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03-04 : Special Edition - 우리 시대의 메가트렌드 - 3. 소비자와 소비자 심리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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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이라는 메가 트렌드의 원천, ‘뇌’를 주목한다  
 
3. 소비자와 소비자 심리
 
성영신 |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ysung@korea.ac.kr
 

‘페라리360 모데나·BMW Z8·메르세데스 SLR…. 잘 나가는 스포츠카의 이름들이다. 다임러 크라이슬러사에서 주관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들 스포츠카의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소비자의 뇌섬엽(Insula)은 강하게 자극받는다. 뇌섬엽이란, 예를 들면 배고픈 생쥐가 사료를 볼 때 활성화되는 뇌의 영역으로, 생리심리학에서 ‘보상중추(補償中樞)’라고 일컫는 곳이다. 일 없이 잡지를 뒤적거리다가도 스포츠카의 광고가 실린 페이지에는 눈길이 멈추고, 길거리를 바삐 걸어가다가도 스포츠카를 보게 되면 절로 눈길이 가는 이유가 바로 이 뇌섬엽에 있었다. 그런데 스포츠카를 보는 것만으로도 뇌섬엽이 활동하여 행복을 느끼게 되는 이유는 스포츠카가 약속하는 부와 명성에 대한 기대를 자동 반사적으로 갖게 되기 때문이다.’

<포브스> 2003년 10월
최근 미국과 유럽의 대기업에서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 : functional-MRI)이나 양전자단층촬영법(PET)으로 소비자 뇌 반응을 측정해 마케팅에 활용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연구 인력과 설비가 매우 적고 촬영 및 분석에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소비자의 대뇌 생리반응 조사에 세계 굴지의 대기업과 연구기관들이 아낌없이 투자하고 있는 것이다. 뇌에 대한 학문적·정책적 관심이 드높아지면서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인지신경심리학(Neuro-Cognitive psychology)이 급기야 소비자 심리조사에 접목되고 있는 것인데, 짧은 기간에 적은 돈으로 손쉽게 할 수 있는 설문조사를 밀어내고 이들 새로운 연구법이 각광받고 있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일련의 소비현상에 드러난 소비자 심리에서 그 답을 찾아보자.


욕망의 시대

‘어제는 독도 관련 반일 집회에 나갔다가도, 오늘은 마일드세븐을 입에 물고, 아무로 나미에(安室奈美惠)의 싱글을 산다. 주중에는 책상 앞에 앉아 일벌레처럼 일만 하더니, 주말에는 홍대 앞 클럽에서 효리처럼 춤을 춘다. 낮에는 침을 튀겨 가며 누드 동영상을 욕하더니, 밤에는 어디선가 은밀히 떠돌고 있는 누드 동영상을 찾기 위해 졸린 눈을 부빈다.’
이렇듯 오늘날 소비자들의 욕망은 분/초 단위로 변하고 있는 듯하다. 매우 현실주의적이고, 즉흥적이며 감각적이다. 삶의 순간순간, 마치 활화산처럼 욕망들이 터져 나오고, 이를 추구하는 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관찰자 입장에서는 정신분열증을 의심해 볼 만한 행동들이건만, 당사자들은 그렇지 않다. 그때그때 그들의 행동은 무척 자연스럽고 당당하다. 왜 그럴까?
보다 많은 욕망을, 강하게 충족시키려는 것은 인간의 원초적 본능이다. 삶이 풍요로워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장 원시적인 인간은 타인에 대한 고려 없이 오직 자신의 욕심만을 추구하고자 한다. 24시간 울어대서 엄마를 잠 못 자게 만드는 아기가 좋은 예가 된다.
