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LG애드는 한국 소비자들의 소비행동·구매행동·매체 접촉실태·생활양식 등을 연구하여 소비자에 대한 포괄적인 자료를 얻기 위해 매년 CPR(Consumer Profile Research) 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30대 기혼여성(전업주부와 맞벌이 주부 모두 포함)의 가치관 변화를 살펴보기 위해 1995년부터 2003년까지의 CPR 데이터를 살펴보고, 최근 30대 기혼여성들의 주요 이슈인 ‘애인신드롬’을 이 데이터에 비추어서 해석해 보고자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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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30대 기혼여성들의 가치관 변화
먼저 CPR 데이터를 통해 30대 기혼여성들의 가치관이 어떻게 변해 왔는지를 살펴보면, 기본적으로 가치관의 중심이 가족에서 자기 자신, 그리고 사회라는 큰 흐름으로 옮겨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그림 1, 2>.
데이터를 보면 주부가 가정을 위해 맹목적으로 희생하고자 하는 비율이 점차로 낮아지고 있으며, 또한 직업을 갖고자 하는 욕구가 커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가정주부라 할지라도 자식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으며, 또한 사회 참여에 대한 욕구가 점차로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가정에 대한 중요성의 감소는 최근 들어 더욱 뚜렷이 나타나고 있는 우리 사회의 개인주의 현상이나 가족 중심적인 가치의 약화가 주된 원인인 것으로 파악된다. 또한 여성의 사회 참여의 증가는 시기적으로 1997년의 IMF 사태를 계기로 급증하는 경향을 뚜렷하게 보이고 있다. 기업의 잇단 파산과 구조조정으로 전통적인 가장 역할을 맡아오던 남편들이 실직함에 따라 상당수의 기혼여성들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사회생활을 하게 되면서 자의반타의반으로 가정을 벗어나 경제현장에 뛰어드는 경우가 늘어난 것이다. 기혼여성들의 전반적인 교육수준의 향상과 사교육비에 대한 부담, 그리고 가계에 추가 수익을 보태기 위한 경제적인 원인 등으로 맞벌이에 대한 욕구가 늘어난 것이 그 기반 요인이 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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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30대 주부들의 주요 이슈
LG애드는 30대 기혼여성들의 주요 관심사를 살펴보기 위해 자체적으로 구축된 인터넷 데이터베이스인 ‘타깃 확대경’과 ‘정보방’ 등을 통해 조사한 결과 ‘몸짱’, ‘애인’, ‘늦은 출산’, ‘다음 카페’, ‘권상우’라는 5가지 주요 이슈를 도출해 낼 수 있었다. 특히 이 중에서도 ‘애인’이라는 이슈는 도덕성의 논란에도 불구하고 다른 항목보다 이슈화의 정도가 강하고 전략적인 밀접성(Implication)도 크다고 판단, ‘애인(만들기)’ 현상을 30대 주부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핵심 이슈로 선정했다.
그러나 이 글은 흔히 얘기하는 사회적인 현상으로서의 불륜에 대한 심리적인 변화에 대한 이해 차원이 아니라 사회·경제·문화의 변화 속에서 여성들이 지니고 있는 가치관과 인식의 전환, 그리고 역할 변화와 지향점이라는 큰 틀 속에서 해석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는 점을 전제해둔다. |
3.1 ‘애인신드롬’
최근 들어 각종 드라마나 매스미디어의 사회면과 문화면에 ‘애인 하나 없는 아줌마 없다’는 말이 거리낌없이 떠돌 정도로 기혼여성들의, 소위 ‘가벼운 불륜’현상이 자주 회자되거나 보도되고 있다. 특히 몇 년 전 인터넷 동창회 사이트가 인기를 끌면서 동창회나 동문회 모임이 활발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옛 애인을 만나기 위한 하나의 장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예전 같으면 가정파탄이나 불륜이라는 이름으로 사회적인 비난을 면하기 힘든 기혼여성의 외도가 마치 별일 아닌 양 일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불륜을 다루고 있는 드라마를 통해서도 단편적으로 확인해 볼 수 있는데, 비록 드라마이기는 하지만 ‘애인’에 대한 의식이 수년 전과 지금 약간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1996년에 인기를 끌었던 <애인>이라는 드라마와 2004년 방영된 <천생연분>이라는 드라마를 비교해 보면, <애인>에서의 여경(황신혜 분)은 사랑에 수동적이며 주로 남자에게 사랑 받는 객체로 그려지고, 자신의 불륜을 오로지 순수한 사랑이라는 감정적인 면으로만 용서받으려 한다. 반면, <천생연분>에서 종희(황신혜 분)는 자신의 감정에 따라 주체적으로 행동하며, 남녀관계-특히 결혼 후의 불륜-에 있어서 남자와 대등하거나 오히려 남자를 압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말하자면 불륜에 대해 과거와는 달리 당당하고, 어찌 보면 떳떳한(?) 태도를 나타낸다는 것이다.
