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여론 마케팅 조사협회인 ESOMAR(European Society of Opinion and Market Research)는 100여 개 국가의 4,000명의 회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매년 WAM(Worldwide Audience Measurement)이라는 세미나를 개최, 소비자 및 시장조사와 관련된 많은 학자와 업계 종사자들이 자신들의 노하우와 사례를 공유하고, 소비자조사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나 비전을 제시하며, 또한 비즈니스를 개척해 나갔다. 하지만 우리에게 아쉬웠던 것은 협회가 유럽의 협회인 만큼 거의 유럽에서만 세미나를 개최하는 바람에 국내의 회사나 기관에서는 참여가 쉽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런데 2006년부터는 그 이름을 WM3(Worldwide Multi Media Measurement)로 바꾸고, 매체와 관련된 내용을 중점적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게다가 세미나 장소도 유럽을 벗어나 중국의 상해에서 개최하게 되어 이례적으로 많은 국내 업계에서 참가했는데, 필자도 LG애드를 대표하여 본 세미나에 참석하게 되었다.
바뀐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WM3는 미디어와 관련된 각종 조사에 관한 세미나였다. 이에 따라 참가한 회원들도 각국의 광고회사를 비롯, 미디어 에이전시, 시청률 조사회사, 마케팅 조사회사 등의 업계와 학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었다. 이들과 만나서 얘기하고 지식을 공유 -사실 일방적으로 얻기만 했지만- 할 수 있었던 것은 필자에게는 미디어에 대한 시각을 넓힐 수 있는 뜻 깊은 일이었다. 이렇게 넓어진 시야를 조금이라도 공유하고자 앞으로 총 6회에 걸쳐 ESOMAR의 ‘WM3 2006’에서 발표되고 논의된 내용들을 요약, 정리하는 글을 연재하고자 한다.
이번에는 첫 번째 순서로 Don E. Schultz, Joseph J. Pilotta, Martin P. Block이 공동으로 발표한 글을 중심으로, 광고주 중심의 미디어 플래닝에서 소비자 중심의 미디어 플래닝으로의 패러다임의 변화에 대해 얘기하고자 한다.
Simultaneous Media Usage
얼마 전 필자는 일본에서는 데스크탑 컴퓨터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이제 노트북 컴퓨터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데스크탑의 판매는 거의 바닥 수준이며, 노트북의 판매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를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니, 컴퓨터의 주 소비층인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TV를 보면서 무릎 위에 노트북을 켜 놓고 동시에 2개의 미디어를 활용하는 비율이 늘어난 것이 그 원인으로 밝혀졌다. 이러한 모습은 굳이 일본까지 가지 않더라도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MP3 플레이어를 귀에 꽂고 채팅을 하는 학생들, DMB를 틀어놓고 신문을 보는 직장인의 모습은 더 이상 낯선 모습이 아닌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발표자들은 ‘최근 몇 년간 인터넷·DMB 등 미디어의 수는 급격하게 많아지고, 뉴미디어의 기술은 나날이 발전되고 있으나 소비자가 미디어에 접촉할 수 있는 시간은 한정되어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거기에 필자는 소비자의 정보 탐색에 대한 욕구가 시간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것도 한몫 거들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소비자들은 다양한 매체를 동시에 이용하고 있는데, 이를 ‘Simultaneous Media Usage(이하 SMU)’라고 한다. 이 용어는 이번 WM3 세미나 중에 가장 많이 사용된 용어 중 하나일 만큼, 현재 소비자 및 미디어 환경 변화와 관련된 가장 뜨거운 화두 중 하나다.
SMU에서 미디어는 크게 ‘전경(Foreground) 미디어’와 ‘배경(Background)’ 미디어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TV를 켜 놓고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다면 TV는 배경 미디어로 볼 수 있고, 인터넷이 전경 미디어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전경 미디어와 배경 미디어간에는 순 방향이든 역방향이든 시너지가 생성될 것이다.
