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낯설게 보기
이긴 나무만이 숲을 이룹니다
가장 익숙한 일상들을 새롭게 바꿀 때 임팩트는 더 강해지겠지요. 그래서 많은 브랜드들이 일상을 연구하는 듯합니다. 커피컵 슬리브를 새롭게 보고, 화장실을 다르게 보고, 책은 먹을 수 없을까 생각하는 거죠.
봄이 오고 여름이 오면, 나무들은 어김없이 이파리를 틔우고 꽃을 피웁니다. 너무 당연한 일입니다. 계절의 순리에 따라 평화롭게 변화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보는 나무들은 그저 햇빛 따라 바람 따라 느긋하게 이파리를 틔운 나무가 아니라고 합니다‘. 더 먼저’ 이파리를 틔우고‘ 더 먼저’ 자라, 더 많은 햇볕을 쬐고 더 많은 양분을 흡수했기에 살아남은 나무라고 합니다. 미처 이파리를 틔우지 못한 나무들은 그만큼 햇빛을 흡수하지 못하기에, 큰 나무에 가려져 사라져 갑니다.
나무들은 매년 전쟁을 치른 후에야 비로소 숲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더 먼저’라는 화두는 중요해 보입니다. 자연이 이럴진대, 아이디어로 살아남아야 하는 광고계는 더해 보입니다. 변하는 환경에 누가 빨리 적응하고 발전해가느냐에 따라 브랜드의 운명이 결정되는 거지요. 그래서 지금도 누군가는 가장 먼저,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위기의 순간엔 책을 드세요
늘 오지로 모험을 떠나라고 말하는 랜드로버.
랜드로버 운전자들은 다른 이보다 위험에 부딪힐 가능성이 더 많습니다. 그런 운전자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랜드로버는 5천 부의 서바이벌 가이드(Survival Guide)를 만들었습니다. 내용은 여타 책과 다를 바 없습니다. 위험한 식물에 대해 알리고, 위험한 동물을 만났을 때의 대처법, 지형에 대한 안내……
각 상황에 맞는 위기 탈출법을 알리고 있습니다. 그저 평범한 가이드입니다. 하지만 랜드로버는‘ 정말 큰 도움’이 되고 싶었습니다.
“위기 상황에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건 뭘까?”
아마도 먹는 일일 겁니다. 구출되기까지 버티려면, 안전해질 때까지 기다리려면 먹는 게 필수입니다. 그래서 랜드로버 가이드북은 최악의 순간엔 비상식량이 되기로 했습니다. 먹을 수 있는 전분으로 종이를 만들고, 먹을 수 있는 잉크로 활자를 찍었습니다. 게다가 영양분은 치즈버거에 달할 만큼 풍부하다고 합니다. 맛도 단 맛이 난다고 하니, 많은 것을 배려(?)한 가이드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진짜로 사람들이 먹을지는 모르겠으나, 최초의‘ 먹는 책’이 된 거지요.
모험을 권하는 브랜드답습니다. 책을 먹는다는 것 자체가 일단 신선해 보이기도 하고요.
엄마에게 빚진 출산 보상금을 계산해 드립니다
5월엔 우리나라뿐 아니라 외국도 마더스데이(Mother’s Day)를 맞습니다. 어떤 선물을 할까 고민하는 달이죠. 대행사 마더 뉴욕(Mother New York)은 이 날을 맞아 조금 색다른 캠페인을 펼쳤습니다.
출산은 쉽지 않은 일이기에 엄마들은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캠페인이 시작됐습니다. 9개월 동안 태아를 품은데 대한 보상, 그동안 금주(禁酒)한 것에 대한 보상, 임신으로 살찐 것에 대한 보상, 살이 튼 자국이 생긴 것에 대한 보상, 남편과 소원해진 관계에 대한 보상…… 수십 개에 달하는 항목은 조목조목 당신에게 묻습니다.
당신이 착한 아들딸이라면 감면 혜택까지 주는 걸 잊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이번 마더스데이에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 계획이라면 80%까지 깎아주는 거죠. 신체에 선천적인 결함이 있을 경우에도 감면을 해줍니다. 이 배려 깊은 항목을 모두 입력하면 총 금액이 계산되고, 어머니에게 메일로 보내지게 됩니다. 메일을 받은 어머니는 언제든 당신에게 보상금을 청구할 수 있는 거죠.
처음 보는, 매우 구체적이고도 정확한 계산서. 비록 가상 프로젝트이긴 하지만 흥미롭습니다‘. 은혜에 보답하자’는 추상적인 말보다 더 관심이 가는 캠페인입니다. http://acflr.org/ 로 가서 직접 계산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합니다.
뉴스는 뉴하게 전달해야 합니다
뉴스를 읽는 장면을 상상해 보세요. 보통 이런 모습이 아닐까요?
‘노천 카페에서 커피를 앞에 놓고 신문을 읽는 모습’. 두바이의 신문사 걸프 뉴스(Gulf News)는 이 모습에서 아이디어를 찾았습니다. 커피에 뉴스를 담아서 팔기로 한 거지요. 뜨거운 커피를 받을 땐 꼭 손이 데지 않게 컵 슬리브를 끼워서 줍니다. 컵 슬리브는 어떤 무늬나 메시지가 없는 게 보통이고요. 아무도 미디어라고 생각지 않았던 작은 종이.
