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이야기] 멘헤라에서 독보적인 CF 캐릭터까지 - 어둠의 천년돌 ‘아노’의 금융치료 스토리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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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헤라 : ‘멘탈헬스 게시판에 있을 것 같은 사람’의 준말로 정신적 문제가 있는 사람을 가리키는 속어

 

일본의 통신사 AU의 갤럭시 플립 광고에 등장하여 화제가 되고 있는 일본 아이돌이 있습니다. 쟁쟁거리는 아이 같은 목소리에 괴상한 표정을 짓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이 아이돌의 이름은 ‘아노’입니다. 한국인의 유튜브 알고리즘에도 침입하여, 콘텐츠 댓글의 절반은 한국어 댓글로 보일 정도입니다.

 

귀엽다는 갤럭시 Z폴드 7 일본 광고 2 / 출처: idol world 유튜브

 

이번 글은 만화보다 더 만화 같은 아노의 성공 스토리를 다룹니다. 이쯤에서 이런 질문을 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매번 2D 아니메 캐릭터에 대해서만 얘기하다가 왜 갑자기 3D 리얼 인간을 꺼내는 거야?"

 

…그러게요?

 

제 머릿속에는 ‘이번에는 그냥 그러고 싶었다’라는 대답이 떠오릅니다만, 그걸 내뱉는 건 꽤나 무책임한 행동 같습니다. 제가 아노에 빠지게 된 경로를 한번 그대로 따라가다 보면 어떨까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얻으실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첫 만남 by <체인소맨>

 

2022년 방영된 <체인소맨> TV 애니메이션은 저뿐만 아니라 전 세계 모든 팬들이 기다렸던 작품이었습니다. <주술회전> <진격의 거인 4기> 등 대작들을 제작해 온 애니메이션 제작사 MAPPA는 향후 자신들의 미래를 책임질 이 IP을 위해 자본과 인력을 아낌없이 쏟아부었습니다. 이 화려한 작품의 오프닝 곡은 일본 대세 가수 요네즈 켄시가 맡았습니다. 요네즈 켄시의 오프닝 곡 <Kick back>은 기대에 걸맞게 유튜브 조회수 2억이 넘는 큰 히트를 기록하였고, 국내에서도 많은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럼, 이 작품의 엔딩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 맡아야 할까요? 이 애니메이션의 성공을 의심하지 않은 스폰서들은 다소 황당해 보이는 결단을 내립니다. 12화에 달하는 TV 시리즈 매화마다 다른 가수의 엔딩곡을 넣기로 한 것입니다. 여러 엔딩곡을 만든다는 것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매화 그 노래의 내용과 분위기에 맞는 크레딧 애니메이션을 따로 제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체인소맨>의 엔딩 크레딧은 Vaundy, 즛토마요, TK(from LTS), Aimer, Eve 등 J-POP 스타들의 경연장이 되었습니다.

 

엔딩곡에 참여한 12명의 가수 중 최후의 승자는 누구였을까요? 제가 그전에는 알지도 못했던 소녀 ‘아노’의 <ちゅ、多様性 (쪽, 다양성)>이 단연 가장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중독성 높은 훅과 따라 하기 쉬운 춤으로 우리나라 틱톡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 노래의 중독성을 제쳐 두더라도, 가사와 MV컨셉이  <체인소맨>의 특정 장면을 완벽히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최고의 OST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체인소맨> 주인공 덴지는 본인의 활약에 대한 포상으로 첫 키스를 노골적으로 요구합니다. 그리고 7화에서 덴지는 드디어 키스를 하게 되지만… 덴지의 입은 만취한 상대의 토사물로 가득 차게 됩니다. 그야말로 찌질함의 정점을 찍는 이 7화의 엔딩곡이 바로 <쪽, 다양성>입니다. 이 노래의 훅은 ‘get on chu~’이지만 일본어로 ‘게로츄(토사물 키스)’를 노골적으로 떠올리게 만듭니다. MV는 아노가 시청자를 향해 토를 하는 장면으로 마무리됩니다.

 

이미지 관리가 필수적인 아이돌이 화면을 향해 토를 한다고? 누구냐.. 너?

 

ano「ちゅ、多様性。」Music Video / 출처: ano official channel 유튜브

 

<홍백가합전> vs 천년돌

 

아노를 2023년 연말 일본의 <홍백가합전>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NHK의 연말 <홍백가합전>은 일본의 한 해를 마무리 짓는 상징적인 TV쇼입니다. 이 쇼에 출연한 경험이 있느냐, 아니냐로 가수의 급을 나누기도 합니다. 와, 아무리 <츄, 다양성>이 히트했다고 해도, 홍백가합전에 나올 정도라고? 그런데 홍백가합전의 여자 MC는 잘 찍힌 사진 한 장으로 탑아이돌의 반열에 오른 ‘천년돌(천년에 한번 나올법한 아이돌)’ 하시모토 칸나입니다. 사람들은 아노의 괴상망측한 포즈와 표정을 담은 사진을 가지고 하시모토 칸나에 빗대어 ‘어둠의 천년돌’이라고 부릅니다.

