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9-10 : Creator@Clipping - 광고는 당신의 천직입니까?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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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는 당신의 천직입니까?
 
 
 사환에서 사장까지, Tim Delaney
 
이 현 종 CD | CR2그룹
hjlee@lgad.lg.co.kr
 

 

땅을 기어가는 것들에는
기둥에 붙들어 맬 수 없는 고집이 있다.
황토밭을 달리다가 잠시 뒤돌아보는 고구마 순,
벽을 기어오르며 허공에 내미는 담쟁이 손,
이것들에게는 허리가 꺾이고 발목이 묶이더라도
오로지 가고야 말겠다는 강인한 근성이
무섭도록 꿈틀댄다.

김영남, <땅 위를 기어가는 것들에는>
 
진정 자급자족의 생은 식물들에게서 본받을 일이다. 그들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바람과 물과 태양만을 식하며 다른 생물들의 삶을 파괴하지 않는다. 그래서 식물들의 근성은 아름답다. 배회하거나 방황하지 않고, 오로지 그 자리에서 자신의 천성만을 믿으며 살아도 늘 떳떳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동물의 천성은 식물에 비해 언제나 불완전하다. 닐 조던(Neil Jordan) 감독의 영화 <크라잉 게임(The Crying Game)>에서는 발 달린 것들의 비극이 가슴 아프게 전해진다. 전갈의 얘기를 들려주는 마지막 장면인데, 아직도 파편처럼 기억 속에 박혀 있다……
“헤엄을 못 치는 전갈은 개구리에게 애원을 했지. 절대로 물지 않을 테니 강물을 건널 수 있게 해 달라고. 개구리는 전갈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하고 전갈을 등에 업고 강을 건너기 시작했어. 하지만 강을 반쯤 건넜을 때 전갈은 약속을 어기고 개구리를 물어 죽이고 말았어. 결국 개구리도 죽고 전갈 자신도 강물에 빠져 죽고 말았지.” 그러면서 주인공은 “천성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읊조렸다.
동물이나 식물이나 제 태어난 모습대로 살아가야 하는 것은 모름지기 그들 나름대로의 최선의 합목적적인 선택이다. 그것은 결코 잘잘못의 문제가 아니다. ‘천직(天職)’이라는 단어는 그러한 면에서 적절한 용어 선택이다. 내 피를 쫓다 필연처럼 마주치게 되는 일…… 그리고 그 일이 직업이 될 때, 우리는 그것을 천직 혹은 나아가 ‘소명(召命)’이라 부른다. ‘하늘이 그 사람을 불러 부여한 일’이라는 말이다. 그러니 그 일을 만난 사람은 그 일을 행함이 무당 일처럼 되지 않을 수 없다.
 
 
“나의 인생에서 음악이 아닌 일들은 그리 대수롭지 않았다. 그저 커피 한잔 마시듯이 지나가는 일이었다.” 생전 기벽으로 유명했던 위대한 피아니스트 미켈란젤리(Arturo Benedetti Michelangeli; 1920`~1995)에게 피아노는 무당의 작두다.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 그리고 즐기는 사람은 때로 다른 사람에게 미친 사람처럼 보인다. 그래도 즐길 수 있는 일을 만난 사람의 인생은 결국 행복하다. 광고에서도 아마 ‘즐기는 사람’보다 무서운 사람은 없을 것이다.
팀 딜레이니(Tim Delaney). 그가 바로 그런 부류의 사람이 아닐까 생각한다. 약간의 천재성까지 부록으로 선물 받은 그의 인생은 한마디로 ‘광고 자체’다. 그의 이력을 훑어보면 상투적인 상찬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팀은 15살에 심부름과도 같은 맨 밑바닥 일을 시작으로 광고계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다. 그 후 18살 때에는 5개의 대행사에서 일을 했으며, 결국 다섯 번째 대행사에서 그의 첫 헤드라인을 쓰게 된다.
그것을 시작으로 Y&R과 BMP에서 카피라이터로 활동하게 되며, 27살에 BBDO 런던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된다. 31살에 매니징 디렉터가 되며, 1980년 그의 나이 34살에 지금의 리가스 딜레이니(Leagas Delaney)를 설립한다. 1992년에 영국 광고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D&AD 회장상을 수상했으며, 그 해 BBC 사장상도 수상했다. 그리고 현재 리가스 딜레이니의 대표인 팀은 여전히 현직에서 카피를 쓰면서 우리 시대 가장 존경받는 광고인 중의 한 사람으로 손꼽히고 있다.
 

