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와 문화를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춤이 아닐까. 광고 속에서 만나는 춤은 동서양과 인종·나이와 성별을 뛰어넘어 효과적인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Non-Verbal Communication)으로 자리 잡았다.
‘원조’ 한류 모델(?), 최승희
<나는 춤이다>, <불꽃>.
‘반도의 무희’로 일제하 조선의 무용을 세계에 알리고자 스스로를 불사른, 말 그대로‘불꽃같은 삶’을 살다간 무용가 최승희를 다룬 책의 이름이자 그에 대한 평가다. 좌파인 남편을 따라 월북했다는 이유로 한동안 잊혔던 세계적인 예술가. 무용과 음반, 광고모델로 지금의 이효리를 능가하는 월드스타로 아지노모토를 비롯한 여러 편의 광고에 모델로 출연하며 인기를 입증해 보였다. 춤은 기생이나 추던 것이라는 관념을 여지없이 깨버린 혁명가로서 그는 당대 조선을 모르는 세계인에게 조선의 춤을 알린‘원조 한류’였다. 춤을 전공으로 하는 무용가로서, 대중에게 어필하는 빅모델로서 70년 전 광고에 등장한 최승희는 광고와 춤이라는 새로운 화두를 우리에게 던져 주었다.
고금을 막론하고 이렇듯 광고와 문화를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춤이 아닐까한다. 광고 속에서 만나는 춤은 동서양과 인종·나이와 성별을 뛰어넘어 효과적인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Non-Verbal Communication)으로 자리 잡았다.
르네상스 이후 사람들이 지금처럼 몸에 대한 관심을 크게 가진 적은 없을 것이다. 소위, ‘몸짱 신드롬’은 몸에 대한 관심이 분출된 한 예라 할 수 있다. 춤은 결국 몸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된다. 춤은 몸을 바탕으로 한 문화예술의 한 분야다. 사람의 손과 발·몸을 이용한 동작, 신체언어를 통한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점에서 광고에서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TV광고에 나타난 여성과 춤에 대한 이지원(2002)의 연구에서는 광고가 기본적으로 무용적인 요소가 포함하고 있고, 대중적인 춤을 포함해 예술무용의 형태까지 다양하게 사용되며, 시각적 충격을 통해 관객에게 새로운 경험을 일으켜 춤이 광고에 자주 이용 된다고 했다. 촬영과 포스트 프로덕션 단계의 편집효과 등 첨단의 영상기법이 시청자를 모델의 몸짓과 동작에 더욱 주의 집중하게 하는 것이다. 한림대 윤태일 교수(2007)는 젊은 층의 댄스 배틀과 클럽문화, 세계적으로 이름난 한국의 비보이, 스포츠 댄스와 사교댄스의 보급으로 대한민국은 ‘춤바람 난 사회’가 되었다고 하면서, 춤을 광고와 마케팅에 활용하는, 이른바 춤바람 마케팅이 젊은 층에 어필하게 되었다고 했다. 결국 광고에 주목하게 하는 것은 물론, 브랜드 호감과 신규 고객의 유입, 광고 자체의 콘텐츠화로 구전(口傳)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에 광고에 춤이 많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자, 이제 그 춤 속으로 빠져들어 가보자.
시선을 머물게 하는 매력, 또는 마력
시청자들에게 선택받지 못하면 전달할 수 없고, 전달할 수 없으면 설득할 수 없다. 광고 속의 춤은 누가 추느냐에 따라 소비자의 시선이 머무는 정도가 달라질 것이다. LG 싸이언 디스코폰 김태희의 디스코는 소비자의 시선을 잘 터치하고 있다. 모델의 신뢰도를 구성하는 요인은 크게 전문성·카리스마·리더십, 그리고 매력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이 경우 김태희라는 모델이 갖고 있는 신뢰도는 신체적인 매력을 바탕으로 춤이라고 하는 부가적인 가치를 더해 주목을 이끌었다. 디스코폰의 누르고 돌리는 사용법을, 찍고 턴하는 디스코의 동작으로 적절하게 메시지화한 것이다. 이전의 깜찍한 아이스크림폰과는 대조적으로 주얼리의 <원모어타임(One More Time)>을 배경음악으로 매우 섹시한 춤을 선보였다.
로체 이노베이션의 추성훈이 보여준 프리스타일, 카스 레몬의 한예슬이 뽐 낸 트위스트와 함께 CM의 춤바람을 몰고 온 것으로 평가받았다. 싸이언은 비키니폰·아이스크림폰·디스코폰 등 펫네임(Pet Name)을 활용해 패밀리 브랜드를 구성하고 있는데, 다음 제품에서는 또 어떤 춤을 선보일지 궁금하다.
