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7-08 : The Difference - 번역과 논문의 차이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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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Difference

 

번역과 논문의 차이


번역자는 단어와 단어, 문장과 문장, 글 전체의 맥락을 수없이 관계 지으며 원 저자의 의도를 자신의 글로 토해내는 매개자다. 번역자의 독창성이 개입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다. 아마 광고 만드는 일도 그 맥락을 같이 하지 않을까 싶다.

 

논문과 번역, 어느 것이 더 독창적이고 학술적인 작업일까. 더 고려해볼 가치도 없이‘ 논문’이라 대답할 이가 대부분일 것 같다. 그러나 번역도 논문 못지않다. 조선 최대의 생활백과사전인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를 번역한 경험을 토대로 이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類類相從’의 뜻은 어떻게 풀 수 있을까
‘차이‘ ’다름’에 대해 글을 쓰려다 보니‘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해서 굳이 우리말로 풀 필요조차 없는 한자성어다. 이 성어를 한글로 옮긴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풀겠는가. 10여 분 간 인터넷을 검색해봤더니, 뜻풀이가 무려 16가지나 검출됐다.
‘같은 무리끼리 서로 사귄다’는 사전적 의미를 필두로‘, 끼리끼리 논다’까지. 지면 제약상 모두 소개할 수는 없으나 이 성어 풀이에 쓰인 낱말은 모두 19개였다. 한글 풀이를 구성하는 관형어와 주어·부사어와 서술어 등네 그룹은 다음과 같다.
‘같은·비슷한’(2개), ‘무리(들)끼리·패끼리·동아리끼리·부류끼리·동류끼리·사람끼리·것끼리’(7개), ‘서로·함께·잘·끼리끼리’(4개), ‘사귄다·상종한다·어울린다·따른다·모인다, 논다’(6개). 이 네 그룹이 기계적으로 결합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총` 378가지(=`2×7×4×6). 여기에‘ 끼리끼리 논다’나 ‘같은 무리끼리 어울린다’처럼 두세 어구가 문장이 될 경우와 서술어 어미 변화까지 고려하면 그 수는 더 커진다. 이론상으로는 ‘유유상종’에 400가지 이상의 번역문이 가능하다는 결론이다.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하고 의미도 정확한 이 한자를 옮기는 종류만도 이렇게 많다. 이럴진대, ‘듣보잡’(?) 투성이인 한문 원전을 번역할 때 얼마나 많은 경우의 수가 있겠는가. 정답이 없는 번역의 세계에서 언어를 조율하는 경우의 수는 거의 무한대에 가까울 것이다.
서로 다른 사람이 동일한 한자 원문 20자를 동시에 한글로 번역한다고 했을 때 그 번역문이 일치할 확률은 제로라고 단정을 내려도 무방하다. 심지어 한 사람이 하루 간격으로 같은 문장을 번역해도 완전히 일치할 확률은 원문이 많을수록 제로에 가까워진다. 시험 삼아 독자 본인부터 번역에 자신 있는 아무 원전을 붙잡고 시간 간격을 두고 번역해 보시라. 우리말 만들기도 쉽지 않을 게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속담이 여기에 적용됨을 확인할 수 있을 게다.
이런 현상을 볼 때 번역자의 단어 선택과 문장 다듬기는 독자적이고 창조적이라 해도 전혀 지나치지 않다.
번역은 단순히 글자를 일대일로 대응시켜 한글로 옮기는 작업이 아니다. 사전의 뜻을 기계적으로 옮겨서는 원래 의미를 결코 오롯이 살려낼 수 없다. 원문의 뜻을 숙지하고 당대 독자에게 그 의미를 쉽게 전달해야 한다. 번역자는 단어와 단어, 문장과 문장, 글 전체의 맥락을 수없이 관계 지으며 원 저자의 의도를 자신의 글로 토해내는 매개자다. 번역자의 독창성이 개입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다. 아마 광고 만드는 일도 그 맥락을 같이 하지 않을까 싶다.
인문학 분야의 경우 논문에 번역서 일부를 그대로 베끼거나 조금씩 말을 바꿔 인용하는 사례가 많다. 심지어는 자신이 직접 번역하는 경우보다 많기도 한다. 이 사실에서 번역이 논문 저술보다 더 어려운 작업임을 알 수 있다.

