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적인 것’이란 무엇일까? 그들이, 외국인들이 생각하는 한국적인 것은 무엇일까?
그런데 우리가 알리고 싶어 하는 한국, 그들이 알고 있는 한국, 그들이 알게 될 한국은 얼마나 많은 차이가 있는지….
한국을 알린다는 게 단순하게 영상 속에 다보탑이나 청계천 모습을 넣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우리는 이 프로젝트에서 특별하게 한국적인 것을 강조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물은 모두가 필요로 하지만 너무나 거대해서 아무도 소유할 수 없습니다.
물은 돌고 돌면서 물을 필요로 하는 모든 생명을 키웁니다.
이런 물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 바로 ‘물거인’입니다.
- ‘물거인 제작의 변’ 중 -
2008년 여름, 스페인 아라곤(Aragon)주의 주도인 사라고사에서는 세계 엑스포가 열렸다. 지중해를 향해 흘러가는 에브로 (Ebro) 강가에서 펼쳐진 이 국제행사는 ‘물’을 통해 환경과 지속가능성을 이야기하는 내용으로 꾸며졌고, 100여 개의 많은 나라들이 저마다의 물 이야기를 가지고 이곳에서 자국의 문화수준을 피력했다. 일본은 갈라지는 대형 스크린 속 인공폭포라는 볼거리를 선보였고, 독일은 자국 홍보관 전체에 수로와 관람차를 깔아 유원지의 라이드[탑승물]를 방불케 하는 즐길 거리를 제공했다.
그야말로 ‘물’이라는 주제, 화두를 두고 펼쳐지는 ‘문화전쟁터’인 이곳에서 세계인들에게 한국에 대한 독특하고 긍정적인 인상을 줄 수 있는 어트랙션(Attraction)을 제작하는 것이 바로 영상을 담당하게 된 HS애드 영상사업팀에게 주어진 과제였다.
‘상생과 순환’의 지혜로 태어난 ‘한국의 물거인’
최근의 국가 홍보는 단순하게 자국의 장점만을 나열하던 형태를 넘어 자국의 장점을 살려 어떻게 세계와 인류에 공헌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방향으로 발전해 오고 있다. 이를 감안할 때 한국관의 성공 역시 세계인들에게 물과 환경에 대해 얼마나 성숙한 철학과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에 일찍이 물로부터 ‘순환과 상생’의 지혜를 배웠던 우리 전통의 문화를 살리는 쪽으로 기획되는 프로젝트는 물의 거대함과 이로움을 캐릭터화한 ‘물거인’이라는 아이디어를 만나면서 급속하게 발전하기 시작했다.
일단 캐릭터가 만들어지자 물거인이 세상 사람들과 소통하는 의미를 표현하는 여러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왔고 이를 바탕으로 초기의 스토리가 짜이기 시작했다. ‘어느 날 작은 호수에서 신비한 힘으로 깨어난 물거인은 세상을 돌면서 사람들을 만난다. 홍수가 난 마을에서는 넘치는 물을 몸으로 흡수하기도 하고, 도시에서는 건물에 난 불을 밟아서 끄기도 하며, 만리장성에서는 미끄럼틀을 타기도 하면서 물거인은 세계를 돌아다닌다. 그렇게 세상 모든 생명들에게 즐거움과 안식과 생명을 나누어주던 물은 마침내 증발되어 사라지지만, 결국 순환을 거쳐 다시 살아나게 된다’는 것. 그야말로 물거인의 하루를 담은 이야기였다.
스토리의 윤곽이 잡혀갈 무렵 전체 프로젝트를 연출할 감독이 캐스팅되었다. 극장판 애니메이션인 <마리이야기>와 <여우비>를 만들어낸 한국 애니메이션계의 거장 이성강 감독이었다. 이성강 감독은 특유의 서정성을 프로젝트에 담아냈고, 이야기는 점점 순수함을 예찬하는 아름다운 동화의 모습을 띠게 되었다.