하지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한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타인과 어울려야 하고, 사회를 형성해야 하며, 그 과정에서 개인적인 욕망을 적정 수준으로 인내해야 한다. 그래서 규범과 제도와 법이 만들어진 이래, 인간은 사회의 눈치를 봐가며 욕망을 조절해 왔다. 프로이트(S. Freud)식으로 말하자면, 이드(id)는 수퍼에고(Super-Ego)의 눈치를 보며 살아왔다.
그런데 욕망을 실현하는 데에는 사회적 제약 외에도 또 다른 조건이 따른다. 바로 돈이다. 현대 소비사회를 맞아 소비재는 인간의 모든 욕망을 담게 되었다. 이제 소비는 욕망을 충족하는 길이며, 소비재는 욕망의 구체적인 대상물이다. 돈 없이, 즉 소비 없이 욕구 충족은 없다.
결국 오늘날 인간의 무궁무진한 욕망은 사회적 압력과 금전적 문제 때문에 조절된다. 그런데 최근 우리나라가 선진국 대열에 접어들고 개개인의 소득수준과 지식수준이 향상되면서 욕망의 조절 키는 헐거워지기 시작했다. 일단 주머니에 들어 있는 돈이 많기 때문에 당장 손에 넣을 수 있는 소비재들이 늘어났다. 또한 고등 교육으로 직·간접 경험이 풍부해짐에 따라 예전에 없었던 욕구를 새로이 추구하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집단주의 문화가 개인주의 문화로 바뀌어감에 따라 욕망을 억누르고 있던 사회적 금기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시작했다. 결국 오늘날의 인간은 원시시대 이래로 욕망 추구에 있어 가장 자유롭다고 하겠다. 그런데 욕망의 매우 중요한 특성은 일단 한번 충족하고 나면 쉽게 질린다는 것이다. 일단 결핍된 감각과 감성을 충족시키고 나면 금방 질리는 것이 욕망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회적 압력과 금전적 문제로부터 해방된 인간은 욕망을 찾고 충족시킨 후, 더 새롭고 더 화끈한 욕망을 다시 찾아 나서는 끝없는 여정을 반복하게 된다. 단적인 예가 ‘퓨전 열풍’이다. 퓨전 푸드나 퓨전 재즈는 물론이고, 굳이 ‘퓨전’이라는 단어를 붙이지 않더라도 최근 유행하는 소비재들 중에는 기존에 있던 제품이지만 서로 유사점이 없던 것들을 결합시킨 상품이 많다. 초밥에 아보카도가 들어간 캘리포니안 롤, 여성스러운 소재와 스타일로 만들어진 남성 패션을 일컫는 메트로섹슈얼, 휴대폰과 카메라가 만난 카메라폰, 공기청정기와 에어컨이 합쳐진 웰빙 에어컨 등, 과거 통용되던 기준을 무시하고 융합·복합되어 새롭게 거듭난 상품들이 대중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러면 왜 퓨전이 인기일까? 이는 감각적이고 순간적이며 변화무쌍한 현대인의 욕구와 관련이 깊다고 본다. 늘 새로운 욕구를 찾아 나서는 요즘 소비자들은 식상한 것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반대로 너무 새로운 것은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들게 마련이다. 인간은 항상 적정 수준의 흥분과 긴장감을 유지하려 한다는 심리학의 ‘최적각성이론(Optimal Arousal Theory)’이 이러한 심리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이렇듯 너무 뻔해도 안 되고, 너무 튀어도 안 될 때 퓨전이 효과를 발휘한다. 삼겹살은 질리고 와인은 어려워도, 와인 삼겹살에는 만족할 수 있는 것이다. 퓨전에 의해 현대인의 욕망은 끊임없이 변주된다.
이 시대의 메가트렌드는 단연 ‘욕망’이다. 바야흐로 욕망의 시대다. 소비자의 욕구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마구 분출된다. 소비자들은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별 의식 없이 자동 반사적으로 주머니에서 돈을 꺼낸다. 이성의 통제는 효력을 잃었다.
결국 오늘날 소비자를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힘은 머리가 아닌 가슴·몸, 혹은 그보다 훨씬 깊은 곳에 잠재되어 있는 심층심리에서 나온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소비자는 이제 없고,비합리적이고 무의식적인 소비행동이 나날이 늘어간다.

