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들이 글자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둥, 이제는 비주얼로 충분한 시대라는 등 얘기를 많이 하는데…… 전 동의할 수 없습니다. 제가 믿고 있는 건 여전히 그 둘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겁니다. 때로는 카피가 많을 수도 있고, 때로는 카피가 하나도 없을 수도 있습니다. 일러스트가 필요할 때가 있고, 때로는 사진이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문제는 어떤 게 적절한가 혹은 어떤 식의 조합이 적절한 가일 겁니다. 마치 신문처럼 말이지요. 그 안에는 모든 게 다 있잖아요. 만화도 있고 사진도 있고, 큰 헤드라인도 있고 장문의 글도 있고…. 취사선택의 문제라는 건 결국 적절성의 문제라는 얘기죠.”
카피가 분명히 적어졌다. 양이 적어지기도 하고, 힘이 약해지기도 하고. 몇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학술적으로 분석해 본 결과도 있겠지만, 팀의 의견은 대체로 사람들이 예전보다 카피를 쓰는 능력이 부족하고, 동시에 쓸려고 하는 의지도 적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마 광고상 같은 데서 비주얼로 모든 걸 다 말해 버리는 식의 광고들이 귀여움을 독차지해 버리는 현상도 한몫 할 것이다. “미국의 크리에이터들은 지금 칸에 미쳐있다”고 개탄한 어느 광고인의 질타가 일견 수긍이 간다. 그리고 더 들어가 보면 광고의 역할 자체가 변화해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전통적인 4대 매체의 광고가 브랜딩 위주의 커뮤니케이션으로 입장을 옮기다 보니까 자연히 컨셉추어라이징이나 아트의 톤 앤 매너가 커뮤니케이션의 선봉에 설 수밖에 없기 때문일 것이다. |
“비주얼 시대. 그러나 저는 카피를 씁니다”
“물론 팩트(fact)는 여전히 중요합니다. 특정 제품이나 카테고리에 관한 정보를 수집할 때 더욱 그렇죠. 차를 사는 경우에 보면 대개 광고에서 뭔가 정보를 얻으려고 합니다. 물론 모든 걸 알 필요는 없겠지만요. 옷의 경우는 차와 달리 시각적인 정보가 오히려 중요하겠죠. 우리 모두는 늘 정보를 취하고, 특히 구매할 때는 기억에서 그 정보를 들춰봅니다. 그런데 어느 때는 전혀 팩트가 필요 없을 때가 있습니다. 단지 그 브랜드의 아우라(aura)가 전부일 때가 있습니다. 차나 세탁기처럼 어디서 사야 하며, 값은 얼마이며, 품질보증은 몇 년이 되며 하는 것들이 중요할 수밖에 없는 제품이 있는 반면에 말이지요. 결국 제 생각에는 팩트를 어디서 구해보느냐의 문제일 수 있다는 것이죠. 광고에서이냐 아니면 온라인에서이냐… 아마 그게 핵심일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요즘 광고가 결국 제품 설명보다는 브랜드를 알리는 쪽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보면 소비자들이 어디서 제품 정보를 구하고 있는지 알 수 있죠. 전에는 광고가 정말로 차별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쪽이었다면, 지금은 브랜드에 대한 차별적인 아우라를 전달하려는 쪽에 더 많은 관심을 쏟고 있다고 보면 되겠죠. 그런 의미에서 요즘의 아트디렉터와 카피라이터는 둘 다 컨셉츄어라이저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컨셉트를 만들고, 그 컨셉트를-적어도 우리의 경우에는-인쇄일 경우 디자이너에게, TV일 경우 감독에게 넘기는 일을 한다고 보면 됩니다. 그리고 그 컨셉트를 모든 종류의 미디어에 적용시키기 위해 그 미디어에 맞게끔 재구성합니다. 그런데 카피라이터는 여전히 가장 적절한 문장을 만들어내야만 합니다. 저 역시 카피라이터로서 많은 카피든 적은 카피든, 카피를 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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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바뀔지 모르겠지만 나는 ‘골고루 이것저것 먹는 것보다 편식이 좋다(?)’는 우매한 신념을 갖고 있다. 그것은 몸이 원하는 대로 먹어 주는 것이 몸을 위해 더 낫다라는, 아주 편리한 생각인데, 그러다 큰 코 다칠 거라는 주위의 비웃음을 또한 비웃음으로 맞받아친 지 꽤 오래다. 천성이 육식동물인데 갑자기 토끼처럼 산다면 몸이 얼마나 괴로워하겠는가 말이다. ‘네 피를 쫓아라.’ 이 파충 | |
류적인 금언이 몸과 삶을 편안하게 만들 것이라는 지론은 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좋아하는 걸 해야 즐겁고 재미가 있다. 즐겁고 재미가 있어야 잘 할 수 있고, 그래야 ‘나의 발전이 나라의 발전’임을 깨닫는 훌륭한 국민교육헌장적 인간이 될 수 있다. 억지로 해서 되는 일은 없다. 되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좋은 크리에이터가 돼야 한다는 일념으로 좋아하지도 않는 전시회를 돌아다닌다거나, 대중문화를 이것저것 섭렵하는 의식을 의무적으로 실행하는 건, 정말 크리에이티브하지 않은 헛일이다. 물론 대다수의 좋은 크리에이터들은 이미 문화적 감수성으로 충만한 피를 갖고 태어난 사람들이라 우려할 필요는 없겠지만 말이다.
