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아니지만 가장 많은 옷을 가진 소년이 있습니다. 벨기에의 ‘오줌 누는 소년상.’ 모르는 사람이 보면 작은 조각품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전통 의상을 입고 있거나, 친숙한 모자를 쓰고 있다면 특별한 감정이 생기게 될 겁니다. 이 소년이 옷을 입게 된 데는 루이 15세에서 시작됐다고 합니다. 겨울에 이 동상을 처음 본 루이 15세가 아이가 추워 보인다며 옷을 선물한 거죠. 동상을 훔쳐갔다가 돌려주며, 훔친 것에 미안하다는 의미로 옷을 선물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어쨌든 그때부터 이 소년에 대한 감정 만들기가 시작된 듯합니다. 세계 각국에서 이 소년에게 옷을 선물로 보내기 시작했으니까요. 결국, 지금은 600벌이 넘는 옷을 지닌 소년이 됐습니다. 감정은 이렇게 우연한 순간, 우연한 사건으로 생기기도 합니다.
우리에게도 감정을 갖고 바라보는 소녀가 있습니다. ‘위안부 소녀상’. 소녀상은 어쩌면 가장 뜨거운 감정을 주는 동상일지도 모릅니다. 과거의 아픔과 분노와 짓밟힌 인권에 대한 항변... 깊고 다양한 감정을 공유하는 존재입니다. 우리 민족이 겪었던 아픔을 공유하는 존재이기도 하죠. 그래서 겨울엔 털모자를 씌워주기도 하며, 소녀의 아픔이 제대로 인정받고 사과받기를 함께 기다립니다.
감정이 생긴다는 건 전혀 다른 존재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채소에게 감정을 갖게 된 아이들
아이들은 채소를 싫어합니다. 전세계 어린이들이 지닌 공통점인 듯합니다. 벨기에의 어린이들도 하루 권장 섭취량의 30%밖에 먹지 않는다고 하니까요.
벨기에 슈퍼마켓인 Delhaize는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아이들이 채소를 다르게 바라보도록 하는 거죠. 바로 채소의 이름을 바꾸는 겁니다. 아이들이 싫어하는 당근, 오이, 버섯, 파가 아니라 아이들 시선으로 채소 이름을 바꿔주는 거죠. 이른바 “Magic Veggies(마법의 채소)” 캠페인입니다.
▲Delhaize, 'The Vegetables Name Change (출처 : Ads of the World Vimeo)
https://vimeo.com/272428257
먼저 아이들에게 채소를 보면 연상되는 이름을 고르도록 했습니다. 아이들의 선택대로, 당근은 오렌지색 로켓이 되고 호박은 도깨비방망이, 굴버섯은 난쟁이 트럼펫, 대파는 마녀의 빗자루, 피망은 보물 상자, 토마토는 광대의 코. 이렇게 총 12가지 채소의 이름이 새롭게 바뀌었습니다. 새로운 이름은 슈퍼마켓 매대에도, 영수증에도, 포장에도 그대로 쓰였습니다. 단순히 별명을 붙이고 끝난 게 아니라 아이들이 접할 수 있는 모든 것에 새로운 이름을 붙여, 완벽한 이미지 변신을 시도한 거죠.
결과는 성공적입니다. 2주 만에 채소 매출이 151%로 성장했으며 총 이백만 개의 채소가 팔렸다고 합니다. 아이들은 의도대로 채소를 조금 더 재미있게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그저 먹기 싫은 채소였던 것이 이름을 바꾸면서 아이들에게 친근한 존재로 변신했습니다.
세상에 없는 두 청년이 주는 감정
AT&T는 두 명의 청년을 소개합니다. 청년은 평범해 보입니다. 한 명은 운동선수나 트레이너가 되는 게 꿈이었다고 합니다. 결혼해서 아이에게 운동을 가르칠 수도 있었다고 합니다. 다른 한 명은 비디오 게임을 디자인하는 게 꿈이었다고 합니다. 고양이를 사랑하고, 학교에선 축구를 하는 평범한 고등학생이었죠. 그렇게 꿈을 꾼 지, 각각 7년에서 8년이란 시간이 흘렀지요. 청년들은 과거 꿈을 꾸던 때보다 성숙해 보입니다. 지금 그들은 꿈을 이뤘을까요? 아쉽게도 그건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둘은 7, 8년 전에 이미 교통사고로 사망한 사람들이니까요. 사고의 원인은 ‘문자 메시지’입니다. 한 명은 운전하면서 문자를 확인하다 사고를 당했고, 고등학생이었던 다른 한 명은 운전하면서 메시지를 보는 또 다른 운전자에 의해 사고를 당했죠. 영상에서 두 사람은 부활해, 살아있었다면 변했을 지금의 모습으로 담담하게 얘기합니다. 하지만 건강한 그들의 모습은 비석에 놓인 사진으로 오버랩되죠. 모두에게 안타까움을 주는 반전입니다.
