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그램
크리에이티브를 시작한 이래 15년 동안 줄곧 저를 괴롭혀온 질문 하나가 있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좋은 광고인가?’하는 것입니다.
얼마 전 영화 한 편을 보았습니다. <21그램(21 GRAMS)>이라는, 조금 알쏭달쏭한 제목의 영화였는데, 라스트신에서 이런 내레이션이 흐릅니다.
‘우리는 몇 번이나 태어나는 것일까? 그리고 몇 번이나 죽는 것일까? 사람은 죽는 순간에 21그램을 잃는다고 한다. 예외는 없다. 누구나 다…, 21그램을… 21그램은 얼마 만큼일까? 5센트짜리 동전 몇 개, 초콜릿 바 한 개, 벌새 한 마리의 무게…, 어쩌면 영혼의 무게……'’
영화를 다 보고 나서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머릿속이 하얘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숀 펜이나 나오미 왓츠의 소름 돋을 정도로 너무나 절망적인 눈빛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세 주인공들의 사랑과 증오, 용서와 복수라는 부조리한 운명을 교차편집으로 조각조각 내서 피할 수 없는 숙명으로 맞춰 가는 감독의 연출 능력 때문만도 아니었습니다. 제가 마음을 빼앗긴 것은 ‘21그램’, 영혼의 무게 21그램이라는 화두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크리에이티브에도 무게가 있다면 21그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왜냐하면 좋은 크리에이티브에는 영혼의 무게, 삶의 무게가 실려 있기 때문입니다. 흔히들 우리는 주변에서 아주 뛰어난 예술작품을 접할 때 ‘작가의 영혼이 실려 있다’라는 표현을 합니다. 그리고 카피라이터의 호흡을, 아트디렉터의 맥박을 느낄 수 있는 아주 탁월한 광고를 만났을 때 ‘예술이다’라는 탄사를 토해냅니다. 결국 크리에이터의 혼이 담겨있는 광고와 예술작품은 동격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좋은 광고란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을 ‘마케터의 냉철함과 건조함보다 크리에이터의 세상에 대한 통찰력과 브랜드에 대한 진한 애정이 전해지는 광고, 예술가가 영과 혼으로 만든 작품을 만날 때 경험하는 것처럼 기분 좋은 떨림이 느껴지는 광고’라고 감히 결론지어 봤습니다. 그런데 다시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주변에서 ‘단 한 편의 광고’가 그러한 경우를 지금까지 별로 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정답은 ‘캠페인’이었습니다. 26년 동안 육필로 완성한 박경리 님의 <토지>처럼, 34년 만에 만들어진 에밀레종처럼, 좋은 광고는 ‘시간’이라는 파트너가 오랫동안 함께 할 때만이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덴츠(電通)에서는 CD의 인사고과를 3등급(B, A, S)으로 나누어서 하는데, B는 기존 광고주를 잘 핸들링하는 CD, A는 신규 광고주를 영입한 CD, 그리고 S는 성공 캠페인을 만들어내고 잘 유지해나가는 CD라고 합니다. 그럴 정도로, 캠페인을 만들어간다는 것이 까다롭다는 뜻이죠.
# 캠페인
우리가 어렸을 적에 가장 많이 듣던 질문은 아마도 ‘넌 이 다음에 커서 뭐가 되고 싶니?’였을 것입니다. 대부분 머뭇머뭇하다가 나오는 막연한 해답은 대통령·의사·과학자 등등이었습니다. 똑같은 질문에 요즘 아이들은 프로게이머·가수·백댄서 등 좀더 다양하게 답을 합니다. 그런데 세대를 뛰어넘어 예나 지금이나 공통적인 답변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어른이 되고 싶다’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의 눈에 어른은 -현실은 절대 그렇지 않지만- 무소불위의 존재로 보입니다. 따라서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아이들에게는 고통이 아니라 희망이요, 즐거움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의 광고가, 하나의 브랜드가 시장 속에서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세월이 흐르면서 명멸하지 않고 더욱 찬란하게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이가 많다고 모든 사람을 어른 대접하지 않듯이 광고도, 브랜드도 단순히 오랜 세월 살아남았다고 대접받지는 않습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크리에이터의 영혼이 실려 있어야 합니다. 치기 어린 유치함이 아니라 진정 어른스러움이 느껴져야 합니다. 그리고 일관성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러한 광고를 ‘Long Life Campaign’이라고 부릅니다.