대부분의 참석자들과 필자도 이러한 SMU 경향이 시간이 지날수록 확산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정보의 홍수시대에 사는 우리가 최대한 많은 정보를 습득하고, 또 그 많은 정보 중에서 양질의 정보를 찾아내기 위해 SMU는 생존본능이 될 것이며, 우리도 모르는 사이 우리의 삶에 깊숙이 침투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Single Source Data에서 출발하는 소비자 중심의 미디어 플래닝
그러나 현재의 미디어 플래닝과 조사기술은 이렇게 달라진 소비자를 따라잡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우리가 지금껏 광고주 중심의 미디어 플래닝을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광고주의 메시지와 그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하는 방법만을 생각하고 있다. 소비자의 소비활동과 미디어 이용행태 간의 관계를 적절하게 알아내지 못하거나 때로는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미디어 플래닝을 위해 소비자를 세분화(Segmentation)할 때도 마찬가지다. 주로 인구 통계학적 특성에 약간의 라이프스타일을 고려해 소비자를 세분화하는 정도다. 과거에는 지금과 같이 다양하고 복잡한 미디어 환경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러한 방법도 큰 문제가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지금의 소비자는 과거의 소비자와 매우 다르고, 그러한 소비자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완전히 새로운 어프로치가 필요하다.
물론 국내에서도 AGB NMR과 TNS Media Korea와 같은 시청률 조사회사와 HRC의 미디어 인덱스 등에서도 예전보다 더욱 다양하고 복잡해진 이런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다양한 데이터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SMU를 설명하기에는 데이터가 부족한 실정이다. 또한 SMU 상황에서 각각의 미디어 간의 상호작용에 의한 시너지 효과는 완전히 무시되고 있으며, 이러한 미디어 이용행태와 소비행동의 연관성에 대해서도 완벽히 파악하기는 어렵다.
이것을 실제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Single Source Data가 필요하다. 지금의 TV 시청률, 신문 열독률, 인터넷 접속률, 소비행태 관련 조사 등의 데이터는 모든 다른 패널(또는 샘플)로부터 추출되기 때문에 각각의 미디어에 대한 이용 행태를 알 수는 있지만, 홀리스틱(Holistic)한 미디어 이용행태와 소비행태와의 관계는 알아낼 수 없다.
이에 슐츠(Don E. Schultz)를 비롯한 3명의 교수는 새로운 미디어 플래닝의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 바로 광고주 중심의 미디어 플래닝에서 소비자 중심의 미디어 플래닝으로의 패러다임으로의 변화다. 소비자 중심의 미디어 플래닝이란 Single Source Data를 활용해 소비자의 미디어 이용행태를 홀리스틱(Holistic)하게 분석하고, 또한 이를 그들의 실제 소비행태와 결부시켜 이를 근거로 미디어 플래닝을 하는 것을 말한다. 물론 우리가 지금 소비자의 미디어 이용행태와 소비행태를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는 말은 아닐 것이다. 발표자들의 진정한 의도는 사고의 전환과, 전환된 사고에 부합하는 조사와 실행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의미다.
또한 이러한 패러다임의 변화가 이번에 처음 제기된 것은 아니다. 이미 2004년 WAM에서도 BIGResearch의 SIMM데이터를 활용해 소비자의 미디어 소비행태를 기준으로 한 새로운 미디어 플래닝 모델이 소개되었다. 2005년에는 같은 데이터를 활용, 소비자를 미디어 소비행태를 기준으로 세분화해 4개의 그룹으로 소비자를 나눴다. 이후 지금에 이르러 미디어 플래닝에 이를 적용하고 하나의 미디어 플래닝 모델로 검증의 단계를 거치고 있는 것이다.
SIMM 데이터에 기초한 소비자 세분화의 특징
IMM 데이터는 미국에서 10만여 명의 소비자를 대상으로 1년에 두 번 조사된다. 이번 세미나에서는 2005년 가을에 조사된 일곱 번째 SIMM 데이터를 활용해 미디어 이용행태와 소비행태를 중심으로 소비자를 분석하고, 이 데이터를 활용해 소비자의 미디어 활용 행태에 따라 미디어 플래닝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제안했다. 또한 SIMM 데이터에는 각 제품별로 구매 의사 결정에 있어서 각 매체의 영향력 등 소비자의 실제 상황에서 제품 구매와 관련된 데이터도 축적하도록 했다. 조사된 미디어는 TV·라디오·신문·잡지는 물론, 인터넷·옥외·전화번호부·SMS 등과, 최근 미국과 유럽에서 보급률이 높아지고 있는 TiVO에 이르는 총 31개이며, 제품은 총 8개의 카테고리가 조사되었다.
