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6년 1월 5일
라스베가스 컨벤션홀 전체를 24시간 대낮처럼 밝혀주던 중앙 조명이 꺼지고, 각 기업의 부스들이 제각각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3개 출입구의 문이 열리자 밤새 정돈된 카펫을 밟으며 관람객들이 구름처럼 밀려든다.
약간의 초조함과 설렘 속에서 기다리던 우리의 눈동자 가득히 붉은색의 LG 로고와 웅장하고 역동적인 PDP 타워 영상, 그리고 우리 전시관으로 향하는 관람객들의 형형색색 뒷모습이 채워지고 있었다.
“드디어 시작되었구나. 이 순간을 위해 다섯 달 동안 스페이스팀 모든 식구들이 숨쉴 틈 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구나….”
First Step
당연한 것이겠지만, 전시 성과와 예산효율은 상충관계(Trade-off)를 보이기 쉽다. 2005 CE Show (Consumer Electronics Show)는 우수한 전시 성과로 찬사를 받았지만, 예산 효율성 측면에서 아쉬움을 남겼었다. 따라서 2006 CE Show는 디자인 퀄리티 향상과 효율적 예산 운영의 부담을 안고 시작하게 되었다.
그런데 디자인 퀄리티 확보를 위해서는 경험이 풍부하고 능력 있는 업체를 선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같이 호흡을 맞춰본 업체와 함께하는 것이 보편적인 사례다.특히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벌어지는 행사나 전시에 있어서는 현지 업체와의 협력체제와 파트너십이 더욱 절실하다. 이런 상황에서 광고주가 현지업체 선정에 있어 비딩을 요구해오면서, 프로젝트의 처음부터 광고주와 원론적인 부분부터 합의를 도출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새로운 해외업체를 섭외하고 디자인과 제작을 의뢰한다는 것은 모든 것을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그럴 경우 시간적인 여유도 많지 않고, 신규로 선정되는 업체의 작업수행 역량도 확인할 방법이 없으니 아무래도 위험이 너무 크다.
결국 우리는 전체 부스 중 모바일과 홈 씨어터 등 미흡했던 부분의 디자인 퀄리티를 향상시키면서도, 비용절감 등을 통해 당초 제시되었던 예산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도록 하겠다는대안을 제시하면서 프로젝트 성공을 위한 파트너십을 유지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 본격적인 시작이다.
American Standard vs. Global Standard
제품을 생명처럼 소중히 생각하는 사업부 담당자들의 마음을 연출로 승화시키고, 자유로운 발상으로 표현되는 디자이너의 이상을 현실에 적용시키기 위해 수없이 많은 메일이 태평양을 넘나들었다.전시제품 리스트를 전달받고, 사업본부 담당자들을 만나 요구사항을 확인하고, 그 내용을 정리해 다시 미국에 보내고, 그리고 행사와 관련된 진행 경과를 수시로 경영층에 보고하면서 하루하루가 바쁘게 흘러갔다.
이 과정에서 현지 제작업체는 자신들의 제안에 대한 즉각적인 확답을 요구하는 독촉 메일을 수시로 보내왔다. ‘아메리칸 스탠다드’에 맞추어진 자신들의 요구대로 진행하지 않는다면 그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문제는 LG애드가 책임져야 한다는, 거의 협박(?)에 가까운 독촉이다.
어렵게 시작한 프로젝트라 제작에 부담을 느끼는 그 입장을 이해할 수도 있었지만, 그래도 O.K 사인이 쉽지만은 않았다. 서른 장에 가까운 A4 용지에 무슨 일을 할 것이라는 내용은 가득했는데, 제작금액에 대한 논리적 근거가 미흡했기 때문이었다. 원래 현지에서 진행되는 프로젝트에서는 제작업체의 제안이 이러한 형식을 갖는다고 하지만 우리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더욱이 처음부터 예산의 효율적 배분과 사용 역시 이번 행사의 중요한 성공 포인트로 판단했기에, 서로 납득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자료를 요청했다. 이에 현지 제작업체는 “아메리칸 스탠다드를 이해하지 못한다”며 섭섭한 마음을 표하기도 했는데, 우리에게는 ‘글로벌 스탠다드’에 근거한 ‘신뢰’가 더욱 필요했던 것이다.
글로벌 스탠다드가 별 것인가, 세계 최대 규모의 소비자 기술전시회인 CE Show에서 글로벌 톱3를 향해 나아가는 LG전자의 전시를 맡고 있는 LG애드가 가는 길이 곧 새로운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배짱이 생겼다.
또 그들의 제안을 제대로 검토하고 살펴보기에 시간도 부족한 편이었다.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CE Show 성격상 전시되는 제품 자체가 가전·IT 분야에서의 글로벌 브랜드 이미지 확보 및 판매와 작결될만큼 중요한 요소다. 따라서 제작에 무리가 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 광고주가 최종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시간을 최대한 벌어주어야만 했 다. 그렇지 않으면 제작과정에서, 그리고 현장에서 수많은 수정을 반복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경험상 터득하고 있었으니까.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광고주의 요구사항을 도면에 표기해 발송하고, 새롭게 추가되는 전시제품에 맞게 제작물 변경이 가능한지 확인하며 불확실한 장막을 하나씩 걷어냈다. 그리고 이제는 남은 일정을 관리해야 할 때다.
| 展示를 위한 戰時
드디어 마지막 국내 제작물이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리고 현장 설치 일정과 영역별 역할 분담이 담긴 제작운영 매뉴얼을 재확인하면서 LA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현지로 향하는 내내 머릿속으로 수없이 많은 상황을 시뮬레이션하며 각각에 맞는 대처방안을 고민해야만 했다.
