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7-08 : SUDDENBIRTH - 당신도 초국적 세계인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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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DDENBIRTH
당신도 초국적 세계인

국가와 국가, 문화와 문화 사이를 스스럼없이 옮겨 다니는 것이야말로 초국적 세계인이 아닐까.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아니라, 그런 자세, 그런 사고, 두려워하지 않고 쉽게 받아들이는 유연성 말이다.


‘초국적 세계인(Universal Kin)’이 출몰했다. 국가와 문화를 떠나 서로 교류하는 사람들. 슈퍼 히어로처럼 거창해 보이지만, 당신도 이미 그 대열에 합류했을지 모른다. 묵직한 단어의 무게에서 벗어나면 의외로 익숙한 모습이다.
새로운 것 투성이다. 자고 일어나면 신천지가 열린다. ‘설마?’하던 일이 현실이 되고, ‘정말?’하게 되는 일이 부지기수다. 전방위적으로 변화무쌍하여 규정해야 할 것도 셀 수 없고, 새로 만들어야 할 말도
쉴 새 없다. 각종 신조어가 늘어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점점 더 복잡해지는 세상을 정리정돈하자면, 그만큼 더 세분화할 수밖에 없다. ‘초국적 세계인’이라는 뜻의 ‘Universal Kin’이란 용어도 그 과정에서 나온 말이다. 슈퍼 히어로가 연상되는 초국적이라는 말이 일단, 거창해 보인다. 안드로메다 어느 별에나 있을 존재인 듯한 느낌도 준다.
하지만 이 용어는 몇 십 년 전부터 (명칭은 다를지라도) 사용해 왔다. 과거 새마을운동의 구호처럼 불린 ‘지구촌’ ‘세계화’라는 단어를 기억하는가. 초국적 세계인은 그 단어의 적자라고 볼 수 있다. ‘지구촌’ ‘세계화’가 큰 범위를 다룬다면, 초국적 세계인은 그 집단에서 툭, 한 객체로 분리해서 보는 셈이다. 단순히 풀이하자면 국가·인종·문화에 귀속되지 않은 사람을 말한다.

‘세계 문화를 향유하는’ 한국인
사실 초국적 세계인은 마케팅 차원에서 소비자를 분류하기 위해 선택한 단어다. 소비자의 행태를 분석해 구매욕구를 동하게 하려는 마케팅 기법이 만들어낸 용어란 얘기다. 마케팅적으로 본 초국적 세계인은 ‘다인종적, 다국적, 다문화적 배경을 바탕으로 삶의 기반이 전 세계로 확장되면서 새로운 차원의 초인종적, 초국적, 초문화적 질서를 추구하는 집단’이다. ‘다’와 ‘초’가 반복돼 이게 뭔 말인가 싶은 사람들을 위해 더 간단히 설명한다.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한국 문화권에만 속하지 않는 사람, 즉 세계 여러 문화를 향유하는 데 익숙한 사람이다. 거창하게 들리지만, 향유는 곧 소비다. 직접적으로 말해 한국에 살지만 세계 문화를 소비하는 사람이다. ‘소비하는 데 익숙한’ 사람이라고 덧붙이면 더욱 정답에 가깝다. 기업 마케팅에선 이들을 타깃으로 세계 문화를 파는 상품을 개발하는 단계로 전개한다.


