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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11 테러 이후에 세계 항공사들의 수익률이 급감하면서 항공업계는 일대 위기를 맞이하였다. 여기에 사스(SARS) 파동 이후 캐세이 퍼시픽(Cathay Pacific)을 포함한 아시아 항공사들 역시 한동안 그 후유증을 극복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전세계적인 항공업계의 위기 속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는 항공사들이 있는데, 바로 ‘budget airlines’이라고 불리는 항공사들이다. 사실 이러한 항공사들의 시초는 미국 국내를 아주 저렴한 요금으로 오갈 수 있는 매력적인 가격을 제공한 바 있던 사우스웨스트항공(Southwest Airlines)이라 할 수 있는데, 몇 년 전부터 유럽에서도 이러한 항공사들이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이다. 특히 저가형 항공사들은 보통 인터넷 예약 및 판매 시스템을 기반으로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침으로써 거대 항공사인 브리티시항공(British Airway)나 KLM 등을 위협할 만한 파워를 지니게 되었다. 그러자 급기야 대형 항공사들도 저가 항공 브랜드를 선보이기에 이르렀지만, 이러한 budget airline들의 추격을 따돌리기에는 너무 뒤늦은 감이 있어 보인다. 이번에 소개할 이지젯(easyJet)은 영국 근교의 루튼(Luton)공항을 기반으로 하는 항공사로, 영국계 그리스 사람인 스텔리오스 하지(Stelios Haji-loannou, 1967년생)가 설립한 회사이다. 매년 꾸준한 성장을 이룬 끝에 지금은 유럽 내에서 렌터카 사업, 피씨방 사업, 카드 사업 및 기타 다양한 사업에 이르기까지 ‘기업가 정신(entrepreneurial spirit)’을 바탕으로 꾸준히 니치마켓(niche market)들을 공략, 개발하고 있다. 이에 따라 본고에서는 이지젯을 중심으로 하여 이지그룹의 저가(low cost) 브랜드 마케팅 전략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다. | |||||||||||
더 이상 ‘싼 게 비지떡’은 아니다 이지젯의 창업주인 스텔리오스는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We are a bus company. We want to fly people from A to B and back”라고 이야기했다. 이렇듯 그가 이지젯을 단순한 ‘버스회사’라고 이야기한 것은 그 동안 서비스를 중시하던 항공업계에 큰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 |||||||||||
물론 이용객들에게는 교통편 등의 부족에 따른 불편이 따르게 되지만, 이지젯은 자사 이용객들에게 셔틀버스나 주차료 할인 등 다양한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게다가 한적한 외곽 공항을 이용함으로써 비행기 이착륙 및 정비에 들어가는 비용과 시간을 줄여, 마치 고속버스가 그러하듯 착륙했던 비행기가 수십 분 내에 정돈을 마치고 곧바로 다음 지역으로 출발할 수 있는 민첩함을 보일 수 있게 된다. 이지젯 자체 조사에 따르면 대형 공항을 이용할 경우의 이·착륙 대기시간, 계류장 정비 시간 등이 루튼공항에서는 많이 줄어 결국 약 두 배 가까이 효율적이라고 한다.
둘째, 티켓을 절대 여행사에게 팔지 않는 것인데, 이 전략은 현장업무 비용 및 여행사에 지급하는 수수료를 줄이는 대신에 좀더 공격적인 광고 물량으로 소비자들을 유혹하겠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게다가 전자발권(ticket-less) 항공사로서, 고객은 단지 인터넷 화면에 나타난 예약번호만 프린트해 오면 되기 때문에 회사로서는 티켓 발송 및 제작에 들어가는 비용까지 절약할 수 있었다. 또한 기종을 보잉737로만 통일해 기종 다양화에 따른 부품 보유 비용 및 조종사 훈련비용을 줄였다. 단, 저가 항공사라는 이미지에서 야기될지 모르는 안전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불식시키기 위해 최신 기종들을 도입하는 데에는 주저하지 않고 있다.
세 번째로, 모든 이지젯 항공기 기내에서는 공짜 음료 및 식사 서비스가 일체 제공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지젯에서는 음료 한잔도 본인이 돈을 내고 사먹어야 한다. 게다가 비즈니스 클래스 자체가 아예 없다.
사실 유럽 내에서 1~2시간 걸리는 비행일 경우 대개 샌드위치와 음료가 제공되는데, ‘그 정도의 비용을 절약하는 것이 그리 대단한 것인가’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이 샌드위치 하나를 제공하기 위한 준비·운반·보관·서비스 비용 등은 회사 전체로 보면 상상을 초월할 정도이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한 사실은 이처럼 서비스 마케팅 학계에서 누누이 강조되는 ‘편안하다 못해 과분한 고객 서비스’ 없이도(그렇다고 이지젯의 승무원들이 불친절하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이지젯이 고객만족 분야에서 우수한 평가를 받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기내식의 메뉴가 어떻다, 스튜어디스의 음료 서비스가 부실하다’는 불평들이 애당초 나오지도 않는 것이다. 이는 곧 고객들은 가격이 싼 만큼 대단한 서비스를 기대하지 않으며, 항공기를 단순히 고속버스와 같은 하나의 교통수단으로만 생각한다는 점을 반증하는 결과라 할 수 있다. 결국 이지젯은 음식 서비스에 들어가는 비용, 스튜어디스 교육 비용 등을 줄이는 대신 고객들에게 가격 가치(price value)를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런던에서 암스테르담까지의 편도 항공요금이 최저가일 때에는 우리 돈으로 3만 5,000원 정도에 불과하기도 한데, 어떤 때에는 공항세보다 항공료가 더 저렴한, 웃지 못할 일도 벌어진다.