박람회의 특성상 모든 관객에게 어필해야하는 ‘물거인의 하루’는 적절한 스펙터클을 제공하기 위해 대형 스크린에 펼쳐지는 3D 입체 영상으로 제작되었다. ‘거대함’이란 언제나 시각적으로 매력적인 소재인데, 입체영상에서는 특히 그 진가가 드러나게 된다.
Corea, 세계인의 가슴에 잔잔히 흐르는 나라
적은 예산과 여러 가지 기술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고 1년여 만에 눈앞에 드러난 완성작을 보는 순간, 처음에는 아쉬움이 적지 않았다. ‘이 부분을 조금만 더 신경 썼더라면, 이런 장면이 더 들어갔더라면’ 하는, 제작자로서 느끼는 부족함이 먼저 눈에 밟혀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시험시사를 통해 본 일반 사람들의 반응은 꽤 긍정적이었다. 일단 선량해 보이는 물거인의 디자인이 인기 있었고, 거대 캐릭터를 소재로 한 입체 애니메이션이라는 점 역시 관객들에게 통했다. 특히 입체안경을 통해 물로 만들어진 거대한 물거인의 손이 관객 눈앞으로 쑥 다가서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물거인의 걸음에 화면 밖으로 물이 튀는 듯한 장관을 경험하면서 사람들은 제작진에게 보이는 단점 정도는 눈감아 주는 아량을 베푸는 듯 했다.
드디어 엑스포 개막일이 가까워지고 우리는 완성된 영상을 품고 스페인 현지로 날아갔다. 마치 투정이라도 부리는 듯 상영장비들이 몇 가지 말썽을 부렸지만 금세 모든 상황이 정리되고 드디어 한국관 대형 스크린 위에 영상을 올리는 데 성공했다. 1년이 넘는 작업기간을 거쳐 사라고사엑스포 한국관 스크린 위에 살아난 물거인을 보는 것은 제작진의 한 사람으로서 감격스러운 일이었다. 특히 현지 관람객들의 반응은 1년간의 고생을 모두 있게 할 만큼 좋았다. 영화를 보며 입체효과 하나하나에 열렬히 반응하는 관객들, 공중에 손을 휘휘 저어 물거인의 손을 잡으려는 관객들, 나는 쇠제비갈매기를 만져보려고 복도에까지 나와 점프하던 어린 관객들, 그리고 영상의 의미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하려고, 그리고 큰 감동을 받았다면서 자원봉사자들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고 소감을 표현하던 관객들의 모습이 제작진을 행복하게 했다.
‘한국적인 것’이란 무엇일까? 그들이, 외국인들이 생각하는 한국적인 것은 무엇일까? 최근 들어 한국을 알리는 일들이 활발해지면서 이 질문들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고민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알리고 싶어 하는 한국, 그들이 알고 있는 한국, 그들이 알게 될 한국은 얼마나 많은 차이가 있는지…. 한국을 알린다는 게 단순하게 영상 속에 다보탑이나 청계천 모습을 넣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우리는 이 프로젝트에서 특별하게 한국적인 것을 강조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물론 애니메이션 속 풍경에는 어느 정도는 한국이 담겨 있지만, 그건 한국 사람들이 만든 것이라 그렇지 일부러 넣으려 해서 그런 건 아닐 것이다. 사실 건물의 양식이나 거리의 모습, 등장인물의 외모 같은 외형적인 것보다는 이 영화를 통해 우리가 이야기하고자 했던 속내, 즉 ‘물의 이야기’, ‘순환과 상생의 이야기’를 곧 한국의 이야기로 받아들여주기를 더 바랐다.
엑스포를 찾았던 세계인들이 이 영상을 본 후 ‘물에 관한 성숙된 이야기를 재미있고 쉽게 하던 한국’을 기억해준다면 제작자의 입장에서는 더없이 기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