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잘 나가는 브랜드 슬로건을 살펴보면 성공요인을 하나로 설명할 수 있을 만큼 간단하지가 않다. CI라는 시각적 요인과 CM송이라는 청각적 요인을 동시에 고려해 복합적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펼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LG애드의 새 이름인 HS애드가 ‘Hybrid Solution in Advertising’을 기업 슬로건으로 채택한 것도 이런 사정과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티’나는 슬로건 하나
딱 4글자, ‘생각대로’라는 슬로건이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사람들이 노래를 따라 부르며 흥얼거리고 있고, 끊임없이 패러디가 되고 있다. 여기저기서 패러디된다는 것은 그만큼 힘을 받고 있다는 증거다.
어떤 방송사의 한 개그 프로그램에서는 이런 패러디 가사도 인기를 끌었다. “차 싫증나면 한 대 또 사고, 몸이 아프면 병원을 사고, 그러다가 돈이 다 떨어지면 아빠한테 손 벌리고. 아빠 나 백억만. 백억이면 해결되고. 좀 사는 티!” 이동통신시장의 패권다툼에서, 어떻게 보면 별로 특별하게 생기지도 않고 썰렁한 느낌마저 주는 브랜드 슬로건 하나가 뜻하지 않은 변화를 불러오고 있는 것이다.
‘손이 가요 손이 가’로 시작되는 왕년의 새우깡 CM송 신화가 되살아나고 있는 듯하다. 천문학적인 광고비를 쏟아 부으며 무수한 화제를 만들어 냈던 경쟁사의 ‘쇼’ 캠페인이 이 광고로 인해 적잖이 주춤거리고 있는 형국이다.
‘세련되었지만 어렵다’, ‘잘 만들었지만 쉽게 감이 잡히지 않는다’ 등의 평을 받아오던 T 광고가 확실히 변했다. 일단 쉽고 편해졌다. 그렇다면 이 슬로건의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이 캠페인을 주도한 SK텔레콤 박혜란 실장의 설명을 인터넷 검색 글에서 인용하면, T 슬로건의 특징은 “‘애플은 반대하고,IBM은 해결하며, 소니는 꿈꾼다’는 표현처럼 브랜드는 명사가 아니라 동사로 기억된다”는 것에 있다. “T는 무엇이든 되게 한다는 긍정적 서술어”라는 얘기다.
일명 ‘되고송’이라는 노래에 실려 리듬을 타는 것도 그 비결의 하나이다. 인기를 끌었던 CM송은 최근에도 많았다. 차승원이 재미있게 불렀던 “S오일, S오일 좋은 기름이니까”라는 ‘S오일송’도 그랬고, 임수정의 발랄한 춤이 돋보였던 현대자동차 i서티의 CM송, 광고가 광고를 패러디한 특이한 사례였던 ‘미녀는 석류를 좋아해’도 그랬다.
좋은 슬로건을 위한 복합적 해법
슬로건은 기업과 브랜드, 소비자의 소통이다. 소통력이 있는 슬로건은 우선 입에 착착 붙는 맛이 있다. 쉽고 강하다는 칭찬도 따른다. 촌철살인이라는 극찬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최근 들어 잘 나가는 브랜드 슬로건을 자세히 살펴보면 딱히 성공요인을 하나로 설명할 수 있을 만큼 간단하지가 않다.
LG의 새로운 브랜드 슬로건 ‘사랑’이나, 한화의 ‘Your Dreamworld’가 CI라는 시각적 요인과 CM송이라는 청각적 요인을 동시에 고려해 복합적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펼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LG애드의 새 이름인 HS애드가 ‘Hybrid Solution in Advertising’을 기업 슬로건으로 채택한 것도 이런 사정과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빨래 끝~, 때가 쏙~, 깐깐한 정수기, 가슴이 따뜻한 사람과 만나고 싶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습니다, 사람을 향합니다, 또 하나의 가족, 소리없이 세상을 움직입니다, Impossible is Nothing, It’s different!, It’s delicious!….
이처럼 각종 미디어를 장식하면서 웬만한 유행가보다 더 유행되었던 광고의 키워드들을 다시 돌아보자. 슬로건 자체만을 두고 보면 맹맹하고 심심한 것 같은데 예상 외로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어로 거듭 나는 이유는 어디에 있었을까? 미디어와 콘텐츠의 변화무쌍한 융합이 이루어지고 있고 소비자들의 라이프스타일이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해지고 있다. 광고뿐만 아니라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전반에서 통용되는 하이브리드 솔루션을 생각해야 할 때다.
