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연말, 일본한자능력검정협회에서는 그 해를 상징하는 ‘올해의 한자’를 선정 발표하고, 신문과 방송 등에서도 한 해를 회고하면서 그 결과를 빠짐없이 보도한다. 2007년도는 전국에서 9만 여 명이 추천, 응모한 후보 중에서 18.2%를 획득한 ‘僞(にせ; 위조·모조·가짜)’가 1위로 선정되었다. 이 결과가 말해주듯 일본인들에게 지난 한 해는 기업의 불미스러운 사건 사고가 속출하여 온통 ‘거짓’으로 얼룩진 한 해로 인상 깊게 남아 있다.
이에 이번 호에서는 그 동안 발생한 일본 기업의 불미스러운 사태에 대해 각 기업들이 어떻게 대처해왔는지 커뮤니케이션 측면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僞’와 만두파동과 소비자
요즘 중국산 만두에서 위해성 물질이 검출되었다는 보도가 전해진 후로 중국산 식품의 안전문제로 일본 열도가 떠들썩하다. 그러나 식품에 관한 한 최근 몇 년 동안 잊을 만하면 끊임없이 일본 국내 기업의 식품 허위표시 사건 등이 발생했다. 일본 경찰청 발표에 따르면 작년 한 해 동안 생산지 허위표시나 위생문제 등 식품 안전문제로 적발된 사건은 52건으로, 집계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결국 일본 소비자들의 식품위생과 안전에 대한 불신과 불안은 최고조에 달했고, 그를 반영하듯 소비자 신고접수도 증가했다.
이렇듯 기업에 있어서는 안 될 불미스러운 사건이 발생하면 일본 기업의 최고 책임자들은 저마다 철칙이라고 믿고 있는 듯 사죄 기자회견을 여는 것으로 위기발생 사후관리 매뉴얼의 절차를 밟는다. 기자회견장에서 밝히는 발표 내용 또한 이제는 닳고 닳은 정형구가 되어버렸다는 인상마저 지울 수 없다는 것이 소비자들의 반응이다.
작년 1월, 사건의 주인공인 제과회사 후지야(不二家)는 유통기한이 지난 원료를 사용한 슈크림을 출하하거나, 공장 내에서 대량의 쥐들이 발견되는 등 문제가 계속 터져 결국 3개월간 판매정지라는 위기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또 ‘언론에 알려지면 유키지루시(雪印)유업과 같은 꼴이 된다’는 내용의 문서가 사내 관리직에게 배포되었고, 사내 조사 내용을 2개월 동안 공개하지 않고 은폐해왔다는 사실까지 함께 발각되었다.
한편 홋카이도(北海道)산 상품으로 전국적으로 인기 있는 ‘시로이 고이비토(白い人)’를 제조 판매하는 이시야(石屋)제과가 유통기한을 조작하거나 과자나 아이스크림에서 균이 검출되었는데도 그 중 일부를 출하한 사건도 발생했다. 작년 8월 9일 내부고발로 인해 보건당국에 이 문제가 알려졌는데, 12일에 신문매체에 해당 아이스크림의 전량 회수를 공지하는 광고를 냈다. 하지만 광고에는 ‘규격 기준에 적합하지 않다’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대장균군 검출 사실은 애써 외면했다. 또 그로부터 이틀 뒤에는 ‘사내 자체 조사 결과 다른 상품에는 문제가 없었다’고 보건당국에 보고하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 지으려 했다. 기업의 대응자세가 이러하자, 언론은 식품안전 문제의 위해성보다는 기업의 안일한 대응 자세를 지적하는 보도를 중심으로 연일 비판하기에 이르렀다.
이들 식품안전 문제로 소비자의 신뢰를 잃은 사건을 보며 떠오르는 것이 지난 2000년에 있었던 유키지루시 유업 사건인데, 이는 당시 1만 3,000명 이상의 피해자를 발생시킨 식중독 사건. 황색포도구균이 원인으로, 공정상의 비위생과 생산일자를 허위로 표시하는 등의 이유로 인해 현장 책임자에게 형사책임을 물었고, 그 결과 유죄판결이 내려졌다. 또 2002년에는 자회사 유키지루시 식품의 쇠고기 허위표시 문제가 발생했다. 더 치명적인 것은 이러한 정보를 이미 알게 되었으면서도 뒤늦은 대처로 피해를 확대시켰다는 것인데, 고위 경영층의 판단과 관리력 부족도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사건 초기의 소극적인 대응으로 인해 사태 악화된 이후에야 저마다 신뢰 회복을 위한 대책을 마련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광고주 기업이 직면하게 될 리스크에 대한 대응전략의 중요성은 새삼 지적할 것도 없지만, 리스크 매니지먼트 활동은 기업의 경영관리의 핵심인 동시에, 커뮤니케이션 전략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기업이 직면하게 되는 불미스러운 사건 사고, 이른바 ‘불상사’가 일단 발생하면 현재 및 잠재고객, 기업과 관련된 이해 당사자 측과의 신뢰관계에 상처를 입히는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이에 리스크 관리 전문가들은 기업의 불상사를 크게 나누어, 제조공정상의 부정으로 인한 제품 결함, 위법적인 상행위나 ‘불법 부정행위’ ‘부적절하거나 불충분한 대응 및 대책’으로 나누어 분석한다. 그러면서 이 두 가지 문제가 서로 이어진다면 사태는 최악의 국면을 맞을 수밖에 없다고 진단한다.
