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과 냉전, 폐허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포츠담 광장을, 문화적 전통을 보존하는 동시에 미래 지향적인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려는 베를린 시의 노력과 때마침 동유럽 진출을 모색하던 소니 사의 야심과 부합되어 탄생한 소니센터는 이제 베를린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다.
군사작전 하듯 뚝딱하는 사이 공연예술시설 하나 세우고, 옛 하천을 복원한다고 해서 회색의 거대 도시가 문화적 스펙터클 공간이 되는 것은 아니다. ‘문화의 얼굴’을 띤 자본이 거대도시의 갈등·불평을 은폐할 수도 없다. 도시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고, 어느 정도 세월의 이끼를 필요로 한다. 이는 거리와 시간개념이 점점 소멸되어 가는 21세기 디지털 시대에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치밀한 도시 재건 프로그램을 세워 체계적인 투자와 인프라 구축을 추진해야 한다.
도시는 경제력과 기술력이 모여드는 곳이다. 과거엔 신전·궁궐·시장 등이 도시의 중심을 형성해 왔지만, 이제는 문화적 공간이 그 강력한 중심축 역할을 하고 있다. 공연장의 재정 자립도는 문화경제학의 케이프 혼(Cape Horn)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도시를 하나의 상품으로 인식하고 지역의 공공과 민간의 협력 하에 기업·주민·관광객이 선호하는 이미지·제도·시설 개발을 통해 도시 상품의 부가가치를 높여 지역경제 활성화와 지역주민의 사회적 통합을 이루려는 전략적 접근이 모색되어야 하는 것이다.
결국 도시의 상품화는 지역의 이미지를 재창출함으로써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고, 지역 정체성을 확보할 수 있는 하나의 문화전략이 될 수 있다. 특히 자신의 생활공간을 지역 주체의 창의적인 의지와 노력에 의해 능동적인 공간으로 바꾸어 나간다는 데 그 의의가 있다. 흔히 21세기는 ‘문화 상품화’의 시대라고 한다. 따라서 도시마케팅은 앞으로 지역개발의 중요한 수단이 될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지역주민의 삶과 연결된 문화의 상품화를 추구할 때 진정으로 그 지역 주민의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는 문화전략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파리 ‘국립 조르주 퐁피두센터’
퐁피두센터(Centre national d’art et de culture Georges-Pompidou)의 설립 목적은 현대 예술과 사상 연구의 중심 역할을 담당하는 것으로, 미술뿐만 아니라 음악·건축·디자인·사진·영화 등의 예술 분야를 상호 소통하고 융합하는 새로운 예술적 공간으로 탄생했다. 퐁피두센터가 위치한 파리 중심 포럼데알(Forum des Halles)과 마레(le marais) 지구 사이에 위치한 보부르(Beaubourg)가는 18세기경에는 주요 은행들이 포진하는 등 프랑스 경제적 역할의 중심지였다. 이후 19세기 초 급격한 농촌인구의 이주와 주민 수 급증으로 점차 비위생적이고 위험한 우범지역으로 바뀌었다. 이러한 불리한 여건 속에서 1967년 조르주 퐁피두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도심의 활성화를 위해 이 지역을 일반대중을 위한 현대적 문화공간으로 꾸미기 위한 야심찬 계획을 추진하게 되었다.
그 실천 작품으로 20세기 건축물의 상징으로 퐁피두센터가 세워짐으로써 파리 문화예술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는데, 하루 평균 3만 명을 상회하는 도서관 이용객 및 미술관 관람객의 증가로 도심이 활성화된 대표적 사례로 꼽히고 있다. 퐁피두 대통령의 진보적 문화정책 의지의 산물로 태어나 미술뿐 아니라 문화정보의 수집과 분류, 재생산의 장으로 활용되면서 국가의 문화유산을 풍부히 하고, 정보와 예술 창작의 확산과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을 촉진한 것이다. 이곳에는 거대한 쇼핑센터인 포럼데알을 중심으로 옛 성당과 정원 등 여행자들의 발길을 끌 만한 볼거리가 많이 있다.
퐁피두센터는 초기에 전통적인 양식의 주변 건물과는 상이한 형태와 기괴한 구조물로 인해 비판을 받았으나, 이는 설립 단계부터 기존 문화공간과의 차별성을 의도적으로 부여했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달리 말하면 파리에 다양한 문화예술 분야를 수용하고, 기존의 문화공간과는 차별된, 일반 대중이 접근하기 쉬운 세계 최대의 복합 문화예술공간을 만들기 위한 강력한 의지가 있었던 것이다.