 

아이돌 그룹 ‘유루메루모’ 활동 당시의 아노(좌), 너무나 유명한 하시모토 칸나의 천년돌 사진(우)

 

2023년 홍백가합전의 하이라이트는 <최애의 아이> 오프닝곡으로 글로벌 히트를 기록한 요아소비의 노래 <아이돌> 무대였습니다. 뉴진스, 세븐틴, 스트레이키즈 등 한일 양국의 기라성 같은 아이돌 그룹들이 모두 참여한 엔딩 무대는 한국에서도 화제가 될 정도였습니다. 아노는 하시모토 칸나와 화면을 양분하여 그 무대를 열어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으레 나오는 4차원 콘셉트 아이돌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인기가 많나 보네? 아, 근데 나 저런 귀여운 척하는 목소리 싫은데…

 

콜라보 with 신세이 카맛테짱

 

그래도 관심이 생겼으니 일단 유튜브에서 이름을 쳐봅니다. 그랬더니 제가 당시 관심 있었던 밴드인 ‘신세이 카맛테짱’에 피처링을 한 노래가 있어 들어 보았습니다. 신세이 카맛테짱의 리더 노코(보컬, 기타)는 정신병원 강제 입원 직전 수준의 ‘멘헤라’로, 각종 기행과 자해를 일삼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들의 노래도 ‘히키코모리’, ‘니트’, ‘정신병’, ‘이지메’로 비롯된 불안한 심리상태를 주로 묘사합니다. 도저히 대중에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밴드이지만, <진격의 거인> 작가 이사야마 하지메가 좋아한다는 것이 알려져 , <진격의 거인> 엔딩곡과 오프닝곡을 맡아 저한테까지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아노와 피처링한 노래 <僕は頑張るよっ(나는 힘낼게요)> 또한 ‘인간은 귀찮아’라고 외치는 반사회적 노래입니다.

 

神聖かまってちゃん「僕は頑張るよっ feat. ano」Music Video / 출처: かまってチャンネル【公式】 공식 유튜브

 

노래 마지막에 천진난만하게 ‘모두들 죽어요, 그냥 죽어요’라고 외치는 아노의 모습은 단순한 4차원 아이돌을 넘어섭니다. 일단 아노가 기타를 치는 모습이 전혀 어색하지 않습니다. 알고 보니, 아노는 원래부터 기타 연주를 즐겨하며, 자기가 직접 작사/작곡을 하는 싱어송라이터였습니다.

 

마지막에 정신적 불안함을 드러내며 주저앉는 모습이 인상적인데, 실제 아노는 중학생 시절 심각한 수준의 이지메를 당하고, 고교 때 등교거부 및 히키코모리 생활을 했던 과거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사회에 나가기 위한 본인의 노력과 어떻게든 끌어당기려는 사회의 노력이 더해져-아마 외모가 큰 작용을 했을 것입니다- 아노는 지하 아이돌 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귀여운 외모(+목소리)와 무엇이든 하기 싫어하는 마이너 한 성향 사이의 간극이 시청자들에게 묘한 즐거움을 줍니다.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서 활용하기 좋은 4차원 캐릭터가 되면서, 아노는 많은 인기를 끌었고 결국 솔로로 데뷔하기에 이릅니다.

 

맥도날드 <스마일 주지 않아> 광고 in 칸 광고제

 

그다음에 저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아노를 다시 만나게 됩니다. 바로 광고 분석 유튜버 ‘WLDO’의 콘텐츠입니다. 아노가 출연한 일본 맥도날드 광고는 칸 광고제 금상 등 3개의 상을 받았고, 뉴욕 페스티벌 등 다양한 광고제에서 다수의 광고상을 휩쓸었습니다.

 

안 웃어서 대박난 일본 맥도날드 / 출처: WLDO 공식 유튜브

 

‘콘셉트가 정해진 광고에 출연만 한 건데 왜 이렇게 난리야’라고 하실 수 있겠습니다. 일본 맥도날드 마케팅의 상징과도 같은 ‘스마일 0엔’, 고객이 요청하면 무조건 웃어야 한다는 업무 가이드입니다. 이 고루한 지침을 부숴버린 광고에서 아노의 캐릭터는 매우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아노는 히키코모리 생활에서 탈출하기 위해 편의점 알바를 시도한 적이 있으나, 결국 손님과 싸우고 그만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기에 ‘당신 다운 미소로 일하자, 나는 나 그대로의 캐릭터로. 같이 일할래?’라고 말하는 아노의 대사는 좀 더 깊은 울림을 줍니다.