“크리에이티브, 중요하죠. 비즈니스의 한 부분일 따름이지만”

 
“광고 비즈니스란 것은 언제나 크리에이티브 차원을 넘어서 생각해야 합니다. 물론 크리에이티비티란 것이 필수적이지요. 그것은 클라이언트들이 할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우리를 부른 것이기도 하구요. 하지만 어떤 비즈니스이건 간에 가장 중요한 일은 그 비즈니스를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겁니다. 그런 다음에 크리에이티브를 통해 그 비즈니스를 돕는 것이지요. 비즈니스 이슈를 도외시하는 크리에이티브는 아무리 좋아도단지 크리에이티브를 위한 크리에이티브에 불과할따름입니다. 만약 우리의 클라이언트가 어떤 어려
움에 봉착해 있다면 그 어려움을 고스란히 우리 것으로 느껴야 합니다. 매번 프리젠테이션할 때 보면 그건 언제나 비즈니스적인 이슈가 있어서 하는 겁니다. 분명히 우리는 크리에이티브를 만들어내야 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비즈니스적 문제와 관련된 맥락에서 크리에이티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에디슨과 돈키호테의 차이점은 뭘까? 병아리를 부화시키기 위해 달걀 위로 올라간 에디슨과, 로시난테를 타고 풍차로 돌진하는 돈키호테는 엉뚱한 상상가적 기질 때문에 뭇사람들을 늘 놀라게 만들었다. 하지만 에디슨의 상상력은 프래그머티즘(pragmatism)을 기반으로 쓸모 있는 살림살이로 탈바꿈 한 반면, 돈키호테의 상상력은 그냥 황당무계함으로 끝을 맺었다는 점에서 큰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광고에서의 크리에이티브는 다분히 에디슨적이어야 한다. 결국 상상력과 실용성은 광고 크리에이티브의 어머니이고, 아버지인 것이다.
진주에 살던 옛 동료의 우스갯소리가 생각난다. 그 친구의 아버님께서 숙원이던 집을 짓고 뿌듯해하며 둘러보시다 그만 화들짝 놀라며 식구들에게 하신 말씀, ‘얘들아, 화장실을 깜빡했다.’ 그래서 한동안 식구들이 볼일 보러 가까운 호텔로 다녔다는, 참으로 믿기지 않는 실화를 얘기하며 좌중을 웃겼던 적이 있었다. 정말로 아무리 멋진 크리에이티브도 결국 실용적 혹은 합목적적이지 않으면 공염불에 불과한 것이다.

사실 리가스 딜레이니는 아디다스 캠페인으로 성장을 하며, 글로벌화했다. 비록 최근에 아디다스와 9년 간의 밀월을 끝내고 결별을 했지만, 글로벌 광고에 대한 팀의 경험담은 귀 기울여 볼만하다.

“아디다스를 통해 배운 흥미로운 사실이 있습니다. 글로벌 광고에 있어 대부분의 경우 아주 차원 높은 크리에이티브가 통한다는 얘기입니다. 다른 나라에서 얘기한다고 해서 좋은 아이디어가 훼손될 이유는 없습니다. 어떤 광고주들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통해야 하기 때문에 단순할수록 좋다고 얘기할지 모르지만, 전 그 말을 믿지 않는 편입니다. 아디다스를 통해 볼 때 아이디어만 좋다면 어디서나, 오스트레일리아든 스칸디나비아든 아시아든 간에 틀림없이 성공한다는 겁니다. 가끔은 특정 지역이나 도시에 맞게 꾸며지기도 하지만, 그게 대세를 얘기할 만큼 큰 문제는 아닙니다.”