캠페인 광고는 병렬식 시리즈 광고와는 다릅니다. 캠페인 광고는 커다란 하나의 축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얼굴과 옷을 바꿔갑니다. 하지만 소재는 바뀌더라도 일관성 있게 지속적으로 변치 않는 하나의 메시지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캠페인 광고인 유한킴벌리의 ‘우리 강산 푸르게 푸르게’, 제일제당 다시다의 ‘고향의 맛’ 등입니다.
근래 몇 년, 우리나라보다 캠페인 광고가 더 강한 일본에서도 같은 스태프로 하나의 컨셉트에 의한 광고표현을 장기간에 걸쳐 만들어내는 일이 어려워졌습니다. 사회환경의 변화와 경쟁상품과의 관계, 그리고 매출 하락 등 다양한 변수들이 이유가 되어 ‘바꿀 수밖에 없는’ 현실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와중에서도 5년, 10년 동안 아주 오래 지속되는 캠페인도 적지 않습니다. 대표적인 것 중 하나는 ‘에비스(Yebis)’맥주 캠페인입니다.
어깨의 힘을 빼고, 아주 조금만 리치하게
에비스맥주의 나카무라 다카노리(카피라이터)
에비스맥주는 무려 115년 전인 1890년부터 존재했던 상품이기에 우리도, 광고주도 광고에서 한번 반짝하면 되는 상품이 아니라는 생각을 강하게 갖고 있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기업의‘품질 상징’에 가까운 상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는 진정 맥주를 아는 사람들을 만족시켜주는 맥주로서, 광고에서도 헤비 유저에게 소구해왔습니다만, ‘이 상품에는 뭔가 좀더 넓은 고객을 획득할 수 있는 잠재성이 있는 건 아닌가’ 하는 과제가 광고주인 삿포로맥주로부터 제시되어, 94년에 새로운 캠페인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캠페인을 처음 시작할 때 광고주는 ‘거부감, 어깨의 힘을 빼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이 캠페인의 방향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되었는데, 현재 포지셔닝 워드로 사용하고 있는 ‘에비스, 아주 조금 리치한 맥주입니다’, 또는 ‘에비스맥주 있습니다’라는 캐치프레이즈가 나왔습니다. 에비스에게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바로 ‘아주 조금’입니다. 지금까지 프리미엄 맥주는 ‘아주, 굉장히 리치한’등 고급스럽고 오리지널한 표현을 사용했습니다만, 그것을 ‘손에 닿을 수 있는 리치’로 조금 낮게 포지셔닝한 것입니다.
그리고 캠페인 처음부터 의식해온 것은 이미지 축적입니다. 다양한 연상을 하나의 세계관 안에 축적해 가는 것입니다만, 그것은 형용사가 아니라, 명사로 이미지를 관리해 왔습니다. 예를 들어 ‘아름답다’, ‘즐겁다’가 아니라 ‘화(和; 일본 음식)’, ‘순(旬; 가장 맛있게 먹는 순간)’등에서 표현을 꾸며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이 캠페인은 광고 이외의 점두(店頭)·유통을 포함한 ‘일의 설계=크리에이티브’라는 의식이 강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광고와 현장의 링크가 강해집니다. ‘에비스맥주 있습니다’ 포스터로 가게에서의 인지를 강화하거나, 세일즈 프로모션 선물을 TVC에 넣어 유통 주변에서의 지원을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언뜻 보면 표현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것 같아 보일 때도 있었지만, TVC나 잡지의 지면 이외에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작업에 이노베이션을 시도했습니다.