그러나 현장에서의 ‘戰時’는 이제부터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이제부터는 완벽한 설치와 전시 운영이 최대의 과제로, 무엇보다 현지 제작업체의 도움이 가장 필요한 시점이다. 가끔은 아쉬운 소리도 해야 하고, 비상상황이 발생하면 순발력 있게 대처해야만 했다.
CE Show 현장에서의 ‘수퍼 파워’는 단연 실제 설치작업을 수행하는 작업자들의 조직인 노동조합(UNION)이다. 모든 작업은 조합에서 정한 업무수칙에 따라서만 이루어지니, 우리 마음과 달리 수칙을 철저하게 준수하려는 이들 앞에서 급하더라도 발만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을 향한 불평은 도리어 부스제작 지연이라는 좋지 않은 결과로 되돌아 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작업이 진행되는 매 순간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현장에서 발생하는 돌발상황에 대한 신속한 의사결정과 문제 해결만이 불필요한 시간 소모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장을 지키며 협력업체들을 독려하고 지킨 결과, LG전자 부스 제작은 타 부스보다 속도감있게 진행되었다.
그래도 어딘가 부족했다. 조치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LG전자 제품을 모르는 낯선 외국 작업자들에게 마냥 맡겨 놓을 수 없는 상황. 이에 조합 소속이 아닌 국내 협력업체 인력도 설치 작업에 참여할 수 있다는 허가를 어렵사리 받아낸 후 현장은 더욱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리허설 전날, 전 세계의 집중을 다시 받을 것이라는 기대와 자부심을 가지고 마지막 작업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덕분에 모든 작업을 시간 내에 마무리 짓고, 인근의 부스들은 아직 정리로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을 여유롭게 바라보며 우리는 담담하게 오픈을 기다렸다.
Grand Open
CE Show의 개막과 동시에 붉은색, 푸른색, 초록색으로 변화하는 조명 위로 LG로고가 떠다니고, 침묵을 지켰던 디스플레이 제품이 화려한 영상으로 옷을 갈아 입었다.40분마다 모바일 존에서 흘러나오는 경쾌한 음악과, 모바일 컨셉트를 테마로 아름답게 차려입은 모델들이 등장하는 이벤트가 벌어지자 일순간 주변 시선이 우리에게로 집중됐다. 바로 옆에 위치한 부스의 부러움 반, 시기 반 섞인 눈길 속에, 이전보다 프리미엄 이미지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LG전자관을 찾는 관람객의 행렬은 끊이지 않았고, LG전자의 위상은 붉은 로고 조명만큼이나 환하게 빛나는 듯했다.
메인 출입구에는 LG전자의 기술로 생산한 세계 최대 사이즈의 Full HD 102″ Plasma TV를 배치해 행사장에 들어서는 관람객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또 그 맞은편에서는 국내에서 TV광고로 활용한 ‘생방송을 멈춰 보는 타임머신’을 주제로, DVR기능을 영상 및 모노 드라마와 연계한 프리젠테이션 방식으로 소개하며 관람객의 동선을 PDP 라인업으로 깊숙이 끌어들였다.특히 홈씨어터·프로젝터 룸, 독립 부스에 전시된 홈씨어터 탑재 DVD리코더, 홈씨어터 스피커, 벽걸이형 프로젝터, MP3플레이어 등 CES 혁신상(CES Innovation Award)을 받은 LG전자의 첨단 제품들은 디지털 리더로서의 브랜드 위상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는데, 무엇보다 ‘Best Innovation’ 상을 수상한 50″ 무선 PDP TV와 Viiv PDP TV 등 이 단연 돋보여 바이어들의 지대한 관심을 끌었다.
한편 LG전자관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모바일 존은 천정 구조물을 통해 공간의 독립성을 확보하고, 부스 전체와의 조화를 고려해 화이트와 블랙 하이그로시로 마감하면서 프리미엄 이미지를 강조했다. 부스의 조명을 밝게 유지하면서 제품 컨셉트를 표현한 절제된 디스플레이로 모바일 제품을 부각시키고, 중앙에 엔터테인먼트 존을 구성해 다양한 체험의 기회를 제공, 관람객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2006년 1월 8일
어느새 화려한 CE Show의 불빛이 꺼져가고, 철수를 위해 제품박스를 실어 나르는 포크 리프트의 엔진소리만 유난히 크게 들린다. 그동안 관람객들로부터 기대 이상의 박수 갈채를 받으며, 연일 전 세계의 관심이 집중됐던 부스가 서서히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며 지난 5개월간 스페이스팀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본다.
온갖 어려움을 딛고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면서 힘들게 준비해왔던 것들이었기에 후회는 없다. 오히려 LG 제품과 우리의 작업이 바로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것을 실감했기에 그 어느 때보다 자신감이 충만해졌다.
이번 프로젝트는 글로벌 브랜드에 걸맞은 이미지를 창출해내기 위한 의지로 시작한 킥오프 미팅에서부터 기획·설계·제작·현장설치, 그리고 실전의 행사운영에 이르는 전 과정에 참여한 모두에게 또 한 번의 성공사례로 기억될 소중함 경험이었다.
다시 한번 이번 프로젝트를 믿고 맡겨주신 광고주, 그리고 참여한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내년에는 더욱 업그레이드된 모습을 선보일 수 있도록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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