래리 바커(Larry Bakker)의 말대로 ‘영상세대’라는 말은 어떤 면에서는 참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거짓이다. 20세기에 어느 누가 21세기가 오면 사람들이 매일 매일 편지를 주고받을 거라고 예측했겠는가. 그것도 젊은이들이. 그런 면에서 그의 통찰은 예리하다. 이메일 때문에 아마 전세계 젊은이들이 하루에도 평균 2, 3통의 편지를 주고받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텍스트의 힘을 동영상의 힘에 견주어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꼭 이런 이유 때문만은 아니지만, 광고에서도 카피를 소홀히 다루는 경향은 대단히 위험한 시각일 수 있다.
 
 
 

“많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들이 글자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둥, 이제는 비주얼로 충분한 시대라는 등 얘기를 많이 하는데…… 전 동의할 수 없습니다. 제가 믿고 있는 건 여전히 그 둘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겁니다. 때로는 카피가 많을 수도 있고, 때로는 카피가 하나도 없을 수도 있습니다. 일러스트가 필요할 때가 있고, 때로는 사진이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문제는 어떤 게 적절한가 혹은 어떤 식의 조합이 적절한 가일 겁니다. 마치 신문처럼 말이지요. 그 안에는 모든 게 다 있잖아요. 만화도 있고 사진도 있고, 큰 헤드라인도 있고 장문의 글도 있고…. 취사선택의 문제라는 건 결국 적절성의 문제라는 얘기죠.”

카피가 분명히 적어졌다. 양이 적어지기도 하고, 힘이 약해지기도 하고. 몇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학술적으로 분석해 본 결과도 있겠지만, 팀의 의견은 대체로 사람들이 예전보다 카피를 쓰는 능력이 부족하고, 동시에 쓸려고 하는 의지도 적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마 광고상 같은 데서 비주얼로 모든 걸 다 말해 버리는 식의 광고들이 귀여움을 독차지해 버리는 현상도 한몫 할 것이다. “미국의 크리에이터들은 지금 칸에 미쳐있다”고 개탄한 어느 광고인의 질타가 일견 수긍이 간다. 그리고 더 들어가 보면 광고의 역할 자체가 변화해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전통적인 4대 매체의 광고가 브랜딩 위주의 커뮤니케이션으로 입장을 옮기다 보니까 자연히 컨셉추어라이징이나 아트의 톤 앤 매너가 커뮤니케이션의 선봉에 설 수밖에 없기 때문일 것이다.

 
“비주얼 시대. 그러나 저는 카피를 씁니다”

