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3월 24일 오후 7시 인천국제공항 출국장. 비장한 모습의 한 무리가 출국수속을 하고 있었다. 외환은행 모델 지진희 씨, 스태프 등 CF 촬영팀 13명! 이들은 외환은행 TV-CF 3차광고를 촬영하기 위해 이라크 아르빌(Arbil)에 위치한 자이툰부대로 떠나려 여기 모여 있는 것이다.
아르빌에 간다고?
2월 초부터 3차 CF를 준비하던 터에 광고담당 상무의 “고팀장! 아르빌 다녀오시죠”라는 얘기를 듣고 처음에는 눈앞이 깜깜했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건지…. 아르빌은 다른 나라 도시들처럼 자유롭게 왕래하는 곳도 아닌데 어떻게 그 많은 스태프와 장비를 이끌고 들어가야 하는지, 정말로 암담하기만 했다. 국방부의 사전승인 문제와 쿠웨이트에서 이라크 아르빌 자이툰부대까지 이동 시 경호 및 촬영에 따른 인원/장비 협조 문제, 외교통상부 담당 외무관의 설득 등 해결해야 할 난제가 한 둘이 아니었다. 하지만 문제는 뜻하지 않게 실타래 풀리듯 쉽게 풀려 나갔다.
死線을 넘어 촬영지로
자이툰부대에 도착해 시계를 보니 서울에서 꼬박 24시간이 걸렸다. 방콕을 거쳐 쿠웨이트로 들어가고, 그곳 미군부대에서 군용기를 타고 이라크 아르빌에 도착, 아르빌 공항에서 자이툰부대까지 육로 이동…. 시간은 24시간이었지만, 긴장을 해서 그런지 심리적으로 느끼는 시간은 훨씬 길었다. 80박스가 넘는 고가의 촬영장비들을 혹시 손상, 분실하지 않을까 갈아탈 때마다 일일이 체크했던 일, 태국공항에서 필름을 X-Ray 검색대에 통과시키지 않으려고 한 시간이상 논쟁을 벌이다 비행기를 놓칠 뻔한 일은 한참이 지난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필자에게 일반 여객기 여행은 자주 있었지만 이번처럼 군수송기 탑승 경험은 처음이었다. 그것도 전시상황인 이라크 상공을 비행한다는 것은 짜릿함과 함께 마음 한구석으로는 오싹한 전율을 느끼기까지 했다. 쿠웨이트에서 이라크로 촬영팀 13명을 태워다 준 C-130 수송기는 지대공 미사일 등 이라크 저항세력의 공격 사정권에서 벗어나며 비행해야 하기 때문에 이륙과 착륙 시에 전술비행을 실시했다. 고도 22,000피트에서 수직으로 떨어지는가 싶더니, 7~8회 지그재그 곡선을 그리며 고도 150m까지 급강하하는 것이다. 수송기 동체가 90도 회전을 거듭하면서 어느 순간 몸이 공중에 붕 뜨는 느낌을 받는가 하면, 중력이 과도하게 걸리면서 현기증과 프레스에 눌리는 듯한 고통이 온 몸을 짓누르기도 했으니 감독을 비롯한 몇몇 스태프는 구토를 하기까지 했다. 또 공항에서 장갑차의 호위를 받으며 자이툰부대로 들어가는 길에서는 ‘혹시나’ 하는 우려에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사선을 넘나드는 병사의 심경이었다고나 할까?
사막의 모래와 태양을 넘어
도착 첫날은 부대 내 CF촬영을 위한 장소 헌팅과 견학을 마친 후 스태프들과 자정이 넘는 줄도 모르고 진지한 회의를 가졌다. 이에 이번 CF제작을 진두지휘한 김영철 감독은 자이툰부대 측에서 상영해 준 부대의 활동상이 담긴 홍보영화를 보고 무언가 진한 감동을 느꼈다며 이번 외환은행 광고는 혼을 다해 만들어 보겠노라고 각오를 불태우기까지 했다. 회의를 마치고 잠시 밖에 나와 밤하늘을 바라보는데, 서울에서는 볼 수 없었던 너무나 많은 별들과 둥그런 보름달이 걸려 있는 모습에, 이렇게 아름다운 나라가 왜 전쟁터로 변해야만 했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 정도였다.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이 흐르고 노아의 방주,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생가가 있는 곳곳이 성지인 나라. 전세계 원유 생산량 2위인, 누가 보아도 부유해야 할 이 나라의 국민이 극빈에 시달린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오랜만에 컨테이너 박스 내무반에서 군용침대 침낭 속으로 피곤한 몸을 맡긴 지 채 몇 시간도 되지 않아 새벽 추위에 우리들은 잠자리에서 일어나야만 했다. 새벽 5시! 스태프들은 부산히 700킬로그램이 넘는 장비를 챙기고 첫 촬영현장인 외환은행 아르빌지점으로 향했다.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아르빌지점에 근무하는 지점장 등 2명의 직원도 함께 모델로 등장시켜 약 3시간에 걸친 촬영을 마치고 오랜만에 군 장병들과 늦은 아침식사를 했다. 하얀 쌀밥에 한국에서 주문 생산된 김치, 맛있는 반찬, 그리고 후식으로 열대과일과 우유. 예상했던 대로 식사의 질은 그런 대로 괜찮아 보였다.
