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05-06 : Special Edition - Consumer Insight 뉴 패러다임 - 2. 소비자 조사 연구의 새로운 가능성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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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ion2 - 소비자 조사 연구의 새로운 가능성
 
  욕구 파악으로는 부족, 소비자의 ‘가치’를 이해하라  
노 익 상 | 한국리서치 대표
isroh@hrc.co.kr
 
갈증은 사람의 욕구 중 가장 강렬한 것 중의 하나이다. 12시간 넘게 야산을 헤매며 물을 먹지 못하면 사람은 착각을 일으킨다. 자신의 소변을 먹으면 갈증이 없어질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이 정도면 어떤 물이라도 먹는다. 그러나 서울 도심 속에서 갈증을 느끼면 우리는 선택할 것이 많다. 이온음료·탄산음료·커피·맹물·한 잔의 맥주…. 사람들은, 소비자들은 그 중에 하나를 선택한다.
성취는 또 다른 욕구이다. 오늘 골프에서 싱글 스코어를 꼭 내고 말겠다는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도, 아무도 보지 않는 마라톤에서 완주하는 것도 성취이다. 남미의 외로운 암봉을 혼자 올라가겠다는 것도 그러한 성취 중의 하나이다. 이렇듯 우리는 자기 실현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싶은 공통점은 있으나, 그 성취욕을 달성시키는 수단은 각자 다르다. 그것은 선택이다.

충족되지 않은 욕구의 발견은 현대 마케팅에 도움되지 않아

욕구에 단계가 있다는 주장은 인류가 풍요롭지 못하던 초기 근대사회에서는 적용될 수도 있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1인당 국민소득이 만 불이 넘는 사회에서는 여러 단계의 욕구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다. 국제 심포지엄에 참석하고자 그 전 날 아무 것도 먹지 못한 채 여행을 하고, 허기를 느끼면서 호텔 뷔페에 나타났을 때 우리는 배고픔과 소속감, 그리고 자기 자존 등의 세 가지 욕구를 모두 느낀다. 그 자리에 참석한 사람이 모두 배가 고팠다고 하더라도 누구도 허겁지겁 음식판에서 음식을 먹지 않는다. 아무리 배라 고파도 우선 내가 어느 테이블에 끼어야 할 것인가를 먼저 생각한다. 혼자 먹는가, 어제 만난 저 사람들과, 혹은 오늘 사회를 볼 좀 영향력 있는 사람에게 다가갈 것인가를 생각한다. 그러면서 뷔페에서 내가 선택할 음식을 생각한다. 허기를 채우기 위한 음식은 곳곳에 즐비하다. 어떤 음식을 선택해야 나를 돋보일 수 있는가를 생각한다. 그 양도 중요하다.
이렇듯 현대사회에서 욕구는 단계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며, 그 욕구의 발생도 단계적이지 않다. 지금의 사회에서는 5단계 혹은 6단계의 욕구가 동시에 일어나며 그것을 충족시킬 수단 또한 거의 동시에 선택된다.
욕구와, 충족되지 않은 욕구에 관한 생각과 주장은 다분히 사람들을 일률적으로 보고자 하는 견해를 갖고 있다. 개인 차이, 혹은 퍼스낼리티에 관한 심리학적 도전이 있었으나, 여전히 자연과학적 사고를 도입한 인간 학문에서는 개인과 개인 간의 차이를 주목하기보다 인간을 하나의 공통된 생물체로 다루는 경향이 여전하다. 그리고 그들은 지각-인지-기억 등등의 생체적 프로세스에 관심이 더 많은 반면, 인간의 의지나 사람의 감성에 관한 관심은 비교적 적다.
마케팅의 소비자 세분화 역시 욕구에 따른 구분을 흔히 다룬다. 예를 들면, 치약의 여러 가지 이점 중 충치·풍치·하얀 이·구취 없음 등을 사람의 욕구로 보고, 그 욕구 중 어떤 욕구가 현재 채워지지 않았는가에 관심을 둔다.
그러나 100명이면 100명 전부 그러한 욕구를 모두 갖고 있다. 실제로 리서처가 충치·풍치 등등의 중요도를 설문하면 거의 모든 항목에 소비자는 “대단히 중요하다”고 응답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한 소비자는 특정 기능이 더 많은 치약을 선택한다. 왜 그럴까?

