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DDENBIRTH
앵그리버드의사회학
표면적으로 앵그리버드는 화가나서 돼지들에게 달려드는 새떼지만, 속사정을 알고 보면 정의를 구현하고 억울함을 해소하는 정의로운 사자들이다. 그때 우리는 이제까지 우리가 착하게 살면서 손해 본 삶의 측면을 응시하게 된다.
2012년 5월 현재, 스마트폰 게임 앵그리버드는 10억 다운로드를 돌파했다. 2009년 아이폰용으로 처음 출시된 이 게임은 하나의 스토리 아래 다양한 버전으로 제작됐으며, 이를 활용한 인형·의류·요리책 등의 상품도 나와 있다. 플랫폼도 점차 늘었다. 스마트TV·페이스북·구글 크롬을 비롯해 반즈앤노블 누크·소니PSP 등에서도 이 게임을 즐길 수 있다. 그 결과 제작사 로비오는 지난해에만 1억 600만 달러의 매출을 달성했고, 순이익만 6천 800만 달러였다. 로비오는 2003년 노키아가 주최했던 모바일게임개발대회에서 우승한 3명의 청년이 만든 회사로, 설립 후 여러 게임을 만들었지만 번번이 시장의 외면을 받다가 2009년 부도직전에 내몰리기도 했다. 앵그리버드는 바로 그 해에 출시됐다.
청소년 캠페인에서 정치무대까지 ‘앵그리버드 퍼포먼스’
경제적 효과 외에 앵그리버드는 문화적으로도 큰 이슈를 만들었다. 일종의‘ 신드롬’이라고 할 만한 일들이 있었는데, 대표적인 게 지난 총선에서 한 후보가 앵그리버드 의상을 입고 선거운동을 벌인 것이었다‘. 젊은 감각에 호소한다’는 선거전략이‘ 앵그리버드 코스프레’로 드러난 것인데, 그 효과와는 별개로 일단 정치집단에서 젊은 감각과 앵그리버드를 동일시한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한 일이었다.
앵그리버드 캐릭터는 캠페인에 등장하기도 했다. 한국청소년단체협의회 청소년회의와 청소년기자단 소속 학생들이 벌인‘ 청소년 학교폭력 예방을 위한 가두 캠페인’에 앵그리버드가 전격 등장한 것. 이 역시 10대 학생들에게 친숙한 캐릭터를 활용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일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앵그리버드의 인기가 게임의 영역을 넘어 사회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되었을까.
단서는 게임 그 자체에 있을 것 같다. 앵그리버드는 단순한 게임이다. 스마트폰용으로 출발했으니 단순하고 쉬운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다른 여느 게임과 비교했을 때에도 앵그리버드는 지극히 단순하다. 게임의 스토리도 간단하다. 여러 새들이 모여 사는 동네에 못된 돼지들이 알을 훔쳐가며 행패를 부린다. 몇몇 용감한 새들이 돼지를 무찌르고 알을 되찾기 위해 행동을 개시한다. 이런 맥락에서 게임은 나무와 돌멩이와 유리로 얼기설기 만든 요새에 숨은 돼지녀석들을 새총으로 일망타진하며 진행된다. 이때 새들은 모양에 따라 특기를 가지는데, 어떤 새는 폭탄처럼 터지고, 어떤 새는 총알처럼 빠르다. 어떤 새는 큰 덩치로 장애물을 뚫고 날며, 어떤 새는 폭탄처럼 알을 낳는다. 하지만 가장 인기 있는 건 빨간 색으로 화가 난 표정을 짓고 있는 기본 캐릭터다. 이‘ 앵그리버드’는 별다른 특기 없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다.
이 게임이 흥미로운 건, 단순한 내러티브와 접근성에 걸맞지 않게 상당히 과학적인 이론으로 설계됐다는 점이다. 이 게임은 기본적으로 돌멩이 던지기에 기반하고있지만, 그 위에는 운동역학과 상대성이론, 속도와 가속도 벡터 등이 포진해 있다.
최근에 등장한 앵그리버드 스페이스 버전에 나사(NASA)가 참여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우주 버전은 기본적으로 ICBM의이론과 동일하다. 그래서 게임의 중독성이 높아진다.
단순한 아케이드 게임이 아니라 앵그리버드의 게임성은 기초 물리학 이론 위에서 게임의 성패를 좌우한다. 한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는 데 아무리 못 해도 5분 이상은 걸리지 않는다. 마치 당구를 처음 배웠을 때의 머릿속처럼 자연스럽게 기하학적이고 운동역학적인 그래프가 그려진다. 이런 쉽고도 전문적인 게임성을 바탕으로 앵그리버드는 높은 조회 수와 인기를 누릴 수 있었다.