사실 지금까지 광고주인 삿포로맥주 쪽에 “이런 표현으로 계속합시다”라고 말한 적은 없습니다. “세계관을 유지하면서 전술을 바꿉시다, 구체적으로 여기를 바꿉시다”라는 식으로 포인트를 집어서 제안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벌써 10년 간 계속된 캠페인이지만, 내 자신 속에서는 ‘에비스는 바뀌지 않는다’가 아니라 ‘계속 유지하고 있다’고 강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깨의 힘을 뺀다는 것, 그것은 욕심을 버린다는 뜻입니다. 법정 스님도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는 것은 무소유의 역리(逆理)”라고 말했습니다. 좋은 캠페인을 위해서는, 다 버리고 하나만 취해야 합니다. 많이 버리면 버릴수록 많이 얻는다고 했습니다. 에비스맥주는 ‘에비스맥주 있습니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TVC·지면 등 모든 매체, 하물며 선술집 입구 현수막·우산·안주접시에까지 도배를 했습니다. 한일 월드컵 당시 광고는 물론, 여의나루역 기둥·벽·바닥 등 허공을 제외한 거의 모든 공간에 일관성 있게 광고물을 설치했던 나이키도 같은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캠페인은 철저하게 하나의 컨셉트 하에 모든 커뮤니케이션 활동과 미디어 전략이 진행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4대 매체 광고와 프로모션 이벤트 등 모든 TTL (Through The Line) 활동이 소비자에게 하나의 메시지, 하나의 이미지로 다가갈 때 그 브랜드 파워는 엄청난 폭발력을 가진다는 것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됩니다.
광고주는 캠페인 광고의 힘과 효과에 대해서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흔히 광고 담당 중역이 바뀌고, 프로덕트 매니저가 바뀌면 당연히 광고도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뭔가 새로운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관념과 욕심 때문이지요. 그러한 오류는 광고회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브랜드 경영>의 저자 데이비드 아커(David A. Aaker)는 “강력한 브랜드 구축이 어려운 8가지 이유 중 다섯 번째가 브랜드 전략을 바꾸려는 유혹인데, 이것은 자신의 발에 총을 쏘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경고했습니다.
캠페인은 큰 목소리로 한바탕 난리법석을 피우는 이벤트성 광고와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유능제강(柔能制剛)’, 부드러운 것이 능히 단단한 것을 이긴다고 했습니다. 작지만 부드러운 목소리로 제품의 가장 근본적인 속성을 소비자의 인사이트에 서서히 각인시켜야 합니다. 나그네의 옷을 벗긴 따뜻한 햇살처럼 부드럽게 타깃의 마음을 어루만져야 합니다.
‘야마자키가 아니면 안 되는 것’을 만들어라
산토리 야마자키의 니시무라 요시나리(카피라이터)
야마자키 위스키가 출시된 것은 1984년입니다. 처음에는 잡지광고만으로 ‘위스키가 은은하다’, ‘몸 속, 열쇠가 풀리는 소리가 들린다’등의 카피로 상품광고를 조금씩 했습니다. 당시, 퓨어 몰트(Pure Malt)라는 상품이 아직 드물었기 때문입니다. 야마자키가 1만 엔이었으니까 선물용이 거의 다였던 시대였습니다. 정말 소중하고 소중하게 간직하며 마시는 위스키였습니다. 그러던 것이 1989년 주세 개정으로 7,500엔이 되었습니다.
캠페인을 시작한 것은 바로 이때부터입니다. ‘아무 것도 더하지 않는다, 아무 것도 빼지 않는다’라는 캐치프레이즈는 사실 TV-CM 내레이션의 일부였습니다. 지금까지도 어떤 생각으로 이 카피를 쓰게 되었는지 많은 분들이 묻지만, 별로 특별히 생각한 것은 없습니다. 단지 그 퓨어 몰트라는 개념이 당시 일반인에게 팍 와 닿지 않는 것이었기 때문에, ‘바로 여기에 대한 답을 해주자, 제품 한 가운데로 직구를 던져야겠다’라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 바로 이 카피였습니다. 이것이 다양한 의미로 퍼져 나가는 것은 말을 가능한 단순하게 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비주얼은 단순히 제품사진이 아닙니다. 공간의 미를 넘어 이 제품이 갖고 있는 세계·깊이·시간 등이 아주 멋지게 보이고 있습니다.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매번 제품 어깨 부분에 창을 통해 들어오는 자연광이 보입니다. 아직 밤은 아닙니다. 지금부터 행복한 시간이 천천히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매년 캐치프레이즈를 바꾸려 했습니다. 사실 다음 캐치프레이즈도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산토리 제작부장이 “내년에도 이대로 갑시다”라고 말했습니다. 정말 이 정도로 오랜 기간 사용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 캐치프레이즈는 결국 세상에 나올 수 없었습니다. 벌써 10년 넘게 계속된 이유는, 이 말에 상품이 갖는 정신을 직접적으로 말해주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에는 올드나 리저브가 주류 브랜드였고, 야마자키 정도는 세상에 거의 인식되지 않은 새로운 브랜드였기에 그것을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쉽게 캐치프레이즈를 바꾸지 않고 그 나름대로의 뭔가가 필요했던 게 아닐까요? 쓸데없는 짓을 더하거나 빼지 않고 계속 끌어안고 가는 행위가….