현재 파리 보부르 지구는 최신 유행을 한 눈에 알 수 있는 패션의 거리이자 젊은이들로 넘쳐나는 문화공간이다. 옛 성당과 정원 등이 즐비한 고풍스럽고 예술적인 도시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을 듯한 파격적인 디자인의 건물들이 곳곳에 들어서 있는데, 이러한 이질적 요소들이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며 도시의 매력을 더해주고 있다.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스페인의 해안도시 빌바오(Bilbao)는 15세기 이래 제철소·광산·조선소 등이 있던 중소 공업도시로, 80년대 철강산업의 쇠퇴와 바스크 분리주의자들의 테러로 10여 년 동안 심한 고통을 겪었다. 이에 91년 바스크 자치정부는 불황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안으로 문화산업을 부흥시키고, 빌바오 시 전체를 문화도시로 탈바꿈시키기 위한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이른바 ‘빌바오리아 2000(Bilbao Ria 2000)’ 프로젝트를 추진, 유럽 진출을 모색하던 세계 최고의 현대미술관인 뉴욕 구겐하임(Guggenheim) 미술관의 분관을 설치한 것이다.
때마침 예산 낭비와 문화적 종속을 우려하는 일부 반대 여론 속에서 설계를 맡은 프랭크 게리(Frank. O. Ghery)는 현대 건축사에 한 획을 그을만한 기념비적인 건축물을 탄생시켰는데, 이에 미술관 건립을 반대하던 사람들도 모두 구겐하임 미술관의 찬양자로 바뀌었다. 연면적 24,290㎡에 달하는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은 다리와 강 등 도시 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설계 단계부터 큐레이팅 컨셉트를 전제함으로써 미술관 건물 자체와 예술작품의 관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한 결과로 평가 받고 있다.
98년 개관 첫 해에 136만 명을 비롯해 3년 만에 350만 명의 관람객이 다녀가면서 초기 투자액의 7배가 넘는 1,000억 페세타(약 7,000억 원)에 이르는 수입, 4,000여 개의 일자리 창출 등으로 800억 페세타(5,600억 원) 이상의 지역경제 효과를 창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방문객이 없어 근근이 명맥만 유지해 오던 빌바오 시내의 다른 미술관과 박물관들도 다시 활력을 찾아가면서 빌바오 도시 회생정책은 큰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베를린 ‘Sony Center’
포츠담 광장은 베를린 장벽이 설치된 후 분단과 냉전, 폐허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이에 1990년 베를린 시의회는 포츠담 광장 재개발 계획을 추진하면서, 베를린 시가 갖는 문화적 전통을 보존하는 동시에 미래 지향적인 변화를 추구하고자 했다. 주변 시설과 조화를 이루면서도 예술적이며 독창적인 건물 신축을 모색한 것인데, 때마침 동유럽 진출을 모색하던 소니(Sony) 사의 야심과 부합되어 마침내 소니센터가 탄생하게 되었다.
소니는 베를린 시의회의 요구대로 문화공간을 확보하고, 2차 세계대전 때 일부가 파괴된 유서 깊은 문화재인 에스플라나데 호텔을 건물 내에 복원하게 되었다. 현재 소니센터는 필름하우스·멀티플렉스·뮤직박스·야외광장·에스플라나데 호텔 등 시민과 관광객들의 발길을 끄는 각종 문화시설을 보유, 하루 평균 방문객만 5만 명에 이르는 베를린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다.
특히 유럽 소니 본사는 이곳이 향후 영상산업의 중심지로, 또 음악 프로젝트의 전략적 요충지로 성장할 것으로 기대하면서 유니버설 뮤직, M-TV 방송국 등을 유치, 하나의 미디어 도시로서의 탈바꿈을 모색하고 있다.
소니센터 내에 있는 필름하우스는 독일 영화의 총본산이자 유럽 최대의 영화박물관으로 엔터테인먼트에 관한 모든 정보를 제공하며, 시네스타 멀티플렉스는 영화 연구소·영화자료관·미디어텍·아이맥스영화관·뮤직박스·레스토랑 등이 자리해 있는데, 특히 아이맥스영화관은 베를린 영화제의 주 무대로서 포룸과 연계하여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고 있다.
런던 ‘바터시 화력발전소’
1939년에 완공된 바터시(Battersea) 화력발전소는 잉글랜드 최초, 최대 규모의 초대형 발전소로, 지난 50년 동안 영국 남부의 중심 송전시설로서 명성을 유지했으나 지난 1982년 발전소 기능이 중단되었다. 그러나 지금 이곳은 옛 것을 파괴하지 않고 내부는 가장 현대적이면서 창조적인 문화 발전소로 리모델링을 추진한 모범적인 사례로 꼽히며 도시의 중심적인 문화적 거점 공간으로 재탄생해가고 있다.
