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1-02 : 食思 - 그 여섯 번째, 엄마의 요리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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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d: 食思 - 그 여섯 번째, 엄마의 요리 

 

엄마의 엄마, 외할머니의 ‘갱시기’

 

 

徐 敬 宗
ProjectxT팀 부장 / marstour@hsad.co.kr

 

 

 

3년 전 어느 토요일, 장 보러 가는 차안 라디오에선 어머니의 음식에 관한 청취자 사연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녀의 어머님은 여수 분으로, 갓김치가 일품이라 했다. 서울로 시집와서도 간간히 얻어먹던 갓김치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다시는 먹을 수 없었고, 시중의 그 어느 것도 엄마표 갓김치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줄 순 없었다고 했다. 언제까지나 갓김치를 담가 주실 것 같았던 어머니는 더 이상 안 계셨고, 살아계실 때 제대로 배우지 못한 것을 그녀는 후회했다.

사연을 듣고 눈물이 났다. 나에게도 언젠가 그리움의 대상이 되는‘ 어머니의 음식’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기 때문이다.
분가한 후 어머니와 외할머니는 집에 갈 때마다 먹을 것을 한 봉지씩 챙겨주신다. 45년 건어물집 사장다운 내공이 돋보이는 멸치볶음과 새우볶음 같은 반찬류는 물론, 파 한 단, 감자 몇 알 같은 식재료에, 새알수제비·호박죽·도토리묵 같은 한 끼 식사까지, 다양하게도 챙겨주신다. 지금은 그것들이 투명 비닐이나 뚜껑이 헐렁한 색 바랜 타파통에 챙겨오는 그냥 반찬, 한 끼 요깃거리이지만 언젠가 그 음식들도 절절한 그리움의 존재가 될 것이다.


 

 

 

엄마의 부엌,‘ 음식유산 프로젝트’
 

‘노인 한 명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사라진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이 말은 어른들의 지혜에 관한 것이지만, 음식도 이와 같다. 한 사람이 사라지면 그 사람의 음식도 전부 사라지는 것이다. 유일한 흔적이라면 그 음식을 먹고 뼈와 살을 키운 자식들뿐이다.
어머니와 함께 나를 키워주신 외할머니는 1927년생이시다. 외할머니는 시골 할머니들이 그렇듯 소박한 음식을 즐겨 해주셨다.

깻잎절임·무말랭이·가죽나물무침…· 90세 외할머니는 그녀의 어머니로부터 그런 음식을 배우셨을 테고, 그 외할머니의 음식을 나의 어머니가 배우셨다. 조선말기 음식과 현대 음식의 연결고리 같은 존재가 지금의 외할머니쯤 될 것 같았다. 그런데 만약 외할머니가 돌아가신다면 그녀가 알고 있는 개인적인, 그리고 문화유산적인 음식자산은 모두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런 생각에 외할머니와 어머니의 음식을 기록으로 남기기로 했다. 방송하는 친구, 사진 찍는 친구와 함께 외할머니가 음식 하는 모습을 담았다. 메뉴는 할머니가 자주 해주시던‘ 갱시기’였다. 갱시기는 주로 경상도 지방에서 먹는 김치죽 같은 음식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면 ‘그런 음식이 있어?’라는 반응이 나오는, 나름 생소한 요리이다. 세팅을 하고 할머니가 갱시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인터뷰를 담았다. 이 음식은 언제 처음 드셨는지, 어느 분에게 배웠는지 할머니가 기억하는 음식의  추억을 PD 출신 친구가 캐물었다. 카메라를 들이대자 내가 알던 할머니가 아닌 한 명의 인간이 보였다. 거의 30년을 함께 살았지만 할머니로부터 자신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리곤 레시피할 수 있도록, 아니 따라 만들 수 있도록 요리 과정을 촬영했다. 요리책처럼 계량화해 레시피화하고 싶었지만 대부분의 어머님이 그러하듯 우리 어머니들의 음식은 계랑하기가 힘들다. 감(感)이기 때문이다. 소금은‘ 적당히’ 치고, 싱거우면 국간장‘ 더’ 넣고…. 계량화는 앞으로 고민해야할 문제이다. 이렇게 첫 촬영은 2년 전, 외할머니의 갱시기와 어머니의 도토리묵으로 시작됐다.

 

 

앞으로의 세대는 무엇을 만들어 먹을 것인가?


음식과는 상관없지만 간혹 이런 생각을 한다.‘ 지금의 어른들이 트로트를 좋아하듯 지금 아이들이

크면 힙합과 아이돌 음악을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노래방에서 부를까?’ 마찬가지로 햄버거·피자·라면·삼각김밥 등을 즐겨먹었던 지금의 고등학생 또래는 나이 들어서 무엇을 먹을까 궁금했다.
누군가는 한국의 전통음식을 계승하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식당에서나 한식을 먹는 날이 올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한식과 관련된 요리책은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고, 전문적으로 한식을 연구하는 요리사들도 많기에 한식은 생존할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누군가의 어머니의, 누군가의 할머니의 요리를 기록으로 남기고 나중에 꺼내볼 수 있는 아카이브를 구축하고 싶었다.

어머님이 자식을 위해 남기는 음식유산 같은.


누군가는 의미 없다 말할 터이지만 이것은 어학공부나 다이어트 같은 나의 새해 목표이다. 대놓고 사보에 계획을 밝힌 이유는 내 스스로에 대한 압박 같은 것이다. 도메인도 몇 개의 후보를 고민 중이고, 사이트의 뼈대도 러프하지만 나왔다. 사이트 구축과 동시에 콘텐츠 확보를 병행할 예정이다. 혹시나 이 글을 읽고 계신 누군가 중, 남기고 싶은 어머니만의 음식이 있는 분은 연락주시라. 시간이 지나 꺼내보았을 때 가치 있는 영상을 남겨드릴 것이다. 물론 투자를 하고 싶은 분들도 대환영이다. 촬영과 사이트 구축엔 돈이 드니깐.

이번 호는 촬영 이후 전화로 다시 들은 1927년생 박숙희 여사의 갱시기 레시피를 소개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갱시기 어떻게 만들죠?


“뭐? 갱시기, 어떻게 하느냐꼬? 어떻게 해~ 갱시기는 원래 끓일 적에 김치 송송송 쓸어 넣고 참기름을 쪼금, 많이 넣지 말고 다글다글 볶아요. 고럼 내중에 김치를 씹으면 맛있어. 나중에 며루치 좀 넣고, 떡 있으면 떡도 좀 넣고. 뭐 달리 하는 게 뭐 있나.”


저번엔 다싯물도 내지 않았나요?


“그래. 다싯물을 낼라카면 며루치하고 다시마하고 넣어요. 다싯물 우러나옴 따로 따라 넣고, 냄비에다 아까맹고롬 김치 송송 썰어 넣고, 다싯물 따라 넣고 아까마냥 해. 콩나물도 있으면 좀 넣고. 그럼 아주 갱시기가 맛있어.”

(재료엔 식은 밥도 들어간다. 박숙희 여사가 깜빡하신 듯…)

 

 

 

 

Posted by HS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