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균/대리(기획12팀)
얼마 전 ‘21세기 첫 미의 여왕 후보 62명 합숙돌입’이라는 기사가 스포츠 신문의
머릿면을 장식하였다.
미의 여왕을 뽑는 미스코리아는 그 오랜 대회역사에 걸맞게 이제는 단순히 미의
여왕을 뽑는 대회가 아닌, 민·관·업계가 합동으로 벌이는 커다란 마케팅의 하나가
되어 가고 있다. 이 일련의 마케팅과 PR 활동은 요즘 광고계의 화두 가운데 하나인 Integrated Marketing (통합 마케팅)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의 하나가 아닌가 싶다.
그래서 이와 유사한 다양한 선발대회가 하루가 멀다하고 열리고, 많은 기업들 역시
자사의 타이틀을 내건 다양한 선발대회를 앞다투어 벌이고 있는 것이다.
올해 초 나이키는 오랜 기간을 준비하여 새로운 어패럴 라인인 ‘나이키 BA(Branded Athletics)’를 런칭하게 되었다. ‘나이키 BA’란 N세대들이 좋아하는 Urban Street (Sports) Wear로서, 그 스타일은 일종의 스포츠와 힙합이 합쳐진 것이다. 현재의
의류시장은 스포츠웨어와 캐주얼 웨어 간에 카테고리의 융화(crossover)가 생기며,
그 영역이 점차 무너지고 있는 추세이다. 얼마 전만 해도 폴라티나 면티에 청바지가
청소년 패션(?)의 주류를 이루었던 반면, 이제는 100인 100색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정장에서 힙합까지 그들만의 패션을 추구하고 있다. 오렌지족에서 X 세대, N세대를
거치면서 그들의 패션은 끝없이, 그리고 다양하게 진화하고 있다. 이러한 추세에
발맞추어 스포츠웨어가 주류를 이루고 있던 나이키에서도 의류 분야에서의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기존의 이미지를 벗고 새로운 이미지의 나이키 BA 제품군을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나이키 자체가 가지고
있는 강력한 브랜드 이미지 때문이다. 기존의 소비자들에게 있어 나이키는 뛰어난
스포츠 관련 제품을 만드는 스포츠용품 회사로 포지셔닝되어 있어, 스포츠 관련
범위를 벗어나는 시장으로의 진출에는 그 막강한 브랜드 파워가 오히려 장애의
소지가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타깃은 까다롭기 그지없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N세대로, 그 입맛을 맞추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 것이다.
그래서 새로운 제품 라인인 나이키 BA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소비자에게 어필할 수 있는 강력한 슬로건, 그리고 이 슬로건을
타깃에게 효과적으로 인식시킬 수 있는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툴(tool)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였다. 특히, TV-CF가 없는 상황에서, 다양한 미디어 전략은
절대적 으로 필요한 부분이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P/T와 시안들
이러한 상황에서 성공적인 런칭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통합 마케팅 차원에서
최대한의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하였다. 그래서 고민과 연구
끝에 준비된 것이 프로모션이 주축을 이룬 런칭 전략. 효과적으로 N세대들의
마음을 파고들 수 있는 방안으로 요즘 N세대들이 가장 선호하고 공감하는 직업
1위가 연예인이라는 데 주목, 기존 모델이 아닌 일밥 청소년을 대상으로 선발과정을
거쳐 참신하고 끼있는 N세대를 뽑아 이들을 주축으로 하는 거리 패션쇼를 열기로
했다. 너무나 흔한 것이 모델 선발대회이긴 하지만, 실제 타깃들을 모델로 뽑아
그들의 모습을 통한 런칭 패션 쇼를 하는 것은 상당히 효과적일 수 있다고 판단
되었기 때문이다. N세대들에게 가장 효과적인 매체는 바로 구전효과 - 친구나
주변인의 입을 통하는 방법이기도 했으니까.
그래서 BA의 인지도 창출을 위해 신문, 인터넷, 포스터 등을 통한 모델선발고지로
관심을 유발시키는 과정을 프리런칭 단계로, 패션 쇼를 통해 제품출시를 공식적으로
선언하는 것을 런칭 단계로, ‘City Attack’이라는 게릴라성 이벤트로 지속적인 이미지
구축을 하는 것을 포스트런칭 단계로 하는 등 3단계의 런칭 전략이 구성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먼저 N세대들이 가장 원하는 메시지, 그리고 나이키가 새롭게
바뀌었다는 메시지를 전달해 줄 수 있는 강력한 슬로건이 필요하였다. N세대들에게
전달될 수 있는 메시지, 이정현의 <바꿔>와 견줄 수 있는 그들의 언어로말이다.
일단 모델은 광고주의 추천으로 이동국, 안정환으로 결정되었다. 최고의 빅스타이긴
하지만 이미 스포츠 스타로 굳어진 그들의 이미지를 N세대들이 공감해 줄 수 있도록
바꿔주는 것, 이것도 만만치 않은 숙제가 되었다.