AT&T는 범죄 몽타쥬 전문가와 가족들의 인터뷰로 이 영상을 만들었습니다. 살아있었다면 변했을 현재의 모습을 처음 봤을 때 가족들은 숨이 멎을 듯한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막연한 아픔이 더 큰 안타까움으로 다가왔겠죠. 그들의 아픔은 사고 당시에 끝난 게 아니라 아직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2010년부터 꾸준히 ‘운전 중 문자 금지’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는 AT&T. 그들에 의하면 아직도 10명 중 9명은 운전하면서 문자 메시지를 한다고 하니, 위험은 아직 사라지지 않은 거죠.
‘It can wait’캐치 프레이즈로 진행되고 있는 캠페인은 30초 광고와 가족들의 아픔까지 다룬 5분 다큐멘터리를 통해 지속적으로 사람들을 설득하고 있습니다.
여행 트렁크가 만드는 감정
여행 가방은 어떤 감정을 만들 수 있을까요?
Delsey는 위치 추적이 가능한 여행 트렁크 브랜드입니다. 이 특징으로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요?
이야기는 사무실에서 일하는 아들로부터 시작됩니다. 워커홀릭 아들은 사무실에서 전화를 받습니다. 아버지의 부고를 알리는 전화죠. 아들은 아버지에 대한 감정이 그리 좋지 않습니다. 자신이 자라는 걸 곁에서 봐주지 않고 세계 여행을 다녔으니까요. 아버지를 원망하는 아들에게 어머니는 아버지의 마지막 편지를 건넵니다. 아버지는 편지에서, 아들을 위해 어마어마한 보물을 여행 트렁크 안에 숨겨놨다는 엄청난 사실을 얘기합니다. 아들은 바로 스마트폰으로 트렁크의 위치를 확인합니다. 아버지의 여행 가방을 찾으러 떠나죠. 하지만 트렁크를 찾는 일이 쉽지는 않습니다. 매번 가방을 손에 넣는 데 실패하죠. 멕시코에 있다고 해서 멕시코로 가면 가방은 중국으로 떠나고, 중국에 가면 가방은 베트남에 있는 걸로 위치가 확인되니까요. 아들은 가방을 따라서 그렇게 여러 나라를 찾아다닙니다. 그러면서 턱에 수염도 나고 머리도 자라고, 점점 아버지와 같은 모습으로 닮아가죠. 결국, 돌고 돌아 다시 출발점인 파리로 돌아옵니다. 마침내 집에서 트렁크와 마주치게 된 아들, 보물을 확인하기 위해 트렁크를 열어 봅니다. 하지만 그 안엔 작은 메모가 있을 뿐입니다.
“이 모든 모험을 너와 나눌 수 있어서 행복하다. 너의 삶을 살아라.”
아버지의 마지막 한마디가 적혀 있습니다.
광고라기보다는 3분의 따뜻한 애니메이션. 위치 추적 기능을 감성적으로 풀어내, 기능적인 설득보다 감정적인 대화를 나누는 Delsey. 잔잔하지만 여운이 진한 감정입니다.
좋은 감정을 갖는 일
‘좋은 감정’이라는 단어. 누구나 따뜻하게 만들고, 마음을 열게 하는 말입니다. 영국의 Beefeater gin이라는 술 브랜드는 신제품과 연관된 좋은 감정을 만들기 위해, 냄새나는 영국의 지하철 통로에 딸기향이 나는 포스터를 붙였습니다. 신제품과 같은 향기입니다. 향기가 주는 감정도 약하지 않으니, 어떤 이는 지하철을 걷다 예상했던 냄새와 다른 딸기향을 맡고, 그날 저녁 지하철에서의 일상을 바꿔준 향기의 진을 찾게 될지도 모르죠. 초콜릿 브랜드 KitKat은 딜레이된 비행기의 승객들을 위해, 오직 딜레이된 비행기 티켓으로만 뽑을 수 있는 KitKat자판기를 공항에 설치했습니다. 지루한 기다림을 초콜릿으로 달래라는 센스 있는 선물입니다.
가장 이성적인 단어처럼 들리는 마케팅. 결국 마케팅의 목적은 가장 감성적인 감정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충격을 주기도 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기도 하고, 위트를 생각해내기도 합니다.
우리는 지금 감정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감정을 나누기 위해 SNS에서 ‘좋아요’를 누르고, 문자메시지와 함께 이모티콘을 띄우고, AI와 대화를 나누며 사물과도 인간과 유사한 교감까지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인터넷 게시판 댓글에는 수많은 사람의 감정이 넘쳐나고요. 세상의 어떤 감정들은 결국 당신의 감정까지 바꾸기도 합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어떤 순간에 어떤 요소로 우리의 감정이 바뀌는지 천천히 분석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순간에 브랜드가 찾아야 할 답이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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