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은 괜찮은지…”
나는 그날 그녀가 새벽 2시까지 한 짓(?)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를 맞이하며 그렇게 인사말을 건넸다. 그녀는 그 날… 시골의 초등학교 운동회때 벌어지는 마을대항 줄다리기에서나 봄직한 굵은 동아줄을 수도 없이 잡아당겼다 놨다 했다.
처음으로 우리회사의 광고주가 된 LG홈쇼핑 런칭광고의 메인 씬이었기 때문에….
콘티로만 볼 것 같으면 별일 아닌 듯보였다. 촬영장 천정에 걸어놓은 통통한 순대굵기의 줄만 잡아당기면 될 것이라 제작진들은 생각했고, 아마도 그녀 또한 그랬을 것이다.
“온 손바닥에 멍들어 본 적 있냐고요?”
원망 섞인 웃음을 지으며 “글쎄 처음엔 멍들더니, 다음엔 물집이 잡히고, 상처가 아물 때쯤 되니까 엄청 간지럽더라구요”하며 상황(?)을 전하는 그녀.
나중에 알게 된 그녀의 삼중고는 그러했다.
당초 제작진들은 커다란 종을 치고 있다는 느낌이 살 수 있도록 줄 끝에 완력기를 매달았다. 감독은 체중을 실어 종을 당기는 그림을 그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처음에 그 완력기는 제 역할을 제대로 해주는 듯했다. 잡아당겼다가 다시 그 종의 육중함에 딸려 올라가는 텐션이 제대로 살아났다. 하지만 그녀의 온몸을 받쳐주기에 네 줄짜리 완력기는 무리였는지 얼마가지 않아 스프링이 철사가 돼버렸다.
당황한 제작진, 순간 스태프 중 한 명이 기발한 생각을 해냈다. 촬영장 구석에 소품으로 가져다 놓은 듯한 트램폴린에 달려 있는 강력 스프링을 이용하자는 것이었다. 그 아이디어는 적중했고 후반작업만으로는 맛을 제대로 살릴 수 없는 동작을 잡아낼 수 있었다.
그녀의 우리 LG에 대한 느낌이란다. 그래서 이번 LG홈쇼핑 첫 런칭광고 출연 제의에
흔쾌히 응했고, 그렇게 모든 스태프가 감동받을 정도로 열심히 촬영에 임해주었나 보다. 장시간 계속되는 중노동(?)에 짜증 한 번이라도 낼 법 한데, 그녀는 전혀 그런 내색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뭔가 아니었다 싶으면 쪼르르~ 하고 모니터세트로 달려와 녹화부분을 확인해가면서 한 번 더 가자고 외치는 그녀... 예뻐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녀를 위한 스테이지는 지름1.7미터, 높이 1.5미터정도의 둥근 원통이었다.
카메라가 잠시 숨을 고르고 있을 때면 그녀는 BG로 깔리는 ‘아쿠아’(네덜란드 출신 4인조 그룹)의 흥겨운 음악에 몸을 흔들곤 했다. 원통 위에 곧게 뻗어 있는 금색의 굵은 줄을 잡고 춤을 추는 자신의 모습에서 갑자기 무엇을 연상했는지, 춤을 추다 말고 어색해 하며 외친 말, “어머, 나 ‘쇼 걸’된 것 같아!” 천만의 말씀이다. 까만 원피스를 입고 쏟아지는 파란 눈을 맞으며 원통 위에서 춤을 추는 그녀는 마치 태엽을 감았다
놓으면 아름다운 선율에 맞춰 발레를 하는 뮤직박스의 인형 같았다.
볼 때마다 그녀의 매력은 새로웠다. 촬영장에서는 스태프들과 농담을 주고 받으며 벽을 허무는 연예인답지 않은 털털함, 녹음실에서는 화장기 하나 없는 맨 얼굴로 나타나 그녀만의 독특한(?) 애교 띤 목소리와 함께하는 깜찍함... 그리고 가끔씩 아무런 말 없이 무언가를 응시하는 그녀의 촉촉한 눈빛 속에선 영화 <은행나무 침대>의 미랑공주의 애틋함을 볼 수 있었다.
새로운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는 그녀는 늘 신중하게 행동한다고 한다.
아무리 그럴듯한 섭외 제안이 들어와도 스스로 느끼기에 100% 소화해 낼 수 없을 것 같다면 애초에 시작하지 않는다고 한다. 진정한 프로의 공통점을 그녀 또한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선택한 것에는 최선을 다한다고 한다. 촬영장에서의 그녀의 모습을 떠올려보면 그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겉 모습이 예쁜 것만으로는 오래가지 못한다. 속이 예뻐야 진정 아름다운 것이다.
모든 것을 이해해 주는 속 깊은 씀씀이를 보면 그녀는 정말 아름다운 여자다.
진희경, 앞으로의 그녀의 행로에 아름다운 일만 생겼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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