현재 바터시 화력발전소 재생과 혁신을 도모하기 위해 유럽 최대의 부동산 개발사인 Treasury Holdings Group이 1996년 11월부터 재개발을 주도하고 있는데, 앞으로 2~3년 내에 외관은 고전이 지배하고 실내에는 가장 현대적인 시설들이 결합된, 영국을 주도하는 ‘문화적 발전소’로 재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템즈강을 끼고 있는 이곳의 재개발은 특히 거대한 복합형 문화적 테마공간 탄생이라는 측면에서 주목 받고 있는데, 갤러리·쇼핑센터·영화관·호텔·아파트·공연장 등이 발전소 내에 핵심시설로 들어선다. 또 빅토리아역과 직접 연결된 지하철 역세권으로 이곳 템즈 뱅크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랜드마크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편 사우스 뱅크의 테이트 모던(Tate Modern)미술관과 아트 갤러리의 명성을 대체할 문화적 공간으로도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곳은 영국 록이나 팝그룹 앨범에도 자주 등장했다. 더후(The Who)의 <쿼드로피니아(Quadrophenia, 1973)>, 핑크플로이드(Pink Floyd)의 <애니멀(Animal, 1977)>에도 그 웅장한 모습이 등장한 것인데, 최근에도 콘서트나 영화촬영 행사를 개최하는 등 문화적으로도 영향력을 크게 끼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서울 양화대교 북단에 위치한 당인리 발전소도 이런 사례를 교훈삼아 역사적 가치를 계승하면서 ‘문화적 발전소’로서 부가기능과 가치를 높여 도시 마케팅을 도모하는 방안을 고려해 보는 것도 바람직할 것이다.
브라질 ‘쿠리치바’ 시
브라질 파라나 주 주도(州都)인 쿠리치바(Curitiba) 시는 리우 데 자네이루에서 남서쪽으로 약 800㎞ 떨어진 대서양 연안에 위치한 도시다. 평균 고도 약 900m로 아열대 지역인 이곳은 인구 160만, 총면적 432㎢ 규모. 문맹, 주택 부족, 교통 및 도시 기반시설 부족, 실업, 오염과 빈곤 등, 제3세계 작은 도시의 어려움을 고스란히 떠안고 있었으나 1970년대 이후 20여년간 추진해온 각종 혁신 프로그램으로 아주 새로운 도시로 탄생했다.
1970년대 초 자이머 레네(Jaime Lerne) 시장을 비롯한 10여 명의 도시계획 전문가들은 이 도시의 문제를 다른 제3세계의 도시들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방식’으로 해결하려고 시도했다. 환경에 대한 우선적인 고려와 ‘도시의 주인은 사람’이라는 인식을 도시계획의 출발점으로 삼은 것이다. 또한 돈이 많이 소요되지 않아야 한다는 방향도 확고했다.
쿠리치바 시는 우선 공공서비스 수혜자인 시민들을 위해 버스전용차로, 굴절 버스, 원통형 정류장 도입 등 교통시스템을 혁신했다. 리우 데 자네이루에서 하루에 수송하는 지하철 승객의 4배나 수송할 수 있는 대용량이었지만, 비용은 ㎞당 1/200에 지나지 않는 아주 혁신적인 대안으로서, ‘땅 위의 지하철’이라는 명성을 얻는 데에 이르렀다.
또한 ‘꽃의 거리’ 등 보행자 전용공간 확대는 도시의 주인인 시민과 행정가의 지혜가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예로 꼽힌다. 이를 도시계획가들은 ‘도시를 보행자에게 돌려주기 위한 시도’라고 평했는데, 이 같은 조치는 여러 가지 부수적인 효과를 거두게 했다. 도심 공동화 현상을 막을 수 있게 되었으며, 하루 종일 사람들이 자유롭게 이동하는 도시 문화의 중심지가 되어 도시의 핵심상권으로 부상했을 뿐만 아니라 도시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은 것이다.
쿠리치바는 환경문제에서도 성공했다. 브라질에서 주민 1인당 차지하는 녹지가 가장 큰 도시이자, 쓰레기 분리수거를 처음 도입한 도시로서 총 쓰레기 배출량 가운데 13%에 해당하는 재활용품을 분리수거함으로써 현재 분리수거를 실시하고 있는 브라질의 4개 도시 가운데 가장 높은 분리수거율을 나타내고 있다. 상수도의 오염을 예방하기 되었고, 인공 호수를 만들어 우기 때 비가 많이 와 범람할 경우 넘치는 물을 가두어 두는 임시저수지 역할을 하는 기능성 공원으로 만들기도 했다.
이에 쿠리치바 시는 1990년 유엔환경계획(UNEP)으로부터 ‘우수환경 및 재생상’을 수상했으며, 1991년 <타임>지에 의해 ‘지구에서 환경적으로 가장 올바로 사는 도시’로 선정되는 등 창조적 개발을 통한 도시 활성화의 대표적 사례로 기록되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