저는 개인적으로 비교적 오래 지속되는 일들이 많습니다만, 오래 지속시켜 나가기 위해서는 역시 무엇을 전달할 것인가, 커뮤니케이션의 핵이 명쾌하게 나와야 됩니다. 이게 늘어지면 꽤 생각해서 만들었다는 이미지도 어느 순간 어색하게 되어 중도에서 모든 게 ‘답지 않은’ 것이 됩니다. 말로 완벽하게 표현할 수는 없지만, 다른 위스키와는 분명하게 다른 ‘야마자키가 아니면 안 되는 것’, 이것이 표현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 건축사 친구를 만났습니다. 지난 6개월 동안 5층짜리 아담한 빌라를 하나 시공했는데, 63빌딩을 지은 것보다 더 힘들었지만 그만큼 더 뿌듯하다고 했습니다. 유난히도 더웠던지난 여름, 그 친구는 현장을 단 한 번도 비운 적이 없었고, 인부들과 똑같이 직접 정과 망치를 들고 작업을 했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생각 없이 지은 집, 애정 없이 지은 집은 짓고 나면 사람들이 찾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과연 그 빌라는 인근 주택가에서도 단연 돋보였고, 요즘 시들한 건축경기와 상관없이 벌써 분양이 완료되었다고 했습니다.
‘애정’, 제품에 대한 애정이 없으면 크리에이티브도, 캠페인도 없습니다. 야마자키의 광고를 보고 있노라면 크리에이터의 애정과 섬세한 배려가 느껴집니다. 위스키의 본질인 프레스티지를 잃지 않으면서도 다정다감한 캐릭터가 엿보입니다. 헤드라인은 ‘아무 것도 더하지 않는다. 아무 것도 빼지 않는다’는 것 단 하나이지만, 각각의 시리즈는 많은 것을 더하고 뺀 이후에 절제된 하나의 이미지로 깔끔하게 보입니다.
니시무라 요시나리, 아마도 그는 백지 위에 수백, 수천 개의 헤드라인을 끼적거렸을 것입니다. 밤낮으로 야마자키를 홀짝거리면서…. 이처럼 좋은 캠페인에는 변치 않는 키워드가 있습니다. 애정을 갖고 접근하면 제품은 우리에게 속마음을 열고 하나의 키워드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키워드는 일관성 있게 지속적으로 세월의 벽을 뛰어 넘습니다. 최근 하이트맥주가 다시 ‘물’이라는 키워드를 광고에 반영한 것이나, OB맥주가 ‘친구’라는 개념을 다시 끄집어낸 것도 그러한 맥락일 것입니다.
빌 번벅(William Bill Bernbach)도 말했습니다. “당신이 담당한 제품과 함께 하라. 제품에 푹 빠져 들어가라. 제품과 하나가 될 때까지 몰두하라. 제품의 핵심 속으로 들어가라. 진실로, 그를 통해 소비자에게 말하고 싶은 단 하나의 목적, 단 하나의 주제를 찾고 결정(結晶)화시킬 때에만 당신은 진정으로 창의적이라 할 수 있다”라고.
좋은 캠페인, 거기에는 ‘애정’이 듬뿍 담겨 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끝이 보이지 않는 문제…, 人間
산토리 Moderation의 나가사와 다케오(CD)
이 캠페인은 86년에 시작했습니다. 그때 일본은 위스키에 대한 모든 게 주춤했던 시대였습니다. 또한 일본에는 당시 220만 명 정도의 알코올중독 환자가 있어 사회문제가 되던 때였기에 일본에서도 이런 광고를 해보자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처음에는 ‘과음은 안 된다’는, 매너에 가까운 표현이거나, ‘이러한 안주가 좋으니 꼭 같이 먹자’는 제안으로, 술이 주는 폐해를 시원하게 말할 수 없는 시기가 계속되었습니다. 어디까지 표현이 허용되는지 알 수 없었고, 자사의 상품을 자기 부정하는 것이었기에 영업 쪽에서는 반발도 심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메시지가 매우 어려웠는데, 한 번은 게재 직전에 내려야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여기서 필요한 것이 유머였습니다. 심각한 이야기는 심각함 그 자체로는 전달되지 않습니다. 커뮤니케이션의 새로운 무기로서 ‘사실을 유머로 각색해 가자’는 방침이 정해지고, 다시 프리젠테이션했습니다. 그리고 최초의 기획에서 일러스트로 가자고 결정했습니다. 일러스트라면 그림의 비약이 가능하고 사실적이 아니어도 괜찮았기 때문입니다.