“물론 팩트(fact)는 여전히 중요합니다. 특정 제품이나 카테고리에 관한 정보를 수집할 때 더욱 그렇죠. 차를 사는 경우에 보면 대개 광고에서 뭔가 정보를 얻으려고 합니다. 물론 모든 걸 알 필요는 없겠지만요. 옷의 경우는 차와 달리 시각적인 정보가 오히려 중요하겠죠. 우리 모두는 늘 정보를 취하고, 특히 구매할 때는 기억에서 그 정보를 들춰봅니다. 그런데 어느 때는 전혀 팩트가 필요 없을 때가 있습니다. 단지 그 브랜드의 아우라(aura)가 전부일 때가 있습니다. 차나 세탁기처럼 어디서 사야 하며, 값은 얼마이며, 품질보증은 몇 년이 되며 하는 것들이 중요할 수밖에 없는 제품이 있는 반면에 말이지요. 결국 제 생각에는 팩트를 어디서 구해보느냐의 문제일 수 있다는 것이죠. 광고에서이냐 아니면 온라인에서이냐… 아마 그게 핵심일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요즘 광고가 결국 제품 설명보다는 브랜드를 알리는 쪽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보면 소비자들이 어디서 제품 정보를 구하고 있는지 알 수 있죠. 전에는 광고가 정말로 차별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쪽이었다면, 지금은 브랜드에 대한 차별적인 아우라를 전달하려는 쪽에 더 많은 관심을 쏟고 있다고 보면 되겠죠. 그런 의미에서 요즘의 아트디렉터와 카피라이터는 둘 다 컨셉츄어라이저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컨셉트를 만들고, 그 컨셉트를-적어도 우리의 경우에는-인쇄일 경우 디자이너에게, TV일 경우 감독에게 넘기는 일을 한다고 보면 됩니다. 그리고 그 컨셉트를 모든 종류의 미디어에 적용시키기 위해 그 미디어에 맞게끔 재구성합니다. 그런데 카피라이터는 여전히 가장 적절한 문장을 만들어내야만 합니다. 저 역시 카피라이터로서 많은 카피든 적은 카피든, 카피를 씁니다."

 
언제 바뀔지 모르겠지만 나는 ‘골고루 이것저것 먹는 것보다 편식이 좋다(?)’는 우매한 신념을 갖고 있다. 그것은 몸이 원하는 대로 먹어 주는 것이 몸을 위해 더 낫다라는, 아주 편리한 생각인데, 그러다 큰 코 다칠 거라는 주위의 비웃음을 또한 비웃음으로 맞받아친 지 꽤 오래다. 천성이 육식동물인데 갑자기 토끼처럼 산다면 몸이 얼마나 괴로워하겠는가 말이다. ‘네 피를 쫓아라.’ 이 파충

류적인 금언이 몸과 삶을 편안하게 만들 것이라는 지론은 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좋아하는 걸 해야 즐겁고 재미가 있다. 즐겁고 재미가 있어야 잘 할 수 있고, 그래야 ‘나의 발전이 나라의 발전’임을 깨닫는 훌륭한 국민교육헌장적 인간이 될 수 있다. 억지로 해서 되는 일은 없다. 되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좋은 크리에이터가 돼야 한다는 일념으로 좋아하지도 않는 전시회를 돌아다닌다거나, 대중문화를 이것저것 섭렵하는 의식을 의무적으로 실행하는 건, 정말 크리에이티브하지 않은 헛일이다. 물론 대다수의 좋은 크리에이터들은 이미 문화적 감수성으로 충만한 피를 갖고 태어난 사람들이라 우려할 필요는 없겠지만 말이다.

“아트나 영화와 같은 대중문화를 보고 듣고 하는 일은 자연스러워야 합니다. 전 적어도 일주일에 한번은 영화를 보러 갑니다. 그리고 텔레비전으로 보기도 합니다. 축구도 보고 공연도 즐기고, 음악에 빠지기도 하고 신문 보기도 좋아합니다. 하지만 결코 자리에 앉아 있다가, ‘자, 지금부터는 내가 하고 있는 일을 더 잘하기 위해 여러 가지 대중문화를 경험하고 오겠어’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결코 내 일과 결부시켜 그런 활동을 하지는 않습니다. 내가 뭘 보고 듣고 읽고 하는 것은 그것에 관심과 흥미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마 그게 은연중에 내 감각을 키우는 데 도움을 준 경우는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전시회에 가면서 ‘그래 이렇게 하는 게 더 좋은 카피라이터가 되는 데 도움이 될 거야’라고 말하지는 않을 겁니다.”


