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7-08 : Creator's Eye - ②광고와 크리에이티브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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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ator's Eye_ ①광고의 언어
②광고와 크리에이티브
 
  미쳐야 미친다
 
문 기 연 CD | 크리에이티브 부문
kymoon@lgad.lg.co.kr
 
저는 초등학교 때까지 제가 공부를 잘하는 놈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그것이 대단한 착각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1반 한 반만 우(優)반이고, 나머지 다섯 개 반은 열(劣)반이었던 반 편성에서, 저는 1학년 6반이었으니까요. 미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공부에 미치기 시작했습니다.
별을 보며 학교에 와서, 별을 보며 집에 갈 때까지 손에서 책을 놓은 적이 별로 없었습니다. 밥 먹을 때도, 화장실에 갈 때도, 공을 차면서도…. 그 해 여름날 의자에 너무 오래 앉아있어서 엉덩이에 생긴 습진은 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몇 년 동안 저를 괴롭혔습니다.
친구들은 저를 미친놈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기분이 그리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전교 1등은 못했지만, 결국 그 다음 등수까지는 결과를 냈으니까요. 제 인생에서 무언가에 미쳐본 유일한 기억이 아닌가 합니다.

불광불급(不狂不及)!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

황우석·강수진·조정래.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들 무언가에 미쳐서(狂), 결국은 그 분야에 다 미친(及) 분들입니다.
‘미친다’는 것은 어느 것 하나에 ‘미련하게’ 빠지는 것입니다. 지금 세계가 주목하는 인물로 떠오른 황우석 박사도 학창시절에는 공부를 썩 잘하는 학생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는 고등학교 1학년 때 ‘등 안 대기 클럽’을 만들었는데, 졸업 때까지 방바닥에 등을 대본 기억이 별로 없다고 합니다.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김득신(1608~1684)이라는 인물은 한 술 더 뜹니다. 그의 ‘독수기(讀數記)’라는 기록을 보면 “<백이전(伯夷傳)>은 1억 1만 3,000번을 읽고(당시 1억은 10만), <노자전(老子傳)>은 2만 번, <목가산기(木假山記)>는 1만 8,000번을 읽었다. 머리가 너무 나빠 한 번 봐선 알 수 없기 때문”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미친다’는 것은 어느 것 하나만을 ‘사랑한다’는 말과도 비슷합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미치도록 사랑할 때 그 사랑이 잘 이루어지지 않으면 우리는 아파합니다. 발레리나 강수진은 춤이 잘 추어지지 않으면 영혼이 아프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발레가 너무 좋아 밤에 잠자리에 들 때도 포인트 슈즈를 벗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녀의 발에 박인 굳은살은 칼로 떼어내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이미 감각을 잃어버렸다고 합니다.
‘미친다’는 것은 어느 것 하나가 ‘전부’인 것을 의미합니다. 작가 조정래는 집필기간 동안의 자기 처지를 ‘글감옥’에 갇힌 것에 비유하곤 합니다. 사람도 거의 만나지 않고, ‘먹고 자고 쓰고, 먹고 자고 쓰고의 연속’이 그의 생활의 전부입니다. 그리고 이 고된 작업을 그는 컴퓨터의 도움도 받지 않고 직접 손으로 해냅니다. 당연히 그의 어깨는 정상이 아니라고 합니다.
무언가에 미련하도록 빠져있는 사람, 무언가 하나만을 사랑하는 사람, 무언가 하나를 삶의 전부라고 여기는 사람, 그런 미친 사람들이 저의 주변에도 있습니다. 바로 광고장이들입니다. 소위 광고를 ‘끌로 파는 사람’들입니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그 사람들 눈에는 모든 것이 광고의 대상으로 보입니다. 젊은 시절 당구를 배우기 시작할 때 콩자반이 당구알로 보이고, 천장이 당구대로 보였던 경험들이 누구나 한 번쯤은 다 있을 것입니다.

깨진 수박을 다시 조립해 본 적이 있나요?