“아트나 영화와 같은 대중문화를 보고 듣고 하는 일은 자연스러워야 합니다. 전 적어도 일주일에 한번은 영화를 보러 갑니다. 그리고 텔레비전으로 보기도 합니다. 축구도 보고 공연도 즐기고, 음악에 빠지기도 하고 신문 보기도 좋아합니다. 하지만 결코 자리에 앉아 있다가, ‘자, 지금부터는 내가 하고 있는 일을 더 잘하기 위해 여러 가지 대중문화를 경험하고 오겠어’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결코 내 일과 결부시켜 그런 활동을 하지는 않습니다. 내가 뭘 보고 듣고 읽고 하는 것은 그것에 관심과 흥미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마 그게 은연중에 내 감각을 키우는 데 도움을 준 경우는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전시회에 가면서 ‘그래 이렇게 하는 게 더 좋은 카피라이터가 되는 데 도움이 될 거야’라고 말하지는 않을 겁니다.” |
정(鼎)’이라는 글자가 있다. 세 개의 발이 솥을 떠받치고 있는 형상의 이 글자는 ‘정담(鼎談)’이라는 단어도 만들어 내는데, 풀이인즉슨 ‘세 사람이 솥발처럼 벌리어 앉아서 주고받는 이야기’라는 뜻이다. 광고회사란 어떻게 보면 이 정(鼎)자를 닮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광고회사를 떠받치는 데에도 이 세 개의 발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그 세 개의 발이란, 생각의 힘, 감각의 힘, 그리고 설득의 힘이다. 이 셋이 모여 정담을 주고받는 곳이 바로 광고회사이다. 그리고 그 세 축이 동등한 힘을 발휘할 때 광고회사는 클라이언트의 비즈니스를 바르게 도울 수 있다.
“우리는 이 품위 없는 비즈니스를 품위 있는 비즈니스로 만들어야 합니다. 제가 참을 수 없는 것은 우리가 약속한 것을 이행하지 못할 때입니다. 그럴 때 대행사의 일이 싸구려로 보이게 합니다. 여러분이 만일 뭔가 보여주겠다고 약속했거나 혹은 자신의 크리에이티브를 자신하고 있다면 그걸 분명히 보여줘야 합니다. ‘난 이걸 잘해, 혹은 저걸 잘해’라고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그걸 증명해 보이면 됩니다. 광고효과로 보여줘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이 모든 일이 얼마나 멍청한 일입니까. 우리는 엄청난 규모의 돈을 받으며, 비즈니스를 성공시키기 위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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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일선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책임지고 있는 이 일은 존중받아야만 합니다. 수십, 수백 억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은 효과를 보기 위한 것이고, 만일 실패했을 때는 그 책임도 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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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은 전형적인 하드 워커(hard worker)다. 조금 지나칠 때도 있는 그의 열정 때문에 심지어, 어떤 아트디렉터에게 하룻밤에 20개나 되는 시안을 만들게 했다는 루머가 업계에 회자된 적도 있었다.
“열심히 일합니다. 하지만 이만큼 하는 대행사가 우리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트디렉터들을 그렇게 몰아부치는 이유는 같은 메시지도 아트디렉션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표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트디렉션은 마치 영화나 커머셜에 있어서 음악 같은 역할을 합니다. 음악이 바뀌면 커머셜의 톤이 완전히 바뀝니다. 똑같이, 아트디렉션도 분명히 브랜드의 톤을 바꿔버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트디렉션을 이렇게, 저렇게 바꿀 때마다 브랜드가 어떻게 바뀌는지 주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점에서 제가 다른 사람들보다 필요 이상으로 터프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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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인스토밍이요? 절대 참여하지 않아요”
“브레인스토밍은, 정말 아닙니다. 실제로 아이디어를 내는 데는 두 명이 가장 적정합니다. 보통 3명도 그저 그럴 때가 많습니다. 가끔 4, 5명의 그룹으로 얘기하는데, 좋은 아이디어가 나올 확률은 극히 미미합니다. 그래서 전 브레인스토밍에 절대 들어가지 않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브레인스토밍을 꽤 괜찮은 걸로 평가하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대개 그룹으로 모이면 재능 있는 사람보다 목소리 큰 사람이 회의를 지배합니다. 아이디어라는 건 목소리 큰 사람에게서가 아니라, 재능이 뛰어난 사람에게서 나오는 법입니다…… 일을 하는 게 즐거울 따름입니다. 그건 제가 바보라서가 아니라, 의자에 가만히 앉아만 있는 게 싫어서입니다. 그냥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에 전 흥미가 없습니다. 전 뭔가 하는 걸 좋아하고, 제가 해야 할 일을 자금도 하고 있기 때문에 행운아라고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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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후배 카피라이터와 붙어서 티격태격 카피를 쓰고, 혹은 혼자서 64페이지나 되는 파텍 필립(Patek Philippe)을 위한 책자를 쓰며 즐거워하는 팀. 그의 피에는 처음부터 광고가 흐르고 있었는지 모른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