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 않은 길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던 게지요.
그 길을 걸으므로,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이지만.
그 날 아침 두 길에는
낙엽을 밟은 자취는 없었습니다.
아, 나는 다음 날을 위하여
한 길은 남겨 두었습니다.
길은 길에 연하여 끝없으므로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면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프로스트(Robert L. Frost)의 시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의 전문이다.
이 시를 읽을 때마다 한 길을 우직하게 걸은 모든 사람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어진다.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갈 수 있는 길이 참으로 많았을 터인데도, 오직 한 길만을 걸은 사람들의 인내와 깊이에 대해서 경의를 표하지 아니할 수 없다. 유혹도 많았을 것이고, 스스로 지칠 법도 한데, 10년을 하루같이 자기의 길을 걸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외경에 가까운 존경심을 갖게 한다.
특히 마지막 연에 있는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라는 구절에 가면, 다른 길에 대한 야릇한 호기심과 아쉬움이 있는 듯하면서도 결국 그 선택으로 인해 지금의 삶이 풍성하고 반듯한 듯해서 만족스럽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이런 의미에서 한 세기 이상을 오로지 한 우물을 파온 사람이 있다면, 감히 전문가의 반열에 들어섰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다른 길을 갈 수 있었지만 꿋꿋하게 지금의 길이 자신의 길이고, 그 길은 자신만이 갈 수 있다는 확신과 신념. 그리고 거기에서 오는 자신감이 자신의 인생 전부를 걸게 하였고, 그것도 모자라 대를 잇게 하는 과정 속에서 세상은 그들에게 감탄하고, 결국 ‘장인’이라는 최고의 존칭을 헌정하는 것이다.
역사를 두고 보면 어쩌면 이런 사람들과 가문에 의해서 문명이 발전하고, 인류에 영원히 빛날 유산들이 만들어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소위 ‘명품’의 반열에 오른 수많은 브랜드들의(물론 어느 날 눈을 떠보니 유명해져 있는 벼락출세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이런 인고의 세월과 노력의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한 외길을 한 세기 동안 변함없이 걷고 있는 브랜드가 이탈리아의 또 하나의 명품 구두, TOD’S다.
3대가 이어가는 장인정신이 명품으로
TOD’S는 1917년 디에고 델라 발레(Diego Della Valle, 현 CEO)의 할아버지인 필리포 델라 발레(Filippo Della Valle)가 작은 구두점을 열면서 그 역사가 시작되었다. 그 당시 이탈리아에서는 흔한 일이었겠지만, 솜씨 있는 제화기술자들은 대단한 긍지와 자부심으로 구두가게를 열었고, 각자 그들만의 기술을 뽐내면서 자웅을 겨뤘다.
이런 흐름 속에서 신발 제조를 천직으로 여긴 몇몇의 제화기술자들은 꾸준히 기술과 경험을 경쟁하고 전수하는 가운데 오늘날까지 이르고 있다. 물론 이런 경쟁 구도 속에서 세속적으로 성공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경쟁의 참혹함과 유행이라는 바람에 쓰러져 가는 사람들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 성공의 반열에 오른 브랜드 중 하나가 오늘날의 TOD’S이다. 가내수공업으로 시작한 TOD’S는 필리포의 아들 도리노(Dorino)에 이르러 발전의 계기를 마련한다. 그는 아버지에게서 배운 기술을 토대로, 가죽의 중요성까지 깨달아 TOD’S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 인물이다. 그가 어렸을 때부터 가지고 논 장난감의 전부는 아버지가 신발을 만들고 남은 가죽조각이었고, 구두의 틀을 만들어 내는 모형이었다. 또래 아이들이 가지고 놀던 장난감과 도리노의 장난감은 전혀 달랐던 것이다. 그런 그에게 아버지가 무언으로 들려준 이야기는 아마도 ‘제품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원단이 좋아야 한다’는, 가장 기본에 가까운 구두에 대한 철학이었을 것이다. 그의 이런 ‘원단과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는 제품 철학은 훗날 TOD’S의 큰 발전의 초석이 되었음은 두말 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TOD’S의 비약적인 발전의 진정한 시작은 창업자의 손자인 디에고가 사장에 취임하면서부터였으니, 3대에 걸친 장인정신의 열매가 비로소 맺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경쟁사들이 다들 자동화 시스템을 도입해 대량 생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을 때, 그는 선대로부터 익힌 그대로 섬세한 수 기술과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고품질의 원단을 사용하며 제품을 차별화해 나갔다. 그 결과 TOD’S는 현재 이탈리아는 물론 런던·파리·뮌헨·베를린·제네바·아테네·취리히·이스탄불 등 유럽 각 지역에서 인기를 얻고 있고, 미국에서는 뉴욕의 메디슨 애비뉴와 비버리힐스·샌프란시스코·시카고·라스베가스 등의 트렌드 세터들에게 절대 신임을 얻고 있다.
