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1-02 : 2003, 뜨는 트렌드 & 지는 트렌드 - 문화 : 개성 vs. 유행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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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참여와 도발적 실험성의 불안한 결합  
 
  2. 문화 : 개성 vs. 유행
 
이 영 미 | 대중예술평론가
ymlee@knua.ac.kr
 
평론가들이 가장 난감해 하는 질문 중 하나가 ‘미래에 대한 예측’의 요구이다. 모든 것이 정확하게 조건 지어진 속에서 움직여 가는 물리학이나 화학적 대상이라면 모를까, 미처 생각하지 못한 무한개의 변수들에 의해 영향받는 문화 분야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평론가나 연구자가 하는 일은 따지고 보자면 ‘과거에 대한 연구’이다. 그 연구가 치밀할수록 미래에 대한 예측이 맞아떨어지는 가능성은 높아지겠지만, 그렇다고 그 난감함이 줄어들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문화란 인간사의 모든 것에 영향을 받는데, 사람의 머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결국 누구든 자신이 생각하는 한 측면에서 과거를 설명하고, 그 측면에서 미래를 한정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을 뿐이다. 지금부터 필자가 이야기하려는 내용도 마찬가지이다.
2003년에 문화 분야, 특히 대중문화계에 커다란 변화의 바람이 불 가능성은 꽤나 높다. 그 이유는 2002년인 작년까지 대중문화계의 한 흐름이 ‘말기적’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말기적 모습이 보였다는 것은 그만큼 새로운 흐름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이다. 이전의 경향은 수명이 다 되었는데, 새로운 경향이 뚜렷이 두각을 드러내기에는 아직 사회적으로 확실한 전기가 마련되지 못한 것 같은 현상이었다. 그런데 올해는 정권이 바뀌면서 정치·사회적으로 새 바람이 불 가능성이 높고, 그것이 문화에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올해가 주목되는 이유는 바로 그것이다.
 
말기적 증상에 이른 90년대 문화흐름
 
대중문화의 흐름을 보자면, 여태까지의 흐름은 모두 1990년대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보아도 좋은데, 그 1990년대의 시작은 바로 1992년이었다. 서태지의 등장으로 발라드 중심의 대중가요 경향이 댄스뮤직으로 뒤집어지고, 공일오비·넥스트·강산에 등 꽤나 사회 비판적인 언더그라운드의 음반이 수십만 장씩 팔리면서 ‘텔레비전 가요’ 못지 않은 인기를 누리기 시작한 것이 그때이다. 신세대가 대중문화계의 화두가 되었고, 1980년대의 경향과 뚜렷이 구별되는 새로운 작품군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텔레비전에서는 ‘질투’를 필두로 한 이른바 ‘트렌디 드라마’ 바람이 불었고, 영화에서도 ‘결혼 이야기’ 같은 로맨틱 코미디 붐이 일었다. 심지어 문학에서도 포스트모더니즘 바람이 불 때가 이때이다.
  이들은 모두 1980년대식의 칙칙함과 확연히 결별을 선언하고 있었다. ‘잘 살아 보세’와 ‘하면 된다’를 외치면서 온 국민이 허리띠를 졸라 매고, 그러한 개발독재에 맞서 결연하게 머리띠를 묶었던,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의 개발도상국의 느낌을 1990년대의 신세대들은 과감히 떨쳐내었다. 1970~80년대에 태어난 이들은 어릴 적부터 거버 이유식과 코카콜라를 먹고,
컬러 텔레비전으로 마이클 잭슨을 보며, 아파트와 학원을 오가면서 성장한 세대이다. 원하는 것에 대해서 별로 참아본 적이 없고 큰 좌절 역시 별로 경험해본 적이 없으며, 익명의 도시 사람들과 부대끼며 사는 생활습관을 지닌 아이들인 것이다. 도시의 수많은 문화체험을 통해 현실만큼 가상에 익숙하고, 아날로그 못지 않게 디지털에, 연속적 발전보다는 분절과 비약에, 불변하는 확실함보다는 불확실함에 익숙한 세대이다.
 