춤과 광고, 아무래도 1999년 전지현의 돌풍을 지나칠 수는 없을 것이다. 10년 전인 그때 신인 전지현은 삼성 마이젯 광고에서 테크노의 요정으로 등장했다. Stretch N Vern의 에 맞춘 뇌쇄적인 몸짓은 ‘광고의 주목성은 이런 것이다’라고 외치듯이 모니터 앞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했다. 이후 전지현은 많은 광고에서 춤을 선보이면서 스타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광고 한 편이 개인은 물론, 광고의 흐름까지도 바꿔놓을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였고 아마도 본격적으로 광고에서 춤판이 벌어지게 된 계기가 아닐까 싶다. 매력 있는 모델의 몸짓은 시청자의 시선을 묶어 놓는 마력을 가졌다.
‘비보이’와 ‘비(非)보이’의 춤 대결
‘강남의 귤이 강북으로 오면 탱자가 된다(江南種橘 江北爲枳)’는 속담은 수정되어야 할 것 같다.
뉴욕 뒷골목의 비트박스와 브레이크댄스는 한국에 와서 더 크게 꽃피웠다. 세계비보이 경연대회에서 수년째 최고의 자리에는 한국 비보이들이 있으니 말이다. 비보이들의 춤은 더 이상 뒷골목 철부지들의 춤이 아닌 히트상품이며, 또 다른 한류를 만들어 가고 있다. 단순한 춤을 넘어 예술의 경지로 광고 속에서도 당당하게 ‘대한민국 1등을 넘어’서고 있다. KB 국민은행 광고는 고속 촬영한 화면을 원 신 원 컷으로 구성해 보수적인 은행으로서는 과감하게, 매우 단순하고 명쾌한 광고로 주목받았다.
비보이가 남성적인 파워를 바탕으로 했다면, 다소 희극적이고 유희적인 춤으로 바람을 일으킨 것은 바로 스카이 ‘맷돌 춤’이다. 와이드폰이라 더 넓은 화면에서 놀 수 있다는 기능에서 출발한 광고에서 박기웅은 맷돌남으로 단숨에 인기를 끌었다. 그가 연기한 이 춤은 당시 클럽문화에 새바람을 일으켰는데, 푸시캣돌의 만 나오면 사람들이 모두 이 맷돌 춤을 따라하곤 했다. 맷돌 춤은 단순한 리듬이 반복되고 목을 길게 빼면서 회전하는 동작도 단순해 오히려 중독성이 강한 춤이었다. 나중에 ‘칭찬은 돌하루방도 맷돌 춤 추게 한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올 정도로 인구에 회자되었다.
함께 추는 꼭짓점 댄스
2006년 월드컵에서는 공식 스폰서 기업은 물론, 매복광고, 또는 시의 적절한 응원을 선보인 광고가 주를 이뤘는데, 그 중에서 춤을 소재로 한 광고가 있었다. 우선 영화배우 김수로가 방송 토크쇼에서 선보인 후 급속히 퍼져 월드컵 응원댄스로 자리매김한 꼭짓점 댄스를 소재로 한 광고인 KTF의 월드컵 응원광고 ‘백마부대편’은 부대 내 아침 구보 전후에 군무를 춘 사실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김수로는 그 다음 광고에서는 직접 춤 선생으로 등장해서 꼭짓점 댄스를 가르치고 있다.
여럿이 추는 춤은 모두를 하나로 묶는 힘이 있다. 강강수월래가 적들에게 숫자를 많이 보이게 하려는 전술이었지만, 실제 참여한 아녀자들에게는 전의를 다지고 파이팅을 결심하는 순간이 아니었을까? CNN 여성 앵커가 이 춤을 따라 해서 또 한 번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춤과 광고의 예술적 만남
광고에 춤이 사용되는 것은 몇 가지 이유에서다. 우선 메시지 전달과정에서 효과적인 주목을 얻어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김태희·전지현 등이 나온 광고가 여기에 해당한다. 다음으로는 오락적 기능으로 재미를 전달할 수 있다. 꼭짓점 댄스가 그런 경우다. 마지막으로 소비자의 문화적인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다. 다시 말해 광고와 문화 사이를 잇는 연결고리 역할을 할 수 있다. LG그룹의 ‘백조의 호수’는 춤을 활용한 아트마케팅으로 차이코프스키의 원곡을 댄스 뮤지컬로 다시 만든 것이다. 충격에 가까운, 남성 무용수로만 이뤄진 ‘백조의 호수’는 ‘새로운 생각이란 이런 것이다’ 라는 메시지를 잘 전달하고 있다.
그동안 광고에서 춤은 그저 ‘광고의 백댄서’ 역할만 수행해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춤 자체가 주인이 되거나 춤으로 이뤄진 광고가 많아지고 있다. 그러면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조화로운 짝을 이루는데, 다시 말해 ‘컨셉트에 적합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인간의 몸에 대한 관심과 ‘자기표현’의 하나로, 광고에서도 효과적인 표현방법으로 자리한 춤, 그러나 광고가 춤으로 표현될 때 ‘가리키는 손이 가리키는 달을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춤은 광고의 부분이지 전부는 아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