좋은 가죽은 구두의 영혼
최고급 가죽 원단으로 만들어진 TOD’S는 세련되고 심플한 디자인 컨셉트와, 미끄럼 방지 고무로 덧댄 밑창으로 패션성과 실용성을 갖춘 명품으로 각광받고 있다. TOD’S는 자사 브랜드의 특징을 살리기 위해 사내 조직 중 가장 중요한 부서로 ‘가죽 원단 구매 및 관리부서’를 꼽고 있다.
치열한 경쟁상황에서 경쟁사를 누르려면 마케팅이나 디자인 부문을 강화할 것 같지만, TOD’S의 생각은 좀 남다르다. 가공하고 꾸미고 소비자를 유혹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구두를 만들기 전에 원자재에 대한 철저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정신으로 인해 가공하지 않은 가죽을 고르는 일에 있어서의 까다로움은 이미 패션계의 전설이 될 정도로 정평이 나있다.
가죽의 원단을 고르고 나면 수많은 단계를 밟아야 하는 염색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이 과정은 철저히 베일에 가려진 채 그들만의 노하우로 전수되고 있다. 최상의 원단과 염색과정은 백만 분의 일의 오차를 잡아내는 현대과학 시스템보다 더 정확하게 가려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전문가들의 검사를 통과해야 비로소 TOD’S의 구두가 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TOD’S의 멤버들은 서슴지 않고 ‘좋은 가죽은 구두의 영혼’이라고 말할 정도다. 엄선된 가죽을 가지고 신발의 모양을 손으로 직접 자르고 각 부분을 바늘로 꿰매는 것부터 시작해 약 100여 번의 손길이 가고 나서야 한 켤레의 신발이 완성된다. 또한 이 과정의 모든 작업은 TOD’S가 정한 특별한 자격을 갖춘 장인들만이 할 수 있는 특전이며 영광인 것이다.
유럽 왕가의 신발, Gommino
클래식한 이탈리아 스타일로 어떤 상황에서도 신을 수 있는 ‘고미노(Gommino)’로 알려진 신발은 지금까지도 매니아층이 두터울 정도로 히트 품목이다. 이 신발은 1950년대 차 안에서 신는 유형에서 디자인된것인데, 시크하면서도 캐주얼한 모양으로 많은 인기를 얻었다. 특히 유럽의 왕실에서는 마치 왕가의 공식 신발처럼, 이를 하나쯤 가지고 있지 않은 왕가가 없을 정도였다. 이런 인기에 편승해서 고미노는 왕족이나 재벌가, 톱클래스의 영화배우 및 모델들이 즐겨 신는 신발로 인기를 얻었다.