문제 발생 단계에 따른 대응전략 중요
여러 종류의 불상사가 발생하듯이, 그에 대응하는 커뮤니케이션 전략상 고려점도 각각 다르다. 우선 단계에 따라 사건 발생 중 혹은 직후의 ‘긴급을 요하는 경우’, 그리고 거래사 및 고객과의 신뢰관계 회복을 해가는 ‘중장기 단계’로 나누어 고려할 것을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불상사가 외부로 노출되고 나서야 사태파악에 나서는, 기업의 고위 경영자층과 일선 현장의 직원들의 커뮤니케이션의 부재, 동기화(同期化)되지 않은 사건 파악 등은 리스크 발생 초기단계 진화에 문제를 가져온다. 그 예가 바로 이시야제과의 경우이다. 최고 경영자가 사건의 전모를 파악한 것은 일련의 문제 처리 의사결정이 끝난 직후였다는 것이다.
기업의 불법 부정행위가 노출된 긴급 시의 대응전략으로는 ‘설명’과 ‘책임’이 중요하다. 즉 불미스러운 문제가 무엇인지, 어떤 원인으로 발생하여 누가 책임을 질 것인지를 명확히 해야 한다. 만약 문제의 책임 소재를 두고 내부적인 갈등과 혼란을 겪게 된다면 사태는 점점 더 회복하기 힘들어지게 마련이다. 그 실패 사례로 식품회사의 위조 사건의 주인공인 미트 호프(ミ一トホ一プ)나 센바 깃초(船場吉兆)의 기자회견을 들 수 있다. 미트 호프나 센바 깃초는 전국적인 소매업 브랜드는 아니라서 재발 방지책을 수립하고 광고를 집행하는 일은 없었지만, 사전에 준비되지 않은 채 언론에 노출된 기자회견은 시청자들의 냉소와 분노를 사기에 충분했다.
대책 불충분으로 인한 불미스러운 사건의 경우는 초기 대응에 있어서 적절한 설명과 책임귀속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명확한 피해대응 대책을 준비하는 것이 긴급상황 국면을 타개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이러한 사건 사고는 그로 인해 어떤 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지에 관한 사례가 많기 때문에, 한시라도 빨리 피해에 대한 대응을 명확히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마츠시타(松下)의 전기제품이 바로 그런 사례에 꼽힌다.
마츠시타전기산업은 FF식 석유난로 사건으로 2005년도에 240억 엔을 지출했다. 그 중 제품 회수 비용은 약 60억 엔인 것에 비해, 제품 회수 캠페인을 알리는 광고비 등은 그 2배가 넘는 130억 엔이 지출되었다. 이 제품은 판매된 지 20년도 더 된 제품이어서 당시의 유통망도 확인조차 하기 어렵다. 그러나 꾸준히 공중파 방송과 신문지면을 통해 꼼꼼히 제품번호를 열거하고 소비자에게 확인하도록 공지해 나갔다. 물론 이 고지광고는 그저 제품 회수에 관련된 정보 제공만을 담고 있지만, 한 번 판매한 제품은 20년이 지나도 책임을 진다는 기업의 사명감을 보여주며 고객지향적 기업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남긴 캠페인이었다.
여기서 보듯 위험성이 노출된 자사 제품을 사용하지 않도록 제품 회수를 알린다거나, 개인정보 누설로 인한 피해자 보상과 그 방법을 명확히 하고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전개함으로써 소비자를 소중히 여긴다는 기업의 자세가 소비자들에게 전달되고, 기업 이미지를 호전시키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특히 피해자가 광범위할 경우나 식별하기 곤란할 경우에는 광고가 유효한 수단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할 수 있다.
