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무서워 못 가는 나라”
촬영 일주일 전, 호주에서 뜻밖의 전화가 걸려왔다. 외국인 관광객(백인 여성) 역할을 맡은 호주인 여성모델이 갑작스레 출연을 고사했다는 이야기였다. 그녀는 계약위반에 대한 페널티를 물면서까지 한국에 오길 거부했다. 촬영을 앞두고 있던 이홍주 감독과 스태프들은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복잡한 PPM과정을 거쳐 힘들게 결정되었던 모델이었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그녀가 한국에 오길 거부했던 이유는 황당하리만치 간단했다. 아니, 간단하면서 황당했다. 두 아이의 엄마로서 그 아이들을 ‘고아’로 만들고 싶지 않다는 거였다.
2006년 7월에 미사일 여섯 발을 태평양으로 날린 이후, 북한은 10월 9일 지하 핵실험을 단행한다. 정작 한국에 살고 있는 우리는 오히려 지나칠 정도로 태평했지만 세계인이 느끼는 위험의 수위는 생각보다 높았었다. 자신이 한국에 오는 것이 ‘생명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라고 받아들인 호주인 모델의 이야기는 한국 관광에 관한 홍보영상이 풀어야 할 여러 문제 중 한 가지를 상징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한마디로 말하면 ‘내 돈을 손해 보더라도 안 가는 게 좋은 나라’를 ‘가고 싶은 나라’로 바꾸는 데 일조해야 하는 것이 종합 관광홍보영상의 목적이라는 이야기다.
‘관광은 비즈니스’라는 것이 LG애드가 2006년 한국관광공사 종합 관광홍보영상 제작 용역사 선정입찰에서 제시한 화두였다. ‘적극적으로 팔자’, ‘적극적으로 소비자를 염두에 두자’는 이야기였다. 그렇듯 적극적인 영업을 위해서는 제품을 소비자에게 맞춰야 하는 것이 정석인데, 관광이라는 상품에 있어서는 그 정석을 어떻게 적용시켜야만 할까? 한국관광공사는 이 점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연구하는 훌륭한 클라이언트였다. 이런 고민을 정확하게 바라보기 위해 그 동안 다양하고 심층적인 서베이를 전 세계에 걸쳐 실시해왔고, 이것은 소비자 모델을 형성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탄생된 관광브랜드 ‘Korea, Sparkling’을 알리는 홍보영상은 이 브랜드를 이미지를 통해 전달하는 역할을 맡았다. 다시 말해 홍보영상은 새로운 브랜드를 알리는 동시에 한국에 오고 싶게 만드는, 일종의 세일즈 툴의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었다.
“한국은 고유의 전통성과 다양성이 있는 나라”
고객 프로파일링을 통해 한국관광공사는 글로벌 마켓을 3개의 권역으로 나누어 활동하고 있는데, 영상 역시 여기에 맞춰 기획했다. 구미주·일본·중국/동남아의 관광객들은 한국에 대해 각각 다른 니즈를 가지고 있다. 구미주가 한국의 이국적인 모습에 끌린다면, 일본은 값싼 스파나 에스테 시설, 그리고 중국/동남아 시장은 일본이나 호주에 비해 저렴하게 겨울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이라는, 우리가 흔히 생각지 못하는 이유로 한국을 찾는다. 영상은 그들이 원하고 우리가 제공할 수 있는 매력을 세 가지로 나누어 구성했다. ‘볼거리’, ‘먹을거리’, ‘즐길거리’, 그야말로 직관적이고 단순한 구분이었다.
이 가운데 특히 ‘즐길거리’라는 챕터는 시장권을 고려하여 차별화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일본이나 동남아 시장을 위한 버전에 삽입된 한류체험이라는 부분은 구미주 버전에서는 ‘참선’과 ‘템플스테이’로 교체되었다. 동남아 버전에서는 겨울 스포츠 부분이 들어가 있지만, 굳이 겨울스포츠를 즐기기 위해 우리나라를 찾지 않아도 되는 구미시장과 일본시장의 고객들을 위한 영상에는 수록되지 않았다. 이런 식의 시장별 차별화는 영상을 보는 동안 계속해서 관심의 강도를 유지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제작된 것이다.
‘볼거리’ 챕터의 맨 앞을 여는 성산 일출봉 장면 역시 이런 의도를 위해 특별한 과정을 거쳐 제작되었다. 각각의 권역별로 일출을 보는 배우들이 다르다. 구미주편은 백인 부부가 주인공이 되어 일출을 보는 장면으로 시작되고, 일본편은 여자끼리 온 두 명의 일본 관광객들, 그리고 중국/동남아편은 3인 가족이 일출을 보는 식이다.