또한 발레리나 신발에서 영감을 얻은 ‘사브리나 신발’은 발뒤꿈치에 있는 페블로 새로운 룩을 선보여 TOD’S의 독특함을 과시하기도 했으며, 2004년에 선보인 샌들은 가죽 끈 힐부터 플랫 통까지 독특한 메탈 스타일로 구성되어 있어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이렇게 구두로 승부를 걸어왔던 TOD’S가 1997년부터는 가방 컬렉션을 선보여 또 한번 변신을 시도했다. 특히 런칭 시에 선보인 ‘D Bag’은 스타일리시한 여성들의 패션 아이콘으로 떠오르기도 했는데, 이는 TOD’S의 변신이 소비자들에게 놀라울 정도로 적중했다는 평가를 받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손으로 하나하나 직접 가죽을 커팅하고, 마지막 로고의 스티치까지 전과정이 수공으로 완성되어 클래식과 모던함이 완벽하게 조화된 이 가방은, 비즈니스는 물론 어떤 장소, 어떤 상황에도 완벽하게 조화를 이뤄 경쟁사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또한 TOD’S의 야심작으로 출시한 ‘캔디 백’은 양쪽이 조여지는 장식용 끈이 있는 캔디 모양의 디자인으로 송아지 가죽의 부드러움이 특징이다. 이 백은 모양의 특이함과 부드러운 감촉으로 뭇 여성들의 관심을 끌고 있어 또 하나의 히트작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제품 중심의 크리에이티브
TOD’S의 광고를 보았을 때 처음부터 잘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여타의 광고들이 남과 다르게 말하기 위해서 충격거리를 찾고, 뭔가 다른 비주얼로 소비자의 눈길을 잡으려고 하는데 비해 TOD’S는 너무 평이하다 할 정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리즈 광고들을 지속적으로 보면 뭔가 TOD’S만의 특성을 발견하게 되고, 그 요란하지 않은 차별화 포인트가 다른 광고나 브랜드와 비교되어 기억되며, 또한 판매에 연결되는 광고가 되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TOD’S는 이런 치밀한 계산 속에, 뭔가 강하고 반전이 있으며 비주얼의 충격이 큰 것보다는 제품에 눈이 가고 마음이 다가가게 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TOD’S의 광고에서 제품이 주인공이 되지 않은 광고가 거의 없다. 그렇다고 딱딱하고 일방적인 광고주의 주장과 에고(Ego)만이 있는 일방향 커뮤니케이션은 더욱 아니다. 제품이 중심이 되지만 소비자의 마음을 붙들고 있고, 드라이할 것 같지만 숨어 있는 드라마가 있을 듯하며, 무엇보다 구두나 백의 실제 주인공이 연상된다는 것이다.
<광고 1, 2, 3>은 멀티페이지로 집행된 광고인데, 구두·백과 연관성이 있는 컬러를 가지고 있는 소품을 이용해 시선을 잡고 있다. 구두·핸드백과 같은 컬러의 미니카가 어우러져 있고, 같은 계열의 컬러로 구성된 볼링 핀과 볼이 제품을 기억시키는 장치로 활용되고 있다.
<광고 2>에서는 모델의 얼굴은 과감하게 트리밍해서,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제품에 관심을 기울이게 하고 있으며, 제품과 매치되는 장난감이나 소품을 이용해 광고의 의도를 잘 전달하고 있다.
<광고 3>은 키덜트(Kidult) 느낌으로 집행되고 있는데, 광고를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이 분산되지 않고 제품을 강조하거나 돋보이게 하는 장치로 활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광고 4, 5, 6>은 제품을 더 극대화시켜 보여주고 있는 시리즈인데, 이 신발을 신고 있는 유저들의 직업군을 암시하는 비주얼과, 손으로 정성을 다해 만들고 있다는 것을 시위하듯 보여주고 있다. 같은 명품이라고 해도 기계로 대량으로 만드는 경쟁제품과 우리 제품과는 다르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이런 광고를 보면 브랜드 결정을 하는 데 있어서 확신시키는 효과가 있을 것이며, 또한 ‘마이 브랜드화’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리라는 믿음이 선다.