매서운 비판보다
‘말없이 떠나는 소비자’가 더 무서워
앞서 예로 든 후지야제과 사건 이후에 실시된 닛케이 디자인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사 대상 소비자의 약 90%가 ‘기업 이미지가 나빠졌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오랫동안 국민적 사랑을 받아온 후지야의 상품 캐릭터인 ‘페코(PEKO)짱’에 대해서는 80%가 넘는 응답자가 ‘과거의 이미지가 바뀌지 않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친숙한 상품 캐릭터에 대한 소비자의 신뢰가 얼마나 두터운지를 반증하는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사건 이후 후지야제과 직영점 앞에 전시된 사람 크기의 페코짱 인형이 도난당하는 사건이 속출했을 정도니 말이다.
이에 후지야제과는 사내 생산공정의 철저한 품질관리를 추진함과 동시에, 실추된 브랜드 파워를 회복하기 위해 페코짱 캐릭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그리고 그 동안 자사 제품과 광고에만 제한적으로 사용해왔던 캐릭터를 인형과 같은 각종 캐릭터 상품 출시나 라이선스를 공여하는 것을 실험적으로 시도하고 있다. 아울러 페코짱 캐릭터는 지금 다시 리뉴얼하여 더욱 전면에 내세우려 하고 있다. 사건 사고는 비록 브랜드 이미지를 실추시켰지만, 모든 일본인들의 추억의 심벌인 강력한 캐릭터 파워가 후지야제과의 중장기 신뢰 회복책으로 어떤 효험을 발휘할지 주목된다.
한편 유업 업계의 대표 브랜드 유키지루시는 두 번이나 품질 문제 때문에 소비자의 신뢰를 잃었다. 이에 따라 2003년부터는 종합유업 제조 기업에서 버터·치즈 등 유제품 전문기업으로 탈바꿈하였다. 시판 우유 부문을 폐지하고 사원 수를 6,000명에서 1,400명으로 감축하는 등 변신을 위한 노력을 한 것이다. 그런데 그간 광고활동은 거의 하지 않았다. 소비자들이 흔히 있을 수 있는 한 번의 실수라고 너그럽게 봐줄 리 없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그러다 작년에는 드디어 그간의 조심스런 행보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신상품 전략으로 성장전략을 발표했다. 또 홋카이도산 원료를 100% 사용한 새 치즈 브랜드 ‘유키지루시 홋카이도 100’을 향후의 기간 사업으로 포지셔닝했다. 아울러 그 동안 서플라이 체인 매니지먼트(SCM) 시스템을 가동한 철저한 재고관리, 법령준수의 실천 등을 통해 얻은 고객지향성 향상이라는 자신감으로 치즈시장에서의 판매확대를 노리고 있다. SCM시스템이란 수요예측, 판매계획, 생산계획, 출하까지의 프로세스를 관리하는 시스템.
따지고 보면 새 브랜드 ‘유키지루시 홋카이도 100’을 발표한 것은 6년만이고, 새 브랜드로 시장에 출시된 제품은 19품목이지만 슬라이스 치즈와 크림치즈만 신상품이고, 나머지는 기존 상품의 원재료나 패키지를 바꿔 새 브랜드로 재런칭한 것이다.
물론 개별 상품 담당자들은 회의적인 반응이었다고 한다. ‘내용물이 같은데 브랜드명과 패키지만 바꾼다고 의미가 있는가’라는 점 때문이었다. 하지만 식품안전에 관해서는 이제 믿을 곳이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식품제조 기업으로서 취할 수 있는 것이란 소비자에게 식품의 안전과 위생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는 길 밖에 없게 되었다. 이에 유키지루시가 식품안전을 위해 그 동안 실천해 온 것을 유통업계에서도 주목하고 있었던 터라 주요 거래처 유통망에서도 주저 없이 취급해주고 있다고 전해진다.
지금까지 소개한 사례에서 보듯 자사 제품과 관련하여 사건 사고가 발생하면 사태파악을 철저히 한 후의 적극적인 초기 대응전략 수립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광고주 기업의 고위 경영자층과 일선 현장의 직원, 광고회사와 홍보회사가 서로 같은 수준의 문제 공유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일련의 사건을 접한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또한 광고집행을 할 경우에는 ‘아름답지 못한 모습을 애써 포장’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문제였고 앞으로 어떻게 개선을 위한 노력을 할 것인지’, 단지 구호 아닌 구체적 실천방안을 제시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기업과 소비자 간의 신뢰관계 회복을 꾀하는 중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법령 준수와 재발 방지대책이 중요하다는 점은 말할 것도 없다. 기업이 망하지 않는 이상 소비자의 눈은 기업이 어떻게 바뀌어 가고 있는지 주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매섭게 따지고 드는 소비자보다 불평불만 한마디 없이 자취를 감추는 소비자가 더 무섭다는 인식이 일본 기업계에도 확산되어
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