자이툰부대의 적극적인 협조로 엄선된(?) 약 100여 명의 장병들과 장갑차 지프, 크레인 등을 동원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컷, NG. 아니라니까~ 좀 쉬었다 합시다, OK!…”를 계속…… 수없이 반복되는 촬영과 따가운 햇살에 군 장병들도 녹초가 되기 시작했다. 점심은 촬영현장에서 컵라면으로 때우고 군 차량 이동장면을 찍기 위해 우리는 또 다른 장소로 옮겼다.
필자는 그곳에서 평생 먹을 만큼의 먼지(모래)를 먹어야만 했다. 무전기로 구릉지 너머에 있는 장갑차 부대에 “이동!”이라는 신호를 보내면, 뿌연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오는 차량행렬에 바짝 붙어 필름을 돌려야만 했고, 모든 스태프들은 눈만 빠끔히 내놓은 채 모니터를 뚫어져라 지켜봐야만 했다. 그런데 한 순간, 장갑차에서 사주경계를 해야 할 병사 한 명이 촬영 카메라를 쳐다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뭐야! 다시 해!”라는 감독의 불호령에 차량행렬 장면을 무려 2시간이 넘도록 반복해 가며 촬영하는 동안 계속 먼지를 마셔야만 했다.
“김 병장! 이 하사! 왜 그래? 패잔병 같잖아. 좀 힘차게 걸어봐. 고국에 계신 어머님께 힘이 없어 보이는 아들 모습을 보여줄 거야? 다시 갑시다.” 첫날의 마지막 장면을 찍기 위해 석양을 뒤로한 채 걸어오는 부대원들의 행군 장면은, 지금 생각해보아도 내가 왜 큰소리치며 호통을 쳤는지…… 지면을 통해 그때 고생한 장병들에게 사과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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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지평선을 넘어가기 전에 촬영을 마칠 수 있도록 우리는 “하나 둘, 하나 둘” 구령을 붙여 가며 무려 20번이 넘는 시도 끝에 마음에 드는 장면 하나를 건지게 되었다. 그렇게 첫날 촬영을 마친 우리 모든 스태프는 뒤집어쓴 먼지에 까맣게 그을린 모습, 거기에 허기에까지 시달려 누가 보아도 상거지 모습이었다.
늦은 저녁을 먹고 이튿날 촬영할 CF의 하이라이트인 국기게양식 장면을 찍을 장소에 가 보았는데, 이게 웬일인가? 오전에 부탁해 놓은 국기게양대가 없는 것이었다. 우리들은 부랴부랴 공병대에 찾아가 사정사정한 끝에 결국 부대 외곽에 있는 타 부대의 국기게양대를 통째로 뽑아 콘크리트 타설 작업과 블록으로 게양대까지 멋지게 만들고 나서야 안심을 할 수 있었다. 그 다음날 촬영현장에 수송대 K상사께서 “고 팀장님, 국기게양대 꼭대기에 있는 국기봉 보이십니까? 어제 저녁에 제 침상 모서리에 있는 봉을 잘라 꽂아 놓은 겁니다. 끝나면 빼가도 되죠?” 하는 말을 듣고 스태프들은 얼마나 웃었는지……(K상사님 고맙습니다).
수도 없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찍고 또 찍어 1박 2일에 걸친 모든 촬영을 마쳤다.
100여 명의 무장한 장병들, 차량 등 각종 장비, 발전차, 크레인 등 영내 촬영기간 동안에 지원 받은 인적, 물적 자원은 금액으로 환산할 수 없을 정도로 귀중한 것이었다. 그리고 특히 이번 CF가 주목을 받는 것은 지진희 씨 외에 모든 모델들이 현역 군인이라는 점에서이다. 자이툰부대에는 잘 생기고 멋진 병사들이 왜 그렇게 많던지, 메인 모델을 선발하는 과정이 정말 쉽지 않았다. 특히 CF에 등장하는 몇몇 남녀 병사들은 전문 모델 뺨치는 용모에 일반인들에게서는 찾기 힘든 강인한 눈빛을 가진, 이번 CF에의 최적의 모델들이었다.
이 CF가 관심을 끄는 것은 단순히 소재가 독특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만이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느낄 수 있는 감동이 있기에, 내 아들, 내 친구, 내 형제의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는 광고이기에 더 더욱 그럴 것이다.
마지막으로 CF 촬영을 위해 협조해 주신 국방부 관계자들과, 특히 무사히 촬영을 할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해주신 자이툰부대 황의돈 사단장님 이하 장병들, 수많은 장병들의 사인 요청 공세와 함께 사진촬영에도 불평 한마디 없이 임해 주신 우리 외환은행 모델 지진희 씨, 그리고 헌신적으로 촬영에 임해준 모든 스태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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