마케팅으로 승부를 건다
저널 <Strategic Direction>(2002)에 따르면, 그 동안 영국 항공업계에서 마케팅 부분은 그다지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았다. 더욱이 걸프전과 9.11테러 이후 영국의 대형 항공사들인 브리티시항공과 버진 애틀랜틱(Virgin Atlantics) 등은 고객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안전 시스템에 신경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또 광고비용을 절반으로 줄이고, 불안한 경기 상황에 귀를 기울이며 몸을 사렸다. 그러는 동안 저가 항공사들은 혁명적인 마케팅 전략으로 이러한 ‘골리앗 항공사’들이 선점했던 위치를 빼앗기 위해 노력했는데, 이지젯이 그 대표적 사례 중의 하나이다.
이지젯의 광고는 초창기에는 ‘가격 가치’와 ‘저렴한 비행(heap flight)’을 강조하는 데 전념하였다. 하지만 점차 브랜드 인지도가 높아지고 경쟁자들이 증가함에 따라서 눈에 띄는 이미지와 유머를 이용한 접근 등 사람들의 눈을 끌기 위해 좀더 자극적인 비주얼로 승부를 걸었다. 사실 그 동안 항공업계의 광고들에서 이런 자극적이고 공격적인 것들은 찾아보기 힘들었는데, 요즘 들어서 이지젯 광고는 본지 7/8월호에 소개했던 영국의 심의단체 ‘ASA’의 제재를 심심치 않게 받고 있을 정도이다.
또한 얼마 전에는 영국의 축구스타 데이비드 베컴의 머리 모양을 삽입한 광고를 선보였는데(사전에 허가받지 않은 사진을 사용해 베컴 측의 심리를 건드리기도 했다), 이 광고에서 비키니 입은 여성을 강조한 섹슈얼 이미지는 또 다른 충격이었다. 그런데 실제로 런던의 지하철이나 영국 대도시 곳곳에 널려 있는 이지젯 전광판과 빌보드들은 ‘돈이 저것보다 안 드는데 이 참에 여행이나 가볼까?’하는 생각이 들게끔 하면서 바쁜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다.
‘기업가 정신’으로 기회를 포착
이지젯은 브리티시항공이나 버진 애틀랜틱에 비해 분명 소규모인 항공사였지만, 지금은 두 항공사들을 위협할 정도로 성장했다. 더욱이 얼마 전에는 또 다른 budget airlines이었던 고 플라이(Go-fly)를 인수, 더욱 더 많은 루트와 항공기를 보유하게 됨으로써 이제 유럽의 유명 항공사로서의 위상을 다지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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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이 싸다면 이만한 불편쯤이야…” 이지그룹은 항공산업에만 그치지 않고 ‘easy’라는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그대로 유지하는 다양한 산업을 통해 전유럽에 진출했다. easyInternetcafe라는 PC방 체인사업, easyCar(렌터카)·easyMoney(신용카드)·easyCinema(영화관)·easyValue(인터넷 가격비교 사이트)·easyPizza(피자 배달)·easyDorm(저가 호텔)·easyCruise(크루즈 여행)·easyBus(버스 운수) 등이 그것들이다. 그런데 이러한 브랜드들 역시 이지젯이 그 동안 견지해왔던 ‘수요에 따른 가격 탄력성’이라는 기본 정신을 바탕으로 저가 공급 전략에 충실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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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기서 눈여겨보아야 할 점은 이지그룹의 상품 가격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이는 곧 소비자 자신이 조금만 더 부지런하고 노력을 기울인다면 확실히 저렴한 가격으로 제품이나 서비스를 공급받을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지젯의 경우 새벽 시간의 티켓 가격은 낮 시간의 가격에 비해 상당히 저렴하다(당연히 고객은 공항에 가기 위해 밤잠을 설쳐가면서 불편한 교통편을 감수해야 한다). 그리고 주말과 평일의 가격도 다르며, 만약 두 달 전에 예약을 하면 그야말로 최저 가격에 비행기 티켓을 구할 수 있다(단, 환불할 수 없다). 이런 리스크를 감수할 수 있고, 좀더 부지런하다면 고객의 입장에서는 정말 싼 가격으로 티켓을 구할 수 있는 것이다. 그 대신 항공사는 티켓을 늦게 구입하는 사람에게는 비싼 가격으로 팔아 수익을 보전하고 있는데, 비행기 이륙 불과 몇 시간 전의 가격은 일반 항공사 가격에 거의 육박하고 있다. | ||
이제, 서비스냐 가격이냐?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이지그룹의 비즈니스에는 항상 ‘가격 탄력성에 따른 저가 실현’이라는 기본 전제가 깔려 있다. 우리는 요즘 ‘럭셔리 마케팅(luxury marketing)’이니 ‘VIP 마케팅’이니 하며, 불황을 타지 않는 ‘큰손’들인 상위 1%의 고객들이 모든 걸 해결해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소수의 상류층만을 타깃으로 하여 고가·고품질의 상품만 가지고 덤벼드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이지그룹의 마케팅 믹스(marketing mix)에서 가격을 강조하는 전략이 하위 세분(segment)들만 주 타깃으로 하고 있다고는 단정 지을 수 없다. 실제로 이지젯의 상당수 고객들이 가족 단위보다는 단기간 여행을 하는 비즈니스맨들이라는 사실에서도 이는 잘 나타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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