‘타미야(TAMIYA, 田宮)’는 일본의 세계적인 프라모델(Pramodel) 브랜드입니다. 브랜드 광고를 준비하며 몇 날 며칠 밤을 새던 카피라이터 혹은 아트디렉터 한 명이 아이디어가 잘 풀리지 않자 수박이나 한 통 먹고 하자고 제안을 합니다. 막내가 잽싸게 밖에 나가 수박을 사서 회의실로 들어오는데, 그만 3M통에 발이 미끄러져 수박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맙니다. 막내의 등줄기에는 식은땀이 흐르고 선배들은 그 아까운 수박을 박살낸 막내를 죽일 듯이 쳐다봅니다. 그때 누군가가 갑자기 유레카를 외칩니다. “앗, 바로 이거다!!!”
상상컨대, 타미야의 브랜드 광고는 아마도 이렇게 탄생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엽기적이기까지한 ‘개구리’ 편, ‘스노볼’ 편, 그리고 ‘수박’ 편, 이 세 편의 시리즈 광고는 올해 애드아시아에서 당당하게 인쇄부문 대상을 차지한 작품들입니다. 임팩트, 제품과의 연관성, 새로움 등 좋은 광고가 갖춰야 할 요소들을 모두 갖추고 있습니다. 그런데 광고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도대체 만든 사람들이 누구인지 궁금해집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살짝 엿들은 바로는 방콕에서 최근 가장 잘 나가는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인 크리에이티브 주스(Creative Juice/G1)라는 회사였습니다.
브랜드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 없으면 이런 광고는 나올 수가 없습니다. 친숙한 것을 낯설게 보고, 낯선 것을 친숙하게 볼 수 있는 안목이 느껴집니다. ‘조립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을 위한 - 타미야’라는 카피에서처럼, 정말 광고에 일가견이 있는 크리에이터들의 고민의 흔적이 한 눈에 보이는 수작입니다.

얼마 전부터 저는 요즘 클리오광고제나 뉴욕페스티벌에 출품된 작품들보다 어떤 면에서 보면 오히려 애드아시아의 작품들이 한 수 위가 아닌지 하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아시아권의 좋은 광고들에서는 동서양과 음양오행의 절묘한 조화가 느껴지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브라질에서 성공하려면 축구선수가 되든지, 아니면 광고를 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브라질이 세계 광고제에서 상을 가장 많이 받은 나라가 된 이유는, “세계적이지만 ‘브라질스러움’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처럼 최근 태국에서 빚어지는 크리에이티브 또한 다분히 서양적이지만 태국적인 정서가 광고에서 물씬 묻어납니다.
사치앤사치 말레이시아의 ‘포토그래퍼 & 프로덕션: 룩’ 광고물 시리즈에서도 그 느낌은 비슷합니다.

코끼리가 거시기 하는 것을 찍어라!

“만약 당신의 사진에 문제가 있다면 그건 너무 멀리서 찍었기 때문이다.” “삶과 죽음이 반반씩이라면 나는 다시 낙하산을 타고 뛰어내려 사진을 찍겠다.”
친구인 잔 모리스에게 마지막 말을 남긴 채 낙하산을 타고 베트남으로 뛰어 내린 종군사진작가 로버트 카파(Robert Capa), 그가 찍은 것은 전쟁이 아니라 평화였으며 휴머니즘이었습니다. 전쟁을 기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구상에서 전쟁을 없애기 위해 사진을 찍던 그는 결국 41살의 젊은 나이에 인도차이나 전쟁을 촬영하던 중 지뢰를 밟아 폭사합니다. ‘미친다’는 것은 무언가에 ‘목숨을 건다’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룩 광고물 시리즈에는 ‘우리는 목숨을 걸고 촬영한다’는 메시지가 녹아있습니다. 평균 5톤이 넘는 코끼리들이 거시기 하는 상황에서도 노출계를 들이대는 프로정신, 외부인의 출입을 금하고 알몸으로 성스러운 의식을 거행하는 부족민들 사이에서도 예외는 없습니다. 심지어 자신이 타고 가던 차가 기차와 충돌하여 폭발 직전의 상황에서도 노출계는 들이밀어집니다.
로버트 카파의 말처럼 그들은 피사체 속으로 가까이, 더 가까이 들어갑니다. 그리고 이 시리즈가 뛰어난 이유 중 하나는 그들의 주장이 딱딱하거나 지나치게 심각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위트가 살아있습니다. 좋은 광고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즐거움을 느끼게 해줘야 한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는 듯합니다.

저는 요즘 초등학교 3학년인 큰 딸아이에게 “문제의 모든 해답은 바로 문제 속에 들어있다”는 말을 합니다. 그런데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크리에이티브를 하면서 저는 브랜드와 제품의 한참 밖에서 해답을 찾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리고 “너는 네가 맡고 있는 브랜드에 미쳐본 적이 있는가”라고 자문해보면 그저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우리도 한번 미쳐봅시다. 그리고 광고주에, 브랜드에 한발 더 가까이 다가가 봅시다. 그러다 보면 그들도 어느 순간 우리에게 크리에이티브의 문을 열어줄 것이니까요.


Posted by HS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