소비자의 가치가 서로 다름을 이해해야 구매 행동의 이유 알 수 있어

사람들의 행위는 욕구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따라서 욕구를 이해했다고 해서, 충족되지 않은 욕구를 발견하였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신제품 전략이 세워지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소비자의 욕구와 행위 사이에 하나의 과정이 더 있기 때문이다.
모든 소비자의 모든 구매 행위는 선택이다. 욕구가 구매행위로 이어지는 중간에 중요한 부분으로 작용하는 것이 선택이다. 예를 들어, 갈증을 느낀다고 해서 모두 맹물을 마시는 것이 아니다. 누구는 맹물을, 누구는 커피를 마신다. 또 자기 실현을 위해 사람들이 선택하는 수단은 다양하다. 공부·운동·담배 끊기·돈 벌기…… 사람들은 그 중의 하나를 선택한다.
그렇다면 선택의 이유는 무엇일까? 왜 사람들은 같은 욕구를 느끼면서 그 욕구를 해소하기 위한 수단은 서로 다르게 선택할까? 그들은 무엇이 달라서, 다른 선택을 하는 것인가? 여기에 욕구이론이 줄 해답은 거의 없다. 욕구론은 사람을 의지적 생물체로서가 아니라 수동적 물체로서 보기 때문이다.

욕구와 행위(선택) 사이에 사람들의 가치가 있다. 욕구는 같아도 사람들은 서로 다른 가치를 갖고 있다. 친구들이 보기에는 매력이 없는 이성을 누구는 잊지 못해서 애를 태운다. 경제 형편이 비슷한 데도 어떤 주부는 수입 가구를 고집하고 어떤 주부는 아예 소파가 무슨 소용이냐며 거들떠보지 않는다. 다 같이 아들을 훌륭하게 키우고 싶은데도 누구는 비싼 과외를 시키고 누구는 집에서 공부하도록 가르친다.
그 선택의 기준은 바로 그 사람이 갖고 있는 가치관이다. 그럼 가치관은 무엇인가? 욕구가 수동적인 것이라면 가치는 적극적인 것이요, 욕구가 일률적인 것이라면 가치는 선택적이다. 또한 욕구가 거의 태생적인 것이라면 가치는 후천적인 면이 많다. 가치는 ‘내가 살고 싶은 방식에서의 우선 순위이며, 그 우선 순위는 상당히 지속적이다(Hans, 1998)’<그림 1>.
가치는 욕구와 다르다. 오히려 ‘바람(Wants)’과 좀더 유사하며, 나아가 ‘바람’보다 신념에 더 가깝다. 가치는 신념과 의지로 굳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잡혀 온 포로를 고문할 때 시간을 주면 실토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잡히자마자, 두려움이 가장 고조됐을 때 고문을 하면 대부분의 포로가 쉽게 실토한다. 여기까지가 욕구이다. 그러나 시간을 주면 그 포로는 자기 신념을 불러일으킨다. ‘어떤 경우에도 나는 조국을 배반하지 않을 것이다’, ‘내 동료를 배반하지 않겠다’는 신념을 강화한다. 또 어떤 포로는 ‘빨리 실토하고 포로로서의 대우를 받아 살아나가야 한다’는 신념을 더 굳힐 것이다. 또 다른 포로는 ‘사는 것은 어차피 마찬가지이다. 실토하는 정도가 아니라, 적극 협조하여 이 곳에서 편안하게 대접받는 삶을 살겠다’는 그의 원래 가치관을 다시 확고하게 불러낼 것이다. 그것은 자기 의지의 산물이다. 욕구처럼 수동적이거나 일률적이거나 생물적이지 않다.
따라서 사람들을, 소비자를 그들이 갖고 있는 가치의 우선 순위에 따라 구분하면 그들이 왜 특정 상품을 선택하는가를 좀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가치에 관한 연구의 예