우선 지향하는 바와 사업의 정체성이 짧은 한 마디에 응축되면 좋다. 슬로건은 브랜드를 비추는 거울이다. 브랜드의 또 다른 표현이라는 얘기다. 슬로건 만들기는 브랜드를 정의하는 작업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브랜드에 대한 바람의 나열이나 막연한 꿈이어서는 안 된다. ;바깥에 보이기 이전에 내부 구성원들의 생각과 비전을 먼저 담아야 한다. 그래야 세상을 향해 자신의 존재를 명확하게 드러낼 수 있다. 브랜드와 슬로건의 거리감은 고객의 위치에서 보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화려한 수사에 그치는 슬로건은 얼핏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다. 멋있는 단어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슬로건이 브랜드를 실종시키는 우를 범하는 사례를 우리는 많이 본다. 화려하기만 하고 알맹이가 없는 슬로건은 실체와의 괴리를 더 빨리 노출시킬 수밖에 없다.
짧은 한 마디에 브랜드의 특성을 명쾌히 담은 사례는 국외에서도 찾을 수 있다.
Energy, Efficiency, Advice - British Gas / Beyond petroleum - British Petroleum /
Keep regular - Ex-Lax laxative(변비약) / “The ultimate driving machine”-BMW /
“For life”- Volvo
나아가 다른 브랜드가 절대 주장할 수 없는 유일무이한 것을 찾아내 집중적으로 키우면 더 좋다. ‘100% 손으로 만든~미스터 피자’, ‘100% 천연암반수 맥주~하이트’ 등이 그런 예라고 할 수 있다.
세계적인 명차들은 당연히 내세울 장점들이 많다. 하지만 기억되는 슬로건들은 회사가 가장 장점으로 내세우는 단 한 가지만을 부각시킨다.
독특한 외관을 내세우는 재규어의 ‘The art of performance’, 완벽한 품질을 부각시킨 렉서스의 ‘The passionate pursuit of perfection’, 엔지니어링에 집중하는 벤츠의 ‘Engineered to move the human spirit’ 등은 단일집약의 원칙을 철저히 지키고 있다.
‘부르면 대답하는’ 슬로건을 만들어라
음운적 문채, 즉 두운·모운·각운을 잘 살리면 브랜드가 훨씬 쉽고 생생하게 기억된다. 슬로건의 기능은 브랜드의 메시지를 요약하고 브랜드 이미지를 연속시키는 데 있기 때문이다.
훌륭한 슬로건의 조건 중 하나는 ‘사람들의 입에 즐겁게 오르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반복될 수 있는 음운적 구조는 기억되는 슬로건의 기본이다.
수많은 광고의 홍수 속에서 재미있고 독특한 슬로건만이 귀에 걸리고 입에 붙는다. 주의력의 경쟁에서 밋밋한 슬로건을 당연히 이길 수밖에 없다. 우리말이든 외국어든 음률을 절묘하게 살려낸 슬로건은 당연히 빛을 발한다. ‘캐내면 할 수 있습니다~ 케토톱’ ‘사람들이 좋다. OB가 좋다’ ‘이가 탄탄-이가탄’ ‘고객이 OK할 때까지~ OK! SK!’ ‘지킬건 지킨다~ 박카스’ 등이 그러한 에라 할 수 있다.
대구와 대조의 문장구조를 활용한 브랜드 슬로건들도 눈에 띈다.
Power without powder-Crosman Arms Co / Light the night- MoroVision /
Exceeding the expectations -Raydon simulation training /
Tough on dirt, Gentle on carpet - Stanley Steamer /
You've got questions, We've got answers - Radio Shack /
Melt in your mouth, not in your hand - M&Ms /
Hit it, Believe it. - Callaway golf ball 등이다.
또한 친근감 있고 유머 넘치는 슬로건일수록 여운이 오래 남는다. 유머는 때깔을 내는 고명이 아니라 맛을 내는 필수 요소이다. 즉 양념이다. 브랜드에 있어 슬로건은 고명 같은 것이 아니라 양념 같은 존재여야 한다.
