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WISEBELL 총 44 건의 콘텐츠
2019. 12. 4.
집사람?
비행기 사고로 죽는 사람보다 집에서 사고로 죽는 사람이 훨씬 많다는 사실은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집에 갈 때 공포심을 느끼는 사람은 별로 없다. 집에서 자주 귀신이 출몰하거나 층간 소음 때문에 늘 전시 상태가 아니라면 집에 간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안온한 느낌을 준다. 내가 아는 사람들이, 내가 아는 냄새들이, 내가 아는 소리들이, 내가 아는 감촉들이 늘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안도감인가. 마당을 지키고 있는 늙은 감나무나, 사시사철 품어주는 뒷동산이 없는 황막한 아파트일지라도 집은 늘 나를 안아주고 다독여 주는 곳이다.하지만 가끔은 무변화의 권태로 인해 여행 상품을 뒤척이거나, TV 속 여행 프로를 넋을 잃고 보기도 하고, 기차역을 지나칠 때면 즉흥적 혹은 무목적 떠남을 꿈..
2019. 10. 28.
쓸데없는생각_9
새로운놀이_어부지리의유사어는이부자리. 나체의유사어는니체... 작은산도좋고큰산도좋지만산맥일때더아름답지요. ‘봄의소리왈츠’를들으면왜대청소를해야할것같지. 절대로움직이지않아야되는춤은? 멈춤. 뒷짐지고걷는인간을보았다.맞다.인간은조류였다. 헌신이지나치면헌신짝이되기쉽다. 살아있어도죽은사람이있고죽었어도살아있는사람이있다. 지옥은공간이아니다.시간이다. 현자는자신을탓하고바보는남을탓하고나쁜놈은거짓말을한다. 엔트로피증가의법칙_신발끈은결국풀린다. 미래에서온사람이어린시절을추억하면그건과거일까.미래일까. 라이벌_조용할때더무서운사람 광고=알림+울림. 왜정작‘하고싶은말’은헤어지고올때생각날까. 5의반대는 -5일까. 0일까. 65세이상무료! 얼마안남았다. 열심히살자. 세계는사물의총합이아니라사실의총합이다.아니.사연의총합이다. 작은돈우스워하면인..
2019. 9. 27.
쉰여덟 번째 가을
커튼을 젖히고 창문을 연다. 차가운 공기가 기다렸다는 듯이 밀려 들어오며 잠이 덜 깬 눈꺼풀에 일격을 가한다. ‘세월 참 빠르지. 요놈아!’ 시간의 비웃음에 또 한 번 무력해진다. 아침저녁 찬 바람이 분지도 꽤 됐다. 계절을 가장 먼저 감지하는 곳은 코다. 훌쩍 훌쩍, 오른쪽 어깨 근처 풍문혈을 통해 바람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하면 영락없이 콧물이 극성을 부리며 시도 때도 없이 재채기가 시작된다. 지난밤에도 콧물 때문에 전전반측하다 새벽녘에야 잠깐 눈을 붙였다. 농담 삼아 나중에 자연사하게 되면 아마 이 무렵-백로 즈음-이 될 것 같다는 이야기를 종종 한다. 그만큼 언제부턴가 환절기는 힘들다. 이 즈음엔 부고장도 많이 날아온다. 계절의 변화를 몸이 이기지 못한 분들이 많다는 얘기다. 의학적으로 맞는 얘기인..
2019. 8. 22.
먼지 묻은 것들의 아름다움
끝 코코아버터로 얼룩졌던 쇼핑봉투와도 모래언덕 위에서 날리던 연들과도 기름 냄새 절은 햄버거와도 이젠 끝이군요. 서랍 안에는 조가비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저기 바닷가에서 배구하며 놀던 친구들은 다 어디로 갔나요. 수은주는 점점 가을을 향하고 있습니다. 이젠 이별을 고할 때 싸구려 선글라스에게도 왁자지껄 떠들던 우리들의 선술집 ‘금요일의 우정’에게도 그리고 밤마다 그을린 등에 붙어 불면의 밤을 제공했던 저 모래 알갱이들에게도… 아, 모두 다 떠나갑니다. 한없이 가라앉는 이 마음을 무엇으로 달랠 수 있을까요? 새 옷. 휴가를 가든 여행을 가든 다녀오면 남는 건 사진이다. 카메라를 챙기고 코닥이 좋을까. 후지가 좋을까 고민하다 총탄 챙기듯, 필름 몇 통 가방에 집어넣으면 벌써 여행지에 온 기분이다. jpg로..
2019. 7. 29.
