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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7-08 : Special Edition - 몸을 말하다 vs. 몸으로 말하다 - 광고리뷰 : 오브제화한 몸 vs. 상품화한 몸
2010. 8.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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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며… 미켈란젤로가 그린 <아담의 창조>는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정화 중 아담의 탄생을 표현한 것이다. 최초의 인간 아담은 누워 있으며, 반대편에서 하나님이 천사들과 함께 나타나 손을 뻗치자 아담의 손가락에 채 닿기도 전에 이 최초의 사람은 깊은 잠에서 막 깨어난 듯 그의 창조주인 하나님의 자애로운 얼굴을 쳐다보고 있는 장면이다. 성경 창세기 1장 27절에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라는 구절이 있다. 정말 우리의 몸이 하나님의 모습대로 만들어졌다면 우리의 몸은 이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창조물이 아닌가! 게다가 그의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완전한 생명체로 만들었다고 하니 우리의 몸은 영혼을 담은 아름다운 그릇이라고 생각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최초의 사람인 아담은 뱀의 유혹에 넘어가 죄를 범하여 우리에게 ‘원죄(original sin)’라는 유산을 물려준다. 이로써 우리의 몸은 영혼을 담은 그릇이면서 쾌락을 즐기는 도구의 역할까지도 부여 받게 된 것이다. 우리가 만드는 광고에서도 우리의 몸은 이런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게 등장한다. 즉 하나의 완벽한 예술품으로 등장하기도 하지만, 마치 쾌락의 유원지처럼 보여지는 몸도 광고에 나타난다. 그리고 때로는 몸 그 자체가 하나의 완성된 언어의 역할도 하지만, 온갖 세상의 욕망을 나타내는 감정의 통로로 이용되기도 한다. 광고 표현이라는 점만 놓고 볼 때 현대인의 다양한 개성에 걸맞은 다양한 방법들이 동원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의 몸은 그 모든 광고의 기본 골격처럼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누드 습작>도 미켈란젤로가 그린 것으로, 시스티나 천정화 중 리비아 무녀를 위한 습작이다. 이 스케치북의 소묘를 통하여 미켈란젤로가 모델 몸의 모든 세부를 세심하게 연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데생은 미술의 기본이다. 특히 인체와 관련한 것은 그 기본의 핵심이다. 굳이 서양미술사를 들추지 않더라도 르네상스의 예술가들에게나 현대의 예술가들에게나 인간의 몸은 끝없는 탐구의 대상이었다. 그 이유는 인류 역사의 큰 흐름을 보아도, 개인 인생사의 굽이쳐 흘러가는 물줄기를 보아도 ‘영혼’과 ‘욕망’이라는 두 개의 주제가 우리 몸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몸을 그려내는 데생이 미술가에게 있어서 자신의 세계를 펼치기 위해 기본기를 닦는 과정이라면, 우리의 몸을 어떻게 그려낼 것인가 하는 것은 영혼과 욕망이라는 두 개의 모순된 주제를 갖고 살아가는 모든 인류 소비자들의 마음을 붙잡기 위해 광고에서 표현을 담당하는 제작자들이 기본적으로 염두에 두어야 할 중요 단서라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고 일련의 광고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 ||||||||||
몸은 유원지 | ||||||||||
대량소비사회에서의 현실을 반영한 광고는 매스미디어의 통속적인 주제, 사랑과 성(性)을 통하여 욕망에 가득 찬 인간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도구화된 성과 상업화된 성을 표현하여 에로티시즘의 의미를 환기시켜주고 있는 것이다. 광고가 에로티시즘과 관련이 있는 것은 대량 소비사회를 위한 상업적 전달 메시지로서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바로 성(性)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몸은 이러한 에로티시즘 이외에도 온갖 감각의 다양한 쾌락을 즐기기 위한 ‘유원지’와 다름없다. 우리의 소비자들은 청각·시각·미각·촉각·후각 등의 우리 몸이 지닌 오감을 항상 열어놓고 있다. 몸이 느낄 수 있는 모든 쾌락을 얻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들을 총동원하는 소비자들의 이런 욕망과 접선해야 광고는 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어찌 보면 몸이 원하는 것은 노골적이긴 하지만 그만큼 솔직하다. 에덴동산의 하와[이브]를 유혹했던 뱀처럼 달콤하고도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욕망을 부도덕하다고 정죄(定罪)하기보다는, 우리의 광고는 그 도덕적인 한계선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져 있는 수준까지 그 수위를 조절하며 소비자를 유혹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광고 1~3>. 어차피 인간은 ‘몸뚱이’라는 옷을 입고 있는 이상 언제까지나 고상할 수만은 없는가 보다. 그리고 광고는 이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와 영원토록 함께 해야 하는가 보다. | ||||||||||
