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람이 인생을 바꿔놓는 일이 있습니다.'
예전 어느 책 광고에서 본 카피입니다. '이 책은 무슨 내용이고 뭐에 좋고 꼭 읽어야 하고……' 그렇게 주저리주저리 읊어대는 카피가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딱 치는 한 마디! 가슴이 뛰었죠. ‘어떻게 저런 숨은 진리를 찾아냈지?’ 좋은 광고를 대할 때면 늘 이런 생각이 듭니다. ‘어떻게 이 마음을 알았을까’, ‘어떻게 이 마음을 끄집어냈을까……’
메이지 초콜릿 광고는 늘 내게 그런 광고입니다. ‘초콜릿은 사람을 행복하게 합니다’라는 캠페인으로 사람들 얘기를 풀어가는 광고. 초콜릿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참 재미있고 기발합니다. 어느 하나 우리 생활이 아닌 것이 없고 우리 얘기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 그 점이 바로 이 광고의 힘입니다.
‘배부르게 먹은 후에 먹고 싶은 것은?’
‘단 것은 들어가는 배가 달라’라고 시작하는 바디카피. 이 광고 한 편에는 아무리 배가 불러도 초콜릿 한 조각쯤은 집어 먹는 여자들이 있습니다. 특히 여자들은 밥 배 따로 디저트 배 따로 있다고 할 만큼 ‘단 것’에 대한 선호가 높습니다. 남자들이 술 배 따로 있다고 하는 것처럼. 밥 실컷 먹은 후에 입가심으로 초콜릿 한 조각 입에 무는 그 쏠쏠한 재미가 광고 속에 그대로 살아있지요. 초콜릿 먹는 순간이 새로워지는 광고입니다. 늘 그렇게 초콜릿을 먹으면서도 초콜릿 광고하면 으레 ‘연인’을 떠올리거나 ‘무드’ 있는 배경을 떠올렸으니까요. 초콜릿이 정말 먹고 싶어지는 순간, 그 순간의 마음을 알아낸 광고입니다<광고 1>.
‘맛있는 초콜릿을 먹으면서 싸우기란 어렵다’
심플한 그림과 카피 한 줄이 즐거운 그림을 연상시킵니다. 싸우다가도 초콜릿 한 조각 나눠 물고 웃는 얼굴이랄까…. ‘감미롭다, 달콤하다’라는 말보다 백 배 천 배 그 맛을 더하는 카피입니다.
누굴까? 사람 사는 모습을 참 잘 관찰하고 있는 광고장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것에는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에는 어떤 것을 아는 사람’이 광고장이라는 강의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광고 공부를 지금보다 열심히 하던 시절, 그 말은 진리 같았죠. 이런 광고 때문이겠죠. 초콜릿에 대해 많은 것을 아는 사람. 그래서 누구나 ‘그렇지!’하고 끄덕이게 할 수 있는 사람. 초콜릿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사람에 대해 어떤 것을 아는 사람입니다<광고 2>.
‘아내 말고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드라마를 틀기만 하면 쉽게 들을 수 있는 얘기. 하지만 광고는 아름다운 두 번째 사랑을 절묘하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바디카피가 너무 좋아 모두 옮겨 봅니다.
‘결혼 35년, 부끄럽지만 아내 말고 좋아하는 여성이 있습니다. 아내가 자리를 비울 때면, 기회다 하고 연하의 그녀와 데이트를 즐겼었지요. 마음이 다시 젊어지는 것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발렌타인데이에 처음으로 초콜릿을 준 이도 그녀였습니다. 하지만 달콤한 시간은 길게 가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그녀에게 젊은 연인이 생겼으니까요. 말릴 방법이 없었습니다. 참으로 씁쓸한 추억입니다. 그런데 몇 년 만에 재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아빠, 다녀왔어요!” 그 연인이 돌아왔습니다. 저를 조금 닮은 남자아이를 데리고. 화이트 데이. 저는 두 개의 초콜릿을 선물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딸에게.’
딸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 이것보다 더 잘 풀어낼 수 있을까요. 어디선가는 카피라이터도 혹은 광고장이도 광고를 넘어서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광고, 마음만 먹는다고 쉽게 만들어질 수 없는 것이니까요<광고 3>.
‘인생이 러브스토리로 있을 수 있도록’
‘나는 그 사람과의 약속을 깼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랑한 이성. 태어나서 처음으로 발렌타인데이에 초콜릿을 선물한 상대. 완벽한 인생의 선배. 사랑하는 아내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나는 진심이었다. 그런데 점점 결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소중한 시간에 일을 하고, 구속하고, 연하의 나를 언제나 어린아이처럼 대하는 것도 참을 수 없었다. 대화가 중단됐다. 긴 세월…… 그리고 대학을 졸업한 후 내게 다른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 어딘가 ‘그 사람’을 닮았다. 결혼을 결심했다. ‘그 사람’은 침묵할 뿐이었다. 식은 2월 14일. 새로운 연인에게 내가 사랑을 고백했던 날. 그날 아침, ‘그 사람’과 둘이 만나 이별의 초콜릿을 건넸다. ‘약속 깨뜨려서 미안’이라는 말에 ‘그 사람’과 나는 수 년 만에 미소를 주고받았다. 신부 입장에 임하면서 나는 지키지 못한 ‘약속’을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크면 아빠의 신부가 될 거야.’
아빠를 생각하는 딸의 마음도 못지않습니다. 초콜릿 하나로 인생을 말하는 사람들. 바디카피에 누구를 울리고자 하는 절절함은 없지만 그 담백함 자체가 감동이고 위트가 됩니다. 누군가의 따뜻한 마음이 보입니다<광고 4>.
‘인생에는 초콜릿이 필요할 때가 두 번 있습니다. 행복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광고 5>
카피는, 광고는 결국 저런 힘이 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광고를 한다는 건 마음을 알아간다는 거고, 광고를 공부한다는 건 마음을 공부한다는 이야기 같습니다. 흔히 폼 나는 말로 ‘인사이트’라고 하지요. 그래서 광고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마음속을 알자면 그 마음 주인을 관찰하고 살펴보고, 해야 할 숙제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하루이틀 공들인다고 알게 되는 것은 더더욱 아닐 테고요.
초콜릿 하나로 큰 인생 이야기를 달콤하게 풀어가는 크리에이티브. 어떻게 그 마음들을 하나하나 다 알아냈는지…. 한 줄 한 줄이 다 보석 같습니다. 몇날 며칠 밤새웠을 광고. 두고두고 공부하고 싶은 광고입니다. |