또한 얼마 전 방영된 드라마 <앞집 여자>를 보면 좀더 재미있는 상황을 발견하게 된다. 이 드라마의 두 여주인공 미연(유호정 분)과 애경(변정수 분)을 보면 미연의 경우 결혼 후 우연히 만난 옛 연인에게서 다시 사랑을 느끼게 되지만 자식과 남편 때문에 갈등하는 전형적인 주부의 모습을 보여준다. 반면, 애경의 경우 돈도 잘 벌고 애교도 많고 음식 솜씨까지 좋은 슈퍼우먼인데다, 바람을 피우면서도 주변 사람들에게 당당한 모습을 보여준다.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은 ‘바람을 잘 피우는 주부가 능력 있는 주부’로 묘사되고 있다는 점이다. 즉 과거와 달리 주부의 외도가 도덕적인 측면에서 비난받기보다는 일종의 ‘능력’으로 간주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 조사2) 에 따르면 실제로 남편 이외의 다른 남자를 만나본 경험이 있는 기혼여성의 비율이 20% 이하이며, 성관계까지 이어지는 비율은 10%를 조금 상회하는 수준인 점을 감안한다면 실제 ‘애인’과 인식상의 ‘애인신드롬’에는 차이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
3.2 ‘애인신드롬’의 의미
앞에서 드라마나 인식상의 ‘애인신드롬’과 실제의 ‘애인’현상에 차이가 나타나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즉 기혼여성들의 ‘애인’에 대한 인식은 크게 달라졌지만,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비율은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식과 현상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는 ‘애인신드롬’의 본질적인 의미를 좀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마케터의 입장에서 바라볼 때 ‘애인신드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실제로 얼마나 많은 기혼여성들이 ‘애인’을 사귀고 있느냐는 현상보다는, ‘애인’있는 유부녀를 바라보는 또래 집단의 태도가 바뀌고 있고, 이런 의식의 변화가 어떤 흐름으로 전개될 것인지 예측하는 데 있다고 하겠다. 말하자면 <앞집 여자>에서의 애경과 같이 결혼을 하고도 애인을 두고 있는 여자가 여러 모로 능력 있고, 심지어는 다른 여자들의 부러움의 대상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상황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왜 기혼여성들이 남편과 자식이 있는 ‘단란한 가정’에 만족하지 못하고 애인이 있는 다른 여성들을 부러워하는 것일까? 이에 대해서는 기혼 여성들이 애인 자체의 존재를 부러워하기보다는 남자들에게 아직도 사랑 받는 대상임을 남들로부터 ‘인정’받는 상태를 부러워하고 있다는 가설을 세울 수도 있을 것이다. 즉 실제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한다 하더라고 그럴 수 있는 상태에 있음을 부러워한다는 것인데, 여기서 핵심적인 키워드는 ‘인정’이라는 단어이다. |
4. ‘인정받음’과 ‘애인신드롬’
그럼 이제 기혼여성들에게 있어 ‘인정받음’의 의미가 무엇이고, 그것이 ‘애인신드롬’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밝혀봄으로써 ‘애인신드롬’에 대한 경제적 해석을 내려보고자 한다.