가치에 관한 연구는 고전적인 사회학에서부터 찾을 수 있다. 한스 제터버그(Hans Zetterberg, 1995)는 소로킨(Sorokin, 1937)의 생각을 보다 정교하게 정리하여 사람의 가치를 (1) From Being : To Becoming의 차원, (2) Fidelity : Instrumentality의 차원, (3) Humanism : Materialism의 차원 등 세 차원으로 보았다. 제1차원의 From Being은 보다 관습적인 것을 중시하는 To Becoming은 보다 변화적인 것을 중시하는 가치이다. 제2차원의 Fidelity는 성실·충성·가족 지향·법 준수·도덕성 등 관념적인 것을 중시하는 Instrumentality는 정의로움이나 정의롭지 않음, 도덕적인 것이나 비도덕적인 것을 그 사람의 목적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할 뿐 그 자체를 중시하지 않는 가치이다. 제3차원의 Humanism은 자기 발전, 같이 느낌, 다른 인간에 대한 연민, 사람의 내적 심성의 중시 쪽이고, Materialism은 질서·정확성·야망·효율성·경제적 성취를 보다 중시하는 가치이다<그림 2>.
그리고 실제 조사를 통해 소비자를 세 가지 차원의 각 수준이 만들어 내는 조합 9가지 유형 중(= 각 수준의 조합 8가지와, 어느 조합에도 속하지 않는 또 하나의 유형) 하나로 구분하고자 하였다. 예컨대 나 자신을 포함하여 주변의 사람들을 생각해 보면 김 아무개는 From Being, Fidelity, Materialism에 더 가깝고, 박 아무개는 To Becoming, Instrumental, Materialism에 더 가깝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김 아무개와 박 아무개의 가치를 이해하고 구매 행위를 보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김 아무개는 가급적 유명 브랜드를 가장 번화한 거리의 백화점에서 구입하고, 박 아무개는 똑같은 유명 브랜드를 선호하지만 백화점이 아닌 시장, 혹은 진짜인지 가짜인지 잘 구별하기 어려운 곳에서 구입할 것이다. 김 아무개는 수입 화장품을 선택하고, 박 아무개는 냄새 안 나고 발라서 번뜩거리지 않으면 수입 상표가 아니라도 선택할 것이다. 김 아무개와 박 아무개가 둘 다 똑같이 생존·안전·소속감·자기실현, 그리고 어느 정도의 부러움과 외로움이란 욕구, 혹은 욕구 불만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자신이 키워 온 스스로의 가치관에 따라 상품 선택과 구매 장소 선택이 다른 것이다.
가치에 관한 연구의 또 다른 예는 (노익상, 2002), (1) 보다 부귀영화 추구형, (2) 보다 자기실현 추구형, (3) 보다 사람 관계 추구형의 구분이다(이 세 가지 형에 속하지 않고 모든 가치를 다 중시하는, 혹은 모든 가치가 똑같이 중요한, 다시 말해 가치관이 정립되어 있지 않은 사람도 많다). 이렇게 사람들을 그들이 ‘보다 중시하는 가치’에 따라 분류해 행위의 이유를 이해하는 관점은 사람들의 행위가 욕구의 단계나 강도에 따라 이루어진다는 관점과 상이하다. 사람들이 외로움이라는 기본 감성으로 말미암아 사랑하고 사랑 받고 싶다는 욕구는 같지만, 부귀영화 추구형이 선택하는 배우자는 사회적으로 출세한 사람이고, 자기실현 가치를 중시하는 사람들이 선택하는 배우자는 나만을 좋아하는 사람이며, 사람 관계를 중시하는 사람들이 선택하는 배우자는 열정적인 사랑보다 친근감을 느끼는 사람이다.
또한 똑같은 욕구를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은 그 가치에 따라 선택하는 대상이 다르다. 상품 선택에서도 그러하다. 부귀영화 추구형은 유명 브랜드를, 자기실현 추구형은 보다 기능적인 면을, 사람관계 추구형은 판매원의 인상을 보고 상표를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가치관에 관한 자료를 마케팅에 사용하는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Yankelovich가 1970년대에 개발하여 미국과 유럽에서 사용하고 있는 RISC(Research in Sociocultural Change), 독일 GFK의 모든 소비자 조사에 사용되는 Euro-Socio-Styles의 8개 가치지향 집단 구분 등이 소비자를 그들의 가치관에 따라 구분하는 대표적인 예이다. 