뇌파를 이용한 소비자 반응 측정

인간이 더 많은 욕구를 더 자주, 강하게 충족하고 있다니, 심리학자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기분 좋은 일이다. 다만, 소비자 심리학자로서 이렇듯 무의식적이고 충동적인 소비자의 심리를 어떻게 분석해야 하는가의 문제에 직면하면 생계에 위협을 느낄 지경이다. 특히 오늘날 소비자 심리를 측정하는 가장 정통하고 보편적인 방법인 설문조사가 과연 제 몫을 해 줄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고민하게 된다. 거두절미하고, 설문조사는 이런 종류의 행동을 측정하는 데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존의 소비자 조사는 기본적으로 소비자의 답변을 필요로 한다. 소비자가 연구자의 지시에 따라 어떤 대상과 개념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되새겨 본 다음, 이를 말이나 글로써 풀어내는 것이 조사의 기본 패러다임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통적인 조사 방법을 가리켜 ‘자기 보고(Self-Report)’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소비자 스스로도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의식화할 수 없는 시대가 왔다. 이성이 개입하는 일 없이 감각과 감성의 충동적인 욕구에 의해 순간적으로, 자동 반사적으로, 비합리적으로 이루어지는 소비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가 스스로를 되돌아보지 못하고, 자기 자신조차도 자신의 생각과 느낌이 어떤지 모르며, 어제와 오늘의 소비자 의식이 다른 마당에 설문지가 아무리 꼼꼼하게 만들어지고 분석 방법이 아무리 정밀하다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소비자 라이프스타일 조사에 곧잘 사용되는 문항을 예로 들어 보자. ‘양식보다 한식이 좋다.’ ‘혼전 순결은 중요하다.’ 이러한 것들은 응답자의 이성적인 판단을 요구하는 질문으로서, 그 질문 속에는 어떤 대상에 대한 태도는 일관되게, 합리적으로 나타날 것이라는 가정이 깔려 있다. 인간의 이성과 생각과 사고(思考)는 일관적이고 지속적이며 안정적이므로 이러한 질문은 타당하다.
그러나 이 질문에 ‘예/아니오’로 답하게 될 응답자들은 감각적이고 정서적인 욕구 충족을 중시하는 현대인들이다. 혼전 순결이 중요하다고 응답한 사람이 토요일 밤 나이트클럽에서 만난 이성과 원나잇스탠드(One Night Stand: 하룻밤 연애)를 감행할 수도 있고, 양식보다 한식이 좋다는 사람이 패밀리 레스토랑의 친절하고 신나는 분위기에 휩쓸릴 수도 있다. 신체 오감의 감각 경험과 정서적 체험은 쉽게 질리고 비일관적이며 의식화하기 어려운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응답의 일관성, 지속성과 합리성에 의존하는 설문조사 패러다임으로는 별다른 고민 없이 상황에 맞춰 그때그때 순간적으로 이뤄지는 소비 행동을 설명하기 힘들다.
바야흐로 소비자 조사의 패러다임 시프트(Paradigm Shift)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소비자 스스로도 의식화할 수 없는 심리를 연구자가 짚어내야 하는 것이다. 어떤 방법이 있을까. 한 가지 대안은 구태여 소비자에게 물어보는 일 없이 심리적 반응을 몸에서 직접 채록하는 것이다. 스스로 말이나 글로 풀어낼 수 없을 만큼 너무나 순간적으로, 자동 반사적으로 반응한다 하더라도 우리의 몸속에는 시시각각의 정보가 뉴런(Neuron) 수준에까지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제너럴 모터스·포드·다임러 크라이슬러·AOL 타임 워너·켈로그·P&G·코카콜라 등의 대기업들이 최근 뇌파나 뇌 영상을 이용한 소비자의 생리적 반응 측정에 엄청난 돈을 투자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조사자의 질문에 답하는 소비자의 입, 지폐를 끄집어내는 소비자의 손을 통제할 뿐만 아니라, 소비자의 모든 경험을 통째로 저장하고 있는 중추신경계에 관심을 모으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러한 접근은 소비자 조사는 물론, 광고효과 조사에도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90년대 이래로 우리나라에서도 비주얼·BGM 등 다양한 비언어적 요소로 꾸며진 예술적인 광고들이 제작·집행되기 시작했다. 이제 소비자들은 광고를 볼 때 단지 상품 정보만을 기대하지 않는다. 광고가 전달하는 총체적인 이미지를 즐기고, 그로부터 다양한 정서적 경험을 하고자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광고효과 조사는 상표 태도나 구매 의도·기억과 같은 마케팅 변인을 측정하는 데 머무르고 있어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이러한 방법으로는 광고 크리에이티브의 작은 변화에 따라 민감하게 달라지는 소비자의 정신 역동을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시즐 광고에서 음식에 김(Steam)이 모락모락 날 때와 그렇지 않을 때 시청자의 식욕은 어떻게 변화할까? 여성 모델이 시청자와 눈을 맞출 때와 맞추지 않을 때, 어떤 경우가 남성들을 더 매혹시킬까? 이러한 질문들은 응답자의 의식적인 회고를 필요로 하는 설문조사로는 측정하기 어렵다. 이에 필자 등은 최근 fMRI를 이용, 광고의 크리에이티브 효과를 측정하고 있다. 이는 이른바 ‘신경 소비자·광고심리학(Neuro-Consumer & Advertising Psychology)’과 광고효과 조사가 접목된 것이다.
이제 대부분의 소비자 행동은 소비자가 자각할 수 없는 수준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소비자 자신도 모르는 것을 알아내야 한다. 보다 입체적인 소비자 심리 분석 기법이 필요한 시점이다. 인간의 뇌는 우주보다도 심오하다고 했던가. 캐낼 수 있는 정보가 무한대이니만큼, 아직까지는 소비자의 생리적 반응을 측정한 연구 결과가 기초적인 수준에 머무르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미국과 유럽 정부의 정책적 지원 아래 세계적인 명문 대학과 연구소에서 의욕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뇌지도 프로젝트(Brain Mapping Project)’에 의해 인간이 경험한 다종다양한 정보들이 깊고 넓은 뇌의 주름 속 어디에 새겨져 있는지 속속 밝혀지고 있다. 뇌의 특정 부위를 자극, 소비자가 자기 자신도 모르게 상품에 손을 뻗게 만드는 광고를 만드는 것도 꿈만은 아니다. 소비자 심리 트렌드를 알고 싶다면, 입과 손보다도 뇌를 바라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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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최적각성 이론 ;
‘최적각성’이란 용어는 여가에서 널리 쓰이는 심리학적 구성개념이다. 이는 행복의 실행이나 학습, 행복감이 극대화되는 정신적 자극의 단계를 말한다.
우리는 신제품에 흥미를 느끼고,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나려 하며, 새로운 사람을 알고자 한다. 우리는 낯선 그 무엇이 주는 흥분과 긴장을 적극적으로 추구한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최적각성이론(Optimal Arousal Theory)은 인간의 이런 심리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늘 적정 수준의 흥분과 긴장감을 유지하고자 한다. 그때그때 변화하는 환경에 가장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함이다. 우리가 평화와 안정을 추구하면서도 도전과 모험을 즐기는 것도 이 때문이다.


Posted by HS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