이티브 전략적 차원의 문서가 크리에이티브 브리프라면, 크리에이티브의 전술적 차원의 문서는 프로덕션 컨셉트 시트인 것이다<그림>.
그런데 효과적인 광고가 되기 위해서는 크리에이티브 전략과 크리에이티브 전술 사이의 일관성을 확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 전략과 전술을 어떻게 연결시키는가? 전략적 차원이 머리 속에서 진행되는 아이디에이션(Ideation) 작업이라면, 전술적 차원은 보다 실천적 차원이며 보다 현실적 차원이며, 이러한 전략과 전술을 연결시켜주는 실무적 절차는 PPM(Pre Production Meeting), 즉 제작사전회의다.
광고회사가 하는 아이디어 만들기 작업은 머리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지만 광고물의 제작 작업은 수많은 스태프들의 협업 작업에 의해 진행되는 것으로, 손가락 하나 움직이는 것도 돈이 드는 일이다. 다시 말해 자칫하면 엄청난 시간과 노력, 그리고 비용의 낭비를 가져올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하고 약속하는 PPM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렇듯 PPM은 관리적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전략적 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하지만, 우리나라 광고 제작 현장에서는 너무나 자주 간과되거나 무시되는 경향이 있다.
광고제작 업무를 Pre Production, Production, Post Production으로 나눌 때 광고회사가 하는 일은 주로 머리로 생각하는 브레인 잡(Brain Job)이다. 광고회사가 전략과 아이디어를 만드는 일을 하고, 프로덕션은 그것을 촬영하는 일을, 포스트 프로덕션은 보다 기술적인 작업들을 통해 제작물의 완성도를 높이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 제작(Execution) 단계에 관여하는 프로덕션이나 포스트 프로덕션은 전략개발 과정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략에 대해 잘 모르거나 간과하기 십상이다. 그러므로 자칫하면 제작물에서 전략적 일관성이 확보되지 않을 가능성도 높다. 따라서 광고회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및 PD·아트디렉터는 단순한 제작 진행뿐만 아니라 전략적 일관성을 확보하는 데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놀라움은 언제나 사소한 것 속에 깃들어 있다
광고 크리에이티브의 전술적 차원에서 또 하나 중요한 것은 프로 근성 내지는 장인정신이다. 광고 크리에이티브 작업에서 빅 아이디어가 강조되다 보니까 완벽한 마무리의 중요성이 너무나 자주 간과된다. 빅 아이디어도 중요하지만 완벽한 아트워크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God is in details’라는 말처럼, 언제나 놀라움은 사소한 것 속에 깃들어 있다. 작은 차이가 큰 차이를 내는 것이다. 올림픽에서 0.01초 차이가 메달의 색깔을 결정짓듯 말이다.
위대한 광고 크리에이터는 위대한 코치와 같아야 한다. 그는 그의 비전을 충족시킬 수 있도록 자기 팀을 제대로 결합시킬 수 있어야 한다. 수 천 명의 사진작가들 가운데 한 명을 뽑아야 하고, 조명과 렌즈에 미묘한 차이에 대해서도 이해해야 한다. 완벽한 앵글을 찾아낼 때까지 끝없는 고통을 참아야 하고, 수 백 장의 교정지 가운데 한 장을 골라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사소한 차이가 결국 엄청난 차이로 이어진다는 것을 모든 사람들에게 설득해야 한다.
때로는 이 사소한 것을 위해 내일이 없다는 듯이 돈을 쓰기도 한다. 그러나 ‘그 모든 사소함이 무릎을 꿇는 사소함’은 오로지 하나뿐이다. 그것이 바로 아이디어요, 컨셉트다. 만일 당신의 그 모든 사소함이 그 아이디어를 뒷받침하지 못한다면 그것들은 몽땅 헛수고다. 디테일이 단순히 지면을 장식하는 것이어서는 안 되며, 그 아이디어를 돋보이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 당신의 아이디어를 두드러지게 드러나 보이도록 하지 않는 사소함은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 법에 의해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문구 같은 아주 사소한 것들조차도 매우 중요한 사소함 것들이다. 따라서 그러한 사소한 것들까지도 레이아웃의 초기단계에서부터 고려되고 계획되어야 한다. 생각이 끝나 레이아웃이 다 결정된 마당에 불쑥 튀어 들어와서는 안 되는 것이다.
폭스바겐 딱정벌레 캠페인이나 AVIS의 넘버 투 캠페인 등으로 지금은 전설이 되어버린 아트디렉터 헬뮤트 크론의 일화를 보자. 그는 식자가 나오면 급수를 12급에서 36급으로 키운 다음 아주 미세한 부분까지도 한 자 한 자 일일이 직접 손을 봤다. 그리고는 다시 식자 급수를 12급으로 축소해서 사용했다. 그 차이를 아는 사람은 오로지 헬뮤트 크론 자신과 하느님밖에 없을 것이다. 한때 그의 부하였던 잭 마리우치는 “가끔씩은 하느님조차 미처 모르고 지나가는 것 같았다”며 파안대소를 했다. 위대한 아트디렉터는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그 사소한 부분이 스스로가 만족스러워질 때까지 물고 늘어진다.
광고제작 현업에서 일할 때 필자의 파트너였던 아트디렉터 K 씨는 레이아웃을 할 때 항상 사무실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서 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광고에 들어갈 요소들을 몽땅 모아서 늘어놓고는 쪼그리고 앉아 그것만을 뚫어지라고 바라보고 있었다. 한번 그렇게 쪼그리고 앉으면 30분이고 40분이고 얼어붙은 석고상처럼 미동도 없었다. 그러다가 이윽고 한마디 한다. ‘이거 5% 줄이고, 이거는 왼쪽으로 2센티 밀고, 이거는 5%만 키워봐.’ ‘됐어, 붙여.’이 마지막 한 마디를 할 때까지 보통 앞의 말을 대여섯 번은 들어야 했다. 필자는 아무리 봐도 그 차이를 느낄 수가 없었지만, 그에게 있어서 그 차이는 결코 작은 것이 아니었다. 그에게 안겨지는 수많은 광고상들이 그의 판단이 옳았음을 증명해 주었다.
그런 건 광고 속에 들어가야 할 것들을 ‘대충 여기 저기 놓아보는’ 식의 레이아웃으로는 얻어낼 수 없는 것들이다. 그 사소한 차이 때문에 끝없이 여기저기로 옮겨보고 딱 맞는 제 자리를 찾아주어야 한다. 그것 또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것이어야지 단순히 레이아웃의 문제여서는 물론 안 된다.
한 마디로 ‘실패할 수 없을 만큼 생각하고 생각한 다음 행동하는 정신’이 필요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