구글어스                                                                      유투브

진정한 초국적 세계인은 누구?
초국적 세계인이라 해서 거창할 것 하나 없다. 세계 곳곳을 지방출장 가듯 오가는 몇몇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우리네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사람들이다. 주변을 돌아보는 당신도 초국적 세계인일 수 있다. 기술이 거리를 좁힌 현대사회에서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해당된다.
이미 환경은 초국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주변을 보자. 구글어스로 세계 곳곳을 구경하고, 유튜브로 세계 속 별난 모습을 접한다. 페이스북과 트위터로는 손쉽게 다른 나라 사람과 말을 튼다. 그 뿐이랴. 이태원만 가면 세계 각지의 요리를 맛볼 수 있다(그 나라 음식보다 더 전통적인 경우도 있다). 아니, 백화점이나 번화가에만 가도 세계적인 물품과 디자인이 한가득하다. 인터넷으로 시선을 확장하면 국경 따위는 의미 없다. 이런 상황에서 환경적으로 ‘한국’에 귀속된 사람은 없다. 귀속되고 싶어도 오히려 불가능할지 모른다. 환경적으로 이미 우리는 초국적인 세상에 사는 셈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모두 초국적 세계인이냐 하면, 아니다. 환경과는 다른 요소가 더 필요하다. 그래야 진정한 초국적 세계인이라 불릴 만하다. 그 요소는 정신이자, 사고이며, 마음자세다. 속한 문화와 국가를 벗어난 사고. 이것까지 갖춰야 무늬만 초국적 세계인에서 나아가 진정한 완성체로 거듭날 수 있다.
사실 말은 쉬워도 정신을 바꾸는 건 난이도가 높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했다. 공든 탑은 무너져도 한 번 형성된 정신은 요지부동이다. 하지만 이젠 다문화 환경이 조성됐기에 익숙해질 여지가 많다. 익숙하다는 건 다른 것을 접할 때 충격이 적다는 얘기다. 쉽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잘 버무리기도 한다. 이때 ‘세계인’이라는 조건에 부합된다. 초국적 세계인이라고 해서 해외를 넘나드는 사람만 획득하는 훈장이 아니다. 울타리에서 맴돌면서 외부의 자극에 불편해하지만 않으면 길은 열린다. 관건은, 열린 마음이다. 자신을 가두는 여러 정신적 요소에서 자유로운 사람이라면 누구나 초국적 세계인의 인자를 품고 있다. 자라온 환경, 고정관념, 선입견과 멀어질수록 초국적 세계인과 가까워진다.


Layers                                                                    Nikki S. Lee Photographs


The Hip Hop Project                          Parts #14                                                The Skateboarders Project

니키 리, 그녀에게 한 수 배우다
얼마 전에 인터뷰한 아티스트가 있다. 뉴욕 예술계에서 활동하다 한국으로 돌아온 니키 리이다. 한국에서 사진을 전공하고 뉴욕대로 유학한 니키 리는 세 가지 거대 연작 프로젝트로 뉴욕에서 유명해졌다.
그녀의 작품은 모두 정체성을 다룬다. 각 집단에 들어가 생활한 후 집단에 스며들었을 무렵 사진 한 장을 찍고 나오는 ‘프로젝트’, 남녀가 함께 있는 사진을 의도적으로 잘라 상황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여성을 그린 ‘파트’, 세계를 돌아다니며 거리의 화가에게 초상화를 부탁하고 그 초상화를 겹쳐 문화별로 나타나는 차이를 조명한 ‘레이어’ 모두 결국 하나로 귀결된다.
그녀는 뉴욕에서 활동하며 한국인이라는 걸 강조하지도, 숨기지도 않았다고 한다. 문화와 관계 속의 ‘자신’에 집중한 그녀에게 국적은 단지 한 줄 기입할 명칭에 불과했다. 그녀에게 중요한 건 다른 무엇도 아닌, 자신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데 있었다. 노인·여고생·히스패닉·흑인 사이에 자신이 스며들어 그들을 받아들이고 자신을 표현한 것이다. 그 안에서 그녀는 자유롭게 부유했다.
국가와 국가, 문화와 문화 사이를 스스럼없이 옮겨 다니는 그녀야말로 초국적 세계인이 아닐까. 겉으로 보이는 모습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그런 자세를 말하는 거다. 사고를 말하는 거다. 두려워하지 않고 쉽게 받아들이는 유연성 말이다. 물론 니키 리는 작품을 만들겠다는 의지가 있긴 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경계 없이 받아들이는 자세는 초국적 세계인다운 면모다. 결국 교류의 문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잘 교류할 수 있느냐 없느냐. 초국적 세계인을 단순화해서 표현하자면 그렇단 얘기다. 물론, 그 사람에 국가와 문화까지 추가해야 하지만 말이다. 여기에서 초국적 세계인의 장점이 드러난다. (국가와 문화를 넘어) 서로 자극하고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그 결과물을 내놓으면 더욱 금상첨화. 


김종훈
<아레나 옴므 플러스> 에디터 |  420mid@gmail.com

영화 주간지로 잡지판에 들어와 구르고 굴러 <아레나 옴므 플러스>에 도착했다. ‘은둔형 사회인’을 꿈꾸는 ‘오타쿠’ 추종자지만 현실은 재밌는 거 없나, 여기저기 기웃거릴 수밖에 없는 잡지기자




Posted by HS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