몸은 예술품 | ||||||||||
서양미술사에서 르네상스시대의 예술품과 조각품을 보면, 인체의 미를 추구한 작품을 많이 볼 수 있다. 특히 로마시대에는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의 인체도 예술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한 예술품에서 우리가 흔히 보듯이 인체의 비례는 8등신이라는 모듈에 입각한 것이다. 이것은 이상화된 인간상으로서, 즉 여체가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인체비례로 규정된 것이다. 그리고 몸 동작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마치 살아 있는 듯한 실제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방향으로 계산되고 묘사되는 것이 하나의 전통이었다. 이런 점에서 인간의 몸을 하나의 예술품으로 보이도록 하면서, 그것이 단순한 아름다움으로 그치지 않고 그 몸 속에 내재된 힘이나 감정 따위를 함께 담아 표현해내는 광고는 소비자로 하여금 그 광고에 주목하게 하고 메시지에 공감하게 하는 큰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그런데 현대의 포스트 모더니즘 작가들은 작품의 유기적 통일성을 부정한다. 그들은 통일성이나 일관성보다는 오히려 편리성이나 임의성 또는 유희성을 더욱 설득력 있는 예술적 원리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인체를 또 다른 오브제(objet)로 표현해내는 광고는 시대의 문화적 흐름과 그 맥을 같이하고 있다. 다시 말해 우리 몸은 몸이 갖는 본래의 일상 용도에서 벗어나 보는 사람에게 잠재된 욕망이나 환상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상징적 기능의 물체로서의 역할로까지 확대될 수 있는 것이다<광고 4~6>. | ||||||||||
몸은 언어 | ||||||||||
<개그콘서트>라는 TV 코미디 프로그램의 한 토막인 ‘타이즈와 쫄쫄이’는 아무 것도 없이 단순히 몸만을 이용하여 다양한 문자를 표현해내어 웃음을 자아내고 있다. 말 못하는 사람들에게나 필요할 것 같았던 몸을 이용한 커뮤니케이션 수법은 방송에서는 물론이고 광고에서도 진작부터 이용되고 있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최근 새로운 흐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미니멀리즘은 주관적이고 풍부한 디자이너의 감성을 억제하여 미감을 최소화함으로써 오히려 단순함에서 오는 매력을 발휘한다. 그런데 광고에서 우리의 몸을 문자로 단순화시켜서 표현 요소로 활용하는 것은 개인적 감성과 표현을 극도로 억제하여 순수하고 무표정한 새로운 언어형태를 취하는 미니멀리즘과 닮아서 그 절제된 단아함 속에서 더욱 세련된 면모를 보이게 된다. 때로는 몸의 일부만으로, 때로는 몸 전체로 몸 자체를 문자화하는 이러한 기법은 그 표현의 단순함으로 눈길을 끌고, 명료함으로 메시지를 쉽게 전달시켜 의외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바로 미니멀리즘의 후광효과를 얻고 있음이 틀림없다<광고 7~9>. | ||||||||||
몸은 통로 | ||||||||||
우리의 몸은 희로애락의 모든 감정을 전달하는 통로의 역할도 할 수 있다. 축복의 통로가 될 수도 있고, 저주의 통로가 될 수도 있다. 기쁨의 통로일 수 있고, 슬픔의 통로일 수도 있다. 몸 전체가 통로가 되기도 하지만 몸의 극히 일부분으로도 그 통로의 역할은 충분히 가능하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통해 볼 수 있는 인체의 골격과 근육들에 대한 다양한 스케치는 사람의 몸이 감정의 변화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해부하듯이 파헤치고 있다. 광고에서도 몸 속의 뼈를 통해서 혹은 근육이나 심지어는 솜털들의 변화를 통해서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담아보려는 시도가 끊임없이 등장한다. 높은 산 정상 위에 기필코 오르고야 마는 남성들의 정복욕구를 주먹의 선을 통해 일치시킨다든지, 털이 쭈뼛쭈뼛 설 만큼 짜릿한 느낌을 표현하여 소비자에게 팔아야 할 상품에 캐릭터를 부여해주기도 한다. 또 때로는 아빠의 손가락을 오토바이 손잡이처럼 붙잡고 있는 갓난아기의 손을 통해 보호본능을 강하게 일으키도록 하기도 한다<광고 10~12>. | ||||||||||
맺으며… | ||||||||||
우리의 몸은 그것이 영혼에 관한 것이든, 욕망에 관한 것이든 환희와 고통을 동시에 담고 있다. 그리고 지극히 개인적이며, 동시에 주관적이다. 이런 몸을 광고의 표현 소재로 이용할 때는 독특한 크리에이티브로 발전시키기 매우 어렵다. 그래서 미켈란젤로 같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같은 인체에 대한 깊은 연구가 필요하다. 겉으로 드러난 형태뿐 아니라 그 속에 담겨있는 감정까지 표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크리에이터들은 내 몸은 물론 소비자의 몸에 대해 끊임없이 파헤쳐야 한다. 그렇게 하면 몸을 표현의 소재로 할 때 부가적으로 따라오는 컨셉트 적절성의 덤까지 더해져 소비자의 마음 깊이 각인되는 광고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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