이론상으로 이 장면을 완성시키기 위해서는 세 번의 일출이 필요했다. 만족스러운 광선을 얻을 수 있는 시간은 하루 중 겨우 30분 정도. 이 시간 내에 세 팀을 촬영하기 위해 한꺼번에 성산 일출봉 근처에서 세 팀의 촬영이 동시에 진행되었고, 결국 성공적으로 담아낼 수 있었다.
잠재적 관광객들을 위한다는 그런 발상은 기존 관광공사의 영상과는 다른 몇 가지 선택을 하도록 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은 서양요리, 일본요리, 중국요리 등의 해외음식이 중요한 비중을 가지고 등장한다는 점이다. 한국인들이 해외여행 갈 때 고추장을 싸가는 것처럼, 한국 여행을 오는 외국인들도 역시 자신의 식성에 대한 걱정이 있을 것이다. 한국 고유의 음식이 혹여 입에 맞지 않아도, 혹은 장기간의 여행 중 고국의 음식이 그리울 때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다양한 초이스를 한국이 제공한다라는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작은 변화였지만 고객중심으로의 사고의 전환에 의한 것이었다. 그래서 본 홍보영상에는 김치와 떡·한식·정찬 같은 한국 음식 외에도 세계 여러 나라의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세계적인 관광지로서의 한국의 모습도 소개된다.
한국·동양·서양이 모두 어우러진 소리와 영상
기존의 영상들이 일방적으로 한국성을 강조했다면 이번에는 한국성과 세계성을 아우르고자 하는 노력이 돋보인 점도 고객친화라는 기획의도와 일맥상통한다.
동양화와 서양화의 미묘한 경계를 걷고 있는 일러스트레이터 윤종태 화백과 강성남 감독이 만들어낸 영상의 애니메이션 브리지는 한국적인 것과 세계적인 것의 조화를 보여준다. 해외 유수의 애니메이션 마켓에 소개되어 일본 혹은 중국의 미감과 동일시되어온 수묵화 기법을 과감히 버리고 새로운 담채화의 느낌으로 표현을 시도했고, 결과적으로 매우 독특한 느낌의 애니메이션이 탄생한
것이다.
음악 역시 ‘동양의 야니’라 불리는 재일작곡가 양방언 씨가 맡았다. 동양과 서양의 매력을 적절히 조합하여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그는 이미 부산아시안게임의 메인 테마인 ‘프론티어’라는 명곡을 통해 한국 풍물과 서양 관현악의 성공적인 교배를 이뤄낸 바 있다. 이번 영상의 음악에서도 이런 조화가 돋보였는데, 강렬한 태평소가 리드하는 한국적 색채가 강한 도입부의 테마와 라틴 풍의 편안한 라운지 음악 같은 중간 섹션이 탁월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특히 호화로운 크루즈를 연상시키는 라틴 풍의 라운지 음악 같은 섹션은 ‘관광’이라는 테마가 주는 이국적인 환상을 불러일으키며, 턴테이블 스크래치 같은 신선한 요소는 젊고 역동적인 한국의 색채를 부각시킨다. 이렇듯 독특한 색채와 친근한 정서를 적절히 조화시킨 양방언 씨의 음악은 외국인들이 한국 관광에 대한 환상과 적당한 친근감을 느끼게 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2008년 초, 한국관광에 대한 종합홍보영상 ‘Korea, Sparkling’은 NYF의 ‘film & Video’ 부문에서 대회 최고상인 그랑프리를 수상하는 쾌거를 올렸다. 사실 담당자의 입장에서는 ‘한국 최초의 그랑프리 수상’이라는 점도 기쁘지만, 더욱 기쁜 것은 수상으로 인해 우리의 전략적 선택이 옳았다는 점을 강하게 확인 받았다는 사실이다. “이 영상은 그들이 볼 영상이고 이런 식으로 만들면 그들이 좋아할 것입니다”라는 우리의 주장이 옳은 것으로 판명되었기 때문인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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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 사이에도 궁합이 안 맞아 결혼에 골인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LG애드와 뉴욕페스티벌의 찰떡궁합은 정말 대상 감이다. 2004년부터 2008년까지 2006년 한 해만 건너뛰고는 내리 뉴욕페스티벌에서 본상을 수상하고 있는 것이다. LG애드는 2004년 나이키 월드컵 캠페인 지하철 옥외광고로 AME 부문에서 금상을 수상했는데, 이는 지하철역 기둥과 벽면 등을 축구스타 24명의 대형 이미지로 꾸민 래핑광고였다. 2005년도에는 나이키의 광고 ‘르브론 코믹북’으로 프로모션 마케팅 부문에서 금상을 수상했다. 르브론 코믹북은 르브론 제임스가 진정한 영웅이 맞서 싸워야 할 왜곡·유혹·질투·자만, 자아극복 등 다섯 가지 두려움을 이겨내고 암흑에서 세상을 구원한다는 무협만화 형태로, 나이키매장 및 PC 방 등에서 무료로 배포되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었다. 2007년에는 지하철 에스컬레이터와 버스 손잡이를 매체로 활용한 한국타이어 OOH 제작물이 옥외 부문 동상을 차지했으며, 올해에는 Film & Video Awards에서 한국 관광 홍보영상 ‘Korea, Sparkling’으로 영예의 대상을 수상하기에 이르렀다.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 중 하나로 꼽히는 광고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사례는 이전에 없었다.