정(鼎)’이라는 글자가 있다. 세 개의 발이 솥을 떠받치고 있는 형상의 이 글자는 ‘정담(鼎談)’이라는 단어도 만들어 내는데, 풀이인즉슨 ‘세 사람이 솥발처럼 벌리어 앉아서 주고받는 이야기’라는 뜻이다. 광고회사란 어떻게 보면 이 정(鼎)자를 닮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광고회사를 떠받치는 데에도 이 세 개의 발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그 세 개의 발이란, 생각의 힘, 감각의 힘, 그리고 설득의 힘이다. 이 셋이 모여 정담을 주고받는 곳이 바로 광고회사이다. 그리고 그 세 축이 동등한 힘을 발휘할 때 광고회사는 클라이언트의 비즈니스를 바르게 도울 수 있다.

“우리는 이 품위 없는 비즈니스를 품위 있는 비즈니스로 만들어야 합니다. 제가 참을 수 없는 것은 우리가 약속한 것을 이행하지 못할 때입니다. 그럴 때 대행사의 일이 싸구려로 보이게 합니다. 여러분이 만일 뭔가 보여주겠다고 약속했거나 혹은 자신의 크리에이티브를 자신하고 있다면 그걸 분명히 보여줘야 합니다. ‘난 이걸 잘해, 혹은 저걸 잘해’라고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그걸 증명해 보이면 됩니다. 광고효과로 보여줘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이 모든 일이 얼마나 멍청한 일입니까. 우리는 엄청난 규모의 돈을 받으며, 비즈니스를 성공시키기 위한
최일선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책임지고 있는 이 일은 존중받아야만 합니다. 수십, 수백 억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은 효과를 보기 위한 것이고, 만일 실패했을 때는 그 책임도 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팀은 전형적인 하드 워커(hard worker)다. 조금 지나칠 때도 있는 그의 열정 때문에 심지어, 어떤 아트디렉터에게 하룻밤에 20개나 되는 시안을 만들게 했다는 루머가 업계에 회자된 적도 있었다.

“열심히 일합니다. 하지만 이만큼 하는 대행사가 우리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트디렉터들을 그렇게 몰아부치는 이유는 같은 메시지도 아트디렉션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표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트디렉션은 마치 영화나 커머셜에 있어서 음악 같은 역할을 합니다. 음악이 바뀌면 커머셜의 톤이 완전히 바뀝니다. 똑같이, 아트디렉션도 분명히 브랜드의 톤을 바꿔버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트디렉션을 이렇게, 저렇게 바꿀 때마다 브랜드가 어떻게 바뀌는지 주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점에서 제가 다른 사람들보다 필요 이상으로 터프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브레인스토밍이요? 절대 참여하지 않아요”

“브레인스토밍은, 정말 아닙니다. 실제로 아이디어를 내는 데는 두 명이 가장 적정합니다. 보통 3명도 그저 그럴 때가 많습니다. 가끔 4, 5명의 그룹으로 얘기하는데, 좋은 아이디어가 나올 확률은 극히 미미합니다. 그래서 전 브레인스토밍에 절대 들어가지 않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브레인스토밍을 꽤 괜찮은 걸로 평가하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대개 그룹으로 모이면 재능 있는 사람보다 목소리 큰 사람이 회의를 지배합니다. 아이디어라는 건 목소리 큰 사람에게서가 아니라, 재능이 뛰어난 사람에게서 나오는 법입니다…… 일을 하는 게 즐거울 따름입니다. 그건 제가 바보라서가 아니라, 의자에 가만히 앉아만 있는 게 싫어서입니다. 그냥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에 전 흥미가 없습니다. 전 뭔가 하는 걸 좋아하고, 제가 해야 할 일을 자금도 하고 있기 때문에 행운아라고 생각합니다.”

 
 
아직도 후배 카피라이터와 붙어서 티격태격 카피를 쓰고, 혹은 혼자서 64페이지나 되는 파텍 필립(Patek Philippe)을 위한 책자를 쓰며 즐거워하는 팀. 그의 피에는 처음부터 광고가 흐르고 있었는지 모른다.

Posted by HS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