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05-06 : 크리에이터@클리핑 - 희극적 비극인가? 비극적 희극인가?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정해원CD/이현종
 

밤에 취하고
밤을 사랑하고
밤을 즐기고
밤을 탄미하고
밤을 숭배하고...
밤에 나서 밤에 살고
밤 속에 죽는 것이 아시아의 운명인가.
(오상순, ‘아시아의 마지막 밤 풍경’ 중에서)

호가 공초(空超)다.
꽁초까지 잘근잘근 씹어먹고 싶어했던 선생이었으니... .
그래도 어찌보면 담배의 미덕을 ‘空과 超’로 풀어낸 끽연 철학(?)은 점점 무시당하고 있는 애연가들의 어깨를 으쓱하게 만들어주기에 충분할지 모르겠다. 절망의 밤들을 담배 연기로 달래며 아시아의 밤을 노래했던 시인 오상순(吳相淳 1894~1963) 선생이 조선팔도 애연가들의 정신적 지주였다면, 미국 애연가들의 마음 속에는 아마 말보로
맨이 고향처럼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담배광고의 캐릭터가 아니라 그 자신이 그냥 미국이 돼버린 남자.

레드 루프(Red-Roof)로 불리는 빨간색 뚜껑을 열고 텁텁해 보이는 그 브라운 필터를 입에 문 채 불을 붙이는 말보로 맨. 불을 붙일 땐 역시 라이터보다는 성냥이 제격이겠지만, 굳이 라이터라면 지포(Zippo)정도나 어울릴까! 남자란 이렇게 사는 거야. 그의 아우라(aura, 풍기는 분위기 : 편집자 주)는 전세계 남자를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그 남자가 이번엔 새로운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 거칠 것 없이 달려가던 저 말보로 컨트리에 지금 심각한 대화가 오가고 있는 것이다. 저녁 노을을 뒤로한 채 목장으로 돌아오고 있는 두 카우보이.
그런데 이번 헤드라인은 그 유명한 “Come to Marlboro Country”가 아니다.

광고1 - "밥,난 내 폐를 잃었네"

‘I miss my lung, Bob’ 폐에 이상이 생겼다니... 그 당당하던 말보로 맨에게. 예의 그 폼잡던 모습도 사라졌다.
. 검은 실루엣으로 변한 카우보이는 지금 그의 참담한 심정을 고백하고 있다. . 쯧쯧, 그 독한 말보로를 40년도 넘게 피워대더니<광고 1>.

말보로 광고를 패러디한 이 기막힌 광고를 보고 깜짝 놀란 사람은 아마 필자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최근 미국 금연 광고의 수위를 감안한다면 이 정도는 낭만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연방정부 혹은 주립정부 차원의 금연 캠페인을 비롯한 각종 금연운동 단체들의 쉴새 없는 공격에 아마 담배회사들은 차라리 업종 변경을 모색하는 편이 훨씬 낫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최근 2, 3년간 미국에서 전개해온 금연 캠페인 중 가장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있는 캠페인은 역시 ‘Truth(진실)’ 캠페인이다.

‘Truth’마크를 붙인 트럭이 필립 모리스사(말보로를 만드는 바로 그 회사)를 향하고 있다. 차 안에는 10대 아이들 몇몇이 타고 있으며 몰래 카메라가 장착되어 있다.
마치 ‘카메라 출 동’을 보는 듯, 현장감이 생생하다. 마침내 필립 모리스사 정문. 그리고 정문 수위. 얼굴은 모자이크 처리돼 있다. 이 때 한 아이가 말보로 카우보이가 나온 잡지 광고를 들고 “우린 이 남자를 찾는데요”라고 말한다. 수위가 답한다.
“카우보이는 죽었다, 몇 년전에.” 그리고 자막 ‘Truth’<광고 2>.

광고2

설교적인 ‘담배 피지마’ 식의 광고가 한 일은 10대 흡연의 지속적인 성장만을 가져왔다고 판단한 대행사측은 먼저 담배회사들이 그동안 얼마나 심하게 이미지 조작을 해왔으며, 거짓말을 해왔는지를 청소년들에게 적나라하게 알려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반(反)광고적 광고’라고 할까. 그리고 쿨이나 말보로처럼 금연운동에 있어서도 하나의 브랜드를 만들어서 대항하기를 원했다. 그래서 탄생한 키워드가 ‘Truth’였다.