전통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기혼여성의 ‘인정받음’은 밖에 나서서 돈을 벌고 자기 개성을 추구하는 여성이 아니라, 주로 어머니나 아내와 같이 전업주부로서 가정 내 역할을 얼마나 충실히 수행하였느냐에 따라 결정되어 왔다. 흔히 고전적인 신사임당이나, ‘한국의 어머니상’으로 불리는 탤런트 김혜자와 같은 역할 모델이 이러한 가치관을 잘 설명해주는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즉 남편 뒷바라지에 힘쓰고 자식을 건강하게 길러내는 ‘현모양처’의 역할을 얼마나 잘 수행해 왔느냐가 그들이 사회에서 훌륭한 여성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준이 되어 왔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대로 시대와 환경변화에 따라 가정은 기혼여성에게 있어서 그 의미가 점점 희미해져 가고 있다. 즉 가족의 행복이라는 가치에 자신의 것을 포기하고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가족과 자기 자신을 분리하여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가족과 독립된 자신을 인정받고 싶어 하게 되는데, 이런 상황에서 여성이 가족이라는 굴레를 탈피해 독립된 자신을 찾는다면 가장 우선하게 되는 것은 좀더 아름다운 자신의 모습을 추구하는 것이다. 실제 <그림 3> 과 <그림 4>를 보면 과거에 비해 30대 기혼여성들이 자신의 미용과 몸매 관리에 점차 더욱 많은 신경을 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어머니나 아내로서의 사회적인 역할을 통해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여성으로서의 자신’을 인정받고자 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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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독립된 객체로서 사회적인 인정에 대한 욕구도 커지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그림 5>와 <그림 6>에서와 같이 직장에서의 성공이나 경제적 능력에 대한 가치가 더욱 커지는 추세를 통해 이러한 현상을 간접적으로 확인해 볼 수 있다. 말하자면 가정을 벗어나 사회적으로 성공한 자신을 모습을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이러한 현상과 분석을 통해 ‘애인신드롬’에 대한 해석을 내려보도록 하자.
30대 기혼여성들은 점차로 가정 내에서 인정받는 것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의 외모나 몸매에 대해서 인정받고 싶어하며, 또한 사회적으로 능력 있음을 인정받고 싶어 한다. 그러나 여성은 본질적으로 자신의 외모에 상당한 콤플렉스를 갖고 있다. 한 조사에 따르면 남성의 60%가 자신의 외모에 만족하는 반면, 여성의 20%가 자신의 외모에 만족하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아무리 가꾸어도 자신감이 부족한 상황에서, 특히 결혼 후에 ‘애인’이라는 존재는 자신이 남들에게 여전히 인정받고 있음을 보여주는 확실하고 명백한 입증자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애인신드롬’은 애인 자체가 있고 없음보다는 그럴 수 있는 능력이 있고 없음이 더욱 중요하며, 또한 자신이 아직 생물학적으로 여자일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여자임을 ‘인정’받고 싶어하는 30대 기혼여성들의 바람이 표출되는 형태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
5. 맺으며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현대의 주부들은 가족, 자기 자신, 그리고 사회라는 울타리를 옮겨가면서 좀더 넓은 범위에서 ‘인정’받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것은 현대사회의 개인주의적인 성향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특히 최근 몸에 대한 관심의 증가와도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있다. 이러한 가운데 ‘애인신드롬’을 사회적인 주류 트렌드라고 말하기에는 이른 감이 있지만, 가족과 분리되어 독립된 자아로서 사회에서 인정받고자 하는 주부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의미 있는 단초로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다소 거칠지만 표로 정리해 보면 <표>과 같다. 또한 30대 기혼여성들을 타깃으로 하는 마케팅 전략도 이를 근거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90년대에 ‘항상 애인 같은 아내’라는 카피로 인기를 끌었던 화장품 브랜드가 있었다 .
그러나 2000년대의 기혼 여성들에게는 (남편에게) 항상 애인 같은 아내가 되게 해준다는 메시지보다는 좀더 사회적으로 확장된 의미의 자아 정체성을 심어줄 수 있는 메시지가 좀더 유효한 전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가정에도 충실하지만, 사회적으로도 능력 있고 인정받는 기혼여성들의 모습을 전달해 준다면 더 많은 공감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