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들이 광고를 싫어하면 광고가 아닌 척, 광고 아닌 광고를 만듭니다. 광고가 뻔하면 광고 대신 새로운 직업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매체 fee로 먹고 사는 우리나라 광고장이들에겐 덜 현실적일 수 있으나, 어떻게든 더 기발해져야 하는 건 사실입니다.
광고는 넘치고 소비자들은 똑똑해지고 TV는 편해지고 있습니다. 외국에서는 티보(Tivo) 같은 TV 자동녹화기 등으로 광고를 피해가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고 합니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로 많은 예산을 들여 광고를 만들어도 소비자가 봐주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흥행 실패입니다. 소소한 아이디어만으론 부족한 때가 온 거죠.
그래서인지 외국의 광고들은 때론 광고를 벗어납니다. 상식을 벗어나고 매너리즘에서 벗어납니다.
버거킹이 다큐멘터리를 만들었습니다
버거킹은 버거킹을 팔지 않는 오지로 떠났습니다. 그리고 오지 사람들에게 인사 대신 ‘햄버거를 먹어본 적 있느냐’고 말을 건넵니다. 예상대로 그들은 햄버거 또는 와퍼를 먹어본 적 없습니다. 우리 눈엔 시골 어르신 같은 순수한 사람들이지만, 버거킹의 눈엔 와퍼를 먹어보지 않은, 어떤 햄버거 맛에도 길들여지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그런 그들을 ‘와퍼버진(Whopper Virgins)’이라고 부릅니다.
와퍼버진이야말로 햄버거의 정확한 맛 테스트를 할 수 있다며 ‘the Purest taste test’를 시작합니다. 태국의 오지, 그린랜드와 루마니아 등지가 그곳입니다.
난생 처음 햄버거를 보는 그들은 어떻게 먹어야 할지 난감해 하죠. 빵 따로 고기 따로 먹기도 하고, 조금씩 떼어먹기도 합니다. 매우 조심스럽습니다. 그렇게 카메라 앞에서 빅맥과 와퍼를 맛본 후, 어떤 게 더 맛있는지 질문을 받습니다. 몇몇은 빅맥이 더 맛있다고 합니다. 몇몇은 잘 모르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대부분은 와퍼가 훌륭하다고 답합니다.
빅맥을 좋아하는 사람들까지도 여과 없이 보여줌으로써 테스트의 진실성을 높이고 있죠. 광고는 한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합니다. 마치 영화에서 부시맨이 처음 콜라를 접할 때처럼, 우리는 관찰자가 되고 그들은 실험대상이 됩니다. 와퍼버진이라고 칭한 것은 매우 재밌습니다. 다큐멘터리 형식은 진실성을 높입니다.
하지만 이 캠페인으로 버거킹은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뭇매를 맞아야 했습니다. 문화 사대주의 혹은 문화적 우월감으로 오지사람들을 이용했다는 거죠. 한편으론 순수한 그들이 와퍼 하나로 오염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우리에겐 정크푸드로 분류되는 음식이 반대로 순수한 곳을 찾아간 거죠. 하지만 와퍼를 나눠주고, 대신 그들의 음식을 맛있게 먹는 모습에선 마음이 풀리기도 합니다. 버거킹 작전대로 보는 이들이 동화되는 거죠.
일반 광고였으면 눈길도 주지 않았을 광고. 오지사람들이 난생 처음 먹어보는 와퍼가 아니었다면 입에 오르내리지도 않았겠죠. 와퍼는 다시 우리들의 관심사로 떠올랐습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혼다가 생방송 광고를 만들었습니다
영국 사람 에드워드는 광고엔 관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광고가 나오면 채널을 돌려버립니다. 그날도 광고를 피해 TV를 보고 있었습니다. 난데없이 맑은 하늘에 자막이 뜹니다.
‘Difficult is worth doing.’
스카이다이버들이 헬기에서 뛰어내릴 준비를 합니다. ‘힘든 일은 해볼 가치가 있다’라는 자막을 본 터라, 더욱 긴박감이 넘칩니다. 시간이 초조하게 흐르기 시작하고 다이버들은 드디어 헬기에서 몸을 날립니다. 오른쪽 상단에는 빨간 자막으로 ‘Live Ad from Spain'이란 글씨가 보입니다. 무슨 얘기를 할는지 호기심이 발동합니다. 뛰어내린 스카이다이버들은 곧장 H라는 글자를 만듭니다.
