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1-02 : Curation Conversation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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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ration Conversation

 

 

     답
          하
               라!

 

 

 

 

 송 한 나
스페이스커뮤니케이션팀 차장 / hannasong@hsad.co.kr

 

 

<응답하라 1988>


최근 인기리에 종영된 <응답하라 1988>은 기존 시리즈에 이어 많은 이의 사랑을 받았다. 연이은 밤샘 근무로 눈 뜨기조차 힘들었던 이번 CES 출장에서도 한두 시간 겨우 짬이 날 때면 꿀잠보다는 밀린‘ 응팔’을 볼 정도였으니 나 또한 그 매력에 단단히 빠졌던 듯하다.

얼마 전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의 자리에서도‘ 응팔’은 단연 화제였다. 신나게 드라마 이야기를 하다 문득 궁금한 마음이 들었다. 1988년이면 우리가‘ 국민’학교를 다니며 유행처럼 번진 굴렁쇠를 굴리던 기억 외에는 딱히 남아있는 기억이 없는 시대인데, 왜 우리는 쌍문동 이웃들의 일상에 공감하고 있는 걸까?
덕선이가 정환이와 결혼을 하든 택이와 결혼을 하든, 왜 유부녀인 우리들이 덕선의 남편을 상상해보며 ‘ 정환이와 결혼하면 외로울 것이고, 택이랑 결혼하면 평생 아들 하나 더 데리고 사는 것 같을 거라’는 둥 고민하는 것일까?
이유는‘ 응팔’이 끊임없이 우리에게 건넨‘ 대화’ 때문이 아닐까 싶다. 대다수의 드라마에서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나 자극적인 이야기를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건넸다면‘ 응팔’은 누구나 경험해보았을 법한 억척스러운 엄마, 무심한 듯 따뜻한 아빠, 형제간의 애증, 더디게 느껴졌던 고3 시절, 친구들과의 추억, 이성친구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이야기하며 우리에게 우리의 추억을 응답하길 기다린다. “예전에 쌍문동에 이런 사람들이 이렇게 살았습니다”로 끝나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런 사람들이 이렇게 살았었는데 넌 어땠어? 그때 너도 힘들었지?”라며 우리로 하여금 응답하게 만드는 것이다.

 

응답하라, ‘전시’


10여 년간 뮤지엄 큐레이터로서 활동한 내게 가장 큰 터닝포인트가 있었다. 내게 전시란‘ 사물을 시각적으로 전달함으로써 의도한 교육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었다. 그게 내가 책으로 배운 전시의 역할이었고, 실제 업무를 하며 가장 보람을 갖고 임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관람객들이 전시를 보며 나누는 대화를 분석하며 관람객이 전시를 어떻게 해석하고 어떠한 관람경험을 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진행한 조사 결과는 그동안 내가 얼마나 일방적인 전시를 관람객들에게 강요했는지 깨닫게 했다.
“정말 비극적인 역사였구나.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우리가 더 노력해야겠다”는 당연한 반응을 기대했던 유대인박물관에서 관람객들은 개인의 관점에서 전시물을 바라보고 해석하고 있었다. “이 마스크들은 마치 고함을 지르는 나치 군인들 같아”,“ 마스크 위를 밟을 때 나는 소리가 피해자들의 절규 같아”,“ 이 무심한 표정들의 마스크가 마치 전쟁을 방관했던 우리의 모습 같아” 등, 큐레이터들이 수많은 고증을 거쳐 애써 준비했을 설명문을 스쳐 지나며 동일한 전시물에 대해 수많은 각자만의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었다. 개인과 전시물과의 공감대 형성이 중요하다는 것은 다른 종류의 전시에서도 살펴볼 수 있었다. 이름조차 생소한 수억 만 년 전 멸종된 동물을 전시하던 한 뮤지엄에서는 그동안 수많은 전시설명문을 통해 두꺼운 두개골의 특징을 담은‘ 교육적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다. 하지만 관람객의 관심을 끌지 못하자 묘안으로 관람객들이 일상 속에서 접하는‘ 럭비 헬멧’ 사진을 함께 붙여놓았다. 그러자 관람객들이 그 익숙한 이미지에 관심을 갖고 그 동물의 특성을 쉽게 이해하며 더 많은 정보를 알아내고자 그동안 무용지물처럼 느껴졌던 전시설명문을 자발적으로 읽어나갔다. 나아가 멸종된 동물의 특징과 일상 속 사물을 매칭시키는 SNS 놀이로 퍼지기까지 했다고 한다.

 


 

응답하라,‘ HS Ad’


IFA·CES 등과 같은 세계적인 전시를 맡은 팀에 있다 보니“ 부럽다”는 반응을 종종 접한다. 세계 시장에서 대대적으로 런칭하는 제품들을 화려하게 전시하고, 우수함을 넘어 현실과 비현실 사이의 몽환 경험마저 들게 하는 OLED 히어로를 보며 나조차도 감탄할 정도이니 우리 팀의 고생과 능력은 알아줄만 하다고 자화자찬해본다.
하지만 내가 전시를 하며 가장 보람을 느끼는 부분은 화려한 히어로와 전시연출을 넘어 우리가 전시를 통해 건네는 대화에 관람객들이 응답해줄 때이다. 스마트홈 전시공간에 한 고령의 관람객이 찾아와 일상 속에서 겪는 고민을 풀어내며 우리가 연출한 공간에 공감하고 희망을 이야기하는 모습, 허리가 아파 빨랫감 넣기 힘들어 고생했는데 전시장에서 시연해보니 우리 제품은 편리하다는 이야기로 시작해 유명한 척추병원 정보 교환으로까지 이어진 관람객들과의 대화…… 내게는 그 어떤 보도자료나 서베이 결과보다 의미가 있다.
우리는 짧은 기간에 수많은 수정을 거쳐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최강의 결과를 창출하는 광고회사이기 때문에 지친 몸과 마음으로 자칫 광고주 ‘대응’에 익숙해질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대행을 통해 궁극적으로 만나는 것은 대중이다. 광고를 통해 대중을 만나고, 전시를 통해 대중을 만나는 우리이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대중이 응답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응답한다’는 것은 단순히 좋고 나쁨을 답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우리의 이야기에 이어 대중의 이야기로 이어지는 것임을 기억하면서.

 

Posted by HS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