2002년 한국을 방문한 제럴드 골드버그 뉴욕페스티벌 회장은 “만일 출품하려는 광고가 다른 문화권을 아우르지 못한다면 국제 광고제보다는 자국의 광고제나 지역의 광고제 등에 출품하는 게 낫다”고 설파한 바 있다. 이번 ‘Korea, Sparkling’의 뉴욕페스티벌 대상 수상이 더욱 의미 있는 것은 그렇듯 우리의 문화적 소재와 요소를 가지고, 세계의 심사위원들을 매료시키는 홍보영상물로 만들어냈다는 점 때문이다.
국제광고제 수상, ‘선망과 무관심’의 함의
최근에 국제광고제에서의 수상 실적이 늘어가고 있다. 이번 뉴욕페스티벌 Film & Video Awards 대상 수상은 최근 연이은 수상들이 우연이 아님을 말해주고 있다. 올해로 50번째를 맞는 뉴욕페스티벌은 ‘Clio Awards’ 및 ‘Cannes International Advertising Festival’ 과 함께 세계 3대 국제광고제 중 하나로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 65개국에 대표부를 두고 있다. ‘Korea, Sparkling’이 대상을 수상한 이번 Film & Video Awards 부문에는 30여 개국에서 1,000여 편의 작품이 출품되었다. 다른 광고제와 뉴욕페스티벌의 가장 큰 차이는 The Midas Awards, the Global Award, AME 등 전문 영역에 별도의 시상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상반기, 하반기로 나누어 1월 Film & Video 부문을 시작으로 2월 Television Broadcasting, 3월 Advertising in All Media, Innovative Advertising과 Healthcare Communications 등 부문별로 연간 10여 차례의 시상식을 개최하고 있는 것이다. 이밖에 세계 3대 광고제 중 하나로 일컬어지는 클리오광고제는 매년 5월경, 칸광고제는 매년 6월경에 개최된다. One show와 아시아·태평양광고제의 위상 또한 부단히 높아져 세계 3대 광고제를 위협하고 있는데, 특히 아시아·태평양광고제의 성공 배경은 유수의 국제광고제 중 가장 빠른 3월에 개최되어 여기에서의 수상작이 다른 국제광고제에서도 통한다는 수식을 만들어낸 데 있다.
어느 광고회사 대표는 혹시 “국제광고제 참관을 근속 포상휴가쯤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반문했다. 다른 나라의 광고인들은 세미나에 참석해 광고의 미래에 대해 토론하고, 세계의 크리에이터들과 만나 교류하고, 일부는 심사위원들에게 얼굴을 비춰 로비 아닌 로비도 한다는 것이다. 그 동안 우리 광고계는 국제광고제에서의 수상을 선망하면서도, 국제광고제에 무관심한 면이 없지 않았다.
글로벌 시장이 글로벌 브랜드들의 전쟁터라면 국제광고제에서의 수상은 글로벌 광고전쟁에서의 무공훈장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이번 ‘Korea, Sparkling’의 뉴욕페스티벌 대상 수상이 한국관광공사나 LG애드의 기쁨이 아닌 전체 광고계의 기쁨이 되어야 한다. 크리에이티브에 상을 주는 국제광고제 수상이 대단한 것으로 여겨져야만 독창적인 크리에이티브 또한 존중받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국제광고제에서 보다 많은 작품들이 수상을 하고, 우리 광고인들이 주인공 노릇을 할 때쯤이면 우리나라 소비자들의 광고를 보는 시선도 그만큼 높아져 있을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이번 LG애드의 ‘Korea, Sparkling’ 뉴욕페스티벌 대상 수상이 문화 콘텐츠 강국을 위한 나름대로의 애국을 한 것이라면 너무 과장한 것일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