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7-08 : 상상력 발전소 - 코끼리뼈로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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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상력 발전소 
코끼리뼈로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

‘상상’은 그 옛날 중국인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코끼리를 가지고 계속해서 미궁에 빠지는 일이다. 미궁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질문하고 가정하고 속단과 결론을 의심하고 또 회의해야 한다. 곧‘ 상상’해야 한다.


어린이대공원에서 퍼레이드를 준비 중이던 코끼리 여섯 마리가 탈출한 사건이 있었다. 코끼리들은 조련사가 한눈을 파는 틈을 타 도망쳤다. 여섯 마리의 코끼리가 탈출을 공모하고 사전에 계획을 세우고 달아날 루트를 치밀히 계산했을 리 없지만, 코끼리들은 짜기라도 한 듯 일시에 달리기 시작했고, 그대로 대공원 밖으로 달아났다. 코끼리들은 어디로 갔을까. 일부는 대공원을 벗어나서 어리둥절해하는 동안 잡히고, 일부는 대공원 인근의 갈빗집으로 난입(이라는 것은 인간 언론의 표현이고 코끼리 입장에서라면‘ 방문’)했다. 코끼리들이 먹을 걸 찾아 식당에 갔을 리는 없고, 그저 문이 열려 있고 그 몸집이 들어갈 만한 크기의 문이었기에 들어간 것일 테다.
생각할 수 있는 것처럼 식당은 난리가 났다. 고기를 막 입으로 가져가려던 사람들이 코끼리를 피해 달아났(을 것이)다. 달아나지 못하고 좁은 식당 주방에 숨어들어가 오들오들 떨며 이 난데 없는 사태가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 못 해 볼을 꼬집어본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출동한 경찰과 소방대원과 대공원 관계자들과 조련사들에 의해 코끼리는 이내 잡혔다. 코끼리를 잡아넣는 일이 수월하지는 않았을 테지만, 어쨌든 코끼리들은 차례로 커다란 컨테이너 박스로 들어갔고, 모두 대공원으로 돌아갔다.

‘코끼리 생각’ 놀이
세상에는 언제나 어디에서나 믿거나 말거나 한 일이 벌어진다. 코끼리가 퍼레이드 대열을 빠져나와 대공원 문을 지나 횡단보도를 건너 갈빗집으로 들어간 일도 있을 법한 일이다. 그런 순간을 목격한 사람이라면 그 순간부터 좀 달라지지 않을까. 난데없이 횡단보도 한가운데서 달려오는 코끼리 떼를 피해본 사람이라면 세상을 살아가는 어느 순간에서든 코끼리를 만날 것이다. 코끼리는 아프리카 초원이나 동남아시아의 관광지, 동물원의 사육장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대도시의 횡단보도 위에, 시내의 갈빗집 안에, 길거리에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 사람은 코끼리를 통해 이 세상 어느 곳에서는 뜻하지 않은 순간에 인생에서 한 번도 일어나리라고 생각해 보지 않은 일을 만날 수 있고, 상상해 보지 않은 순간을 대면할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을 것이다.
나는 그 뉴스를 텔레비전에서 본 후 자주 코끼리를 생각했다. 코끼리를 생각한다고 해서 무작정 달려 나온 코끼리의 생각을 알 수 있는 건 아니어서, 여전히 코끼리들이 어쩌자고 어쩌려고 어떻게 달리기 시작했는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코끼리를 생각하는 동안 머릿속에 이는 그 알 수 없는 의문들이 재미있어서, 여전히 나로서는 해답을 찾을 수 없는 의문에 사로잡히는 게 좋아서, 또 자주 코끼리에 대해 생각했다. 코끼리뿐이 아니다. 나는 사람에 대해서나 어떤‘ 생각’에 대해서 그렇게 자주 생각하는데, 생각할 때마다 비슷한 미궁에 빠진다. 누군가를 생각한다는 것은,무엇인가에 대해 숙고한다는 것은, 생각이 깊어질수록 명료하고 분명하고 또렷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알 수 없는 의문들에 사로잡히고 해답 없는 질문에 빠지고 끊임없이 미궁(迷宮)에 빠지는 게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다. 처음에는 내가 생각이 깊지 못하여, 생각에 끈기가 없어 그리 되는 게 아닌가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자 그렇게 무엇인가를 골똘히 생각해도 의문에 사로잡힌 채 있는 것이 좋아졌다. 누군(무언)가를 생각하며 의문으로 꽉 찬 상태, 의문을 해결하려고 계속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답하는 상태, 그럼에도 계속 뭔가 궁리하고 달리 생각하고 자신의 생각을 회의하고 의심하고 싶어지는 상태, 그리하여 진부와 편견과 속단으로부터 벗어나는 상태. 나는 그게‘ 상상’의 상태가 아닐까 생각했다.


계속 미궁에 빠지기
‘상상(想像‘)이라는 말은 코끼리를 한 번도 본 적 없는 중국 사람들이 인도에서 온 코끼리뼈만 가지고 '코끼리의 형상을 머릿속으로 그렸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나는 중국인들이 애당초 코끼리의 뼈밖에 보지 못했다는 게 의미심장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늘 세계의 일부밖에는 보지 못하니까. 애당초 우리에게는 '전부'가 주어지지 않으니까. 세계의 일부를 가지고 보지 못한 전체를 추측하고 형상을 만들어 이해해야 하는 것이므로 우리의 이해와 노력은, 그러니까 '상상'은 실패로 끝날 확률이 높은 것인지도 모른다.
‘상상’은 동작의 완결 지점이 없다는 점에서 언제나 (이런 게 가능하다면) '상태 동사'이다. 최선을 다함에도 불구하고 '상상'이 언제나 '나' 아닌 다른 것(사람)을 이해하려는 상태로만 남는데, 그렇기 때문에 멈춰서는 안 된다. 동물원을 뛰쳐나온 코끼리를 느닷없이 횡단보도에서 대면하는 순간만으로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그건 그저 '신기'일 뿐이다. '상상'은 그 옛날 중국인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코끼리를 가지고 계속해서 미궁에 빠지는 일이다. 미궁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질문하고 최선을 다해 그 답을 찾아내려 하고 상대의 처지를 가정하고 자신의 속단과 결론을 의심하고 또 회의해야 한다. 곧 '상상’해야 한다.


◀편혜영 작 <재와 빨강>


 


편해영
작가tebble@daum.net

200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아오이가든> <사육장 쪽으로> <저녁의 구애>, 장편소설 <재와 빨강>이 있음. 한국일보문학상, 이효석문학상, 오늘의 젊은예술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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