 

ano「スマイルあげない」Music Video / 출처: ano official channel 유튜브

 

<체인소맨> 이후, 아노는 맥도날드, 코카콜라, P&G 등 20여 개가 넘는 CF를 찍었습니다. 사실 일본 예능에 아노와 유사한 4차원 캐릭터들은 많았습니다. 하지만 아노처럼 CF를 많이 찍지도 않았고, CF에서 의미 있게 활용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아노의 4차원 성향과 목소리는 그녀의 아픈 과거를 감추기 위한 목적으로 여겨집니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순간적으로 번뜩이는 재치는 그녀가 어쩌면 똑똑할 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품게 만듭니다. 아무것도 하기 싫다는 그녀가 작사/작곡을 하고 진지하게 가창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왠지 방 안에서는 열심히 노력하고 연습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머리가 비정상적으로 작고 귀엽게 생겼습니다. 이런 요소들이 아노의 기행을 뭔가… 있어 보이고, 멋져 보이게 만듭니다.

 

그래서인지 광고주들은 아노를 우스꽝스럽게만 보여주기보다는, 딱딱한 관습을 거부하는 파격적인 상징물로 활용합니다. 일례로, 라이프카드의 광고는 서비스에 대한 구체적 설명 없이, 아노의 이상한 모습을 이상한 방식으로 보여주기만 합니다.

 

ライフカード「いただきます」篇30秒【公式】 / 출처: LIFE CARD Official 유튜브

 

북오프 광고에서의 아노는 시키는 대로 하지 않고, 일하기 싫어하는 Z세대의 모습을 대변합니다. 그런데 기성세대의 복장을 터지게 만드는 GenZ stare가, 아노가 하면 왠지 혁명적으로 느껴집니다.

 

あのちゃん、「ブックオフ」の新CMに出演(メイキング インタビュー BOOK OFF/あの) / 출처: JIJIPRESS/時事通信芸能動画ニュース 유튜브

 

<타코피의 원죄> 오프닝 as 아티스트

 

2025년 3분기, 일반인들은 <귀멸의 칼날 : 무한성편>과 <체인소맨 : 레제편> 등 한국 극장가를 강타한 두 작품만을 기억할 것입니다. 하지만 오타쿠들은 이번 분기의 최고 애니메이션 중 하나로 <타코피의 원죄>를 꼽습니다. 우주에 행복을 전파하기 위해 지구로 온 외계인 ‘타코피’가 이지메, 학대, 차별이 난무하는 아이들의 세계에 들어오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립니다. 차마 언급하기 어려울 정도의 끔찍한 현실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데도, 타코피는 천진난만한 표정과 말투로 ‘사이좋게 지내자~’고 이야기합니다. 타코피의 귀여운 외모와 답 없는 현실인식 사이의 간극이, 보는 사람들의 가슴을 숨 쉬기 힘들 정도로 답답하게 만듭니다. 정말 극악무도한 작품입니다.

 

지금까지 이 글을 읽으신 분들이라면, 이 작품의 주제곡에 가장 어울리는 가수는 아마 바로 떠오를 것 같습니다. 아노가 직접 작사/작곡한 오프닝 곡 <해피, 러키, 차피>를 듣고, 저는 아노를 진지하게 아티스트로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아노의 귀여운 목소리와 명랑한 선율은 처음에는 동요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명랑하게 울려 퍼지던 노래는 곡 후반부에 가서 처절한 절규가 됩니다. ‘썩어있는 건 (내가 아니라) 지구 쪽이야, 그래서 (내가) 제대로 걸을 수 없는 거야’라는 끔찍한 가사는, 동화 같은 오프닝 애니메이션과 만나 묘한 괴리감을 줍니다. 이 작품의 핵심을 아노보다 더 잘 표현해 낼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 같습니다.

 

アニメ『タコピーの原罪』ノンクレジットOP映像|ano「ハッピーラッキーチャッピー」 / 출처: TBSアニメ 유튜브

 

팬이라면 LIVE 영상을 찾아보는 건 당연한 과정이죠. 아노의 <first take(일본의 유명 라이브 콘텐츠 채널 : 한국의 딩고 라이브와 유사)> 영상도 매우 유명하지만, 저는 방금 소개해드렸던 <해피, 러키, 차피>의 라이브를 추천드립니다.

 

혹자는 수많은 멘헤라를 양성했으면서, 많은 CF를 찍고 승승장구하고 있는 아노의 모습에 배신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아노의 본래 모습이 어땠 건, 지금 실제 모습이 어떻건,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저는 그저 이 멋진 상징물을 소비할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합니다. 부디 아노가 끝까지 들키지 않고 이 콘셉트를 잘 유지했으면 합니다. 이쯤 되면 이 글을 쓴 이유도 어느 정도 짐작이 가시겠죠? 저의 포교활동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노(あの) - 해피 럭키 챠피 (ハッピーラッキーチャッピー) [가사/해석/번역/lyrics] / 출처: 우이 유튜브

 

김영신의 2D 캐릭터 뽀개기 2025.10

 

Posted by HSAD공식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