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5-06 : Creator's Eye - 상식이 없는 광고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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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ator's Eye
  상식이 없는 광고  
박 혜 란 | E.CD
jbhcm@lgad.co.kr
 

원고청탁을 받고 제가 써야할 코너의 제목을 보니 ‘크리에이터의 눈(Creator's Eye)’이더군요. 잠깐 멈칫했습니다. ‘내가 정말 크리에이터가 맞을까’하고요. 직업인으로서의 크리에이터가 아니라, 진정으로 창의적인 발상을 하는 크리에이터는 아직도 아니지 않은가?
그러고 보니까 생각이 나는군요. ‘진정 나는 크리에이터인가’라는 고민을 진하게 하던 그 시절이 말입니다. 회사를 잠시 그만두고 미국에서 공부할 때 그러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기회가 있었습니다.

“Smell·Sexuality·Conversation이 ‘미디어’라고?”

그때 저는 뉴욕의 한 대학원에서 Media Studies 석사과정을 밟고 있었죠. 그 학교에는 한국 학생들도 꽤 있었는데, 영화감독 출신도 있었고 기자 출신도 있었습니다. 나름대로 각자의 분야에서 전문성을 더 쌓고 싶어서 온 친구들이었죠. 대학원 첫 학기를 시작하면서 Media Theory라는 기초과목을 수강하게 되었습니다. 담당 교수는 마샬 맥루한의 <미디어의 이해(Understanding Media)>라는 책으로 강의했는데, 첫 과제물이 “33장까지 있는 그 책을 다 읽고 각자 34장을 완성해 갖고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책에서는 Photo·TV·Newspaper·Magazine 등 33가지 미디어에 관해서 각 장마다 그 역할과 기능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수업을 듣던 96년은 막 인터넷의 열풍이 불기 시작할 때였으므로 한국 친구들은 서로 의논 한 번 한 적이 없는데 누구랄 것도 없이 34장을 모두 ‘Internet’에 관해 썼습니다. 물론 저도 그랬지요. 그 책이 집필되던 시대에는 예견할 수 없었던 인터넷, 그것이 당연히 34장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한국 친구들을 빼놓고는 그 누구도 ‘인터넷’이 34장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제인은 ‘Sexuality on the Cyberspace’에 대해 진지하게 써왔고, 대만의 챙은 ‘Smell’에 대해서, 이란의 나딘은 ‘Conversation’에 대한 34장을 완성해 왔습니다. 어째서 ‘냄새(Smell)’라는 것이 미디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Sexuality’ 혹은 ‘대화(Conversation)’가 미디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저는 한참을 망연자실하게 그들의 페이퍼를 보았고, 수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매일 창조적인 사고를 해야 한다고 의식적으로 주입시켜왔던 제게는 그들의 틀을 깨는 자유분방한 사고력이 충격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98년, 저는 한국으로 돌아와 또 다시 직업적인 크리에이터가 되어 일하면서 언제 그랬냐는 듯 그 충격은 깨끗이 잊게 되더군요. 사고의 틀을 깨기는커녕 상식적인 광고의 대세 속에 늘 자리 잡기 위해 그 안에서 더욱 더 분발하게 되더란 말이지요. 이 글을 쓰면서 이제야 반성하는 마음을 가져봅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살펴봅니다. 나 못지않게 상식적인, 너무나 상식적인 우리나라의 광고들을 살펴봅니다.

‘상식대로’가 ‘상식’일까요?

지금 우리나라 광고는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듯 월드컵의 열풍에 휩싸여 있고, 국민을 선동하는 각종 응원가와 체조들에 빠져 있습니다. 블랙과 흑백이 유난히 힘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가 약속이나 한 듯 앞 다투어 똑같은 광고 형태, 똑같은 메시지를 내보내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요? 자기 생각보다는 남의 생각을 정답처럼 외우게 했던 객관식 교육에 너무나 훈련되어 왔기 때문일까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을 당연히 나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요? 왜 내 생각은 남의 생각과 이다지도 같을까요?
남들이 ‘인터넷’을 얘기할 때 나 혼자 ‘Smell’을 이야기하는 것이 그렇게 힘든 것일까요? 아니면 두려운 것일까요? 참으로 어려운 문제인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상식적이지 않은 광고 두 편을 소개할까 합니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상식을 뒤집은 광고. 이런 제품은 이렇게 찍어야 한다는 상식이 없는 광고. 이런 ‘상식 없는 광고’들을 자꾸 만들어내다 보면 우리도 이제는 대세를 두려워하지 않는, 그래서 혼자서 ‘Smell’을 이야기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바람을 가져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말입니다.
아마도 제품을 사용하는 모델은 물론이고, 그 제품조차 등장하지 않는 광고는 없을 것입니다. 특히 뷰티제품에서 말입니다.



첫 번째 광고, ‘Esthe Wam Beauty Treatment’ 광고가 그렇습니다. 딸이 경찰서에 있다는 전화가 자꾸 오는데, 아빠는 우리집엔 딸이 없다며 잘못 걸었다고 끊습니다. 그런데 집에 핑크색 미니스커트가 걸려있는 걸 보게 되면서 아빠는 알게 됩니다. ‘아, 엄마가 너무 젊어져서 경찰이 엄마를 20대 딸로 오해한 것이구나’하고.
우리의 상식으로는 예쁜 모델과, 제품 사용 후에 더 예뻐진 결과를 꼭 보여주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광고 1>



두 번째 광고는 그로스비 슈즈 광고입니다. 한 여자가 퇴근 후 집에 돌아왔는데, 커다란 거미를 발견하게 됩니다. 신발 하나를 벗어들더니 갑자기 확 내려치는데, 거미 왈 “Umm, feel really good.” “Umm, lady.” 마치 오르가즘을 느끼듯 오히려 더 해달라고 주문합니다. 얼마나 부드럽고 편안한 신발이었으면 그랬을까요? 이 광고에서는 제품을 제대로 예쁘게 보여주지 않습니다. 신발을 한 손에 비틀어 쥐고 그냥 내리치는 도구로만 보여줍니다. 제대로 된 제품 컷 하나 없는 공포영화 같은 광고지만, 광고의 메시지는 더 뇌리에 강하게 박힙니다<광고 2>.


Posted by HS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