전략 P/T, 크리에이티브 P/T, 프로모션 P/T 등이 끝없이 이어졌고 서너 달이 지난
시점에서는 어느 것이 며칠자 P/T인지 이미 가물가물. 지루하게 P/T가 이어지고
수개월간의 산고를 거친 끝에 ‘脫, 틀? 벗어버려’라는 Visual Code와 슬로건이 마침내 출산되었다. 그리고 이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여자모델의 선정작업에 들어갔다. <바꿔>로 가요의 판을 바꾼 대표적 신세대 가수 이모양과 요즘 최고의 인기 모델인
전모양이 물망에 올랐으나, 최종 조율과정에서 탈락되고 <여고괴담 2>의 주인공
김민선이 모델로 낙점되었다.
먼저 브랜드 이미지, 모델 고지 광고의 촬영에 들어갔는데, 효과적으로 ‘틀을 벗은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모든 모델들의 상반신을 벗겨(?)버렸다. 누드광고가 유행하는
요즘이지만 최고의 스포츠 스타들의 기존 이미지를 벗어버리는 작업으로는 더할나위
없는 작품(?)이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스포츠 스타들의 스케줄을 조정하여 촬영을 하는 것은
정말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한 달여의 조정끝에 가까스로 스케줄을 잡았고, 이 셋을
모아 정말 어렵게 촬영에 들어갔다.
미니버스 두 대 포함, 총 10대의 차량이 동원되어 현재까지도 공사중인, 엄청나게 큰
영종도 신공항을 돌아다니며 고생한 것은 그냥 묻어두기로 하자. 그 다음에 벌어질
일들에 비하면 그리 큰 고생도 아니었으니. 그런데 봄 옷을 촬영하는 데 날씨는
왜 그렇게 춥던지.
끼있는 N세대는 누구나…
이렇게 BA 모델 모집 광고가 런칭되었고, 그 시점에 맞추어 포스터 붙이는 작업과
인터넷 광고, PR 등 실질적인 작업에 돌입하였다. 우리가 내건 BA 모델의 조건은
딱 하나, “끼있는 N세대면 누구나....”
신문 광고, 인터넷 고지, 포스터 부착 등이 순식간에 진행되었다(서울 시내 곳곳에
붙인 포스터는 여러 사람에 의해 떼어져 다시 붙이곤 했는데, 그 범인 중 한 사람도
BA 모델이 되었다. 그녀는 자신만이 바로 BA 모델이라는 야무진 생각으로, 경쟁자를
줄이기 위해 신촌 주위의 모든 포스터를 다 떼어내 자신의 집에 보관하는 용의주도함(?)을 보였다. 게다가 그녀는 자신이 서류심사에서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동명
이인이 있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면접심사에 등장, 결국 모델이 된 엽기적인
뻔뻔함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방송 프로 곳곳에 빠지지 않고 카메라를 받아,
길거리에서까지 모델임을 알아본 가장 성공한 모델이 되었다).
짧은 고지기간에도 불구하고 호응은 폭발적이어서 약 3,000명이 응시, 기존 다른
선발대회 500명에 비교하면 고무적인 숫자를 기록하였다. 6살 꼬마에서부터 40세가
넘는 공무원 아저씨까지, 지원자는 참으로 다양하였다. 뉴질랜드에서 지원서를 보낸
사람부터 24장의 사진으로 원서를 도배한 지원자, 무재주가 재주라며 반드시 뽑아
달라는 공갈 협박형까지. 34-34-36의 모델을 뽑는 거라면… 얼마나 좋을까? 슬그머니
밀어넣은 어여뿐 여자 모델들, 광고주의 적극적인(?) 반대로 휘리릭.... 아깝다!
이렇게 1차 서류심사를 거쳐 약 135명을 선발하였다.
긴장과 탄성 속의 모델 선발대회
서류심사를 거친 후에는 이틀간의 면접심사. 첫째날은 X-Game, DDR 등의
특기자(?)를 뽑는 날. 그러나 이상이 없을 것이라던 일기예보와는 달리 오전부터
심상치 않던 날씨가 기어이 안개비를 뿌리며 애간장을 태우기 시작했다. 이건 필시
터가 나빠서 그런거야. 고시레 고시레....
날씨도 춥고 비도 내렸지만 선발대회는 강행되었고, 대회장인 X-Game장은
그야말로 긴장과 웃음, 그리고 탄성으로 이어졌다. 인라인 스케이트, BMX 자전거
묘기에서부터 DDR 묘기까지 참가자나 심사위원 모두 탄성을 연발하였다.
그러나 내리는 이슬비로 실력있는 X-Gamer들이 물기에 미끄러져 넘어질 때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곤 하였다.
둘째날은 힙합댄스, 랩, 그라피티 등 만만치 않은 재주를 가진 사람들을 심사하는
날. 심사장인 댄스 스튜디오에는 사람들이 차고 넘쳤고, 웃음과 탄식이 동시에
터져나왔다. 1, 2조로 나누어 진행된 이날의 심사는 매 순간 순간이 하이라이트
였을 정도로 흥분과 긴장이 감돌았다. 순돌이로 유명했던 아역배우 출신에서부터
요즘 장안의 화제가 되었던 스니커즈의 모델, 직접 나이키송을 작곡해온 아마추어
그룹까지 한명 한명이 뿜어대는 끼의 열기로 심사장이 가득 채워졌다.