그리고 아이들이 담배회사에 전화를 하게 해서 그 장면을 그대로 필름에 담았다.
이런 식이다. “럭키 스트라이크(담배 브랜드)는 어떤 점이 그렇게 럭키한 거죠?”
“제가 죽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게 럭키하다는 건가요?” 매우 시니컬하지만 담배회사가 얼마나 이미지를 조작하고 있는지를 낱낱이 들춰내겠다는 것이다.

이 캠페인은 ‘Truth’모자, ‘Truth’셔츠를 입은 자발적인 청소년단체를 결성하게 만들었으며, 학생들이 시민들에게 이 운동을 전파하는 결과를 낳기까지 했다.
그리고 담배회사들의 거짓과 위선을 백일하에 드러내겠다는 크리에이티브의 철칙은 급기야는 그들을 청문회장으로까지 몰고 간다.

실제 청문회 장면 자료필름을 사용한 이 시리즈는 코미디 프로를 볼 때 미리 녹음·
삽입된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담배회사 임원의 답변이 나올 때마다 방청객들의 웃음소리가 나오는 것처럼 편집하였다. 청문회를 코미디로 비유하는 풍자가 우리 역사의 한 대목을 보는 것 같아 그다지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럴 수도 있습니다’ 편

의장 : 전문의들에 따르면 흡연이 천식을 일으킨다고 합니다. 동의하십니까?
<자막> 레이놀즈사 대표, 제임스 존스톤.
존스톤 : 그럴 수도 있습니다.
S.E. 간간이 청중들의 웃음소리
의장 : 흡연이 폐암을 일으킨다는 데 대해서는 동의하십니까?
존스톤 : 그럴 수도 있습니다.
S,E. 웃음 소리가 좀 더 커짐
의장 : 폐암을 일으키는지 아신다는 겁니까, 모르신다는 겁니까? 존스턴 : 모릅니다.
S.E. 거의 폭소.
의장 : 아니 정말 모르세요?
(한참동안 고개를 돌려 변호사와 소곤대는 존스톤).
S.E. 킥킥(웃음소리가 여기저기 계속 들림).
(마침내 의장 쪽으로 고개를 돌린 존스톤).
존스톤 : 마... 아... 저기 질문을 다시 한 번 해주시겠습니까?
S.E. 박장대소.
<자막>하나도 거르지 않은 진실(Truth unfiltered)<광고 3>.

광고3 - '그럴 수도 있습니다' 편


‘웃기는 통계’편

의장 : 귀하는 ‘흡연이 폐암의 원인인가’에 대한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귀하의 대답은 “그렇지 않습니다”였습니다.
S.E. 여기저기 참는 듯한 웃음소리.
의장 : 오늘도 그 대답에 변함이 없으십니까?
<자막> 로리어드사 회장, 앤드류 티쉬(1984).
티쉬: 그렇습니다.
S.E. 웃음소리가 좀 더 커짐.
의장 : 과학적 상식과는 꽤 거리를 두고 사시는군요?
(매우 당황한 듯 안경을 만지작거리는 티쉬).
티쉬 : 아...그러니까... 저희가 검토한 데이터에 따르면... 아, 모든 데이터를
다 검토해 본 바에... 아, 물론 통계자료를 확신할 수는 없지만... 에, 그러니까...
S.E. 계속되는 짧은 웃음소리들.
티쉬 : 그러니까... 흡연은 사망의 원인입니다.
S.E. 박장대소. <자막>하나도 거르지않은 진실<광고 4>.

광고4 - '웃기는 통계' 편


‘딸’편

의장 : 부모로서 선택권이 있다면, 따님의 흡연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자막> 필립 모리스사 사장, 윌리엄 캠벨.
캠벨 : (당황한 듯)에... 딸애를 위한 문젠데 제가 선택할 수는 없겠죠?
S.E. 웃음소리.
의장 : 그래도 부모로서 따님에게 권해주고 싶으신 일이...
캠벨 : 늘상 많은 것들을 권유하고 있지요.
S.E. 웃음소리가 점점 커짐.
의장 : 그래도 흡연은 권하시지 않겠죠?
캠벨 : 그거야... 에.. 제가 뭐 권하는가 안 권하는가 그게 중요하다기보다는
에... 애들도 정보가 있으니까...
S.E. 박장대소.
<자막> 하나도 거르지 않은 진실<광고 5>.

