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7-08 : 상상력 발전소 - ‘대중의 취향 + 아티스트의 자존심’으로 상상하기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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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상력 발전소

 

‘대중의 취향 + 아티스트의 자존심’으로 상상하기


현실의 음악적 상상은 대중의 취향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정말 순수하게 음악적 성취만을 위해 상상을 발휘한다면 굶어 죽기 십상이니까.
그렇다고 낙담할 필요는 없다.
대중의 취향에 맞는 예술적 상상을 발휘하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겠는가.

 

‘상상력(想像力)에 대한 글을 써 달라’는 요청을 받고 나서 - 허울 좋은 전업 뮤지션이 된 후 더욱 얄팍해진 지갑 사정 때문에 무작정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 뭘 써야 할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광고회사 사보에‘! 상상력’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직업이 광고맨 아닌가?
이건 뭐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 법을 설명하라는 얘기 아닌가?
여하튼 글을 쓴다고는 했으니 별 수 있나. 우선 인터넷 국어사전부터 찾아봤다.
‘실제로 경험하지 않은 현상이나 사물에 대해 마음속으로 그려보는 것’이 ‘상상’이란다. 뭔가 거창한 것을 기대했는데, 생각보다 아주 수수한 느낌이다.
그러니까‘ 아침에 일어나서 거울을 봤더니 원빈이 보이네’ 같은 것도 훌륭한 상상의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런 때에는‘ 망상’이라는 단어가 정확하겠지만.

 

 

상상하는데 왜 힘(力)까지 써야 할까
그런데 여기서 신경 쓰이는 단어가 ‘역(力)’이다. 저게 ‘힘 력’ 자니까 ‘상상력’이라고 하면 말 그대로‘ 상상하는 힘’이라고 풀이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상상하는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힘’까지 써야 하나? 그것도 모자라 상상력을 키워주는 장난감이나 책, 교육과정이 흘러넘치다 못해 발에 채는 실정이다. 음, 상상력을 키우면 홍대 앞 클럽에서 공연하는 상상을 하던 사람이 잠실 체조경기장에서 공연하는 상상을 할 수 있게 되는 걸까? 선뜻 이해가 안 된다. 여기서 다시 상상력의 보고, 인터넷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다.
찾아보니, 콜리지(T. S. Coleridge)라는 양반은 상상력을 ‘사상과 사물과의 만남, 곧 정신과 자연 두 세계를 연결하게 해주는 힘’으로 정의했다고 한다. 거칠게 풀어보면, 상상력은 곧 ‘상상을 현실화시키는 힘, 즉 상상을 쓸모 있게 만들어주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일단,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으니 ‘상상을 팔아먹을 수 있게 해주는 능력’이라고 하자. 그러고 보면 새천년의 초반부를 온통 한입 베어문 사과로 장식한 스티브 잡스는 그야말로 ‘상상력의 영웅’이라고 할 만하다. 스키니한 몸매에 심플하면서도 시크한 패션감각까지, 그야말로 21세기 영웅의 풍모를 갖추신 분이었다.


專業 뮤지션, 專業 작가… 아무래도 專業이 좀 낫다
잡설이 길었는데, 아무래도 전업 뮤지션이니까 ‘음악적 상상력’에 대해 한 말씀 드려야 할 것 같다. 앞에서 내가 무슨 얘기를 했더라……. 그래, 그러니까 음악적 상상력이란 ‘음악적 상상을 팔아먹을 수 있게 해주는 능력’이다.
에구머니나! 이게 무슨 망측한 소리람. 숭고한 예술적 상상을 천박하게 돈으로 환산하려 하다니!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이제 거의 없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음악을 만들고 연주하는 데에는 큰돈이 든다. 그 비용을 감당하려면 팔아먹을 수 있는 노래를 만들어야 한다. 아니면 별도의 직업을 갖던가. 대개 음악의 질은 얼마나 오랫동안 고민하느냐에 따라 정해진다. 그렇다면 아무래도다른 직업을 갖는 것보다는 음악에 전념하는 편이 좋은 노래를 만드는 데 더 유리할 것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순수음악, 혹은 고전음악도 왕이나 귀족의 후원 덕분에 존재할 수 있었다. 컴퓨터 장비도 없던 시절에 피아노 한 대로 교향곡을 만든다는 게 일반적인 노력으로 가능한 일이겠는가. 모차르트 같은 천재 중의 천재에게는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겠지만, 대다수 범인 작곡가에게는 송라이팅에 전념할 수 있는 시간, 그리고 그 시간 동안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비용이 필요했다.
지금도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곡 구성도 간단해졌고, 또 여러 첨단장비를 이용할 수 있어 예전의 수고와 비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왕과 귀족의 자리를 대신하는 ‘대중’의 변덕이 죽 끓듯 해서 그에 맞추기가 보통 쉬운 일이 아니다. 대중의 취향을 통제하려는 시도야 지금도 쉼 없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대중의 취향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노래를 만들어도 대중이 외면하는 황 역시 매 순간 벌어지고 있다.
결국 현실의 음악적 상상은 대중의 취향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 아마 가슴 아픈 상황일 것이다. 정말 순수하게 음악적 성취만을 위해 상상을 발휘한다면 굶어 죽기 십상이니까. 어쩌면 사후에 인정받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너무 낙담할 필요는 없다. 대중의 취향에 맞는 예술적 상상을 발휘하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겠는가.
두 마리 토끼인 건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그 토끼들이 같은 방향으로 뛰지 말라는 법도 없으니까. 그러려면 우선 과거에는 어떤 음악적 상상이 대중을 사로잡았는지 살펴보는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사실 과거에 인기를 끌었던 방식을 답습하는 것만으로도 큰 성공을 거둘 때가 잦다. 물론 남들이 하기 전에 먼저 시도하는 창의성 정도는 발휘해줘야 한다. 그렇다고 대놓고 남의 음악적 상상을 베낄 수는 없다. 그래도 ‘예술가’라면 내 작품은 내가 만든다는 자의식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겠나. 어차피 음악으로 먹고살려면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줘야 하는데. 지금까지 무슨 얘기를 한 건지 나조차 잘 알 수 없지만, 뭐 어쩌랴.
나는 전업 뮤지션이니 음악만 잘 팔아먹으면 되지. 다시 빈곤한 음악적 상상력이나 쥐어짜내러 가야겠다.

 

 

박근홍

게이트플라워즈 보컬리스트 | brainojfk@gmail.com
되는 대로 살다가 KBS‘ TOP밴드’에 출연한 덕분에 자의반 타의 반으로 밴드 게이트플라워즈의 목소리로 주저앉은 위기의 전업 뮤지션. 최근 1집 앨범을 내고 나름 활발히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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