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1-02 : 우리들의 판타지아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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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 : 우리들의 판타지아

 

 

 

이 재 호
AP팀 부장 / jhlee92@hsad.co.kr

 

 

 

 

 

왜 우리는 ‘응팔’에 열광하는가?
     - 신원호 연출 & 이우정 극본, <응답하라 1988> 

 

요즘 인기 있는 드라마라면 단연, <응답하라 1988>이다. 이 글을 쓰는 시점 기준 <무한도전>을 뛰어넘는 무려 17.8%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종영을 앞두고 있다.‘ 복고’는 문화예술 전 분야에서 어느 시대에나 사랑받아온 소재이지만,‘ 응답하라’ 시리즈 중에서도 특별히 이번‘ 1988’편이 더욱 큰 사랑을 받는 데는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응답하라’ 시리즈의 기본전략


‘응답하라’ 시리즈가 재미를 만들어 내는 기본적인 전략은 이렇다.‘ 복고’와 ‘예능’이라는 파괴력 있는 무기를 앞세워 이를 최전선에 배치함으로써 시청자의 관심을 먼저 잡아 끈 후에 본격적인 로맨스로 지원 사격하여 시청자의 마음을 완전히 점령하는 수순이다. 즉 복고와 예능이라는 코드가 앞에서 파괴력을 갖지 못하면 드라마 전체가 힘을 잃고 쓰러지고 마는 구조라는 측면에서 어찌 보면 리스크가 큰 전략이기도 하다. 따라서 리스크를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전술적 장치, 가령 디테일과 캐릭터, 콩트식 에피소드, 배경음악, 트릭 등등의 표현요소가 곳곳에 배치돼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드라마 내내 보는 재미, 듣는 재미, 웃는 재미를 누릴 수 있다. 그러니까‘, 1 . 깨알 같은 디테일로 추억을 소환하는 재미, 2. 예능 스태프가 만든 드라마답게 지루할 틈 없이 등장하는 콩트식 에피소드, 3. 주연보다 빛나는 조연의 예능적 캐릭터 배치, 4. 드라마 곳곳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그때 그 시절 그 노래, 5. 도대체 누가 남편인지 안달나게 하는 각종 트릭들’ 이런 것들이다.‘ 응답하라’ 시리즈의 힘은.

 


         

 

 

<응답하라 1988>만의 특별함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이번 <응답하라 1988(이하 응팔)>의 경우는 좀 다르다. 물론 복고와 예능이라는 요소는 여전히 강력하게 가져가지만 단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이번‘ 응팔’이 탑재한, 드라마 전반에 흐르는폭탄은 바로‘ 가치관’이다. 그리고 그 가치관은 그때 그 시절을 회상하게 하는 힘 이상의 공감대, 즉 인간이라면 누구나 희구하는 보편적 가치이자 우리에게 사라져가고 있는 휴머니즘에 대한 것이다.


‘응팔’의 경우 여느 시리즈와 다르게 웃음에 할애된 부분보다 눈물에 할애된 부분이 많고, 실제로 매회 눈시울을 적시게 하는 장면이 많은 것 역시 이런 가치관과 관련된다. 또한 이야기의 중심이 단지 주연들의 로맨스에만 집중되지 않는다는 측면, 아이들의 사랑 이상의 어른들의 인생에 대한 조명이 있으며, 무엇보다 개인 간의 관계보다는 공동체와 가족의 의미가 부각된다는 측면에서 다르다.

가령, 드라마 초기에 눈물을 쏟게 하는 성동일 어머님 장례식 장면을 보자.
떠들썩한 장례식을 마치고 형님과 조우하면서 형제들끼리 끌어안고 눈물이 터지던 그 장면을 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사실 드라마 초반이라 인물에 감정이입도 하기 전이었고, 특별히 그들 형제에게 사연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눈물이 흘렀던 것일까? 단지 배우들이 연기를 잘해서 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고 알았다. 언젠가부터 우린 장례식에서 부모님의 사망을 두고 그토록 서럽게 우는 사람들을 본 적이 없게 된 것이다.‘ 어떤 병이 들어서 얼마가 들고 얼마나 더 간병을 해야 하며 남겨둔 재산은 얼마가 되고 또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 등등이 누군가의 부모님 장례와 관련해서 오고 가는 말들이 돼버렸다. 그러니까‘ 부모님=돈’이라는 등식이 우리들의 대화 밑 어딘가에 깔려있는 전제가 된 셈이다.
하지만‘ 응팔’에서의 성동일과 그 형제들의 눈물에는 이해관계가 없다. 그들이 우는 이유는 그저 부모님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그리움과 회한의 감정에서 비롯된다. 그 장면은 우리가 부모님이라는 존재에게서 잊고 있었던 인간적인 감정을 깨워 우리를‘ 이해관계자’에서‘ 한 사람의 인간’으로 호명한다.