 
“나는 나일 뿐, 이전의 어떤 명분과 당위에도 휘둘리지 않고, 그냥 나 좋을 대로 살고 내 눈에 보이는 대로 솔직하게 말한다. 구린 구세대들은 우리 간섭하지 말고 늬네끼리 살아라.” 신세대들의 태도는 이런 거였다. 개인의 욕망은 그 자체로 존중받을 만한 것이었고, 이를 억제하라는 윤리는 억압으로 받아들였다. 이들은, 똥꼬치마와 배꼽티처럼 기성의 관념으로는 음란하기 짝이 없는 노출을 일삼고 멀쩡한 청바지를 찢어 입으면서 게으를 수 있는 욕망, 심지어 자신을 파괴하는 욕망을 말하기 시작했다.
이런 흐름이 바로 1992년부터 시작되어 1995년 무렵 그 상승 분위기가 절정에 이르렀다. 그런데 1992년은 이른바 문민시대가 시작된 해로서, 1980년대에 폭발했던 민주화에 대한 요구는 이 시대에 이르러 제도권 안으로 흡수되면서 정리되기 시작했고, 국민의 기본권과 개인의 자유는 매우 중요한 가치로 인정되기 시작했다. 경제적으로는 3저 호황으로 1970~80년대 고속성장시대의 마지막을 구가하면서 1만 불 소득을 눈앞에 두며 선진국 대열 운운하던 때이기도 했다. 이 시대 대중문화의 경향은 바로 이런 정치·경제적 상황의 뒷받침으로 가능했다.
지루할 만큼 편안하게 ‘포장된’ 문화상품의 한때
 
어떤 경향이든 처음 그 경향이 만들어져 상승하는 시대가 가장 기분 좋게 아름다운 법이다. 낡은 것을 부수면서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 가는 적당한 긴장감과 열의, 패기만만함과 저돌성 같은 것이 느껴진다. 겉으로는 조금 단순하고 어설픈 구석이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기 때문에 껍데기의 완전함이나 내용 없는 화려함 같은 것으로 퇴락하지 않은 알맹이 있는 내용과 충만함을 보이고 있고, 이런 것들을 가능하게 하는 건강한 긴장감이 유지되고 있는 때인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경향이 충분히 성장하여 주도성을 쥐게 되면 안정감을 얻기는 하지만 상투화와 권력화의 경향을 보이며, 쓸데없는 치장과 재주에 집착하고 때로는 거드름까지 내보이는 난숙함이 나타나게 된다.
1992년부터 1995년까지가 상승하는 시대였다면, 96~97년은 안정과 난숙의 시기이다. 서태지가 1996년 벽두에 은퇴를 선언했다는 사실은 이 점에서 매우 시사적이다. 1990년대의 첫 시기에는, 대중들에게 호응을 얻을지 못 얻을지 확실하지 않은 새로운 경향들이 긴장감 있게 치고 올라오는 시대로 나름의 실험성과 참신함을 지니고 있었던 것에 비해, 이제 그 인기와 대중성이 충분히 확인된
  1996년 이후에는 의도적인 기획에 의해 이윤성이 검증된 전형·방식이 되풀이되는 현상을 보인다. 단지 포장이 더 화려해지고 기술 수준은 크게 상승했지만, 첫 시기의 작품들과 같은 패기만만함과 저돌성 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고, 매끈하게 잘 다듬어진 상품들이 지루하리만큼 편안한 느낌만을 줄 뿐이었다. 대중가요계로는 바로 HOT의 시대가 이 때이다. 이러한 흐름에서는 이윤이 검증되지 않은 불안한 창의성은 설 자리를 잃게 되는데, 이런 흐름에 동의할 수 없는 그룹들은 더더욱 과격한 실험성과 저항성을 내세우면서 언더그라운드에서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가게 된 시기로, 1990년대의 제2기라고 부를 만하다.
하지만 이 시기는 1997년 말로 끝나게 된다. IMF사태로 불리는 외환위기를 맞으면서이다. 그로써 1990년대의 경향은 완전히 끝나버리게 된다. 그리고 순정적인 영원한 사랑과 끈끈한 인간적 의리, 고생스러운 시대의 성공담 같은 옛 경향이 다시 부활하면서, 영화에서는 코미디를 대신하여 여성용 순정적 멜로물과 남성용 조폭액션이 새로운 경향으로 부각된다. 텔레비전 드라마에서도 ‘오남매’ 같은 복고풍 드라마나 살아남기 위한 그악스러운 생존 경쟁의 트렌디 드라마, 영화의 영향을 받은 ‘가을동화’류의 순정물이 인기를 끌었다. 가요계에서도 젊고 도전적인 댄스뮤직이 주춤거리는 대신 발라드가 부활하게 되고, 순정적 사랑을 재확인하는 김종환의 노래나 가족간의 사랑을 강조하는 노래가 인기를 얻게 된다. 명분과 당위나 안정감보다는 개인의 욕망과 참신함, 변화를 우선적 가치로 놓았던 1990년대의 흐름이 완전히 중단된 것이다.
그러나 경제위기의 충격이 크다고 하더라도 한번 고삐가 풀린 욕망과 변화의 욕구가 완전히 과거로 되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다. 개인의 욕망과 금기를 허물고 싶은 욕구는 얼어붙은 사회 분위기 속에서도 틈만 있으면 고개를 내민 것이다. 현실이 이러하므로, 순정적인 영원한 사랑이나 남성적 의리의 세계는 더욱 비현실적인 죽음 모티브(암으로 죽든 살해당하든,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사랑을 하든)로 과장된 비극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었다.

