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은 낙농가들에게 그 어느 해보다 힘든 한 해였다. 다양한 대체음료의 증가로 우유소비가 감소하고, 설상가상으로 수입분유까지 증가해 힘들게 생산한 국산 원유가 남아돌아 생산원가에도 못 미치는 금액으로 납품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이러한 어려운 현실에 처하다 보니 올해의 ‘우유마시기 캠페인’은 그 어느 해보다도 무거운 책임감에서 출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올해는 캠페인의 방향을 철저히 오늘날의 한국 낙농의 현실에서 출발하고자 했다. 즉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의 건강을 위해 사명감을 가지고 묵묵히 일하는 우리 낙농가들의 진솔한 마음을 따뜻하게 보여줌으로써, 우리 땅, 우리의 자연과 더불어 신선하게 만들어지는 국산 우유의 우수성을 있는 그대로 소비자들에게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어려운 현실로 인해 실의에 빠져있는 낙농인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고 싶었다.
무료 출연, 그 이상의 아름다움을 보다
한정된 예산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어내기 위해서는 적절한 모델의 선정이 최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만 했다. 특히 지난 99년 이후 꾸준히 유명 연예인들이 낙농가들을 위하는 마음 하나로 모델료 한푼 받지 않고 기꺼이 무료로 출연해온 것도 염두에 두어야 했다. 따라서 이러한 ‘우유마시기 캠페인’의 전통을 올해에도 살려가면서 소비자들의 관심을 이끌고, 무엇보다 우유소비가 늘어나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모델을 찾는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한 모델 선정을 위해 힘든 회의가 이어졌다. 한국 낙농의 위기를 타개하는 데 선봉이 될 최적의 광고모델은 과연 누구인가? 결론은 차인표였다. 연예인으로 모범적이며 화목한 가정을 꾸미고 있으며, 항상 바른 자세와 언행으로 대중에게도 ‘바른 생활 사나이’라는 애칭을 받고 있는 차인표. 그렇듯 모범적인 그의 이미지는 이번 캠페인에서 우리가 강조하고 싶었던 우유의 깨끗한 이미지, 그리고 어려운 여건 속에서 힘들게 일하는 낙농가들의 사명감을 잘 표현해 줄 수 있으리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 것이다. 특히 최근에 화제가 되었던 그의 아내 신애라에게 보낸 편지는 광고가 전하고자 하는 사랑의 메시지와도 잘 맞아떨어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가 돈 한 푼 받지 않는 광고에 선뜻 응해 줄지는 미지수였다. 특히 그는 요즘 모 방송국이 제작한 대하드라마의 주인공으로 출연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영화 출연을 위한 해외 로케이션 등 바쁜 일과에 눈코 뜰 새가 없는 상황이었다. 솔직히 최적의 모델로 결정은 했지만 조금은 무모한 판단일지도 몰랐던 것이다.
하지만 오늘의 한국 낙농의 현실과 낙농가들의 마음을 온전히 전달할 수만 있다면 그도 어쩌면 그 뜻에 동참해 줄지 모른다는 희망은 버리지 않았다.
그리고 여러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촬영이 비어 있는 짬을 이용해 그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야만 될지, 그를 만나러 가는 동안 내내 머릿속이 복잡하기만 했다. 하지만 꾸밈없이 취지와 상황을 진솔하게 전달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일 듯싶었다. 사실 그것 외에는 별다른 방법도 없었지만.
그와 자리를 마주했다. 언뜻 봐도 바쁜 스케줄에 힘겨워 하고 있는 피곤함이 얼굴 곳곳에서 묻어 나왔다. 두서없이 이번 캠페인의 취지와 낙농가들의 어려운 현실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무료 출연이라는 점을 얘기했다. 그렇게 이야기가 끝나고 한동안의 적막감….
사실 무모한 부탁 아닌가. 드라마·영화 촬영 등으로 도저히 시간을 낼 수 없는 톱스타에게 모델료 한 푼 없이 캠페인에 출연해 달라고 하는 건 거의 생떼에 가까웠다. 이윽고 침묵을 깬 그의 나지막한 목소리의 단 한마디, “좋습니다!”
그건 마치 드라마에서나 나올 수 있는 상황 같았다. 자리를 함께 했던 모든 사람들의 얼굴에 환한 미소, 그리고 “고맙습니다”라는 연이은 인사. 그는 “좋습니다”라는 말 외에는 아무런 조건도 달지 않았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한마디를 더했다. “좋은 일에 참여하게 돼서 저 역시 기쁩니다.” 다음 촬영으로 인해 자리를 떠야함에 대해 정중히 양해를 구하고 돌아서 걸어 나가는 그의 뒷모습은 드라마에서 연기했던 그 어떤 모습보다 멋졌다.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프로라고 말하고 있고, 또 수많은 사람들이 화려한 프로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진정한 프로는 결코 겉으로 포장되어지는 화려함에서 비롯되는 게 아니라 자신의 분야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하면서도 결코 자만하지 않으며 항상 주위를 돌아볼 줄 아는 사람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차인표야말로 이 시대의, 소위 프로라고 일컬어지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진정한 프로라고 감히 단언하고 싶다.
드디어 2004년 ‘우유마시기 공익캠페인’이 온에어되었다. 부디 이 캠페인이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해 우유소비가 촉진됨으로써 어려움에 빠져있는 낙농가들에게 조금이나마 희망을 주고, 국민건강도 증진시키는 데 기여하기를 기대해본다. 또 하나, 그 무엇보다 아름다운 마음으로 이 캠페인에 참여한 ‘진정한 프로’, 차인표의 그 아름다운 마음이 크게 빛났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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