억눌린 약자의 통쾌한 감정 분출
앵그리버드가 사회문화적인 위치를 얻은 데에는 스마트폰의 보급률이 크게 기여했다. 앵그리버드가 출시된 2009년은 아이폰이 막 출시된 시점이었고, 스마트폰의 영향력이 형성되던 초기였다. 그때 앱스토어는 자본은 부족하되 아이디어가 좋은 젊은 벤처기업들의 꿈의 필드였고, 앵그리버드 제작사인 로비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아이폰의 성공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아이폰의 앱스토어와 다른 플랫폼을 지원하는 안드로이드 마켓이 상대적으로 적은 영향력을 미치는 것을 상기해보면 될 것이다. 스마트폰 게임의 성패는 결국 하드웨어 플랫폼의 대중성에 좌우된다. 그 점에서 스마트폰의 세계 시장에서도 큰 규모인 한국시장에서 앵그리버드의 사회적인 영향력이 높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편 타이밍과 각도만 맞추는 것으로 복잡한 요새를 한 번에 분쇄하는 쾌감도 무시하지 못한다‘. 앵그리버드’는 늘 화가 나 있고, 그래서 이 게임에서는 돼지 녀석들을 한 번에 없애는 타격감이 가장 중요하다. 흔히‘ 손맛’이라고 하는 타격감이 게임의 쾌감으로 전이되며 엔터테인먼트를 선사한다.
바로 이 타격감과 쾌감이야말로 앵그리버드의 대중성을 이끌었다. 이 게임이 특히 세대를 막론하고 인기를 누리는 현상이 무언가 범상치 않다고 여겨지는 건 그 때문이다. 이제까지 게임의 주인공들이 보통 착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면, 앵그리버드는 잔뜩 화가 난 얼굴을 하고 있다. 오히려 적으로 간주되는 돼지들은 틈틈이 헤헤, 크크 하면서 웃고 있다.
하지만 알고 보면 이 새들은 자신의 소중한 알을 돼지들에게 빼앗겼다. 그들은 새들보다 훨씬 덩치 크고 힘에 세며 야비하고 또 비겁하다. 표면적으로 앵그리버드는 화가 나서 돼지들에게 달려드는 새떼지만, 속사정을 알고 보면 정의를 구현하고 억울함을 해소하는 정의로운 사자들이다. 그때 우리는 이제까지 우리가 착하게 살면서 손해 본 삶의 측면을 응시하게 된다. 요컨대 우리는 모두 선인들이었다. 그래서 늘 억울한 일을 당한다. 누구도 우리 편이 되어주지 않는다. 심하게 말하면 정부도 법도 공권력도 내 편이 아니다. 이때 우리는 스스로 돌멩이가 되어, 폭탄이 되어 저 야비한 돼지들의 요새를 향해 날아가야 할 것이다. 앵그리버드는 이 억눌린 감정의 발산을 타격감으로 전환하며 사용자들에게 해방감과 쾌감을 선사한다.
오락의 즐거움에 내포된 사회적 맥락
그래서 앵그리버드의 캐릭터를 선거 캠페인이나 사회적인 캠페인 전략으로 차용하는 건 무의미하거나, 혹은 좀 더 치밀해져야 할 것이다. 앵그리버드 탈을 뒤집어썼던 후보는 선거에서 승리했지만, 사실 사람들이 이 캐릭터를 이해했던 건 정치의 희화화였다. 물론 선거에 붙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겠다는 의지의 발현이었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앵그리버드가 단지 인기 많은 게임 캐릭터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있는 게임이라고 여겼다면 쉽게 그 옷을 덮어쓰지 못했을 것이다.
앵그리버드는 간단한 아이디어만으로 성공한 게임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으로 게임기로 이 게임을 즐기고 있다. 그런데 그 내부에서 작동하는 맥락은 보다 복잡한 것이다. 그건 한 마디로 설명되지 않으며, 어떤 사건으로 수렴되지도 않는다. 다만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엔터테인먼트의 대중성에는 보다 복잡하고 사회적인 맥락이 녹아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 게임은 너무 재미있다.
차우진
문화평론가 | nar75@naver.com
대중문화평론가. <청춘의 사운드> 저자. 음악웹진 [weiv] 에디터이고 <씨네21> <한겨레21> <GQ> <보그> 등 여러 매체에 관련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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