우리나라의 조사업계에서는 필자가 아는 한, 소비자를 그가 지향하는 가치관으로 구분하고 각 집단의 상표 선택과 가치관의 관계를 이해하고자 한 시도는 없었다(작은 프로젝트 단위로는 있었으나, RISC나 GFK의 Euro-Socio-Style처럼 대규모 가치관 연구는 없었음).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ESOMAR(European Society of Opinion and Market Research)에서 지난 3년간 ‘소비자 통찰(Consumer Insight)’이라는 대 주제 하에 발표된 50여 편의 논문에서도 가치관을 다룬 발표는 찾아 볼 수 없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발간되는 마케팅조사와 소비자 행동 관련 저서에서도 가치관에 관한 항목은 거의 없다. 즉 소비자를 가치지향에 따라 구분하고 그 가치와 상표 선택의 관계를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보다는 아직도 소비자의 욕구 파악이라는, 거의 상투적인 주제에 빠져서 제품 이점의 중요도, 상품 평가, 상표 이미지 등을 조사하고, '제품 이점 - 욕구'라는 측면에서 집락하며, 각 집락의 불만족스러운 점을 찾아 시장 기회를 탐색하고자 하는 경향, 소위 “Unmet Needs”를 파악하고자 하는 경향이 아직도 우세하다. 그러나 욕구는 사람에 따라 거의 차이가 없으며, 거의 모든 소비자가 거의 모든 욕구를 다 느끼고 있는 것이므로 욕구에 의한 소비자 구분만으로는 소비자의 상표 선택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다. 따라서 욕구 파악이라는 수준을 넘어 소비자의 가치관을 이해해야만 성공적인 마케팅이 이루어진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우리나라에서 소비자 가치관 연구는 아직 미개척 분야이다.
가치관은 개념적이거나 철학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람들의 일상생활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며, 또한 일상생활의 거의 모든 면에 영향을 끼친다. 가치관은 생물적 심리적 욕구와 다르다. 가치관은 신념에 보다 가까운 것이다. 가치관은 여러 가치 중에서 특정 가치에 우선 순위를 두는 태도이다. 가치관은 다분히 의지적이지만, 그 의지의 기본에는 감성(외로움·두려움·부러움)이 내재한다. 이런 점에서 가치관은 선택적이며, 욕구와 다른 것이다. 그러므로 충족되지 않은 욕구 발견의 수준을 넘어서 가치관에 관한 연구가 활성화되어야 소비자의 선택적 행위인 상품 구매의 이유를 이해할 수 있으며, 그로부터 성공적인 신제품 아이디어, 광고 개념과 표현, 유통 믹스, 가격 전략이 개발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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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Hans L. Zetterberg (1998), Cultural values in market and opinion research, in THE ESOMAR HANDBOOK OF MARKET AND OPINION RESARCH (1998)
Hans L. Zetterberg (1995), Valuescope: a three-dimensional value systems, in Hansend, F. (ed.), European Advances in Consumer Research, 2, Provo: Association for Consumer Research
Sorokin, P.A. (1937-41), Social and Cultural Dynamics, (4 vols). New York: American Book Company
노익상 (2002), 한국 도시 기혼남녀의 배우자 만족도 연구, 고려대학교


 

Posted by HS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