모델 훈련 과정 그리고 모델들...
TV 모니터까지 동원된 심사과정을 거쳐 마침내 지원자 중 총 35명이 최종 선발
되었다. 그런데 뽑아놓은 모델을 보니 사실 한숨이 나왔다. 실제 어떤 BA 모델은
방송인터뷰에서 “최종 합격 통보를 받고 갔더니 전부 문제아 같은 애들만 모아
놨더라고요”하며 고백(?)할 정도였으니. 이렇게 선발된 35명의 모델들과 같이
15일이라는 길고도 짧은 훈련이 시작되었다. 사실 패션 쇼를 위해 모델들을
15일간이나 연습시키는 경우는 없다. 더구나 일반인을 단 15일만 훈련시키고
무대에 세우는 일도 없다. 게다가 이 모델들은 고등학생부터 직장인까지 다양
하여 저녁시간이 아니면 훈련이 불가능하였다. 절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한 것이다.
그렇다고 이런 이유로 신제품 런칭을 늦출 수도 없는 일. 살얼음 밟는 하루하루가
이렇게 이어졌다. 그러나 행사 당일 그들이 보여준 ‘끼’는 이것이 단순한 우려였음을
감동적으로 보여주고도 남았다.
D-day, 마침내 행사는 시작되고
행사가 끝난 후 광고주의 논평 한마디. “모든 것이 불완전한 상황에서 끝낸 완벽한
행사.” 어느 행사든 그렇겠지만 위험요인이 없을수록 성공 확률은 높아진다.
전문 모델과 무대, 조명, 음향 등 모든 부대시설이 완벽한 행사장소, 넉넉한 예산
등은 행사를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는 요소들인데, 우리는 이러한 것을 무식하게
무시한 채 용감하게 행사에 돌입하였다. 왜? 어차피 틀을 벗는 행사였으므로.
행사 장소는 N세대라면 한번쯤 배회(?)해 봤을 대학로 마로니에공원. 우리가
원하는 타깃들의 많은 호응을 얻을 수도 있지만, 어떤 문제든지 생길 수 있는
열린 공간이기도 했다. 이 열린 공간에서 나이키 BA Street Fashion Show의
막이 마침내 올랐다. 그러나 걱정과는 달리 행사가 진행된 약 45분간, 마로니에
공원은 흥분과 열기 바로 그 자체였다. 1000여 명이 넘는 관중과 33명의 BA 모델
(훈련과정에서 2명은 아쉽게 빠지게 되었다)들은 같이 호흡하고, 환호하고 즐기며
패션 쇼를 연출하였다. 이 패션 쇼는 단순한 패션 쇼가 아닌 힙합댄스, 그라피티,
DDR, X-Game 등이 잘 어우러진 하나의 완벽한 공연이었다. 빛나는(?) 행사를
위해 준비한 포스터, 배지, 휴대전화줄 등은 순식간에 동이 났고, 참가했던
연예인들은 다음에도 꼭 불러달라며 신신당부를 하기도 했다.
후에 행사 테이프를 편집하다 보니 유독 귓가에 남는 소리가 하나 있었다.
패션 쇼가 끝난 후 나이키 담당자가 무대 뒤에서 모델들에게 한 말,
“얘들아 사랑해, 너무 잘했어.”
행사는 끝났지만, 이어지는 PR, PR...
통합 마케팅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는 것, 그리고 이벤트 행사를 최종적인
결과물로 보여줄 수 있는 것은 행사 자체이기도 하지만, 얼마나 많이 미디어에
노출되어 화제성을 유발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일 것이다. 이를 위해서 많은 매체와의
접촉이 이루어졌고, ‘생방송 리얼타임 코리아’, ‘KBS 9시 뉴스’ 등 주요 방송국 및
케이블 TV, 인터넷까지 많은 매체에서 이 행사를 집중적으로 보도하였다. 현재는
포스트단계로서 게릴라성 프로모션인 ‘City Attack’이 진행되고 있는데, 나이키 BA
모델들이 BA 전사(戰士)로 변신하여 직접 행사를 꾸려나가고 있다. City Attack을
따라다니다 보면 “아! 나 쟤들 TV에서 봤어” “에휴, 나도 BA 모델이나 신청해 볼 걸”
하는 소리들을 간간이 듣게 된다. 바로 PR의 결과인 것이다.
혹시 주말에 N세대들이 많이 가는 곳 - 종로, 명동, 압구정동, 강남역 혹은 대학로
주변을 지나가게 되면 주위를 한번 살펴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바로 옆에서 지금
나이키 BA 전사들의끼넘치는 ‘도시공격’이 진행되고 있을 지도 모르니까.
끝으로, 이 행사가 성공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같이 고생한 나이키팀 멤버들에게
심심한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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