광고5 - '딸' 편


이후 ‘Truth’캠페인은 초기의 고발식에서 탈피, 다양한 크리에이티브를 선보이며 새롭게 만들어질 때마다 커다란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무엇보다 ‘Truth’캠페인의 가장 큰 미덕은 자칫 구호성으로 끝나기 쉬운 공공캠페인에 브랜드 마케팅을 도입해 금연은 ‘Truth’라는 등식을 만들어가는 새로운 전개방법에 있다 할 것이다.

이번에는 지난 해‘Truth’캠페인의 하나인 ‘악마들의 시상식’ 편을 보자.

제125회 악마들의 시상식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저승의 아름다운 강변, 삼도천*으로부터 생중계합니다.

*삼도천(三途川) : 사람이 죽어서 명부(冥府)의 염마청(閻魔廳)에 가는 도중에
건너야 한다는 강(편집자 주).


프리젠터 : 그럼 지난 1년, 가장 많은 주검을 가져온 후보자들입니다. 먼저, 자살...
S.E. 박수와 환호.
그리고, 마약,
다음, 담배,
마지막으로 살인.
봉투 주시지요. 올해의 수상자는.... 담배! 담배의 9년 연속 수상입니다. 다시 한번
담배가 살인, 자살 그리고 불법마약 복용보다 더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빼았았습니다. 바깥 세상에 계신 모든 흡연자들에게 감사드리며, 수상의 영광을 돌립니다.
이 방송은 지금까지 ‘Truth’제공이었습니다.
<자막> Truth<광고 6>.

광고6 - '악마들의 시상식' 편

사진1 - 알렉스 보그스키

패러디의 원본은 물론 오스카상 시상식이다. 담배의 9년 연속 수상이라니...
끔찍한 유머에 강심장의 흡연자들조차 뒷맛이 개운치는 않을 것 같다.
앵글로색슨족들의 광고를 보면 이 사람들 참 천부적인 독설가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 광고를 만든 알렉스 보그스키(Alex Bogusky) 역시 그 독설의 농도가 만만치 않은 것 같다.‘Truth’캠페인을 이끌어가고 있는 젊은 CD,
알렉스 보그스키. 지금 세계 광고계가 그를 주목하고 있다<사진1>.
그는 초등학교 시절 크리스마스 트리를 둥그렇게 그렸다고 아이들의 비웃음을 산 일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아트 스쿨 중퇴 학력에 오토바이와 윈드서핑을 인생의 전부로 생각했던 청년.
그가 미국 광고계로 보면 변방이라고 할 수 있는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의 한 작은 대행사, ‘Crispin, Porter & Bogusky’를 일약 메이저 리그로 끌어올리며 미국 광고계의 신성으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그는 크리에이티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까?

“맥주! 아마도...(웃음) 비뚤어진 성장기, 고통... 크리에이티브는 자연스럽게 나온다고 생각한다. NASA가 이런 연구를 한 적이 있다. 아이들 수천 명을 뽑아서 다섯 살때부터 조사를 했는데, 그 중 90퍼센트가 ‘대단히 크리에이티브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리고 열 살때, 다시 조사를 해보니까 40퍼센트가 ‘대단히 크리에이티브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15살때의 조사는 단지 10퍼센트만이 그렇다는 결과였다. 결론적으로 사람은 선천적으로 크리에이티브하며, 크리에이티브하지 않은 것이야말로 사회에서 학습된 것이다.
그 연구 결과를 믿는다. 내 아들은 두 살 반인데 어디에서 그렇게 재미있는 생각이 샘솟는지 모르겠다. 난 가르친 적도 없는데. 그러니까 우리네 부모님들이 ‘넌 별로 크리에이티브한 애가 아니다’라는 생각을 심어주지만 않으면 된다.”

사진2 - 리 클로우(Lee Clow)

사회적으로 학습되면 될수록 덜 크리에이티브해진다는 얘기는 보통 조직이 커질수록
더 많은 룰을 만들려는 우리 광고회사들의 관리적 타성을 생각할 때 뒷맛이 조금 씁쓸해진다. 보그스키는 리 클로우(Lee Clow)를 자신의 영웅이라고 생각한다<사진 2>.