걸프뉴스는 이곳에 실시간 헤드라인을 싣기로 했습니다. 방법은 트위터에 올라온 걸프 뉴스 헤드라인을 타이핑해서 커피컵에 끼워주는 겁니다. 설치된 타자기에 컵 슬리브를 넣으면 자동으로실시간 걸프 뉴스 트위터 기사가 프린트됩니다.
컵을 받은 소비자는 헤드라인을 읽게 되고, 그 기사가 궁금하면 QR코드로 스캔해서 바로 전체 기사를 읽을 수 있는 거고요. 커피만큼 뜨거운 뉴스입니다.
이 아이디어로 걸프 뉴스의 팔로어는 2주 만에 2천 900명이 더 늘었고, 웹사이트 방문율은 41%, 걸프 뉴스 구독자는 2.8% 더 늘었다고 합니다. 공동 프로모션을 진행했던 커피 전문점도 매출이 늘었고요. 말 그대로, 뉴스를 가장 뉴하게 전하고 있는 걸프 뉴스입니다.
화장실은 왜 화장실이어야만 할까요?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천하는 일, 이케아(IKEA)가 가장 열심인 듯합니다.
매년 밀라노에서 열리는 가구 페어. 세계에서 손꼽히는 엑스포라고 합니다.
이케아는 이 행사를 통해 처음으로 밀라노에 욕실용 가구(Bathroom Line)들을 선보이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이케아답게 아이디어를 더하는 것을 잊지 않습니다.
우리가 만나는 간이화장실은 과히 기억이 좋지 않습니다.
공간이 너무 협소하거나, 냄새도 심해서 불쾌한 기억으로 남는 게 보통이죠. 그런 편견에 반전을 준다면 임팩트는 더 강해지겠지요.
엑스포 장소에 설치된 간이화장실. 겉으로 보기엔 별 다를 바 없습니다. 사람들은 무심코 문을 열고 들어가죠.
하지만 문을 연 순간, 그들은 새로운 공간을 만나게 됩니다. 호텔 화장실처럼 크고 안락한 공간이 펼쳐지는 거죠.
드라이기부터 향수·화장품, 없는 게 없이 준비돼 있습니다. 사람들은 의외의 일이라 사진을 찍기도 하고, 제품을 써보기도 합니다. 모델하우스였다면 당연해 보였을 가구들이 간이화장실 뒤에 숨어 있으니 반가움은 더 커진 듯합니다.
머무르는 시간도 더 길어지고, 입소문도 더 크게 났습니다.
이케아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화장실은 왜 꼭 화장실이어야만 합니까?”
지하철역에 utah의 대자연을 숨겼습니다
유타(Utah)관광청은 샌프란시스코 사람들에게 유타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그들은 생각했을 겁니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잊고 사는 사람들은 누굴까?”
아마도 아침 일찍 출근해 늦게 퇴근하는 직장인들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들에게 지하철은 일상적인 공간이고요.
어쩌면 여행과 가장 대조되는 장소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곳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몽고메리 지하철역을 아름다운 유타의 자연 터널이 있는 곳으로 바꾸는 거죠. 사실감을 높이기 위해 3D 일러스트레이션을 도입했고, GPS로 정확한 위치를 구현했습니다. 지금까지 보던 단순한 래핑이 아니라 실제로 유타에 있는 듯 생생하게 살려냈습니다. 사람들은 갑자기 유타로 공간 이동을 한 듯 즐겁고 신선했을 겁니다. 관광청이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메시지는 그곳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직접 보게 하는 거죠.
TV로도 포스터로도 살려낼 수 없는 스펙터클함. 3D를 도입한 래핑 광고가 그 불가능함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일상을 바꿀 때 가장 큰 아이디어가 됩니다
일상은 일상이어서 우리에게 너무 익숙합니다. 그러니 가장 익숙한 일상들을 새롭게 바꿀 때 임팩트는 더 강해질테고요. 그래서 많은 브랜드들이 일상을 연구하는 듯합니다. 커피 컵 슬리브를 새롭게 보고, 화장실을 다르게 보고, 책은 먹을 수 없을까 생각하는 거죠.
우리가 바꿀 수 있는 일상은 도처에 널려 있습니다. 그러니‘ 가장 먼저’ 가능성을 발견하고 실천하는 일이 중요해지는듯합니다. 가장 먼저 이파리를 틔우고 햇볕을 흡수해야, 다른 브랜드에 가려져서 사라지고 마는 우를 피하게 되겠지요.
나무들이 경쟁에서 살아남았을 때 비로소 숲이 될 수 있는 것처럼 수많은 아이디어들이 가장 먼저 빛을 내 소비자의 마음속에 숲을 이뤄갑니다.
신숙자
CD | sjshina@hsad.co.kr
몇 주간의 여행으로 일년을 광고하며 삽니다.
여행하는 광고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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