계속 바뀌지 않는 것은 ‘술은 무엇보다도, 적량입니다’라는 자세와 저널리스틱한 시점을 갖고 유머가 있는 톤 & 매너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물건을 파는 광고’의 감각과는 다릅니다. 카피로 욕심을 적는 것이 아니라 인간 그 자체에 소구하는 메시지입니다. 그리고 광고카피 같은 정돈된 말이 아니라 가급적이면 거칠더라도 생생한 말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그들에게는 ‘더 망가져라, 메일에 적는 그런 문장으로 적으면 된다’고 말하지만, 왠지 모르게 그들은 점잖은 문체로 적어 옵니다. 역시 사람의 마음에 전달되지 않으면 안 되기에 폼 잡거나 어깨에 힘 줘서는 안 됩니다. 포인트는 잡되 덜렁덜렁한 표현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 캠페인 이후 외부의 알코올중독 관련단체로부터 응원도 받게 되어 ‘술 파는 회사가 대단하네’라는 식의 엄청나게 큰 반향도 가져왔습니다. 그것이 기업 이미지를 향상시키고 본격적인 캠페인으로서 정착하게 하는 데 힘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3개월에 한 번 정도 신문에 집행되었기에 묻혀버릴 뻔한 위기도 있었습니다. 그럴수록 똑같은 컨셉트로 몇 번이나 끈질기게 계속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이 광고가 계속되는 것도 ‘열심히 해도 끝이 보이지 않는 인간의 문제’를 상대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작진으로서는 매우 의욕이 생기는 광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 이상 기업이 이익추구만을 생각하는 존재인 시대는 끝났습니다. 소비자를 최우선시 한다면 술이 주는 좋지 않은 점을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됩니다. 산토리의 이런 생각이 있었기에 이 캠페인도 계속 유지되고 있다고 봅니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사회의 요구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할 수 있는 한 끝까지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능하다면 이 캠페인을 역사에서 가장 긴 캠페인으로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습니다.
몇 년 전, 하루에 말보로를 60개비씩 피우는 홍콩의 한 애연가가 담배회사인 필립모리스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손해배상 청구소송서에 자신이 말보로 광고를 보고 매력을 느껴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고 밝히면서, “이성적으로 담배가 건강에 해롭다는 것은 알지만 말보로 광고가 주는 멋있는 이미지를 보고 그 유혹을 이길 만큼 정신력이 강하지는 못했다”고 기술했습니다.
말보로의 카우보이 캠페인, 사람마다 다르기는 하겠지만 40년 넘게 계속되고 있는 이 캠페인을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광고 캠페인이라고 감히 말해도 이의를 제기하실 분은 별로 없으리라 생각됩니다. 담배의 해악을 떠나서 말보로 캠페인은 그 ‘일관성’과 ‘지속성’으로 광고 역사를 매번 새롭게 쓰고 있습니다. 최근 전세계적인 금연운동 때문에 말보로 광고에서 결국 말보로 맨이 사라지는 수모를 겪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사실을 아직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습니다. 캠페인이 필요하고,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이처럼 명쾌하게 보여주는 예가 또 있을까요?
‘대한민국광고대상’이 끝났습니다. 올해도 심사위원들은 캠페인 광고에 후한 점수를 주었습니다. 아마도 캠페인 광고를 만들고 유지하기가 얼마나 힘든지를 심사위원들도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캠페인은 광고주와 광고회사, 그리고 소비자가 함께 만들어 가는 대장정입니다. 그 대장정의 시작은 크리에이터의 제품에 대한 애정과 아주 조그만 노력으로부터 나온다는 것, 가슴속에 새겨두어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