젊고 도전적인 흐름으로 변화, 그러나 참신할지는 의문
 
그런데 바로 작년부터 분위기가 슬슬 다시 풀리기 시작했다. 1990년대 경향은 완전히 말기적인 모습으로 나타났다. HOT의 해체로 댄스뮤직의 시대가 저물었음이 확연해졌고, 새로운 경향을 찾지 못하는 가요계는 리메이크와 편집음반이 난무하고 있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말기적 증상인 셈이다. 그런 한편, 엄숙한 조폭류가 수그러들고 코미디가 고개를 들면서 다시 현실을 솔직하게 드러내기 시작했고(‘신라의 달밤‘에서 ‘가문의 영광’에 이르는 조폭코미디), 그악스럽던 싸움판 같은 성공담이 조금 부드럽고 코믹한 성공담으로 변주되기 시작했으며(‘내 사랑 팥쥐‘, ‘별을 쏘다’ 등), 다시 금기를 넘어선 욕망을 다룬 작품이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로망스’, ‘고독’ 등). 이제 IMF의 충격에서 벗어나 경제가 조금 나아졌다는 증거이면서, 동시에 더 이상 비현실적인 당위로부터도 자유로워질 정도로 현실감을 되찾았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은 1990년대 초반의 들뜬 호황의 분위기와는 다르며, 1990년대 말의 힘든 시기를 거쳐온 냉엄함이 여전히 남아있었다.
올해 2003년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새로운 정권이 시작되는데, 그것은 2002년 월드컵으로부터 아시안게임을 거쳐 국민 경선과 반미 촛불시위를 거친 대중의 자발성과 참여에 의해 시작된 진보적 성향의 정권이다. 말하자면 사람들은 안정이나 수구보다는 진보적 변화를 원하고 있고, 그것을 대중의 자발성으로 뒷받침할 태세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중문화는 조금은 과감한 변화와 젊고 도전적인 흐름으로 바뀔 가능성이 있다. 안정적이고 익숙한 흐름보다는 조금 낯설지만 패기만만한 참신함이 두드러질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1990년대처럼 들뜬 분위기나 철없을 정도로 희망찬 분위기는 아닐 것 같다. 사회현실이나 정치에 대한 진지한 관심, 대중 자신들의 참여와 노력 속에서만 세상은 바뀐다는 차가운 현실에 대한 인정이 대중문화에서도 드러나, 1980년대적 현실참여적인 진지함과 집단성에 1990년대적인 도발성과 실험성 및 개인적 자유주의가 묘하게 결합되는 양상을 드러낼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그것이 어떤 장르에서, 어떤 양상으로 먼저 터져 나올지는 알 수 없다. 아니, 어쩌면 벌써 시작된 이러한 경향을 내가 발견하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평론가는 그저 과거의 흐름만을 정리할 뿐이므로.
 
 

Posted by HS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