인간의 손익보다 우선하는 휴머니즘의 모습은 드라마가 진행되는 내내 곳곳에서 등장한다. 선우 엄마가 집을 저당 잡혀 쫓겨나야 할 상황에서도 이웃들은 대뜸 돈을 빌려주려 한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다. 오히려 자신들이 가진 돈이 얼마 없다는 걸 미안해할 정도다. 요즘 같으면 사기 당하기 딱 좋은 태도다. 개인 간에 돈을 빌려주고 빌리는 풍토가 사라진 요즘, 참으로 진기한 풍경이 아닐 수 없다. 덕선이 아버지는 보증을 잘못 섰다가 빚더미에 올라앉았지만, 친구를 원망하지 않는다. 바둑 천재 아들을 둔 덕분에 어마어마한 갑부가 된 택이네지만, 이웃들 누구도 돈만을 부러워하는 천박함을 보이지 않는다. 단지 돈을 많이 번다는 이유로 어른이든 아이든 그들에게 아첨하고 주위를 맴도는 짓 따위는 하지 않는다.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그들에게는 그저 물가에 내놓은 애처럼 걱정되는 택이이며, 말수가 적어 답답하기 그지없는 택이 아버지일 뿐이다. 그러니까 그저 한 사람의 인간일 뿐이다. 이런 모든 상황은 단지‘ 그땐 그랬지’라는 추억의 향수와는 다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맞아, 인간이 원래 저랬었지’하는.


휴머니즘은 로맨스에서도 드러난다. 사랑이 곧 소유이자 현실이 된 시대, 그러나‘ 응팔’에서는 아이들이지만 이들의 사랑 또한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다. 이 드라마의 로맨스 라인들을 보면 하나 같이 자신의 필요나 욕심을 내세우지 않는다. 정환이와 택이가 덕선이에게 대시하지 못하는 이유는 단지 부끄러워서도 아니고 자존심이 상해서도 아니다. 더 예쁜 누군가가 있을 거라는 기대 때문에, 손해 보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에 망설이는 요즘의 썸과는 다르다. 그들이 망설이는 이유는 단 하나, 친구 때문이다. 친구에 대한 걱정이 자신의 욕망보다 더 중요한 판단기준이다. 사랑이냐 우정이냐 하는 식의 이분법적 얘기가 아니다. 다만 사랑에 있어서도 우정이 걱정되는, 그 미련스럽도록 인간적인 그들의 마음이 아름답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인간적임에서 오는 아름다움 때문에 우리는 울컥울컥 마음이 동요하는 것이다. 역시 잊어버리고 있었던 인간에 대한 향수 때문이다.
‘맞아, 사랑이 원래 저랬었지’ 하는.

 

 

 

또 하나의 특별함

 

이 드라마의 특별한 표현요소가 하나 더 있다. 바로 매회 마지막 즈음에 등장하는 내레이션이다. 그날의 이야기를 클로징하는 평범한 멘트인 것 같지만, 듣다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의 명문이다. 그리고 그 명문들은 하나 같이 인생·사랑을 향해 있다. 마치 인간성을 복원하려는 사명감을 가진 시(詩)라도 되는 것처럼. 이 드라마의 흥행이 단지 복고와 예능의 장치에만 있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내레이션 중
특히 기억나는 구절을 옮겨 적어 본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건 단지 그 사람의 체온을 좋아한다는 게 아니라 체온을 닮아간다는 얘기야. 그리고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그 사람이 너를 끝없이 괴롭게 만든대도, 그래서 그 사람을 끝없이 미워하고 싶어진대도 결국 그 사람을 절대 미워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해. 사랑한다는 건 미워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결코 미워할 수 없다는 뜻인 거야.’  - 12화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이 드라마를 보고 있자면 한 장면 한 장면, 대사 한 마디 한 마디, 소품 하나하나에도 온 정성을 다한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리고 그건 단지 재미를 위한 장치 이상의, 인간과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담기 위한 정성이기도 하며, 무엇보다 보편적인 인간성 회복을 위한 메시지라는 측면에서 감동적이다. 재미와 감동을 모두 잡아낸 그들의 솜씨에, 그들의 정성에, 그들의 통찰에 박수를 보낸다.

 

Posted by HS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