시골길을 걷다 문득
신기하다. 참 신기하다. 오늘도 내가 여기 있다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안다는 것이. 안다는 것을 안다는 것이. 말하는 것이. 웃는 것이. 걷는 것이. 신기하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지.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참 신기하다. 하늘이 땅이 늘 떡하니 있는 것도. 밤이 오는 것도 아침이 오는 것도. 신기하다. 참 신기하다. 어떻게 먼 곳 가까운 곳의 개념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터득하고 있는지. 어떻게 저것은 조심조심 걷는 아낙네의 신발이 되었고 어떻게 저것은 논두렁 위를 한가로이 거니는 해오라기의 발바닥이 되었는지. 평생 만나지도 못할 것들이 평생 영향을 미치며 살아가고 있는지. 살아가게 만들어져 있는지. 신기하다. 신기하다. 난 참 신기하다. 나무 밑동에 기대앉는다. 옷깃 사이로 들어온 바람 한 점의 우..
2019. 7. 4.
장마주의보
노오오란 레인코트에 검은 눈동자 잊지 못하네~ 다정하게 웃음지며 말없이 말없이 걸었네! 뚱딴지같이 입안에서 노랫가락이 흘러나왔다.…빗속의 여인, 그 여인을 잊지 못하네~ 그런데 분명히 내가 부르고 있는 것 같은데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부르는 것 같은 이 느낌은 뭐지?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사람이라곤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왠지 으스스하다. 시계는 오후 4시 근처를 가리키고 있고, 창밖 은행나무 우듬지 너머로는 먹구름이 사납게 몰려오고 있다. 금시라도 장대비가 쏟아질 기세다. 오전 내내 후텁지근한 것이 장마가 시작된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노래를 멈추고 열린 창문을 닫는다. 흥얼거리는 노래가 몇 곡 되지도 않는데 유독 비와 관련된 노래가 많은 것이 무슨 까닭인지 아리송하다. (최헌의 가을비 우산속도 좋아하..
2019. 5. 28.
주거니 받거니
스마트폰 때문일 것이다. 세계화보다 무서운 건 동기화가 아닐까 하는 명제가 난데없이 떠올랐던 것은. 몇 번째 스마트폰을 교체하다 보니 스마트폰 의존도가 점점 높아져 가고 있다. 수첩도 없어지고 메모도 폰 속으로 들어가고 모든 기억들이 블랙홀처럼 스마트폰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맥루한의 말처럼 감각의 연장 정도로 끝났으면 좋겠는데, 의식의 이동이 진행 중인 것 같다. 오늘도 안드로이드 앱들은 집요하게 나의 뒤를 캔다. 좋아하는 노래가 뭔지, 좋아하는 야구팀이 어딘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는지, 오늘 운동량은 충분한지, 식사량은 오버하지 않았는지… 걱정하고 조언하고 수시로 참견을 일삼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들의 스토킹을 비난할 수가 없다. 애초에 내가 구글에게 모든 걸 내던졌기 때문이다. 구..
2019. 4. 30.
눈이 안 좋을 때 생각나는 것들
힐러리 클린턴이 연단 위에서 넘어지는 영상이 나돌던 때가 있었다. 건강 이상설을 뒷받침하며 그녀의 대선 행보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문제는 그녀의 복시에 있었다. 근시, 원시, 난시처럼 익숙하지 않은 이 단어가 멀지 않게 느껴진 이유는 한동안 복시가 내 눈을 지배한 때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양안복시니 단안복시니 하는 말도 낯설지 않게 되었는데, 나는 두 눈을 뜨면 상이 겹쳐 보이고 왼쪽 눈을 감고 오른쪽 눈만 뜨면 상이 겹치는 증상-이른바 복시 증상-이 사라지는 단안복시에 해당했다. 갑작스럽고 일시적인 시신경 마비라 특별한 치료 방법이 없다는 것이 안과 측의 설명이었다. 잘 쉬고 기다리면 회복된다는 것인데, 문제는 그동안 안대를 끼고 외눈박이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2019. 3. 20.
나는 너를 모른다
1.그 아이는 노래를 아주 잘 불렀다. 오락 시간만 되면 불려 나갔다. 목포의 눈물을 어찌나 구성지게 불러대는지 눈물이 핑 돌 지경이었다. 다른 반 선생님들도 삼삼오오 기웃거리기 일쑤였다. 초등학교 5학년 아이가 그렇게 부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도 옛날 트로트들을... 그 아이가 며칠 학교를 나오지 않았다. 당시에는 그런 일이 잦았다. 반장이었던 나는 담임 선생님과 함께 그 아이의 집을 방문하게 됐다. 지금은 복개 공사로 깔끔하게 정리됐지만 70년대 아현동에서 공덕동에 이르는 천변에는 천막촌도 즐비했었고 그 길을 따라 다 쓰러져가는 막걸리집들도 줄지어 있었다. 그중 하나가 학생부에 기록된 그 아이네 집 주소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한복 차림의 짙은 화장을 한 여자가 주전자를 따르다 말고 우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