그리고 흩어졌다가 O자를 만듭니다. 이번엔 N을 만드는 듯한데, 떨어지는 속도가 빨라지면서 더욱 긴박감이 흐릅니다. 앞의 글자처럼 쉽게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스카이다이버들은 구름을 뚫고 계속 떨어집니다. 그러다 가까스로 N을 만드는 데 성공합니다. 이쯤 되면 끝까지 안 볼 수 없게 되죠.
뭔지도 모르고 계속 본 에드워드는 그것이 HONDA라는 글자를 만들기 위한 것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영국 TV 채널 4번을 통해 생중계된 광고는 에드워드도 피해가지 못했습니다. 스카이다이버들이 5개의 알파벳을 만드는 데 성공하자 환호의 소리가 터져 나옵니다. 낙하산을 펴는 그들을 뒤로 하면서 ‘The Power of Dreams'라는 혼다의 슬로건이 보이죠.
광고를 싫어하는 에드워드조차 끝까지 보게 한 광고. 영국에서 시도한 ‘Live Ad’입니다. 광고인 줄도 모르고 빠져들게 된 거죠. 생방송 광고라는 것도 신선하고, 혼다의 기업정신에 맞게 도전적인 모습을 보여준 것도 좋았습니다. 다음날 수많은 신문과 인터넷에서 기사화되고 홍보되어 몇 배의 효과까지 누렸지요. 혼다의 전략, 광고 위의 광고입니다.
퀸즈랜드관광청은 꿈의 직업을 만들었습니다
퀸즈랜드 주 관광청은 관광광고를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Island Caretaker, 그러니까 ‘섬지기’를 모집했습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아름다운 자연을 가진 퀸즈랜드.
Caretaker는 해밀튼 섬에 머물면서 그레이트 베리어 리프와 주변 섬들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을 퀸즈랜드 주 관광청에 보고하기면 하면 되는 전혀 새로운 직업입니다. 퀸즈랜드는 새롭게 만든 이 직업을 ‘the Best Job in the World’라고 했습니다. Caretaker의 업무는 물고기 먹이주기, 수영장 관리하기, 리포트 작성하기입니다. 말 그대로 꿈의 직업이지요.
우리가 어디론가 여행할 때는 직접 다녀온 블로거들의 글을 참고하듯, Caretaker는 퀸즈랜드를 여행할 수많은 사람들에게 안내자가 되고 가이드가 되는 것입니다. 6개월 동안 퀸즈랜드를 탐험하고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활동하는 대가로 1억 4천만 원이 넘는 금액을 받게 됩니다. 왕복항공권과 체재비가 제공되며, 친구도 한 명 데리고 갈 수 있죠. 그야말로 꿈의 직업입니다.
신청자는 쇄도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퀸즈랜드는 화제가 되었습니다. 광고를 하진 않았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퀸즈랜드를 알게 되고 퀸즈랜드의 자연에 대해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1월부터 지원을 받고 심사를 거쳐 5월에 1명의 지원자가 뽑혔습니다. 15개국에서 16명이 파이널리스트로 경쟁했습니다. 개 중에서 가장 열정적이고 도전적인 지원자, 영국인 벤 서덜(Ben Southall)이 뽑혔다고 합니다. 퀸즈랜드는 영리했습니다. 상투적인 관광광고 대신 생각해낸 Island Caretaker. 그들은 연봉으로든 조건으로든 업무환경으로든 ‘the Best Job in the World’를 만들어냈습니다. 퍼블리시티 효과와 광고효과는 전보다 훨씬 더 높아졌다고 합니다. 퀸즈랜드에 대해 전혀 모르던 저조차 지원하고 싶을 정도로 그곳은 아름다웠습니다. ‘2009 the One Show’도 그들의 아이디어를 인정했습니다. ‘Best of Show’로 선정됐으니까요.
때론, 광고인은 광고를 만들지 않습니다
이제 광고인의 영역은 더욱더 넓어져야 하고, 더욱더 기발해져야 하며, 더욱더 똑똑해져야 하는 시대입니다. 이미 세계 몇몇 광고회사들은 그들의 기발한 작전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소비자들이 광고를 싫어하면 광고가 아닌 척, 광고 아닌 광고를 만듭니다. 광고가 뻔하면 광고 대신 새로운 직업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매체 fee로 먹고 사는 우리나라 광고장이들에겐 덜 현실적일 수 있으나, 어떻게든 더 기발해져야 하는 건 사실입니다.
오늘도 광고인의 어깨는 더 무거워집니다. 우리와 겨루는 세계 광고인들은 벌써 새로운 걸음을 뗐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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