 


실력이 에누리 없이 ‘뽀록나게’ 되는 일
논문은 아무나 쓴다. 그러나 번역은 아무나 못한다. 이것이 도올 김용옥의, 이른바 ‘동초서초론(東抄西抄論)’이다. 논문은 원문 여기저기서(東西) 조금씩 베껴(抄) 자신의 결론을 낼 수 있다. 그러니까 원문을 모두 이해하지 못해도 논문은 쓴다. 하지만 번역은 원문의 한 글자도 빼먹을 수 없다. 알든 모르든 모든 내용을 자신이 이해한 틀로 풀어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실력이 에누리 없이 ‘뽀록나게’ 된다. 어느 작업이 더 어렵겠는가.
번역은 논문과는 지식생산 방식이 다른 학술활동일 뿐이다. 논문이 번역보다 더 뛰어난 학문활동이라 할 어떤 근거도 없다. 번역만 하는 이도 있고, 논문만 줄창 쓰는 이도 있고, 양자에 다 몰두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세상에서 논저를 300점으로, 번역서를 100점으로 쳐준다면 누가 번역을 자랑스럽게 여기겠는가. 논문은 학위논문으로 인정해주고, 번역은 그렇지 않다면 누가 선뜻 그 어려운 번역을 하려 하겠는가.
독자 중 혹시 이런 의문을 가져본 이가 있을까. 번역서에는 왜 표절 시비가 없는가. 우리가 아는 학문적 표절 시비의 대상은 거의 모두 논문이나 저술서다. 이런 부류의 글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저자가 처음으로 제시했다고 믿기 때문이리라.
이에 반해 번역에는 표절 시비가 없다. 이를 두고‘ 표절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 믿는 이는 없으리라. 번역문 표절은 논문이나 저술서 표절보다 더 찬란하게 넘쳐난다. 그러나 이를 공식적으로 문제 삼지 않은 일이 우리 학계의 풍토다. 모두 서로의 것을 서로 베끼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논문과 번역을 대하는 태도는 이렇게 다르다.
일반적으로 번역은 ‘알바삼아’ 하는 일로 생각한다. 공부하는 이들에게 박사논문을 쓰기 전에 출판사의 번역 제안이 잦다. 학비도 벌고 공부도 할 겸 덥석 무는 경우가 많다. 결과가 어떻든 간에 이처럼 번역은 그리 어려운 작업이 아니라는 인식이 있다. 사전 뒤져가며 원문을 한 단어 한 문장 한글로 옮기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특히 영어 독해 수준이 비교적 높은 우리나라 상황에서 영어 번역서는 이런 식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생각해보라. 디지털 지식이나 생명공학·광고학 같은, 서양에서 새로운 이론이 쏟아져 나오는 분야에 일반인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온전한 한글 번역서가 있는가. 일본은 메이지유신을 기점으로 서양 문물을 통째로 옮기는 일을 범국가적 차원에서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우리 문명은 100년 전 일본의 번역 수준도 되지 않는다. 번역을 ‘개무시’하는 풍토가 남아 있는 한 우리 전통시대는 물론 서양조차도 제대로 우리 문명화할 수 없을 것이다.
깊이 있는 통찰과 다양하고 정확한 자료 분석을 기반으로 하는 훌륭한 논문 저술은 학자로서 꼭 해야 할 일이다. 동시에 다른 문명이나 전통 문명을 현대인에게 쉽고 정확하게 옮겨주는 작업도 권장해야 한다. 논문과 번역은 학문의 쌍두마차이자 대중화의 초석이기 때문이다.

 

 

정명현

임원경제연구소장 | sunamgol@hanmail.net
고려대 유전공학과 졸업. 도올서원과 한림대 태동고전연구소에서 한학을 공부. 서울대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 석사 졸업, 박사 수료. 2003년부터 <임원경제지> 완역 진두지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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