발표자들은 SIMM 데이터를 바탕으로 소비자를 8개의 그룹으로 분류했다<표>. 이 글에 모든 내용을 실을 수는 없지만, 이 8개의 그룹을 보면 제품 구매에 대한 관심과 행위의 차이는 물론, 이들의 미디어 이용행태에서도 확연한 차이가 드러난다. 하지만 인구통계학적 차이는 거의 보이지 않는데, 인구통계학적 데이터를 근거로 한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미디어 이용행태와 소비행태 중심으로 세분화했기 때문이라 풀이된다.
이 세분화의 또 다른 큰 특징은 8개의 그룹과 각 그룹에 포함된 소비자가 유동적이라는 것이다. 인구통계학적 데이터를 가지고 세분화하는 경우, 그룹은 변하기 힘들다. 또한 소비자도 그룹간의 이동이 거의 없다. 그러나 이 모델은 매년 2회 조사를 통해 그 때 그 때 바뀐 미디어 이용행태나 소비행태를 반영하기 때문에 시장의 변화를 민감하게 감지하고, 이에 따라 그룹이 바뀌거나 소비자가 그룹 간에 이동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소비자의 변화 추이를 알아내는 데에도 용이할 것이다.
마지막 특징은 이러한 모델의 개발로 새로운 방식의 효과 측정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기존에는 알아내기 힘들었던 미디어 간의 시너지 효과를 측정할 수 있는데, 특히 SMU 상황에서의 전경 미디어와 배경 미디어의 시너지 효과를 명확하게 측정할 수 있다. 또한 기존에 미디어 플래닝과 ROI의 측정 방법으로는 미디어의 효과를 측정해내기 힘들었지만, 새로운 ROCI(Return on Customer Investment)를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만병통치약으로 보이는 이 모델도 물론 한계점을 지니고 있다. 첫 번째로 들 수 있는 한계는, 이 조사가 미국의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서도 그대로 적용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물론 현재 멕시코·폴란드·중국에서 이와 같은 방식으로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지만, 이와 똑같이 8개의 그룹으로 나눌 수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국가별로 미디어 환경과 판매제품, 그리고 소비자의 소비행태가 다르기 때문에 다른 방법으로 세분화하고 미디어 플래닝에 적용해야 할 것이다.
두 번째 한계는, 이 모델은 2005년 가을에 조사된 한 번의 SIMM 데이터만을 근거로 개발되었다는 점이다. 한 번의 조사로 모든 것을 설명하기에는 예외적인 사람들이 분명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여러 차례, 또한 많은 샘플에게 반복 측정함으로써 추후 극복되리라 보인다.
마지막으로 이 모델은 실제 사례에 적용된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현재 여러 회사에서 베타 테스트 중이기 때문에 조만간 실제 적용된 사례를 들고 2007년 WM3 세미나에서 이들이 다시 발표될 것으로도 추측된다.
현재 미국과 유럽에서는 이와 유사한 소비자 중심의 미디어 플래닝 모델 개발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WFA(World Federation of Advertisers)에서도 이와 유사한 ‘Blueprint’라는 프로젝트를 시행했으며, IPA(Institute of Practitioners in Advertising)에서는 ‘TouchPoints’를, P&G에서는 ‘Apollo’라는 프로젝트를 시행하여 이번 세미나에서 소개했다.
이번 글의 제목 ‘Time to Focus on Consumer’는 이번 WM3 세미나의 부제다. 이 세미나의 부제와 같이 앞으로는 소비자 중심의 미디어 플래닝과 효과 측정이 이루어질 것인데, 앞으로 연재할 글 역시 모두 같은 맥락에서 나온 사례와 연구에 관한 것들이다.
그런데 이 세미나에 참석하면서 한 가지 아쉬웠던 것은 ‘뉴미디어가 가장 발달한 나라’인 대한민국의 사례나 연구는 한 건도 없었다는 것이다. 언젠가 필자도 우리나라를 대표해 이 세미나에서 발표하는 날을 상상해보며 첫 번째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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