‘리 클로우’, 모든 아트 디렉터들이 경의를 표하는 그 유명한 리 클로우다. 인류가 만든 광고 중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애플 컴퓨터의 ‘1984년편’에서 요즘의 ‘Think Different’ 캠페인까지, 그리고 나이키의 ‘에어 조단편’, 에너자이저의 ‘바니’편 등 숱한
화제작을 만들어낸 현 TBWA Chiat/Day의 회장, 리 클로우 말이다. 보그스키는 그 ‘광고 영웅’을 이렇게 말한다.

“내가 광고 입문 2년차 때 세미나에 간 적이 있는데 그 시절의 나는 내 일을 별로 안 좋아했다. 알다시피 광고라는 게 내 맘대로 생활 계획도 못짜는 힘든 작업 아닌가?
어쨌든 <애드위크>지에서 하는 세미나에 갔었는데, 그 때 온 CD들이 한 명씩 일어나서는 ‘안(案)을 사주지 않는 광고주는 내보내라’에서, ‘그냥 내보낼 것이 아니라 광고주를 설득시키라’는 등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광고관을 밝혔다. 꽤나 튀는 사람들의 발언을 들으면서 나는 좀 혼란스러웠다. ‘난 저런 사람들은 못 당해내겠군. 여긴 내가 있을 데가 아니다. 나가야지’하고 생각했다. 바로 그 때 리 클로우가 일어나서,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우리 회사에서 휴지통에 버리는 안이 다른 회사에서 버리는 것보다 나을지 모른다. 우린 광고주가 지겨워 할 때까지 또는 진짜 죽이는 안이 나올 때까지 끌로 판다’고 말했다. ‘음... 열심히 노력하는 거, 그런 거라면 나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일이 내 광고 일에 커다란 전환점이 됐다. 참, 세미나실로 들어가기 전에 복도에서 이스트팩을 둘러매고 샌들을 신고 있는 사람을 봤는데,
그가 바로 리 클로우였다. 그것도 내 예상을 깼다.”

그의 회사 홈페이지의 캐치프레이즈를 보면 그가 얼마만큼 리 클로우의 추종자이며 어떻게 해서 그렇게 성공했는지를 한마디로 요약하고 있다. “완전한 신경쇠약만큼 우리를 리프레시시켜 주는 것은 없다(Nothing refreshes like a complete nervous breakdown).” 결과보다는 과정을 즐길 줄 알아야 이 바닥에서 견딜 수 있음을 고백하는 보그스키, 그는 스스로를 비관주의자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그의 이런 생래적인 성정(性情)이 그를 독특한 독설가로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광고7 - 간접흡연 광고

마지막으로 지난 98년 <애드위크>지가 그에게 공공부문 대상을 수여한 간접흡연에 관한 광고를 감상해 보자. 70년대의 인기 시리즈물이었던 ‘The Bradly Bunch’(우리로 보면 ‘순풍산부인과’류의 코믹터치 가족드라마라고나 할까)를 패러디한 광고로 그 유명한 주제가를 이렇게 개사해 부르고 있다.

“줄담배를 피워대던 한 여자가 있었지요. 그녀한테는 사랑하는 세 딸이 있었구요.
세 딸은 엄마처럼 늘 담배 냄새가 밴 옷을 입고 있었답니다. 막내 딸은 천식에 걸렸죠. 하루도 빠짐없이 담배를 피워대던 한 남자가 있었지요. 하루에 세 갑은 피워댔어요. 큰아들은 어린 나이인데도 심장병 증세를 보였지요. 아버지 때문에. 어느 날 그녀는 그 남자에게 담배를 구걸하게 되었지요. 그리고 그 둘은 한 가족이 되었어요. 애들은, 애들은 암에 걸릴 위험까지 함께 나누게 되었지요. 가족이기 때문에. 이렇게 애들은 간접흡연을 하며 자랐답니다. 간접흡연! .간접흡연! .이렇게 애들은 간접흡연을 하며 자라났답니다.”<광고 7> 마치 마피아의 살육 장면에 존 레논의 ‘이매진(Imagine)’ 같은 BGM이 흐르면 그 비극적 비장함이 더 깊숙이 폐부를 찌르듯 간접흡연의 비극적 스토리를 경쾌한 Song으로 들려주는 이 CM에서 우리는 역설의 미학을 발산해내는 보그스키만의 기지에 소스라치게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광고8 - 보그스키가 만든 'And 1' 슈즈 광고시리즈

Posted by HS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