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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르센의 동화집<그림 없는 그림책>의 주인공은 가난한 화가다. 고향을 떠나 대도시의 초라한 다락방에서 쓸쓸하게 살아가던 그가 어느 날 달을 보고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 그 뒤로 밤마다 달이 화가를 찾아와 자기가 본 일을 이야기해주고, 화가는 그 이야기를 적는다. “내가 본 것을 이야기해줄 테니 그걸 그림으로 그려봐. 그러면 아주 예쁜 그림책이 될 거야.” 달이 화가에게 한 이 말에서 책제목이 왜 <그림 없는 그림책>인지를 알 수 있다. 그림은 읽는 사람이 상상으로 그려야 하는 것이다. 코끼리를 본 적이 없었던 고대 중국인들이 뼈를 보고 코끼리의 전체 모습을 그린 데서 유래했다는 상상(想像). 상상은 사람을 동물과 구분되게 하는 결정적인 요인이다. 인류가 이룩해낸 문명의 대부분은 상상의 힘으로 태어났다. 사람에게 상상력이 없었다면 만화도 소설도 텔레비전도 영화도 컴퓨터도 사진기도 자동차도 비행기도 복제양 돌리도 줄기세포연구도 없었을 것이다. 상상은 예술가나 과학자 같은 몇몇 사람만의 것은 아니다. 땅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 모든 사람의 것이다. 입시지옥에 시달리는 학생에게도, 거리에서 붕어빵을 파는 아주머니에게도, 오후의 공원에 쭈그려 앉아 있는 할아버지에게도 상상은 있다. 상상의 폭은 그만큼 넓다. 벗어나고픈 현실을 바꿔보는 상상이 있는가 하면, 미래의 일을 현재로 앞당겨오는 상상도 있고 흘러 가버린 과거를 생생하게 살려내는 상상도 있다. 상상은 언어와 사고의 논리가 다한 곳에서 마주치는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비누거품처럼 허공에서 터져 버리는 허황된 생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매우 실제적이고 유용한 생각이 되는 것이다. 상상의 쓸모는 얼마든지 더 있다. 상상은 새로운 상상의 문을 열어준다. 한 사람의 작은 상상이 다른 상상을 불러일으키고, 다시 또 다른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상상력 증폭’의 성질을 갖고 있기도 하다.
캥거루는 코알라·오리거북이 등과 함께 오스트레일리아에서만 서식한다. 싸울 때에는 권투선수 같은 자세를 한다. 꼬리와 뒷발로 몸을 지탱하고 앞발로 상대를 공격한다. 탁월한 자세에서 내뻗는 캥거루의 주먹은 다른 동물에게도 사람에게도 매우 위협적이다. 그간 부에노스아이레스 동물원에서 힘세다고, 똑똑하다고 큰소리깨나 치고 살아왔을 고릴라와 사자. 한데 이들은, 그럴 수밖에 없었지만, 캥거루가 누구인지를 몰랐다. “뭐, 캥거루라고?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왔다고? 생전 듣도 보도 못한 놈일세”하며 캥거루의 머리라도 쓰다듬어주려는 순간 핵주먹을 한 방 맞았을 것이다. <그림 없는 그림책>처럼 이 광고는 캥거루 없이 캥거루의 도착을 알리고 있다. 보이는 무엇보다 보이지 않는 무엇이 더 큰 힘을 발휘할 때가 있다. 상상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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