웅진 룰루 비데의 '닦지 말고 씻자'라는 슬로건은 인지도를 급상승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룰루랄라' 라는 유쾌한 징글송, 모델들의 코믹스런 연기와 어우러져 화장실을 은밀한 장소가 아니라 건강하고 밝은 생활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엽기적인 표현으로 유명해진 컬트 진 브랜드 디젤(Diesel)의 ‘성공적인 삶을 위하여(For successful living!)’라는 슬로건은 그 자체로는 밋밋하고 자칫 딱딱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누가 봐도 성공적인 삶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엉망진창 뒤죽박죽의 삶을 다양한 광고들에서 보여주었다. 이것들을 현대인들의 성공적인 삶이라 우기는 것에도 시니컬한 유머의 한 단면이 있었다.
그렇다면 딱히 내세울 장점이 없는 브랜드에게는 어떤 방법이 있을까? 약체 브랜드에서 시작해서 렌터카의 대표 브랜드가 된 Avis가 그 힌트를 주고 있다. ‘We're number two, We try harder’는 새삼 설명할 필요도 없을 만큼 겸손의 묘로 성공한 슬로건이다. 일등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절박한 주장도 설득력이 있지만, 솔직히 자신의 처지를 인정하고 더욱 열심히 하겠다는 읍소전략도 약발이 먹힐 수 있다.
인터넷 검색엔진 구글의 슬로건은 ‘Don't be evil(사악해지지 말자)’였다. 이 슬로건이 정해진 건 2003년이지만, 창업 직후부터 최근까지 구글은 이 슬로건에 비교적 부합해 왔다. 착하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사악해지지는 않겠다는 의미다. 뚜렷한 수익모델을 만들기 전, 당장 돈이 될 수 있는 배너광고를 거부했던 것도 이런 슬로건 때문이었다. 구글의 경영진은 사용자보다 광고주를 우대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고수했다.
LG의 ‘사랑해요 LG’, KT의 ‘Let's KT’ 등은 기업의 사회성을 함께 고려한 슬로건이었다. 이들이 슬로건으로 성공하는 데는 광고 외에도 구체적인 실천 프로그램의 뒷받침이 있었다. LG는 사랑의 헌혈 캠페인, 장애인 돕기, 생활보조비 지원 캠페인등 다양한 사회봉사 프로그램으로 고객사랑을 실천했다.
이제 스토리 가치로 이야기하자
브랜드 슬로건은 물론 재미있고 쉽고 다정다감하면 좋다. 하지만 음운적 특성에만 초점을 맞추어 라이팅의 전략을 짜는 시대는 지났다.
‘이야기’ 잘하는 솜씨가 새삼스럽게 브랜드 파워의 잣대가 되고 있다. 지도자의 리더십을 말할 때도 그렇고 문화 콘텐츠의 함량을 잴 때도 그렇다. 게임의 재미를 이야기할 때도 ‘이야기’를 들먹인다. 인물이든 브랜드든, 놀이든 사건이든, 그것들이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고 얼마나 ‘이야기’를 잘 해 낼 수 있는지가 진정성의 척도가 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브랜드 슬로건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슬로건 자체의 테크닉이나 레토릭보다는 슬로건에 담긴 ‘이야기 가치(Story Value)’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놀랍다, 재미있다. 특이하다, 새롭다. 강하다’ 고 칭찬하는 대신, ‘이야기 된다’라고 말해 주는 것이 훌륭한 브랜드 슬로건에 대한 예우일 것이다. 그런데 ‘이야기’란 동화 구연하듯이 아기들에게 일방적으로 읽어주던 그런 소통방식이 아니다.
브랜드가 담고 있는 메시지를 수용자가 얼마나 잘 받아들이고 제대로 반응하는가 하는 쌍방향 소통이 문제의 핵심이다.
인구에 회자되는 브랜드 슬로건을 만들자는 이야기가 바로 그런 이유다. 한 마디 툭 던지면 말꼬리를 물고 입소문을 타는 효과를 그래서 슬로건이 노리는 것이다. 이른바 입소문마케팅이나 구전마케팅, 버즈 마케팅(Buzz Marketing) 또는 바이럴 마케팅(viral marketing)이라 불리는 것들이 브랜드 슬로건의 하이브리드 솔루션을 위한 전략적 대안이 될 수도 있다.
사람들에게 끊임없는 관심과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작용과 반작용을 만들어 내면서 확산되는 슬로건은 브랜드의 가능성을 증폭 시킨다. 이제 슬로건은 입담 좋은 이야기꾼으로 거듭 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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