특히 <광고 6>을 보면 왜 이 제품이 고가인지, 왜 꼭 한번쯤 신어보고 싶은 신발인지 느낄 수 있도록 하여 소비자를 솔깃하게 하고 있다.
<광고 7~12>는 주로 도심을 배경으로 활동하는 커리어 우먼을 타깃으로 한 시리즈인데, 제품이 주인공이라는 철학은 그대로 준수하고 있다. 제품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의 패션이나 주위 배경을 보면 직업을 알 수 있는 것을 이용해, 이 시리즈 광고는 철저하게 타깃지향적인 어프로치를 하고 있다.
또한 명품의 타깃 에이지가 낮아지면서 TOD’S도 톤 앤 매너에 있어서 고급스러우나 젊은 감각을 유지하고 있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제품의 품질로서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현대 마케팅에서는, 누가 소비자가 원하는 이미지를 만들어 포지셔닝하느냐가 관건인데, 이런 측면에서 소비자 인사이트(Insight)가 중요하게 여겨지며 그만큼 많이 다뤄지고 있다.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 인사이트를 찾아 결과적으로 떼려야 뗄 수 없는 정서적 결속(Emotional Bonding)을 만들어줄 때 브랜드 로열티가 만들어지는 것이고, 이런 과정으로 만들어진 소비자들은 브랜드의 반복구매를 하는 열성 팬이 되는 것이다.
<광고13~19>는 앞 시리즈와는 분위기를 바꿔 야외에서 만나는 TOD’S를 표현하고 있다. 앞 시리즈 광고가 도심을 배경으로 비즈니스와 도시적인 세련미에 가까운 것이라고 한다면, 이 시리즈에서는 인생을 즐기며 관조하는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에 어울리는 이미지로 포지셔닝하고 있는 듯하다.
자연과 어울리지만 단순한 레저 개념은 아니고, 치열한 삶 속에 잠깐 즐기는 여유로움이 배어 있다. 마치 열심히 일하는 과정에 있어서 큰 프로젝트를 성공시킨 연후에 만끽하는 승자의 갈채와 여유 속에 있는 듯하며, 아니면 일반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는 경제적인 부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의 삶에 대한 찬미 속에 TOD’S가 있는 듯하다. 이런 사람들에게 무슨 걱정이 있으며 무슨 아픔이 있겠는가? 이런 상류사회에 어울리는 브랜드가 바로 TOD’S라고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광고 20~24>는 최근에 집행되고 있는 시리즈 광고인데, ‘CHARMING ITALIAN STORIES’라는 슬로건으로 이탈리아의 자랑거리와 제품을 매치시켜 품격을 한층 더 끌어 올리고 있다.
이탈리아를 세계 속에 각인 시킬 수 있는 장소와 제품을 연결시켜 다른 여타 브랜드가 할 수 없는, 그들만이 가능한 광고를 진행하고 있다. 세계인의 가슴속에 있는 이탈리아의 예술성과 역사, 그리고 패션의 오리지널리티를 이 광고를 통해 자사 브랜드가 선점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이다.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명품 브랜드는 많겠지만, 이 캠페인으로 TOD’S를 사랑하는 소비자들에게 긍지와 자부심을 심어주고 있다고 하겠다.
TOD’S의 광고 캠페인을 분석해 보면 광고가 분명 남들과 달라야 하는 숙명을 안고 있지만, 그 달라야 함이 무엇이 되고 어떻게 달라야 하는지 많은 힌트를 주고 있다. TOD’S의 광고는, 광고를 제작하는 데 있어 단순히 소비자의 시선을 묶어 놓기 위한 ‘차별화를 위한 차별화’가 아닌, 제품이 중심이 되고 브랜드가 기억에 떠오르게 하는 전략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크리에이티브의 핵심이 제품과의 관련성(Relevance)이 우선 되어야 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제품이 주인공이면서도 소비자를 위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TOD’S만의 특별한 크리에이티브는 앞으로도 그들의 역사와 전통만큼이나 꾸준히 사랑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